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墨子閒詁(2)

묵자간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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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11 九夷之國 莫不賓服이라
爾雅釋地 云 九夷八狄七戎六蠻 謂之四海라하다 王制孔疏 云 九夷 依東夷傳컨대 九種이니
曰畎夷于夷方夷黃夷白夷赤夷玄夷風夷陽夷라하다 李巡 注爾雅 云 一曰玄菟 二曰樂浪이요
案 王制疏所云 皆海外遠夷之種別이요 此九夷 與吳楚相近이니 蓋卽淮夷 非海外東夷也
이라하고 韓非子說林上篇 云 周公旦 攻九夷어늘 而商蓋服이라하니 商蓋卽商奄이니
則九夷亦卽淮夷 故呂氏春秋古樂篇 云 成王 殷民한대 命周公하여 踐伐之
商人 服象하여 爲虐於東夷이어늘 周公 遂以師逐之하여 至於江南이라하고
又樂成篇 云 猶尙有管叔蔡叔之事하여 與東夷八國으로 不聽之謀라한대
高注 云 東夷八國 附從二叔하고 不聽王命이어늘 周公 居攝하여 三年 伐奄하니
八國之中最大하여 著在尙書하고 餘七國하고 又先服이라 不載於經也라하다
案 東夷八國 亦卽九夷也 春秋以後 蓋臣屬楚吳越三國이라가 戰國時에는 又專屬楚
說苑君道篇 說 越王句踐 與吳戰하여 大敗之하고 兼有九夷라하고
淮南子齊俗訓 云 越王句踐 霸天下어늘 泗上十二諸侯 皆率九夷以朝라하고
戰國策秦策 云 楚苞九夷하니 方千里라하고 魏策 云 張儀曰 楚破南陽九夷內沛許鄢陵라하고
文選李斯上秦始皇書 說 秦伐楚하고 包九夷하고 制鄢郢이라한대 李注 云 九夷 屬楚夷也라하다
若然이면 九夷 實在淮泗之閒하여 北與齊魯 接壤이니 論語 子欲居九夷라하니라 參互校覈이면 其疆域 固可攷矣


九夷의 나라가 복종하지 않음이 없었다.
爾雅≫ 〈釋地〉에 “九夷八狄七戎六蠻四海라고 한다.”라 하였다. ≪禮記≫ 〈王制〉의 孔穎達에 “九夷는 ≪後漢書≫ 〈東夷傳〉에 의거해보건대 9이 있으니,
畎夷于夷方夷黃夷白夷赤夷玄夷風夷陽夷이다.”라 하였다. 李巡이 ≪爾雅≫에 을 달며 “첫째 玄菟이고, 둘째 樂浪이고,
셋째 高驪이고, 넷째 滿飾이고, 다섯째 鳧臾이고, 여섯째 索家이고, 일곱째 東屠이고, 여덟째 倭人이고, 아홉째 天鄙이다.”라 하였다.
:≪禮記≫ 〈王制孔穎達에서 말한 것은 모두 海外 먼 지역에 있는 夷族種別이고, 여기서 말하는 九夷나라‧나라와 가까운 夷族이니 대개 곧 淮夷이지 海外東夷가 아닐 것이다.
書敍〉에 말하기를 “成王淮夷를 정벌하고 마침내 을 차지하였다.”라 하였다. ≪韓非子≫ 〈說林 〉에 “周公 九夷를 공격하자 商蓋服從하였다.”라 하였으니, 商蓋는 곧 商奄이다.
그렇다면 九夷는 또한 곧 淮夷이다. 이 때문에 ≪呂氏春秋≫ 〈古樂〉에 “成王이 등극함에 나라 백성이 반란하거늘 성왕이 周公에게 명하여 정벌하게 했다.
商人에게 복종하여 東夷를 해치거늘 周公이 마침내 군사를 일으켜 逐出하여 江南에 이르렀다.”라 하였고,
또 ≪呂氏春秋≫ 〈樂成〉에 “여전히 오히려 管叔蔡叔의 일이 있어 東夷의 여덟 나라와 더불어 반란을 모의했다.”라고 한 구절에 대해
高誘에 “東夷의 여덟 나라가 二叔에게 붙어서 王命을 듣지 않자, 周公이 섭정한 지 3년 만에 을 정벌하였다.
은 여덟 나라 가운데 가장 큰 나라이므로 ≪尙書≫에 실려 있거니와 나머지 일곱 나라는 작은 데다 또 먼저 복종하였기 때문에 經文에 실리지 않았다.”라 하였다.
:東夷 여덟 나라는 또한 바로 九夷이다. 春秋시대 이후에 대개 나라‧나라‧나라에 복종하다가 戰國시대에는 또 오로지 나라에 복속하였다.
說苑≫ 〈君道〉에 말하기를 “越王 句踐나라와 전투하여 크게 패배시키고 九夷를 겸병하였다.”라 하였고,
淮南子≫ 〈齊俗訓〉에 “越王 句踐天下制霸하자 泗水 일대의 12제후가 모두 九夷를 거느리고 조회하였다.”라 하였고,
戰國策≫ 〈秦策〉에 “나라가 九夷를 장악하였으니 사방 千里이다.”라 하였고, ≪戰國策≫ 〈魏策〉에 “張儀가 말하기를 ‘나라가 南陽九夷內沛鄢陵危를 격파하였다.’라 하였다.”라 하였고,
文選≫의 〈李斯上秦始皇書〉에 말하기를 “나라가 나라를 정벌하여 九夷를 장악하고 을 제압하였다.”라 하였는데 이 구절에 대해 李善에 “九夷나라에 복속된 이다.”라 하였다.
만약 그렇다면 九夷는 실로 淮水泗水 일대에 있으면서 북쪽으로 나라‧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이 때문에 ≪論語≫ 〈子罕〉에서 “孔子께서 九夷에 살고자 하셨다.”라고 한 것이다. 앞에 언급한 문헌들을 상호 비교하여 핵실하면 九夷江域을 고찰할 수 있을 것이다.


역주
역주1 王制孔疏……九曰天鄙 : 저본 傍注에 “≪禮記≫ 〈王制〉 孔穎達 疏의 글이 孫詒讓이 인용한 내용과 글자의 출입이 매우 많다. 孫詒讓이 인용한 것은 곧 ≪爾雅≫ 〈釋地〉의 邢昺 疏에서 인용한 ≪後漢書≫ 〈東夷傳〉의 설이다. 그중 ‘李巡注爾雅云’ 여섯 자 또한 형병의 소에는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역주2 書敍……遂踐奄 : ≪尙書≫ 〈周書 成王政〉의 〈小序〉에 나오는 내용인데, 〈成王政〉은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역주3 : 저본 傍注에 “‘危’는 원래 ‘死’로 잘못되어 있었는데, ≪戰國策≫ 〈魏策 1〉에 의거하여 고친다.”라고 하였다.

묵자간고(2) 책은 2020.12.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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