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14 自恃其力하며 伐其功하며 譽其智하여 怠於敎러니 遂築姑蘇之臺하여 七年을 不成이라
注
國語吳語에 說吳王夫差云 高高下下하여 以罷民於姑蘇라한대 韋注에 云 姑蘇는 臺名이니 在吳西하여 近湖라
案 國語에 以築姑蘇로 爲夫差事하니 與此書로 正合이라
畢云 史記集解
에 云
에 曰 闔閭起姑蘇之臺
할새 三年聚材
하여 五年乃成
하니 高見三百里
라하고
顔師古注漢書伍被傳에 云 吳地記에 云 因山爲名하니 西南去國三十五里라 今江南蘇州府治라하다
詒讓案 越絶에 以姑蘇로 爲闔閭所築이라하니 疑誤라
스스로 제
武力을 믿고 제 공로를 과시하고 제 지혜를 예찬하여 군사 교련을 게을리하더니, 마침내
姑蘇臺를 쌓아 7년이 지나도록 완성하지 못하였다.
姑蘇臺
注
≪國語≫ 〈吳語〉에 〈申胥가〉 吳王 夫差에게 諫하기를 “높은 곳에는 높은 樓臺를 짓고 낮은 곳에는 깊은 연못을 파서 姑蘇臺를 축조하는 일에 民力을 피폐하게 하였다.”라 하였는데, 이 구절에 대해 韋昭의 注에 “姑蘇는 누대의 이름이니 吳나라 서쪽에 있어 洞庭湖에 가깝다.”라 하였다.
案:≪國語≫에서 姑蘇臺를 지은 일을 夫差가 한 일이라 하였으니 ≪墨子≫의 이 내용과 딱 맞아떨어진다.
畢沅:≪史記集解≫에 “≪越絶書≫에 말하기를 ‘闔閭가 姑蘇臺를 세울 때 3년 동안 목재를 모으고 5년이 지나서야 완성하였는데, 높아서 3백 리 먼 곳에서도 보였다.’라 하였고,
顔師古가 ≪漢書≫ 〈伍被傳〉에 注를 달아 ‘≪吳地記≫에 「姑蘇山으로 인해 姑蘇臺라고 이름을 붙였으니, 서남쪽으로 國都에서 35리 떨어져 있다.」 하였으니, 지금 江南 蘇州府의 관할이다.’라 하였다.”라 하였다.
詒讓案:≪越絶書≫에 姑蘇臺를 闔閭가 쌓은 것이라 한 것은 아마 틀린 것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