形者는 戰守之形也니 軍無常形하여 因敵變化而爲之形이라
故로 若決積水於千仞之溪하니 喩其汪然而不可測하고 沛然而不可禦也니라
原注
古昔大將之善戰者
는 自己先爲不可勝之形
하여 以待敵人可勝之形
이니 如
是也
라
故로 善戰者는 能爲不可勝이요 不能使敵之必可勝이니라
原注
故로 將之善戰者는 能爲自己不可勝之形이요 不能敵人之必可以勝이니 謂己有守禦之備요 敵無可乘之形也라
原注
自己有制勝之形이라 故로 可知요 敵人無可乘之形이라 故로 不可爲也라
原注
所以守者는 謂取勝之力이 有所不足이라 故로 且待之요 所以攻者는 謂勝敵之力이 已有其餘라 故出擊之니 言非百勝이면 不與之戰이요 非萬全이면 不與之鬪也라
善守者는 藏於九地之下하고 善攻者는 動於九天之上이니라
原注
善能守者는 韜形晦迹하여 如藏匿於九地之下하니 言隱之深而不可知也요 善能攻者는 勢迅聲烈하여 如動作於九天之上하니 言來之速而不可備也라
原注
守則固라 故로 能自保하고 攻則取라 故로 能全勝이라
原注
見吾已勝之形이 不過衆人之所知면 非所謂善之善者也니 衆人은 但知破軍殺將之勝하고 而不知所以制勝之道하나니라
原注
與人戰而勝에 天下稱之曰善이라하면 非所謂善之善者也라
天下는 但稱其智名勇功하고 而不知其見微察隱하여 取勝於無形之道하나니라
故로 擧秋毫는 不爲多力이요 見日月은 不爲明이요 耳聞雷霆은 不爲聰이니라
原注
秋毫者는 毛至秋而末銳하니 言至輕而易擧也요 日月은 言至明而易見也요 雷霆은 言至大而易聞也라
故로 擧秋毫之末은 不爲之多力이요 見日月은 不爲之明目이요 聞雷霆은 不爲之聰耳라
引此三者하여 以喩衆人之見勝과 天下之稱善者하니라
原注
易勝者는 見微察隱하여 破於未形也니 若交兵接刃하여 以力制敵이면 是難勝也라
古人之所謂善戰者는 勝於易勝하고 而不勝於難勝耳니라
原注
故로 善戰者之取勝也는 無智名之可稱이요 無勇功之可見이니 謂陰謀潛運하여 取勝於無形이라
故로 天下不稱料敵制勝之智하고 衆人不見搴旗斬將之功也라
原注
能見於未形하고 察於未萌이라 故로 百戰百勝하여 不差忒矣라
原注
戰勝不差忒者는 其所以制勝之道 在勝敵人有已敗之形也라
故로 善戰者는 立於不敗之地하고 而不失敵之敗也니라
原注
故로 將之善戰者는 自己先立於不可敗之地하고 而不失敵人之可敗者也라
審法令하고 明賞罰하며 便器械하고 養武勇하여 吾有不可勝之形은 是立於不敗之地也요 乘敵人有可勝之形하여 攻而破之는 是不失敵之敗也라
是故로 勝兵은 先勝而後求戰하고 敗兵은 先戰而後求勝하나니라
原注
以此之故로 勝兵은 先有必勝之形然後에 求與人戰하고 敗兵은 先與人戰然後에 求偶爾之勝이라
原注
善能用兵者는 修治自己不可勝之道하고 保守自己不可勝之法이라
或曰 先修道義하여 以和其衆然後에 保法令하여 以戢其下하여 使民畏而愛之라 故로 能勝人之敗라하니 於義亦通이니라
兵法은 一曰度요 二曰量이요 三曰數요 四曰稱이요 五曰勝이니
原注
地有遠近, 險易, 廣狹之形
하니 當以丈尺忖
之
니 此
는 地所以生度也
라
原注
地旣以丈尺忖度其遠近險易廣狹之形이면 而糧餉亦當以斗斛酌量其多少之用이니 此는 度所以生量也라
原注
糧餉旣以斗斛酌量其多少之用이면 而士卒亦當以千萬計算其衆寡之數니 此는 量所以生數也라
原注
士卒旣以千萬計算其衆寡之數면 而力亦當以鈞石稱較其輕重之分이니 此는 數所以生稱也라
原注
力旣以鈞石稱較其輕重之分이면 而吾必勝之形을 從此而可知矣니 此는 稱所以生勝也라
度는 謂尺寸이요 數는 謂什伍니 度以量地하고 數以量兵하여 地與兵相稱則勝하나니 五者皆因地形而得이라
故
로 勝兵
은 若以
稱銖
하고 敗兵
은 若以銖稱鎰
이니라
原注
故로 必勝之兵은 若以二十兩之鎰로 稱十二分之銖하고 必敗之兵은 若以十二分之銖로 稱二十兩之鎰하니 言以有制之兵으로 對無制之兵하여 輕重不侔也라
原注
勝兵而與人戰에 若決蓄積之水於千仞之溪者는 此軍之形也라
以水之深而不可測이요 決而不可禦로 喩善守者韜形晦迹하여 如在九地之下하니
형形이란 싸우고 수비하는 형세이니, 군대는 일정한 형세가 없어서 적에 따라 변화하여 형세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치 저장해놓은 물을 천 길의 시내에 쏟아놓는 것과 같은 것이니, 그 물이 많아서 측량할 수 없고 쏟아져서 막을 수 없음을 비유한 것이다.
옛날에 전쟁을 잘한 자는 먼저 〈수비를 잘하여 적이〉 승리할 수 없게 만들어놓고 적에게 승리할 수 있는 틈을 기다렸으니,
原注
옛날 대장 중에 전쟁을 잘한 자는 자기가 먼저 적이 승리할 수 없는 형세를 만들어놓고 적에게 승리할 수 있는 형세를 기다렸으니, 예컨대 조사趙奢가 자기의 진영에 많은 병력을 집결시켜 진秦나라 군대를 대비하였고, 또 먼저 북산北山을 점거하여 진秦나라 군대가 오기를 기다려 승리한 것이 이것이다.
승리할 수 없음은 자기에게 있고, 이길 수 있음은 적에게 있다.
原注
승리할 수 없음은 자기의 대비를 닦음에 있고, 승리할 수 있음은 적의 허점을 틈탐에 있다.
그러므로 전쟁을 잘하는 자는 적이 자기를 이길 수 없게는 하여도, 적으로 하여금 우리가 반드시 이기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原注
그러므로 장수 중에 전쟁을 잘하는 자는 〈적이〉 자기를 이길 수 없는 형세를 만들 수는 있어도, 우리가 적을 반드시 이기게 할 수는 없으니, 자기에게는 수비하고 방어하는 대비가 있고, 적은 틈탈 만한 허점의 형세가 없음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승리는 알 수는 있어도 만들 수는 없다.’ 하였으니,
原注
자기에게 승리할 수 있는 형세가 있으므로 알 수는 있고, 적에게 틈탈 만한 허점의 형세가 없으므로 만들 수는 없다고 한 것이다.
原注
적에게 틈탈 만한 형세가 없으면 승리할 수 없으니, 우선 수비하며 기다려야 한다.
原注
적에게 승리할 수 있는 형세가 있으면 기이한 계책을 내어 공격해서 점령하는 것이다.
수비는 부족할 때에 하고 공격은 유여有餘할 때에 한다.
原注
수비하는 이유는 적을 이길 만한 힘이 부족한 바가 있으므로 우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요, 공격하는 이유는 적을 이길 만한 힘이 이미 여유가 있으므로 나아가 공격해야 한다는 것이니, 백 번 싸워 백 번 승리할 경우가 아니면 더불어 결전하지 않고, 만 번 온전한 계책이 아니면 더불어 싸우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수비를 잘하는 자는 구지九地의 아래에 감추고, 공격을 잘하는 자는 구천九天의 위에서 출동하듯이 한다.
原注
수비를 잘하는 자는 자신의 형체를 감추고 행적을 감추어서 구지九地의 아래에 감춘 듯하니 깊이 숨어서 알 수 없음을 말한 것이요, 공격을 잘하는 자는 형세가 빠르고 소리가 맹렬하여 마치 구천九天의 위에서 동작하는 듯하니, 쳐들어옴이 신속하여 대비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구지九地는 그 깊음을 비유하고 구천九天은 그 높음을 비유하였다.
《울료자尉繚子》에 이르기를 ‘하늘처럼 아득한 듯하며 땅처럼 숨은 듯하다.’는 것이 이것이다.
그러므로 지키면 스스로 보전保全하고, 싸우면 온전히 승리하는 것이다.
原注
지키면 견고하므로 스스로 보전保全하고 공격하면 점령하므로 능히 온전한 승리를 거두는 것이다.
승리를 봄이 보통 사람이 아는 바를 넘지 않는 것은, 잘하는 중에 잘하는 자가 아니요,
原注
자신이 승리할 수 있는 형세를 보는 것이 보통 사람이 아는 바를 넘지 않으면, 이른바 잘하는 중에 잘하는 자가 아니니, 보통 사람들은 다만 적군을 격파하고 적장을 죽이는 승리만 알고, 승리하게 만드는 방도를 알지 못한다.
싸워서 승리했을 적에 천하 사람들이 잘 싸웠다고 말하는 것은, 잘하는 중에 잘하는 자가 아니다.
原注
적과 싸워 승리했을 적에 천하 사람들이 잘 싸웠다고 칭찬하면, 이른바 잘하는 중에 잘하는 자가 아니다.
천하 사람들은 다만 그의 지혜로운 명성과 용맹한 공로만 칭송하고, 기미幾微를 보고 은미隱微함을 살펴서 형체가 없이 승리를 취하는 방도는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가을의 털끝을 드는 것은 힘의 많음이 되지 못하고, 해와 달을 보는 것은 눈의 밝음이 되지 못하고, 귀로 천둥소리를 듣는 것은 귀의 밝음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原注
추호秋毫란 터럭이 가을에 이르러 끝이 가는 것이니 지극히 가벼워 들기 쉬움을 말한 것이요, 해와 달은 지극히 밝아서 보기 쉬움을 말한 것이요, 천둥소리는 지극히 커서 듣기 쉬움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가을의 털끝을 드는 것은 힘의 많음이 되지 못하고, 해와 달을 보는 것은 눈의 밝음이 되지 못하고, 천둥소리를 듣는 것은 귀의 밝음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를 인용하여 보통 사람들이 승리함을 보는 것과, 천하에 전쟁을 잘한다고 칭찬하는 자를 비유한 것이다.
옛날에 이른바 전쟁을 잘한다는 자는 쉽게 승리하게 만들어놓고 승리하는 자이다.
原注
쉽게 승리한다는 것은 기미幾微를 보고 은미隱微함을 살펴서 나타나지 않았을 때에 깨뜨리는 것이니, 만약 병기兵器를 가지고 교전交戰해서 힘으로써 적을 제압한다면, 이것은 어렵게 승리하는 것이다.
옛사람이 이른바 전쟁을 잘했다는 것은, 쉽게 승리하게 만들어놓고 승리한 것이요, 승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승리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전쟁을 잘하는 자의 승리는 지혜로운 명성이 없고 용맹한 공로가 없는 것이다.
原注
그러므로 전쟁을 잘하는 자가 승리함은 지혜로운 명성을 칭찬할 것이 없고 용맹한 공로를 볼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속으로 계책하고 은밀히 운용하여 형체가 없이 승리한다.
그러므로 천하 사람들은 적을 헤아려 승리하는 지혜를 칭찬하지 않고, 사람들이 적의 깃발을 뽑아오고 적장을 목 베는 공을 보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전쟁함에 승리가 어긋나지 않는 것이니,
原注
나타나지 않았을 때에 볼 수 있고 싹트지 않았을 때에 살필 수 있으므로 백 번 싸우면 백 번 승리하여 어긋나지 않는 것이다.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조처하는 바가 반드시 승리하도록 이미 패한 자에게 승리하는 것이다.
原注
‘싸움에 승리하여 어긋나지 않는 것’은 그 승리하는 방도가 적에게 이미 패할 형상이 있음으로 인하여 승리함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쟁을 잘하는 자는 패하지 않을 자리에 서고, 적의 패할 기회를 잃지 않는 것이다.
原注
그러므로 장수 중에 전쟁을 잘하는 자는 자기가 먼저 패하지 않을 자리에 서고 적의 패할 수 있는 기회를 잃지 않는 것이다.
법령을 살피고 상벌을 분명히 하며 병기를 편리하게 하고 무용武勇을 길러서 〈적이〉 나에게 승리할 수 없는 형세가 있게 함은 패하지 않을 자리에 서는 것이요, 적에게 승리할 수 있는 형세가 있음을 틈타서 공격하여 깨뜨림은 적이 패할 기회를 잃지 않는 것이다.
이 때문에 승리하는 군대는 먼저 승리한 뒤에 싸움을 청하고, 패하는 군대는 먼저 싸운 뒤에 승리하기를 구한다.
原注
이 때문에 승리하는 군대는 먼저 승리할 수 있는 형세가 있은 뒤에 적과 싸움을 청하고, 패하는 군대는 먼저 적과 싸운 뒤에 우연히 승리하기를 구하는 것이다.
용병用兵을 잘하는 자는 도道를 닦고 법을 보전한다.
原注
용병을 잘하는 자는 〈적이〉 자기를 이길 수 없는 방도를 잘 닦아 다스리고, 자기를 이길 수 없는 법을 잘 보전하여 지킨다.
그러므로 승리하여 적을 패하게 하는 정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먼저 도의道義를 닦아서 병사들을 화합하게 한 뒤에 법령法令을 보전하여 아랫사람들을 단속해서 백성들로 하여금 두려워하고 사랑하게 하므로 능히 패한 적에 승리한다.” 하니, 뜻이 또한 통한다.
병법兵法은 첫 번째는 도度이고 두 번째는 양量이고 세 번째는 수數이고 네 번째는 칭稱이고 다섯 번째는 승勝이니,
原注
이는 먼저 적이 승리할 수 없는 형세를 만들어놓고, 적에게 승리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는 것이다.
혹은 싸우고 혹은 수비하며 진영陣營을 편안히 지키고 포진함에 모두 이것을 알아야 한다.
땅은
도度를 낳으며,
諸葛亮 八陣圖
原注
땅은 멀고 가까움과 험하고 평탄함과 넓고 좁은 지형을 이른다.
도度에는 다섯 가지가 있으니, 분分‧촌寸‧척尺‧장丈‧인引을 이른다.
땅에는 멀고 가까움과 험하고 평탄함과 넓고 좁음의 지형이 있으니, 마땅히 장丈과 척尺을 가지고 헤아려야 하니, 이는 땅이 도度를 낳는 이유이다.
진영陣營을 편안히 하고 포진할 적에 이것을 알아야 하니, 팔진도八陣圖와 개방開方 같은 법이 이것이다.
原注
양量에는 다섯 가지가 있으니 약龠‧합合‧승升‧두斗‧곡斛을 이른다.
땅을 이미 장丈과 척尺을 가지고 그 멀고 가까움과 험하고 평탄함과 넓고 좁음의 지형을 헤아렸으면, 군량軍糧을 또한 마땅히 두斗와 곡斛으로 그 많고 적은 쓰임을 헤아려야 하니, 이는 도度가 양量을 낳는 이유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적과 우리의 강약强弱을 참작하여 헤아리는 것이다.” 하였다.
原注
수數에는 다섯 가지가 있으니 일一‧십十‧백百‧천千‧만萬을 이른다.
군량을 이미 두斗와 곡斛을 가지고 그 많고 적은 쓰임을 헤아렸으면, 병사 또한 마땅히 천千‧만萬으로 그 많고 적은 수를 계산하여야 하니, 이는 양量이 수數를 낳는 이유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기지권변機智權變의 수數를 사용하는 것이다.” 한다.
原注
칭稱에는 다섯 가지가 있으니 수銖‧양兩‧근斤‧균鈞‧석石이다.
병사를 이미 천千과 만萬으로 그 많고 적은 숫자를 계산했으면, 병력을 또한 균鈞과 석石을 가지고 그 경중輕重의 구분을 저울질하여 비교하여야 하니, 이는 수數가 칭稱을 낳는 이유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적과 우리의 승부勝負를 저울질하여 비교하는 것이다.” 한다.
原注
병력을 이미 균鈞과 석石을 가지고 그 경중輕重의 구분을 저울질하여 비교하였으면, 우리가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형세를 이것을 가지고 알 수 있으니, 이는 칭稱이 승勝을 낳는 이유이다.
《맹자孟子》에 이르기를 “저울질한 뒤에야 경중輕重을 알고 자로 재본 뒤에야 길고 짧음을 안다” 하였고, 《울료자尉繚子》에 이르기를 “도度와 수數를 넘지 않는다.” 하였다.
도度는 척尺과 촌寸을 이르고 수數는 십什과 오伍를 이르니, 도度로써 땅을 헤아리고 수數로써 병력을 헤아려서 땅과 병력이 서로 걸맞으면 승리하니, 이 다섯 가지는 모두 지형으로 인하여 얻어진다.
그러므로 땅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니, 이정李靖의 오진五陣이 지형으로 따라 변한 것이 이것이다.
그러므로 승리하는 군대는 일鎰을 가지고 수銖를 다는 것과 같고, 패하는 군대는 수銖를 가지고 일鎰을 다는 것과 같다.
原注
그러므로 반드시 승리하는 군대는 20냥의 일鎰을 가지고 12푼의 수數를 다는 것과 같고, 반드시 패하는 군대는 12푼의 수數를 가지고 20냥의 일鎰을 다는 것과 같으니, 통제가 있는 군대를 가지고 통제가 없는 군대를 상대하여 경중輕重이 똑같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승리하는 자의 싸움이 저장해놓은 물을 천 길의 시내에 쏟아놓는 것과 같은 것은 형세이다.
原注
‘승리한 군대로서 적과 싸울 적에 마치 미리 저장해놓은 물을 천 길의 시내에 쏟아놓는 것과 같은 것’이 군대의 형세이다.
물이 깊어서 측량할 수 없고 쏟아져 막을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수비를 잘하는 자가 형체를 감추고 행적을 감추어서 구지九地의 아래에 있는 것과 같음을 비유하였다.
적이 그 형체를 측량할 수 없으니, 적의 허점을 틈타 출동하면 그 예봉銳鋒을 또한 당할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