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2 奚謂顧小利
오 昔者
에 欲假道於
以伐
한대 曰 君其以
之璧
과 與
之乘
으로
賂虞公하야 求假道焉이면 必假我道리이다 君曰 垂棘之璧은 吾先君之寶也요 屈産之乘은 寡人之駿馬也니
若受吾幣하고 不假之道면 將奈何오 荀息曰 彼不假我道면 必不敢受我幣어니와
若受我幣而假我道
면 則是
는 寶猶取之內府
하야 而藏之外府也
요 馬猶取之內廐
하야 而
也
니 君勿憂
하소서
君曰 諾다하고 乃使荀息以垂棘之璧과 與屈産之乘으로 賂虞公而求假道焉하다 虞公貪利其璧與馬하야 而欲許之한대
諫曰 不可許
니이다 夫虞之有虢也
는 如
하야 輔依車
요 車亦依輔
하니 虞虢之勢正是也
니이다
若假之道면 則虢朝亡而虞夕從之矣리니 不可라 願勿許하노이다 虞公弗聽하고 遂假之道하다
荀息伐虢[剋]之하고 還(反)하야 處三年이라가 [反]興兵伐虞하야 又剋之하다
注
○顧廣圻曰 藏本同하고 今本은 之還이 作而還하니 誤라 反字는 當在興字上하니 讀下屬이라
公羊傳云 還이라가 四年에 反取虞라하야늘 何休注에 還은 復往이라 故言反이라하니 此出於彼也라
四年者는 幷伐虢之年數之니 穀梁傳云五年은 不合이라 本書喩老篇云 還反滅虞라하니 亦可證이라
兪樾曰 伐虢下에 脫克字하니 下云又克之는 正承此而言이라 呂氏春秋權勳篇에 荀息伐虢克之하고 還反伐虞하야 又克之라하니 是其證이라
先愼曰 淮南人間訓이 與呂同하니 此之上脫克字라 趙用賢本에 改之爲而하고 屬下爲句하니 非是라
무엇을 가리켜 작은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하는가? 예전에 진 헌공晉 獻公이 우虞나라에 길을 빌려 괵虢나라를 토벌하려고 하자 순식荀息이 말했다. “임금님께서는 수극垂棘에서 나는 벽옥璧玉과 북굴北屈에서 생산되는 양마良馬를 가지고 가서
우공虞公에 뇌물을 주어 길을 빌려달라고 요구하면 반드시 우리에게 길을 빌려줄 것입니다.” 헌공이 말했다. “수극에서 나는 벽옥은 우리 선군先君에서부터 전해오는 보물이고, 북굴에서 생산되는 양마는 과인이 타는 준마駿馬인데,
만일 우리의 예물禮物만을 받고 길은 빌려주지 않는다면 장차 어찌해야 하겠소.” 순식이 말했다. “저 우공虞公이 우리에게 길을 빌려주지 않을 요량이면 반드시 우리가 주는 예물을 받지 않겠지만
만일 우리가 주는 예물을 받고 우리에게 길을 빌려준다면 이는 마치 내부內府에 있는 보물을 가져다가 외부外府에 보관하는 것과 같고, 내구內廐에 있는 양마를 끌어다가 외구外廐에 매어두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임금님께서는 근심하지 마십시오.”
헌공이 “좋다” 하고는 곧 순식에게 수극에서 나는 벽옥과 북굴에서 생산되는 양마를 가지고 가서 우공虞公에게 뇌물로 주고 길을 빌려달라고 요구하게 하였다. 우공이 그 벽옥과 양마의 작은 이익을 탐내어 진晉나라의 요구를 허락하려고 하자
궁지기宮之奇가 간諫하였다.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우虞나라에 괵虢나라가 있는 것은 마치 수레에 덧방나무[보輔]가 있는 것과 같아서 덧방나무는 수레 본체를 의지하고 수레 본체도 덧방나무를 의지하니, 우나라와 괵나라의 형세가 바로 이렇습니다.
만일 우리가 길을 빌려주면 괵나라는 아침에 멸망하고 우나라는 저녁에 괵나라를 따라 멸망할 것이니 안 됩니다. 허락하시지 말기를 바랍니다.” 우공은 간諫하는 말을 따르지 않고 마침내 진晉나라에 길을 빌려주었다.
순식이 괵나라를 토벌하여 승리하고 돌아와서 3년을 지낸 뒤에 군대를 일으켜 다시 돌아가서
우虞나라를 토벌하여 또 승리하였다.
荀息이 길을 빌려 虢나라를 멸할 것을 꾀하다(≪增像全圖東周列國志≫)
注
○고광기顧廣圻:장본藏本은 같고 금본今本은 ‘지환之還’이 ‘이환而還’으로 되어 있으니 틀렸다. ‘반反’자는 응당 ‘흥興’자 위에 있어야 하니 아래로 붙여 읽어야 된다.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 “돌아와 4년을 지낸 뒤에 진晉나라로 되돌아가서 우虞나라를 점령하였다.”라고 했는데, 하휴何休의 주注에 “진나라로 돌아왔다가 다시 〈우나라로〉 갔기 때문에 〈아래에서〉 ‘반反’이라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곳에서 저곳으로 나간 것이다.
4년은 괵虢나라를 토벌한 햇수를 합한 것이니,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에 ‘5년’이라고 말한 것은 합당하지 않다. 본서本書 〈유로편喩老篇〉에 ‘환반멸우還反滅虞’라고 하였으니, 이 말로도 증명할 수 있다.
유월兪樾:‘벌괵伐虢’ 아래에 ‘극克’자가 탈락되었으니, 아래 글의 ‘우극지又克之’라고 한 말은 바로 이 말을 받아서 한 말이다. ≪여씨춘추呂氏春秋≫ 〈권훈편權勳篇〉에 ‘순식벌괵극지 선荀息伐虢克之 還 반벌우 우극지反伐虞 又克之(순식이 괵나라를 토벌하여 승리하고 돌아갔다가 되돌아가서 우나라를 토벌하여 또 승리하였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그 증거이다.
왕선신王先愼:≪회남자淮南子≫ 〈인간훈人間訓〉의 내용이 ≪여씨춘추呂氏春秋≫ 〈권훈편權勳篇〉과 같으니, 이곳의 윗글에 ‘극克’자가 탈락되었다. 조용현본趙用賢本에는 ‘지之’자를 고쳐서 ‘이而’로 만들고 아래로 붙여 구句를 만들었으니 옳지 않다.
‘반反’자는 응당 고광기顧廣圻의 설에 의거하여 ‘흥興’자 위로 옮겨야 되니, 그래야 ≪여씨춘추≫․≪회남자≫와 부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