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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子家語(2)

공자가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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賜袞冕
唐玄宗開元二十七年 正孔子南面坐하고 內出袞冕衣之하다 然其後 先聖與門人 通服袞하다
宋徽宗崇寧四年 下太常하여 考正文宣王冠服하니 如冕十二旒 服九章이라 仍賜鎭圭하여 同王者之儀하다
金世宗大定十四年 詔從國子監請하여 先聖 冠十二旒 服十二章이요 其兗國公 繅斿九就注+祖庭廣記하다


袞服冕冠을 내리다
玄宗 開元 27년(739), 공자가 南面하여 앉도록 바로잡고 궁에서 곤복과 면관을 내어 입혔다. 그러나 그 후 先聖門人이 모두 곤복을 입었다.
4년(1105), 에 명을 내려 文宣王의 관복을 고증하여 바로잡도록 하여 을 쓰도록 하였으며, 이어서 를 내려 王者儀禮와 똑같이 하였다.
鎭圭鎭圭
世宗 大定 14년(1174), 國子監의 청을 따르도록 조서를 내려, 선성은 면관 12류 곤복 12장을 쓰도록 하고, 를 쓰도록 하였다.注+孔氏祖庭廣記≫에 보인다.


역주
역주1 宋……崇寧 : 徽宗은 송나라 8대 황제 趙佶(1100~1125)을 가리킨다. 崇寧은 1102년에서 1106년까지 쓰인 휘종의 연호이다.
역주2 太常寺 : 宗廟儀禮를 관장하는 관서이다. 秦나라 때 奉常이라 하던 것이 漢나라 때 太常으로 개칭되었고, 北齊 때 이르러 太常寺가 처음 설치되었다가 淸나라 말에 폐지되었다.
역주3 면관……9章 : 면관은 황제에서 경대부까지 쓰던 의례용 관으로, 신분에 따라 冕板에 늘어뜨린 旒의 개수가 달라진다. 12旒는 황제가 쓰던 것으로 면판 앞뒤로 각각 12줄씩 늘어뜨리면, 매 류에 12개씩 다섯 색깔의 옥을 끼웠다. 고대에 곤복은 열두 개의 무늬를 넣은 12章을 썼으나, 주나라 때는 아홉 가지 무늬를 넣은 九章服으로 바꾸었다. 아홉 가지 무늬 가운데 용, 산, 華蟲, 불, 宗彛의 다섯 가지는 상의에 넣고, 藻, 粉米, 黼, 黻의 네 가지는 치마에 넣는다.
역주4 鎭圭 : 1척 2푼 길이로, 四鎭의 산을 새겨 장식한 홀을 가리킨다. ‘鎭’은 안정시킨다[安]는 뜻으로, 사방을 안정시킨다는 의미를 지닌다. ≪周禮≫ 〈春官 大宗伯〉에 “옥으로 여섯 가지 신표를 만들어 邦國의 등급을 나눈다. 王은 鎭圭를 잡고, 公은 桓圭를 잡고, 侯는 信圭를 잡고, 伯은 躬圭를 잡고, 子는 穀璧을 잡고, 男은 蒲璧을 잡는다.[以玉作六瑞 以等邦國 王執鎭圭 公執桓圭 侯執信圭 伯執躬圭 子執穀璧 男執蒲璧]”라고 하였다.
역주5 兗國公 : 顔淵을 가리킨다. 739년 당 현종이 연국공으로 추봉하였다.
역주6 繅斿九就 : 면관에 9류를 쓰는 것을 가리킨다. ‘斿’는 ‘旒’와 고대 통용하던 글자로, 繅斿는 드리워진 류를 의미한다. ≪周禮≫ 〈夏官 弁師〉에 “제후가 드리우는 류는 9줄이다.[諸侯之繅斿九就]”라고 하였다.

공자가어(2) 책은 2020.11.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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