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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韜直解

육도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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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守土者 保守吾國之土疆也 文王問守土故 取以名篇하니라
文王 問太公曰
守土奈何
太公曰
無疏其親하며 無怠其衆하며 撫其左右하며 御其四이니이다
原注
文王 問太公曰
守吾國之境土 奈何
太公對曰
無疏遠其之親하며 無怠慢其天下之衆하며 撫綏其左右之人하며 控御其四方之士
無借人國柄이니 借人國柄이면 則失其權이요
無掘壑而附丘하며 無舍本而治末하며 日中必하며 操刀必割하며 執斧必伐이니
日中不彗 是謂失時 操刀不割이면 失利之期 執斧不伐이면 賊人將來니이다
涓不塞이면 將爲江河 熒熒不救 炎炎奈何 兩葉不去 將用斧柯니이다
原注
無假借人以國柄이니
國柄 卽政柄也 借人國柄이면 則失其威權이라
無掘壑而附丘
深谷也 大阜也
壑已深矣어늘 而又掘之하고 丘已高矣어늘 而又附之 如有權寵者而又以權寵與之 後則不可制也
無舍本而治末이니
中國 本也 末也
不治中國而治四夷 則內虛矣 不務農桑而務技巧 則無儲矣
日至中天이면 必熾熱而彗
暴乾也
操刀者 必欲其割이요 執斧者 必欲其伐이라
日至中天而不彗 是謂失時矣 操刀而不能割이면 則失便利之期矣 執斧而不能伐이면 賊人將來害之矣
涓涓之水 不能窒塞이면 後來 將爲江河而不可制矣
涓涓 水流貌
熒熒之火 不能救止 後來 將成炎炎之勢하여 而無可奈何矣리니
熒熒 火光也
兩葉初生而不能除去 後來 將用執斧柯而伐之矣리라
皆言其時之不可失이요 而事之不可不早圖也
是故 人君 必從事於富 不富 無以爲仁이요
不施 無以合親이니 疏其親則害하고 失其衆則敗
無借人利器 借人利器 則爲人所害하여 而不終於世니이다
原注
是故 爲人君者 必欲從事於富 若不富 則無以爲仁이라
富者 非止於富國이요 在於富民也 民富則爲仁矣
若民貧이면 則救死不贍이어니 奚暇治禮義哉리오
人君不施與 則無以合九族之親이니 疏其九族之親이면 則國有害 失其天下之衆이면 則國必敗
無假借人以利器 假借人以利器 則爲人所害하여 而不令終於世
喩人君不可以權假人이니 以權假人이면 反爲人所害
文王曰
何謂仁義
太公曰
敬其衆하며 合其親이니 敬其衆則和하고 合其親則喜 是謂仁義之紀니이다
原注
文王問曰
何謂仁義
太公答曰
敬其衆而不怠하고 合其親而不疏
敬其衆이면 則一國和하고 合其親이면 則九族喜 此所謂仁義之紀
仁主於愛하고 義主於宜 以敬其衆, 合其親言하니 皆仁義之用이요 非仁義之體也
無使人奪汝威 因其明하고 順其常하여 順者 任之以德하고 逆者 絶之以力하여 敬之勿疑하면 天下和服하리이다
原注
無使人侵奪汝威 卽權也
首曰無借人國柄이라하고 中曰無借人利器라하고 此曰無使人奪汝威라하니 甚言其權之不可失也
主權一失이면 則如 此太公所以拳拳而致誡也
因其人心之明하고 順其天道之常하여 順者 任之以德이니 是也
逆者 絶之以力이니 是也
人君能敬其事而無疑 則天下之人心和服矣리라
孔子論하시니 亦此意也


原注
수토守土란 내 나라의 강토를 보전하여 지키는 것이니, 문왕文王이 강토를 지키는 것을 물었으므로, 이를 취하여 편명篇名으로 삼은 것이다.
문왕文王태공太公에게 물었다.
강토疆土를 지키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태공太公이 대답하였다.
“친척을 소원히 하지 말며, 무리(백성)를 소홀히 하지 말며, 좌우에 있는 신하를 어루만지며, 사방四方을 통제해야 합니다.
原注
문왕文王태공太公에게 물었다.
내 나라의 강토를 지키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태공太公이 대답하였다.
구족九族의 친척을 소원히 하지 말며, 천하의 무리를 소홀히 하지 말며, 좌우에 있는 사람(신하)을 어루만지고 편안히 하며, 사방에 나가 있는 병사들을 통제하여야 한다.
남에게 나라의 권력을 빌려주지 말아야 하니 남에게 나라의 권력을 빌려주면 권위를 잃게 됩니다.
골짝을 파서 언덕에 붙이지 말고, 근본을 버리고 말단을 다스리지 말며, 해가 중천에 있거든 반드시 물건을 말리고, 칼을 잡았으면(뽑았으면) 반드시 베고, 도끼를 잡았으면 반드시 쳐야 합니다.
해가 중천에 있을 때에 말리지 않으면 이것을 일러 때를 잃었다 하고, 칼을 잡고도 베지 않으면 이로운 시기를 잃고, 도끼를 잡고도 치지 않으면 해치는 사람이 장차 옵니다.
졸졸 흐르는 물을 막지 않으면 장차 강하江河가 될 것이고, 불씨가 반짝거릴 때 끄지 않으면 불타오르는 것을 어찌 막을 수 있겠으며, 두 잎일 때 제거하지 않으면 장차 도끼 자루를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原注
남에게 나라의 정권[國柄]을 빌려주지 말아야 한다.
국병國柄은 바로 정병政柄(정치 권력)이니, 남에게 나라의 권력을 빌려주면 그 권위를 잃는다.
골짝을 파서 언덕에 붙이지 말아야 한다.
은 깊은 골짜기요, 는 큰 언덕이다.
골짝이 이미 깊은데도 또다시 파고 언덕이 이미 높은데도 또다시 붙이는 것은 권력과 총애를 소유하고 있는 자에게 또다시 권력과 총애를 주는 것과 같으니, 이렇게 되면 뒤에는 제재할 수가 없다.
근본을 버리고 말단을 다스리지 말아야 한다.
중국中國은 근본이고 사이四夷(말단)이며, 농사짓고 누에 치는 것은 근본이고 기교 있는 솜씨는 이다.
중국中國을 다스리지 않고 사방 오랑캐를 다스리면 안이 비게 되고, 농사짓고 누에 치는 것에 힘쓰지 않고 기교에 힘쓰면 저축이 없게 된다.
해가 중천에 있으면 반드시 뜨거우므로 이때 물건을 말려야 한다.
는 햇볕에 말리는 것이다.
칼을 잡은 자는 반드시 베고자 하고, 도끼를 잡은 자는 반드시 치고자 한다.
해가 중천에 이르렀는데도 물건을 말리지 않으면 이것을 일러 때를 잃었다 하고, 칼을 잡고도 능히 베지 못하면 편리한 기회를 잃고, 도끼를 잡고도 치지 못하면 해치는 사람이 장차 와서 나를 해칠 것이다.
졸졸 흐르는 물을 막지 못하면 뒤에 장차 강하江河가 되어서 제재하지 못할 것이다.
연연涓涓은 물이 졸졸 흐르는 모양이다.
반짝이는 불씨를 끄지 못하면 뒤에 장차 불타오르는 기세를 이루어서 어쩔 수가 없을 것이다.
형형熒熒은 불빛이다.
두 잎이 처음 났을 때 제거하지 못하면 뒤에 장차 도끼 자루를 잡고서 치게 될 것이다.
이는 모두 제때를 잃어서는 안 되고 일을 일찍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됨을 말한 것이다.
이 때문에 군주는 반드시 백성을 부유하게 하는 데 힘써야 하니, 부유하지 않으면 을 행할 수 없습니다.
은혜를 베풀지 않으면 친척을 모을 수 없으니, 친척을 소원히 하면 해롭고 무리(백성)를 잃으면 실패합니다.
남에게 이기利器(권력)를 빌려주지 말아야 하니, 남에게 이기利器를 빌려주면 남에게 해를 당하여 세상을 잘 끝마치지 못합니다.”
原注
이 때문에 군주가 된 자는 반드시 부유하게 하는 데 힘써야 하니, 부유하지 않으면 을 행할 수가 없는 것이다.
라는 것은 나라를 부유하게 함에 그치지 않고 백성을 부유하게 함에 있는 것이니, 백성이 부유하면 을 행하게 된다.
이른바 ‘예의禮義는 부유하고 풍족함에서 생긴다.’는 것이 이것이다.
공자孔子나라에 가실 적에 염유冉有의 질문에 대답하시기를 “부유하게 한 뒤에 가르친다.” 하셨다.
만약 백성들이 가난하면 죽음을 구제하기에도 부족하니, 어느 겨를에 예의禮義를 챙기겠는가?
군주가 은혜를 베풀지 않으면 구족九族의 친척을 모을 수 없으니, 구족九族의 친척을 소원히 하면 나라에 해가 있고, 천하天下의 무리를 잃으면 나라가 반드시 패망한다.
남에게 이기利器를 빌려주지 말아야 하니, 남에게 이기利器를 빌려주면 남에게 해를 당하여 세상을 잘 끝마치지 못한다.
이것은 이른바 ‘태아太阿를 거꾸로 잡아서 남에게 칼자루를 준다.’는 것이다.
군주가 권력을 남에게 빌려주어서는 안 되니, 권력을 남에게 빌려주면 도리어 남에게 살해당함을 비유한 것이다.
주보主父이태李兌에게 포위를 당하고 호해胡亥조고趙高에게 살해를 당한 것과 같은 것이 이것이다.
문왕文王이 물었다.
“무엇을 라 하는가?”
태공太公이 대답하였다.
“무리를 공경하고 친족을 모으는 것이니, 무리를 공경하면 하고 친족을 모으면 기뻐하니, 이것을 ‘인의仁義기강紀綱’이라 합니다.
原注
문왕文王이 물었다.
무엇을 라 하는가?
태공太公이 대답하였다.
무리를 공경하여 소홀히 하지 않고 친족을 모아 소원히 하지 않는 것이다.
무리를 공경하면 온 나라가 화합和合하고 친족을 모으면 구족九族이 기뻐하니, 이것이 이른바 ‘인의仁義기강紀綱’이란 것이다.
은 사랑을 주장하고 는 마땅함을 주장하므로 무리를 공경하고 친족을 모으는 것으로 말하였으니, 이는 모두 인의仁義이요, 인의仁義본체本體는 아니다.
남으로 하여금 그대(군주)의 권위權威를 빼앗지 못하게 하여야 하니, 인심人心의 밝음을 따르고 천도天道의 떳떳함을 순히 하여, 순종하는 자는 으로써 맡기고 거스르는 자는 힘으로써 끊어서, 공경하고 의심하지 않으면 천하天下가 화합하고 복종할 것입니다.”
原注
남으로 하여금 군주의 권위權威를 빼앗지 말게 하여야 하니, 는 바로 권위權威이다.
처음에는 “남에게 나라의 권력을 빌려주지 말라.” 하였고, 중간에는 “남에게 이기利器를 빌려주지 말라.” 하였고, 여기서는 “남으로 하여금 군주의 권위權威를 빼앗지 못하게 하라.” 하였으니, 권력을 잃어서는 안 됨을 극진히 말한 것이다.
군주가 권력을 한번 잃으면 삼가三家나라에 있어서와, 육경六卿나라에 있어서와 같게 되니, 이 때문에 태공太公이 간곡하고도 극진하게 경계한 것이다.
인심人心의 밝음을 따르고 천도天道의 떳떳함을 순히 하여, 순종하는 자는 으로써 맡기니, 작은 나라가 그 을 사모하는 것과 같은 것이 이것이다.
거스르는 자는 힘으로써 끊으니, 문왕文王나라를 정벌하여 끊고 멸한 것과 같은 것이 이것이다.
군주가 능히 그 일을 공경하고 의심함이 없으면 천하天下의 인심이 화합하고 복종할 것이다.
공자孔子천승千乘의 나라 다스림을 논하면서 첫 번째로 을 말씀하셨으니, 또한 이 뜻이다.


역주
역주1 : 方과 같다.
역주2 九族 : 高祖 이하 高孫까지 9대에 걸친 모든 親戚을 가리킨다.
역주3 : 혜
역주4 : 연
역주5 四夷 : 사방 오랑캐란 뜻으로 東夷‧西戎‧南蠻‧北狄을 이른다.
역주6 農桑本也 技巧末也 : 技巧는 工人이 솜씨가 좋아 물건을 잘 만드는 것을 이른다. 옛날에는 ‘農者天下之大本’이라 하여 農業을 本業으로 보아 우대하고 商工業을 末業으로 보아 천시하였다.
역주7 所謂禮義生於富足 : 백성들의 生活이 부유하고 풍족해야만 禮義를 알아 행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역주8 孔子適衛……亦曰富之而後敎之 : 《論語》 〈子路〉에 “孔子께서 衛나라에 가실 때에 冉有가 수레를 몰았는데, 孔子께서 ‘백성들이 많구나.’ 하셨다. 冉有가 ‘이미 백성들이 많으면 또 무엇을 더하여야 합니까?’ 하고 묻자, ‘부유하게 하여야 한다.’ 하셨다. ‘이미 부유해지면 또 무엇을 더하여야 합니까?’ 하고 묻자, ‘가르쳐야 한다.’ 하셨다.[子適衛 冉有僕 子曰 庶矣哉 冉有曰 旣庶矣 又何加焉 曰 富之 曰 旣富矣 又何加焉 曰 敎之]”라고 한 내용을 가리킨 것이다.
역주9 所謂倒持太阿 授人以柄者也 : 太阿는 名劍의 이름으로 ‘泰阿’라고도 표기한다. 《漢書》 〈梅福傳〉에 “秦나라는 泰阿를 거꾸로 잡아 그 자루를 楚나라에 주었다.[倒持泰阿 授楚其柄]”라고 하였는데, 그 註에 “泰阿는 劍의 이름이니, 春秋時代 越나라의 名匠인 歐冶가 주조한 것이다. 이는 秦나라가 無道하여 楚나라의 陳涉과 項羽로 하여금 틈을 타고 봉기하게 하였으니, 이는 劍을 거꾸로 잡아 그 자루를 남에게 주었음을 비유한 것이다.” 하였다.
역주10 主父見囚於李兌 : 主父는 戰國時代 趙 武靈王이 아들인 惠文王에게 讓位한 뒤의 칭호이다. 武靈王은 肅侯의 아들인데, 태자인 章을 버리고 王子 何를 임금으로 세우고서 자기는 主父라고 호칭하였다. 그 후 태자의 난이 일어나자 趙나라 大臣인 李兌가 沙丘에서 그를 포위하여 마침내 沙宮에서 굶어 죽었다. 沙宮은 지금 趙郡의 鍾臺 남쪽에 있었다. 《史記 권43 趙世家》, 《史記 권79 范雎蔡澤列傳》
역주11 胡亥見殺於趙高 : 胡亥는 秦 始皇帝의 작은아들인 二世皇帝이다. 長子 扶蘇가 直諫을 하다가 始皇帝의 노여움을 사고 북쪽으로 가서 蒙恬의 군대를 감독하고 있었다. 始皇帝가 동쪽 지방을 순행하다가 갑자기 병이 나서 위독하므로 급히 扶蘇를 불러 자신의 뒤를 잇게 하였는데, 始皇帝가 급히 서거하자 胡亥의 사부로 있던 趙高가 농간하여 李斯와 함께 扶蘇를 살해하고 胡亥를 세웠다. 그 후 趙高는 李斯를 제거하고 폭정을 일삼다가 사방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二世皇帝가 자신의 실책을 물을까 두려워한 나머지 二世皇帝를 시해하고 子嬰을 王으로 세웠다. 그러나 趙高는 子嬰에게 처형당하고, 子嬰은 즉위한 지 56일 만에 劉邦에게 항복하여, 秦나라는 끝내 멸망하였다.
역주12 三家之於魯 六卿之於晉 : 三家는 春秋時代 魯나라의 權臣인 孟孫氏(仲孫氏)‧叔孫氏‧季孫氏를 이른다. 이들은 모두 桓公의 후손이므로 三桓이라고도 칭하였는데, 대대로 國政을 독단하여 魯나라의 公室은 유명무실하였다.
六卿은 晉나라의 魏氏‧趙氏‧韓氏‧范氏‧中行氏‧智氏이다. 이들은 대대로 六卿을 맡아 權力을 나누어 가졌는데, 范氏‧中行氏‧智氏는 차례로 멸망하고, 魏氏‧趙氏‧韓氏가 晉나라를 나누어 소유하다가 周 威烈王 23년(B.C. 403) 魏斯와 趙籍‧韓虔을 제후로 삼으니, 이들은 氏를 國號로 삼아 魏‧趙‧韓의 三國이 되고 ‘三晉’이라 칭하였다.
역주13 小邦懷其德 : 《書經》 〈周書 武成〉에 文王의 德을 칭송하여 “큰 나라는 그 힘을 두려워하고 작은 나라는 그 德을 그리워한 지가 9년이었다.[大邦畏其力 小邦懷其德 惟九年]”라고 보인다.
역주14 伐崇而是絶是忽 : 崇은 나라 이름으로 《史記》 권4 〈周本紀〉에 “崇侯 虎가 西伯(文王)을 紂王에게 참소했다.” 하였다.
《詩經》 〈大雅 皇矣〉에 “臨衝이 느릿느릿 움직이니 崇나라 城이 높고도 크도다. 신문할 자를 계속하여 잡아오며 귀를 베어 바치기를 천천히 하도다. 이에 類제사를 지내고 禡제사를 지내어 이에 오게 하며 따르게 하시니, 四方에서 업신여기는 이가 없도다. 臨車가 단단하고 크니 崇나라 성이 견고하도다. 이에 정벌하고 이에 군대를 풀어놓으며 이에 끊고 이에 멸망시키시니, 사방에서 어기는 이가 없도다.[臨衝閑閑 崇墉言言 執訊連連 攸馘安安 是類是禡 是致是附 四方以無侮 臨衝茀茀 崇墉仡仡 是伐是肆 是絶是忽 四方以無拂]” 하였다. 이는 文王이 崇나라를 정벌하면서 급히 서두르지 않고 서서히 공격하였으나 천하에 업신여기거나 어기는 자가 없음을 말한 것이다.
역주15 道千乘之國 而首曰敬 : 千乘은 兵車 1천 대로, 큰 제후국을 이른다. 《論語》 〈學而〉에 “千乘의 나라를 다스리되 일을 공경하고 미덥게 하며, 재물 쓰기를 절도 있게 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백성 부리기를 제때(농한기)에 하여야 한다.[子曰 道千乘之國 敬事而信 節用而愛人 使民以時]”라고 한 孔子의 말씀이 보이는데, ‘敬事’가 맨 앞에 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육도직해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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