季桓子死에 魯大夫朝服而弔어늘 子遊問於孔子曰 禮乎잇가 夫子不答이러라
他日에 又問墓而不墳한대 孔子曰 今丘也는 東西南北之人이라 不可以弗識也니라
吾見封之若堂者矣
注+堂形은 四方高者라요 又見若坊者矣
注+坊形殺하고 平上而長이라요 又見
夏屋者矣
요 又見若斧形者矣
니 吾從斧者焉
호리라
於是封之하니 崇四尺이러라 孔子先反하고 虞할새 門人後러니 雨甚至라 墓崩하여 修之而歸러라
孔子問焉曰 爾來何遲오 對曰 防墓崩이러이다 孔子不應하니 三云한대
孔子泫然而流涕曰 吾聞之
호니 古不修墓
라 及二十五月而大祥
하고 五日而彈琴不成聲
하고 十日過禫而成笙歌
注+孔子는 大祥하고 二十五月禫이라 故十日踰月而歌也라라하니라
季桓子가 죽자
魯나라 대부가
朝服을 입고
弔問하였는데
子遊가 공자에게 물었다. “예에 맞습니까?” 부자가 대답하지 않았다.
훗날 또 무덤을 만들고 封墳하지 않는 것에 대해 묻자 공자가 대답하였다. “지금 나는 東西南北을 떠도는 사람인지라 무덤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봉분을 堂 모양처럼 쌓은 것을 보았고,注+堂 모양은 사방이 방정하면서도 높은 형태이다. 또
堤防 모양처럼 쌓은 것을 보았으며,
注+제방 모양은 옆이 줄어들고 위에는 평평하면서도 긴 형태이다. 또 큰 집의 지붕을 덮은 모양처럼 쌓은 것을 보았고, 또 도끼 모양처럼 쌓은 것을 보았는데
나는 도끼 모양처럼 쌓은 것을 따르겠다.”
이에 봉분하니 높이가 4자였다. 공자가 먼저 돌아오고 虞祭를 지낼 때 門人들이 뒤늦게 왔는데, 이때 비가 매우 많이 내려 묘가 무너져서 修築하고 돌아온 것이었다.
공자가 물었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늦게 왔느냐?” 문인이 대답하였다. “防 땅의 묘가 무너졌습니다.” 공자가 응답하지 않자 〈문인이 공자가 잘못 들으신 것으로 알고〉 세 번을 말하였는데
공자가 줄줄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내가 듣기로 옛날에는 무덤을
修築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장사 지낸 지 25개월이 되면
大祥을 지내고,
大祥을 지낸 뒤 5일 후에
琴을 연주하되 하나의 곡조를 끝까지 연주하지 않으며, 10일이 지나
禫祭를 지낸 뒤에
笙篁을 연주하며 노래하는 것이다.”
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