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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子家語(1)

공자가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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於是二年 定公以爲司空注+過二歲 公用子하여 作掌百工之官이라한대 乃別五土之性注+一曰山林이요 二曰川澤이요 三曰丘陵이요 四曰墳衍이요 五曰原隰이라 子分別五土之性이라하니 而物各得其所生之宜注+百物 各得土地所宜而生이라하여 咸得厥所注+所産 皆得其地하다
先時 季氏葬昭公于墓道之南注+ 季平子逐魯昭公한대 死于乾侯하다 平子別而葬之하니 貶之不令近先公也 言葬不近祖墳이라이어늘 孔子溝而合諸墓焉注+子乃使開昭公墓移하여 合葬於衆公之墓하고 謂季桓子曰注+子謂桓子言이라 桓子 平子之子
貶君以彰己罪 非禮也注+言平子別葬昭公 是貶君之過하여 彰平子之罪 非禮所宜 今合之注+今合葬於祖墳이라 所以揜夫子之不臣注+所以掩蔽平子不臣之罪 夫子 指平子也이라하다


2년이 지나 定公이 공자를 司空으로 삼았다.注+2년이 지나 정공이 공자를 등용하여 百工(百官)을 관장하는 관리로 삼은 것이다. 이에 다섯 가지 땅의 성질을 구별하니,注+첫째 山林, 둘째 川澤, 셋째 丘陵, 넷째 다섯째 이다. 孔子가 다섯 가지 땅의 성질을 분별한 것이다. 百物이 각기 생장하기 알맞은 땅을 얻어注+百物이 각기 적합한 토양에서 생장한 것이다. 모두 잘 자라게 되었다.注+所産物이 모두 잘 자란 것이다.
을 장사 지냈는데,注+이전에 季平子 昭公을 쫓아냈는데 소공이 乾侯에서 죽었다. 계평자가 다른 곳에 장사 지냈으니, 이는 소공을 貶毁하여 先公의 무덤 가까이에 장사 지내지 못하게 한 것이다. 선조의 무덤 가까이에 장사 지내지 않았다는 말이다. 공자가 도랑을 파서 여러 墓域에 합치고注+공자가 이에 소공의 무덤을 열어 移葬해서 여러 先公의 무덤에 통합하여 장사 지내게 한 것이다. 季桓子에게 말하였다.注+공자가 季桓子에게 말한 것이다. 季桓子季平子의 아들이다.
“임금을 貶毁하여 자기의 죄를 드러내는 것은 예가 아닙니다.注+“계평자가 소공을 다른 곳에 장사 지낸 것은 임금의 허물을 폄훼하여 자신의 죄를 드러낸 것이니, 예에 맞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지금 합치는 것이注+지금 선조의 무덤에 통합시켜 장사 지내는 것이다. 신하된 도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夫子(季平子)의 죄를 덮는 방법입니다.”注+신하된 도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계평자의 죄를 덮는 방법이다. 夫子는 계평자를 가리킨다.


역주
역주1 1-2 : 저본의 표제에 “공자가 司空이 되다.[孔子爲司空]”라고 되어 있다.
역주2 墳衍 : 물가의 땅을 墳이라 하고 낮고 평평한 땅을 衍이라고 한다.
역주3 原隰 : 넓고 평평한 땅을 原이라 하고 낮고 습한 땅을 隰이라고 한다.
역주4 이보다……합치고 : 노나라 先公의 묘는 북쪽에 있는데 季孫이 昭公을 墓道 남쪽에 장사 지내 선공의 묘와 멀리 떨어지게 하였다. 그러자 공자가 대사구가 되어서 소공의 묘 밖에 도랑을 파서 선군의 묘역에 통합시킨 것이다.(≪春秋左氏傳≫ 定公 1년)
역주5 昭公 : 定公 전의 노나라 군주이다. 權臣 季孫氏를 제거하려다가 季孫氏와 孟孫氏‧叔孫氏의 逆攻을 받고 국외로 도망하여 晉나라 땅인 乾侯(간후)에 머물다가 죽었는데, 이듬해 6월에 공의 靈柩가 간후에서 노나라로 돌아온 다음 7월에 장사 지냈다.(≪春秋左氏傳≫)

공자가어(1) 책은 2020.12.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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