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편 처음으로
誅罰함
注+공자가 司寇가 되어 재상의 일을 攝行한 뒤로 즉시 정사를 어지럽힌 대부를 죽였기 때문에 ‘始誅’라고 편명을 붙인 것이다.孔子가
大司寇가 되어
政事를 어지럽히던
大夫 少正卯를 7일 만에
誅罰한 사건을 기록한 편이기에, 편명을 ‘
始誅’로 삼았다. 소정묘
誅殺은 ≪
荀子≫에 처음 보이는데, 공자가 과연 소정묘를 주살하였는지, 아니면 후대에 날조된 기록이거나
誅를 견책(
誅責)의 뜻으로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오랫동안 논쟁이 이어졌다. 그러나 ≪
孔子家語≫ 〈
始誅〉에서
兩關 아래에서 죽이고 시신을 3일간 전시하였다고 기록하여 ≪
荀子≫보다 생생하게 사건을 전달하였으며,
孔子와
子貢의 대화를 통해서 소정묘 주살의 당위성을 설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