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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子家語(2)

공자가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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齊國師伐魯注+國師 齊卿이라하니 季康子 使冉求 率左師하여 禦之하고 樊遲爲右러니
非不能也 不信子注+言季孫德不素著하여 爲民所信也 請三刻而踰之注+與衆要信호대 三刻而踰하소서 如之한대 衆從之러라 師入齊軍한대 齊軍遁注+이라
冉有用 故能入焉이라 孔子聞之曰 義也注+在軍能却敵 合於義니라 旣戰 季孫謂冉有曰 子之於戰 學之乎 性達之乎
對曰 學之니이다 季孫曰 從事孔子어늘 惡乎學 冉有曰 卽學之孔子也로이다
夫孔子者 大聖無不該注+하고 文武竝用兼通이어니와 求也適聞其戰法호대 猶未之詳也니이다
季孫悅이어늘 樊遲以告孔子한대 孔子曰 季孫 於是乎可謂悅人之有能矣로다


나라 國師나라를 치자注+國師는 제나라 이다. 季康子冉求로 하여금 左軍을 거느려 막게 하고 樊遲로 삼았다.
樊遲季孫에게 말하였다.〉
“넘어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를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注+계손의 덕이 평소에 드러나지 않아 백성들에게 신임을 받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러니 군사들과 3이 지난 뒤에 넘어가겠다고 약속하고 도랑을 넘어가십시오.”
注+3이 지난 뒤에 도랑을 넘어가겠다고 군사들과 약속하라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하자 군사들이 따랐다. 군사들이 제나라 군대로 쳐들어가자 제나라 군사들이 달아났다.注+은 도망간다는 뜻이다.
염구가 창[]을 잘 사용하였기 때문에 敵陣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공자가 이 일을 듣고 말하였다. “그 방법이 에 맞다.”注+전쟁에서 적을 물리치는 방법이 에 맞다는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季孫이 염유에게 물었다. “그대는 전쟁하는 법을 배웠는가? 아니면 천성적으로 통달한 것인가?”
염유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배웠습니다.” 계손이 물었다. “공자를 따라다니며 섬겼는데 어디에서 배웠는가?” 염유가 대답하였다. “바로 공자께 배웠습니다.
공자라는 분은 大聖人이라 該博하시고注+는 포괄한다는 뜻이다. 둘 다 두루 정통합니다. 저는 다만 戰法만을 들었을 뿐 자세히는 모릅니다.”
계손이 듣고 기뻐하자, 번지가 이 일을 공자에게 아뢰었는데 공자가 말하였다. “이제야 계손이 남의 유능한 점을 기뻐할 줄 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역주
역주1 41-2 : 이 부분은 四部叢刊本을 저본으로 하였다.
역주2 車右 : 수레의 오른쪽에 타는 武士를 가리킨다. 옛날 전쟁할 때에는 수레에 무장한 병사 세 사람이 탔는데, 한 사람은 왼쪽에서 활을 잡고 한 사람은 오른쪽에서 칼이나 창을 잡고 한 사람은 가운데에서 수레를 몰았다.(≪書經集傳≫ 〈夏書 甘誓〉)
역주3 넘어가지……넘어가십시오 : 이 부분은 ≪春秋左氏傳≫ 哀公 11년 조의 내용과 비교해 볼 때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있다. ≪春秋左氏傳≫ 哀公 11년 조의 내용을 근거하여 보충하면 다음과 같다. 齊나라 군대가 魯나라 교외로 쳐들어오자 노나라 군사들이 도랑을 넘어가야 하는데 넘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자 번지가 군사들이 도랑을 넘지 않는 것은 넘어갈 수 없어서가 아니라 그대의 號令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니 군사들과 3刻이 지난 뒤에 넘어가겠다고 약속하면 넘어갈 것이라고 제안하였다. 원문의 ‘三刻’은 시간을 나타내는 단위로 약 45분을 가리킨다. 양백준은 ‘刻’을 ‘戒約’의 뜻으로 보았다.
역주4 (蒲)[溝] : 저본에는 ‘蒲’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本과 漢文大系本에 의거하여 ‘溝’로 바로잡았다.
역주5 : ≪春秋左氏傳≫ 哀公 11년 조에는 ‘矛’로 되어 있다.

공자가어(2) 책은 2020.11.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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