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畢云 史記殷本紀에 云 說爲胥靡하여 築於傅巖이라한대
孔傳에 云 說賢而隱하여 代胥靡築之以供食이라하니 故로 此云圜土也라하다
詒讓案 呂氏春秋求人篇에도 亦云 傅說은 殷之胥靡也라하고 周禮大司徒鄭注에 云 圜土는 謂獄也라 獄城圜이라하고
又比長注에 云 圜土者는 獄城也라 獄必圜者는 規主仁하니 以仁心求其情이라 古之治獄者는 閔於出之라하고
釋名釋宮室에 云 獄은 又謂之圜土니 言築土表牆하여 其形圜也라하고
月令孔疏
에 引
曰 獄
은 周曰圜土
요 殷曰羑里
요 夏曰均臺
라하다
案 周以圜土爲繫治罷民之獄한대 據此書면 則殷時에 已有圜土之名이니 不自周始矣라
注
畢沅:≪史記≫ 〈殷本紀〉에 “傅說은 胥靡가 되어 傅巖에서 성을 쌓았다.”라 하였는데,
〈≪史記集解≫에서 인용한 ≪僞古文尙書≫의〉 孔安國의 傳에 “傅說이 어질면서 자신을 숨겨 胥靡를 대신하여 성을 쌓음으로써 밥벌이를 하였다.”라 하였으니, 그런 까닭에 여기에서는 ‘圜土’를 말한 것이다.
詒讓案:≪呂氏春秋≫ 〈求人〉에서도 “傅說은 殷의 胥靡이다.”라 하였고, ≪周禮≫ 〈大司徒〉 鄭玄의 注에서는 “圜土는 獄을 말한다. 獄의 성이 둥근 것이다.”라 하였고,
또 ≪周禮≫ 〈比長〉의 注에는 “圜土라는 것은 獄城이다. 獄을 반드시 둥글게 만드는 것은 規가 仁을 주로 하니 仁心으로써 죄수들의 실정을 찾기 때문이다. 옛날에 獄을 〈둥글게〉 만든 것은 가엾게 여기는 마음에서 한 것이다.”라 하였다.
≪釋名≫ 〈釋宮室〉에는 “獄을 ‘圜土’라 하기도 하니, 흙을 쌓고 담을 쌓으면서 그 형태를 둥글게 한 것을 이른다.”고 하였고,
≪禮記≫ 〈月令〉 孔穎達의 疏에서 ≪鄭志≫ 〈崇精問〉을 인용하여 “獄은 周나라 때에는 ‘圜土’라 하였고 殷나라 때에는 ‘羑里’라 하였으며 夏나라 때에는 ‘均臺’라 하였다.”라 하였다.
생각건대 周나라 때 ‘圜土’로써 교화되지 않는 惡人들을 다스리는 옥으로 삼았는데, 이 책에 근거해보면 殷나라 때 이미 ‘圜土’라는 이름이 있었으니, 周나라 때 시작된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