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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子家語(2)

공자가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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衛孫文子得罪於獻公하여 居戚注+文子 衛卿林父 得罪하여 以戚叛也이러니 公卒未葬 文子擊鐘焉이러라
延陵季子注+吳公子札이라 適晉할새 過戚이라가 聞之하고 曰 異哉
夫子之在此 猶燕子巢于幕也注+燕巢于幕이니 言至危也 懼猶未也어늘 又何樂焉 君又在殯하니 可乎
文子於是 終身不聽琴瑟하니라 孔子聞之曰 季子能以義正人하고 文子能克己服義하니 可謂善改矣


注+文子나라 林父이다. 죄를 지어 땅을 근거로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헌공이 죽고 장례를 치르기 전에 손문자가 을 치고 있었다.
이때 延陵季子注+나라 公子 季札이다. 나라로 가는 길에 땅을 지나다가 종소리를 듣고 말하였다. “괴이하다.
夫子(손문자)가 이곳에 있는 것은 제비가 장막에 둥지를 트는 것과 같아서注+제비가 장막에 둥지를 트는 것이니 매우 위태롭다는 말이다. 두려워하고 있어도 오히려 위태로운데 또 어찌 음악을 즐긴단 말인가. 임금의 이 또 殯所에 있는데 이렇게 해도 된단 말인가.”
그러자 문자는 종신토록 琴瑟을 연주하지 않았다. 공자가 이 일을 듣고 말하였다. “季子는 옳은 로써 남을 바르게 하였고, 文子는 자신의 욕심을 이기고 를 따랐으니 허물을 잘 고쳤다고 말할 만하다.”


역주
역주1 41-4 : 이 부분은 四部叢刊本을 저본으로 하였다.
역주2 衛나라……있었는데 : 衛 獻公이 孫文子와 함께 식사를 하자고 약속해 놓고 사냥에 빠져서 그 약속을 지키지 않자 손문자가 怒하였다. 그 후에 손문자가 가만히 있다가는 헌공에게 죽음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家衆을 모두 戚邑에 모아 놓은 뒤에 家兵을 거느리고 都城으로 들어가 헌공을 쳐서 헌공을 내쫒고 殤公을 세웠다.(≪春秋左氏傳≫ 襄公 14년)

공자가어(2) 책은 2020.11.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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