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爾雅釋地에 云 九夷八狄七戎六蠻을 謂之四海라하다 王制孔疏에 云 九夷는 依東夷傳컨대 九種이니
曰畎夷于夷方夷黃夷白夷赤夷玄夷風夷陽夷라하다 李巡이 注爾雅에 云 一曰玄菟요 二曰樂浪이요
案 王制疏所云은 皆海外遠夷之種別이요 此九夷는 與吳楚相近이니 蓋卽淮夷요 非海外東夷也라
이라하고 韓非子說林上篇
에 云 周公旦
이 攻九夷
어늘 而商蓋服
이라하니 商蓋卽商奄
이니
則九夷亦卽淮夷라 故呂氏春秋古樂篇에 云 成王이 立에 殷民이 反한대 王이 命周公하여 踐伐之라
商人이 服象하여 爲虐於東夷이어늘 周公이 遂以師逐之하여 至於江南이라하고
又樂成篇에 云 猶尙有管叔蔡叔之事하여 與東夷八國으로 不聽之謀라한대
高注에 云 東夷八國이 附從二叔하고 不聽王命이어늘 周公이 居攝하여 三年에 伐奄하니
八國之中最大하여 著在尙書하고 餘七國은 小하고 又先服이라 故로 不載於經也라하다
案 東夷八國은 亦卽九夷也라 春秋以後에 蓋臣屬楚吳越三國이라가 戰國時에는 又專屬楚라
說苑君道篇에 說 越王句踐이 與吳戰하여 大敗之하고 兼有九夷라하고
淮南子齊俗訓에 云 越王句踐이 霸天下어늘 泗上十二諸侯가 皆率九夷以朝라하고
戰國策秦策
에 云 楚苞九夷
하니 方千里
라하고 魏策
에 云 張儀曰 楚破南陽九夷內沛許鄢陵
라하고
文選李斯上秦始皇書에 說 秦伐楚하고 包九夷하고 制鄢郢이라한대 李注에 云 九夷는 屬楚夷也라하다
若然이면 九夷는 實在淮泗之閒하여 北與齊魯로 接壤이니 故로 論語에 子欲居九夷라하니라 參互校覈이면 其疆域을 固可攷矣라
注
≪爾雅≫ 〈釋地〉에 “九夷‧八狄‧七戎‧六蠻을 四海라고 한다.”라 하였다. ≪禮記≫ 〈王制〉의 孔穎達의 疏에 “九夷는 ≪後漢書≫ 〈東夷傳〉에 의거해보건대 9種이 있으니,
畎夷‧于夷‧方夷‧黃夷‧白夷‧赤夷‧玄夷‧風夷‧陽夷이다.”라 하였다. 李巡이 ≪爾雅≫에 注을 달며 “첫째 玄菟이고, 둘째 樂浪이고,
셋째 高驪이고, 넷째 滿飾이고, 다섯째 鳧臾이고, 여섯째 索家이고, 일곱째 東屠이고, 여덟째 倭人이고, 아홉째 天鄙이다.”라 하였다.
案:≪禮記≫ 〈王制〉 孔穎達의 疏에서 말한 것은 모두 海外 먼 지역에 있는 夷族의 種別이고, 여기서 말하는 九夷는 吳나라‧楚나라와 가까운 夷族이니 대개 곧 淮夷이지 海外의 東夷가 아닐 것이다.
〈書敍〉에 말하기를 “成王이 淮夷를 정벌하고 마침내 奄을 차지하였다.”라 하였다. ≪韓非子≫ 〈說林 上〉에 “周公 旦이 九夷를 공격하자 商蓋가 服從하였다.”라 하였으니, 商蓋는 곧 商奄이다.
그렇다면 九夷는 또한 곧 淮夷이다. 이 때문에 ≪呂氏春秋≫ 〈古樂〉에 “成王이 등극함에 殷나라 백성이 반란하거늘 성왕이 周公에게 명하여 정벌하게 했다.
商人이 象에게 복종하여 東夷를 해치거늘 周公이 마침내 군사를 일으켜 逐出하여 江南에 이르렀다.”라 하였고,
또 ≪呂氏春秋≫ 〈樂成〉에 “여전히 오히려 管叔과 蔡叔의 일이 있어 東夷의 여덟 나라와 더불어 반란을 모의했다.”라고 한 구절에 대해
高誘의 注에 “東夷의 여덟 나라가 二叔에게 붙어서 王命을 듣지 않자, 周公이 섭정한 지 3년 만에 奄을 정벌하였다.
奄은 여덟 나라 가운데 가장 큰 나라이므로 ≪尙書≫에 실려 있거니와 나머지 일곱 나라는 작은 데다 또 먼저 복종하였기 때문에 經文에 실리지 않았다.”라 하였다.
案:東夷 여덟 나라는 또한 바로 九夷이다. 春秋시대 이후에 대개 楚나라‧吳나라‧越나라에 복종하다가 戰國시대에는 또 오로지 楚나라에 복속하였다.
≪說苑≫ 〈君道〉에 말하기를 “越王 句踐이 吳나라와 전투하여 크게 패배시키고 九夷를 겸병하였다.”라 하였고,
≪淮南子≫ 〈齊俗訓〉에 “越王 句踐이 天下를 制霸하자 泗水 일대의 12제후가 모두 九夷를 거느리고 조회하였다.”라 하였고,
≪戰國策≫ 〈秦策〉에 “楚나라가 九夷를 장악하였으니 사방 千里이다.”라 하였고, ≪戰國策≫ 〈魏策〉에 “張儀가 말하기를 ‘楚나라가 南陽과 九夷와 內沛와 許와 鄢陵危를 격파하였다.’라 하였다.”라 하였고,
≪文選≫의 〈李斯上秦始皇書〉에 말하기를 “秦나라가 楚나라를 정벌하여 九夷를 장악하고 鄢과 郢을 제압하였다.”라 하였는데 이 구절에 대해 李善의 注에 “九夷는 楚나라에 복속된 夷이다.”라 하였다.
만약 그렇다면 九夷는 실로 淮水와 泗水 일대에 있으면서 북쪽으로 齊나라‧魯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이 때문에 ≪論語≫ 〈子罕〉에서 “孔子께서 九夷에 살고자 하셨다.”라고 한 것이다. 앞에 언급한 문헌들을 상호 비교하여 핵실하면 九夷의 江域을 고찰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