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王云 媅은 訓爲樂이니 與染義無涉이라 堪은 當讀爲湛이니 湛與漸漬之漸同이라
說文에 作瀸하고 云 漬也라하다 月令에 湛熾必絜이라한대 鄭注에 曰 湛은 漬也라하다
內則說八珍之漬에 云 湛諸美酒라한대 注에 曰 湛은 亦漬也라하다
考工記鍾氏에 以朱湛丹秫이라한대 注에 曰 鄭司農이 云 湛은 漬也라한대
玄謂湛讀如
之漸
이라하니 是湛與漸同
이니 湛漬
는 皆染也
라
楚辭七諫에 日漸染而不自知兮라한대 王注에 曰 稍漬爲漸하며 汙變爲染이라하며
考工記鍾氏注에 曰 漬는 亦染也라하니 必擇所湛은 猶云 必擇所染耳라
荀子勸學篇에 曰 蘭槐之根是爲茝이니 其漸之滫中이라 君子不近하고 庶人不服하니 其質非不美也요 所漸者然也라하며
晏子春秋襍篇에 曰 今夫蘭本三年而成이면 湛之苦酒하니 則君子不近이요 庶人不佩라
湛之麋醢하면 而賈匹馬矣니 非蘭本美也요 所湛然也라 願子之必求所湛이라하며
說苑襍言篇에 曰 今夫蘭本三年을 湛之以鹿醢라가 旣成이면 則易以匹馬하니 非蘭本美也라
願子詳其所湛하고 旣得所湛이라도 亦求所湛이라하니 義竝與墨子同이라하다
注
畢沅:‘堪’은 마땅히 ‘媅’이 되어야 하니, 借音字이다.
王念孫:‘媅’은 즐겁다는 뜻이니, ‘染(물들이다)’과는 字義가 전혀 다르다. ‘堪’은 마땅히 독음을 ‘湛(담)’으로 읽어야 하니, ‘湛’은 ‘漸漬(점차 젖어들다)’라고 할 때의 ‘漸’과 같다.
≪說文解字≫에 ‘瀸’으로 되어 있고, “〈‘湛’은〉 ‘漬’이다.”라 하였다. ≪禮記≫ 〈月令〉에 “湛熾必絜(쌀을 담가 씻고 찌는 일을 반드시 깨끗하게 한다.)”이라 하였는데, 鄭玄의 注에 “‘湛’은 ‘漬’라는 뜻이다.”라 하였다.
≪禮記≫ 〈內則〉에 ‘八珍之漬’를 설명한 곳에 “湛諸美酒(맛 좋은 술에 담그다.)”라 하였는데, 注에 “‘湛’은 또한 ‘漬’이다.”라 하였다.
≪周禮≫ 〈考工記 鍾氏〉에 “以朱湛丹秫(‘朱’는 붉은 조를 물에 담가 〈3개월간 불을 때어 물감을 만든다.〉)”이라 하였는데, 鄭玄의 注에 “鄭司農(鄭衆)이 말하기를 ‘湛은 漬이다.’라고 하였는데,
나(玄)는 ‘湛’을 ‘漸車帷裳(나의 수레 휘장이 물드누나.)’이라고 할 때의 ‘漸’으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 하였으니, 여기서의 ‘湛’이 ‘漸’과 같다. ‘湛’과 ‘漬’는 모두 물들인다는 뜻이다.
≪楚辭≫ 〈七諫〉에 “日漸染而不自知兮(나날이 물드는데도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는구나!)”이라 하였는데, 王逸의 注에 “稍漬爲漸 汙變爲染(조금씩 스며드는 것을 ‘漸’이라 하며, 뒤집어써서 변하는 것을 ‘染’이라 한다.)”이라 하였다.
≪周禮≫ 〈考工記 鍾氏〉의 注에 “‘漬’는 또한 물들인다는 뜻이다.”라 하였으니, ‘必擇所湛’은 ‘必擇所染’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荀子≫ 〈勸學〉에 “蘭槐之根是爲茝 其漸之滫中 君子不近 庶人不服 其質非不美也 所漸者然也(蘭槐의 뿌리가 茝인데 이를 시큼한 냄새가 나는 쌀뜨물에 담가둔다. 그래서 군자는 이를 가까이하지 않고 소인은 이를 허리춤에 착용하지 않으니, 이는 그 바탕이 좋지 못한 것이 아니라 물드는 데가 그렇기 때문이다.)”라 하였으며,
≪晏子春秋≫ 〈襍〉에 “今夫蘭本三年而成 湛之苦酒 則君子不近 庶人不佩(이제 저 蘭의 뿌리가 3년이 되어 다 자라면 苦酒에 담가두니, 君子는 이를 가까이하지 않고 庶人은 이를 허리춤에 차지 않는다.)
湛之麋醢 而賈匹馬矣 非蘭本美也 所湛然也 願子之必求所湛(麋醢에 담가두면 匹馬의 값어치를 하니, 이는 蘭이 본래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물드는 데가 그렇기 때문이다. 바라건대 그대는 반드시 담글 데를 구하라.)”이라 하였으며,
≪說苑≫ 〈襍言〉에 “今夫蘭本三年 湛之以鹿醢 旣成 則易以匹馬 非蘭本美也(이제 저 3년 된 蘭의 뿌리를 鹿醢에 담가두었다가 물들면 匹馬와 바꾸니, 이는 蘭이 본래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願子詳其所湛 旣得所湛 亦求所湛(바라건대 그대는 그 담글 데를 상세히 살피고 이미 담글 데를 얻었더라도 또한 담글 데를 구하라.)”이라고 하였으니, 뜻이 모두 ≪墨子≫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