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墨子閒詁(2)

묵자간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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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3 道死하시니 葬蛩山之陰하니라
畢云 蛩 初學記 引作鞏하며 一本 亦作鞏하다 北堂書鈔後漢書注太平御覽 俱引作卭하다
呂氏春秋安死 云 堯葬於穀林이라한대 高誘曰 堯葬成陽이어늘 此云穀林 成陽山下이라하다
詒讓案 後漢書趙咨傳注 作堯葬卭之山이라하며
水經瓠子河注 引帝王世紀하여 云 墨子 堯北敎八狄하여 道死하니 葬鞏山之陰이라하며
山海經 曰 堯葬狄山之陽하니 一名崇山이라하다 二說各殊 以爲成陽近是堯冢也
史記五帝本紀集解 曰 堯冢在濟陰城陽이라한대 劉向曰 堯葬濟陰이라하니 丘壟皆小
呂氏春秋 曰 堯葬穀林이라한대 皇甫謐曰 穀林卽城陽이라하다
正義 云 括地志 云 堯陵 在濮州雷澤縣西三里라하며
郭緣生述征記 云 城陽東有堯冢한대 亦曰堯陵이요 有碑라하니 是也라하다


도중에 돌아가시니, 蛩山의 북쪽에 장사 지냈다.
畢沅:‘’은 ≪初學記≫에서 이 대목을 인용한 곳에 ‘’으로 되어 있으며, 한 본에 또한 ‘’으로 되어 있다. ≪北堂書鈔≫‧≪後漢書注≫‧≪太平御覽≫에 모두 이 대목을 인용한 곳에 ‘’으로 되어 있다.
呂氏春秋≫ 〈安死〉에 “穀林에서 장사 지냈다.”라 하였는데, 高誘는 〈에서〉 “成陽에서 장사 지냈다고 하는데, 여기서 ‘穀林’이라고 하는 것은 成陽山 아래에 ‘穀林’이 있어서이다.”라 하였다.
詒讓案:≪後漢書≫ 〈趙咨傳〉의 李賢에 “卭之山에서 장사 지냈다.”라 하였으며,
水經注≫ 〈瓠子河〉에서 ≪帝王世紀≫를 인용하면서 “≪墨子≫에 ‘가 북쪽으로 가서 八狄을 교화하다가 도중에 돌아가시니, 鞏山의 북쪽에 장례를 지냈다.’라 하였다.”라 하였으며,
山海經≫에 “狄山의 남쪽에 장사 지냈으니, 〈狄山은〉 일명 崇山이라고도 한다.”라 하였다. 두 설이 각각 다르나 成陽이 아마도 가 묻힌 곳으로 옳은 듯하다.
史記集解≫ 〈五帝本紀〉에 “≪皇覽≫에 ‘의 무덤이 濟陰 城陽에 있다.’라 하였는데, 劉向은 ‘濟陰에서 장사 지냈다.’라 하였으니, 무덤이 모두 작다.
呂氏春秋≫ 〈安死〉에 ‘穀林에서 장사 지냈다.’라 하였는데, 皇甫謐은 ‘穀林은 바로 城陽이다.’라 하였다.”라 하였다.
史記正義≫에 “≪括地志≫에 ‘濮州 雷澤縣 서쪽 3에 있다.’라 하였으며,
郭緣生의 ≪述征記≫에 ‘城陽의 동쪽에 의 무덤이 있는데, 이 또한 堯陵이라 하며 가 있다.’라 하였으니, 옳다.”라 하였다.


역주
역주1 : 저본 傍注에 “이상의 세 ‘穀’자는 畢沅의 각본에 모두 ‘穀’으로 잘못되어 있어 本書에서도 잘못을 이어받았다. 이제 ≪呂氏春秋≫ 〈安死〉에 의거하여 고쳐서 바로잡는다.”라고 하였다.
역주2 皇覽 : 삼국시대 魏나라 사람인 王象의 저술이다. 가장 오래된 類書로 모두 120권이었으나 극히 일부만 전해진다.

묵자간고(2) 책은 2020.12.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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