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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子家語(1)

공자가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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始誅 第二注+子自司寇攝相事 卽戮亂政大夫 故名始誅篇하니라
孔子爲魯司寇注+定公十四年 公以孔子爲司冠 攝行相事注+相位闕하여 子權行相事하여 有喜色注+有喜悅之容이라이어늘 仲由問曰注+子路問夫子曰 由聞君子 禍至不懼注+仲由聞호니 君子之人 禍至不恐이라하고 福至不喜注+福至不悅이라라하니
今夫子得位而喜 何也注+今夫子得行相位而喜 是何也잇가 孔子曰 然注+孔子答仲由曰 如此하다 有是言也注+有此言이라 不曰樂以貴下人乎注+不言喜於以貴禮下於人耶


제2편 처음으로 誅罰注+공자가 司寇가 되어 재상의 일을 攝行한 뒤로 즉시 정사를 어지럽힌 대부를 죽였기 때문에 ‘始誅’라고 편명을 붙인 것이다.
孔子大司寇가 되어 政事를 어지럽히던 大夫 少正卯를 7일 만에 誅罰한 사건을 기록한 편이기에, 편명을 ‘始誅’로 삼았다. 소정묘 誅殺은 ≪荀子≫에 처음 보이는데, 공자가 과연 소정묘를 주살하였는지, 아니면 후대에 날조된 기록이거나 를 견책(誅責)의 뜻으로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오랫동안 논쟁이 이어졌다. 그러나 ≪孔子家語≫ 〈始誅〉에서 兩關 아래에서 죽이고 시신을 3일간 전시하였다고 기록하여 ≪荀子≫보다 생생하게 사건을 전달하였으며, 孔子子貢의 대화를 통해서 소정묘 주살의 당위성을 설명하였다.
공자가 나라 司寇가 되어注+定公 14년에 정공이 공자를 사구로 삼은 것이다. 재상의 일을 섭행하면서注+재상의 자리가 비어 공자가 임시로 재상의 일을 행한 것이다. 기뻐하는 낯빛을 띠자注+기뻐하는 낯빛을 띤 것이다. 仲由가 물었다.注+자로가 夫子에게 물은 것이다. “제가 듣기로 君子가 닥쳐도 두려워하지 않고注+자신(仲由)이 들으니 군자는 가 닥쳐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이 이르러도 기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注+이 이르러도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夫子께서 높은 자리에 올라서 기뻐하시는 것은 어째서입니까?”注+이제 부자께서 재상의 자리에 올라서 기뻐하시는 것은 어째서이냐고 한 것이다. 공자가 답하였다. “그렇다.注+공자가 仲由에게 답하기를, “그러하다.”라고 한 것이다.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注+그런 말을 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귀한 신분으로써 남에게 낮추는 것이 즐겁다고 말하지 않겠는가.”注+귀한 신분으로써 남에게 예의를 지켜 낮추는 것이 기쁘다고 말하지 않겠느냐고 한 것이다.


역주
역주1 2-1 : 저본의 표제에 “공자가 司寇가 되다.[孔子爲司寇]”라고 되어 있다.

공자가어(1) 책은 2020.12.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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