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揚子法言(1)

양자법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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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楚兩龔之 其淸矣乎 注+楚兩龔之絜 其淸矣乎:楚人龔君賓‧龔長倩也. ○祕曰 “龔勝‧, 皆楚人也. 竝著名節, 世謂之楚兩龔. 漢哀帝時, 俱爲諫議大夫, 老焉, 不復仕. 莽, 言其絜中淸矣.”인저 蜀莊沈冥 注+蜀莊沈冥:祕曰 “, 字君平, 蜀人也. 晦迹不仕, 故曰沈冥.” ○光曰 “曰 ‘君平, 名遵.’ 光謂沈冥, 言道德深厚, 人不能測.”이라
땅의 양공兩龔(공승龔勝공사龔舍)의 고결함은 깨끗함에 맞을 것이다.注+ 땅의 사람 공군빈龔君賓공장천龔長倩이다. ○오비吳祕가 말하였다. “공승龔勝공사龔舍는 모두 땅 사람이다. 모두 명예와 절개로 이름이 나니, 세상에서 이들을 일러 초양공楚兩龔( 땅의 두 공씨龔氏)이라 하였다. 한 애제漢 哀帝 때 모두 간의대부諫議大夫가 되었으나 늙었다고 하여 다시는 벼슬하지 않았다. 왕망王莽태자사우太子師友좨주祭酒공승龔勝을 불렀으나 음식을 먹지 않고 죽었으니, 그 고결함이 깨끗함에 맞음을 말한 것이다.” 땅의 장준莊遵은 자취를 감추고 벼슬하지 않았다.注+오비吳祕가 말하였다. “장준莊遵군평君平이니 땅의 사람이다. 자취를 감추고 벼슬하지 않았기 때문에 침명沈冥(자신의 자취가 세상에 드러나지 않고 묻히게 함)이라고 한 것이다.” ○사마광司馬光이 말하였다. “조기趙岐의 《삼보결록三輔決錄》에 ‘군평君平은 이름이 이다.’라고 하였다. 내가 생각건대 침명沈冥도덕道德심후深厚하여 사람들이 측량할 수 없음을 말한다.”
蜀莊之才之珍也 不作苟見하고 不治苟得 注+不作苟見 不治苟得:所謂沈冥也. ○光曰 “見, 賢遍切. 養諸內而晦諸外, 不苟徇名而求利.”하며 久幽而不改其操하니 雖隋和 何以加諸 注+久幽而不改其操 雖隋和何以加諸: 祕曰 “隱肆成都, 久幽也. 雖隋侯之珠‧和氏之璧, 豈加於才珍哉.”리오
촉 땅의 장준은 재주가 훌륭하면서도 구차하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지 않고 구차하게 부귀를 얻으려고 하지 않았으며注+이른바 침명沈冥이다. ○사마광司馬光이 말하였다. “반절反切이다. 내면을 기르고 외면에 드러내지 않았으며, 구차하게 명예를 좇거나 이익을 구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은거하면서도 자신의 지조를 바꾸지 않았으니, 비록 수후隋侯의 구슬과 변화卞和의 옥이라 해도 어찌 그(장준의 훌륭한 재주와 지조)보다 더 나을 수 있겠는가.注+오랫동안 은둔했다는 것은 성도에서 점을 쳐주고 돈을 받은 것을 이른다. 오비吳祕가 말하였다. “성도成都의 저잣거리에서 재주를 숨기고 가게를 열어 오랫동안 은거한 것이다. 비록 수후隋侯의 구슬과 화씨和氏벽옥璧玉이라도 어찌 그의 재주의 훌륭함보다 더할 수 있겠는가.”
擧玆以旃이면 不亦寶乎 注+擧玆以旃 不亦寶乎:咸曰 “旃, 之也. 言擧此諸德以議之, 莊亦寶也, 何隋‧和之有.” 吾珍莊也 居難爲也 注+吾珍莊也 居難爲也:人所不能, 非難如何. ○咸曰 “言居莊之道爲難也.” ○祕曰 “莊通歷數, 以才自居, 他人之所難.” ○光曰 “吾所以重莊, 以其居身之道, 人難能也.”일새라
이런 사람을 등용하여 표창表彰하였더라면 또한 나라의 보배가 되지 않았겠는가.注+송함宋咸이 말하였다. “이다. 이런 여러 가지 덕을 들어 의논하건대 장준莊遵 역시 보배이니, 어찌 수후隋侯의 구슬과 화씨和氏의 벽옥만이 있겠느냐는 말이다.” 내가 장준을 귀중하게 여기는 것은 그가 처신한 를 보통사람은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注+남들은 할 수 없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송함宋咸이 말하였다. “장준莊遵에 처하는 것이 어려운 일임을 말한 것이다.” ○오비吳祕가 말하였다. “장준莊遵역수曆數에 통달하고 재주로 자처하였으면서 〈스스로 은거하였으니〉 다른 사람들은 하기 어려운 바이다.” ○사마광司馬光이 말하였다. “내가 장준莊遵을 귀중하게 여기는 것은 그가 처신한 를 보통 사람은 능히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不慕由 卽夷矣리니 何毚欲之有 注+不慕由卽夷矣 何毚欲之有:許由伯夷, 無欲之至, 旣不可害, 亦不可利. ○咸曰 “言莊君平, 非慕許由, 卽慕伯夷爾, 何利欲之能動.” ○光曰 “宋吳本, 毚作利, 今從李本. 毚, 士衘切, 貪也.”리오
장준은 허유許由를 흠모하지 않으면 백이伯夷를 흠모하였을 것이니, 어찌 탐욕하는 마음이 있겠는가.注+허유許由백이伯夷는 지극히 욕심이 없으니, 이미 해칠 수도 없고 또 이롭게 할 수도 없다. ○송함宋咸이 말하였다. “장군평莊君平허유許由를 흠모하지 않으면 곧 백이伯夷를 흠모하였을 것이니, 어찌 이욕利欲으로 동하게 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사마광司馬光이 말하였다. “송함본宋咸本오비본吳祕本에는 ‘’이 ‘’로 되어 있으나, 지금 이궤본李軌本을 따랐다. 반절反切이니, 탐하는 것이다.”
역주
역주1 : 潔의 통용자이다.
역주2 龔舍 : 漢나라 武原 사람으로, 자는 君倩이며 五經에 정통하여 龔勝과 함께 楚 땅의 兩龔으로 불렸다. 처음에 부름을 받아 諫大夫에 제수되었으나 병으로 사퇴하였으며, 다시 부름을 받아 博士가 되었으나 또다시 병으로 사퇴하였다. 哀帝 때 太山郡守를 지내다가 몇 달 뒤에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고하고 물러난 뒤로는 다시 벼슬길에 나가지 않은 채 집에서 졸하였다. 일찍이 未央宮에서 숙직하다가 거미줄에 날벌레가 걸려서 날아가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탄식하기를, “나의 삶도 저와 마찬가지다. 벼슬이란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거미줄과 같은 것이다. 어찌 머물러 있을 필요가 있겠는가.” 하고는 즉시 冠을 나무에 걸어둔 다음 물러났다 한다.(《漢書 兩龔傳》)
역주3 以太子師友祭酒迎勝 不食而卒 : 龔勝은 漢나라 彭城 사람으로 자는 君實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經에 밝아 哀帝 때 諫大夫와 光祿大夫를 역임했는데, 王莽이 집정하자 물러났다. 그 후 王莽이 講學祭酒‧太子師友 등의 벼슬로 불렀으나 병을 이유로 응하지 않았는데, 왕망은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더 융숭한 禮로 부르고 그대로 놓아두지 않았다. 이에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못할 것을 안 공승은 자기의 두 아들과 문인 高暉 등을 불러 “내 어찌 한 몸으로 두 임금을 섬겨 죽은 뒤에 옛 임금을 보겠는가.” 하고, 간략하게 治喪 준비를 하도록 명하고는 그 길로 斷食하여 14일 만에 79세의 나이로 죽었다.(《漢書 兩龔傳》)
역주4 莊遵 : 君平이라는 字로 더 잘 알려진 漢나라의 隱士 嚴遵을 가리킨다. 明帝의 이름인 莊을 피휘하여 嚴遵이라고 고쳤으니, 莊과 嚴은 訓이 같기 때문이다. 그는 蜀 땅에 은거하여 成都의 저잣거리에서 卜筮를 업으로 삼아 생계를 유지하였는데, 늘 忠孝와 信義를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하루에 100錢만 벌면 가게 문을 닫고 발을 내린 채 방 안에 들어앉아 《老子》를 생도들에게 가르치고 십여만 자의 《老子指歸》를 저술하기도 하였다.(《漢書 兩龔傳》)
역주5 三輔決錄 : 漢代의 趙岐가 長安의 古蹟과 인물에 대해 기록한 책이다.
역주6 [久幽 謂賣卜於成都] : 저본에는 없으나, 四部叢刊本에 근거하여 보충하였다.

양자법언(1) 책은 2019.06.07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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