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墨子閒詁(2)

묵자간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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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13 道死하시니 葬會稽之山하니라
稽瑞 引墨子하여 云 禹葬會稽 鳥爲之耘이라하니 疑此佚文이라
史記夏本紀 云 或云 禹會諸侯計功而崩하여 因葬焉이라 命曰會稽라한대
會稽者 會計也라한대 集解 云 皇覽 曰 禹冢 在山陰縣會稽山上이라
會稽山 本名苗山이니 在縣南하고 去縣七里라하며 越傳 云 禹到大越하여 上苗山하여 大會計하니
爵有德하고 封有功이라 因而更名苗山曰會稽라하다 因病死葬하니 葦棺하고 穿壙深七尺하니 上無瀉泄이요 下無邸水
壇高三尺이요 土階三等이요 周方一畝라하다 正義 括地志 云 禹陵 在越州會稽縣南十三里라하다
案 越傳이니 今本越絶記地傳文 與裴駰所引으로 略同이라


도중에 돌아가시니, 會稽山에 장사 지냈다.
劉賡의〉 ≪稽瑞≫에 ≪墨子≫를 인용하면서 “會稽에서 장사 지낼 때, 새가 잡초를 없앴다.”라 하였으니, 아마도 이것은 佚文인 듯하다.
史記≫ 〈夏本紀〉에 “어떤 사람은 ‘諸侯와 〈江南에서〉 모여서[] 공로를 심사하다가[] 붕어하여 그곳에 장사를 지냈기 때문에 會稽라고 이름 붙였다.’라 하였는데,
會稽’라는 것은 ‘會計(모여서 심사한다)’이다.”라 하였는데, ≪史記集解≫에 “≪皇覽≫에 ‘의 무덤은 山陰縣 會稽山 위에 있다.
會稽山本名苗山이니, 의 남쪽에 있고 에서 7 거리에 있다.’라 하였으며, ≪越傳≫에 ‘大越에 이르러 苗山에 올라 크게 모여 공덕을 심사하였으니[大會計],
이 있는 자에게는 작위를 내리고 공이 있는 자에게는 封地를 하사하였다. 이로 인해 苗山의 이름을 바꾸어 「會稽」라 하였다. 이어 중병으로 죽어 장사를 지냈으니, 갈대로 엮은 을 쓰고 묏구덩이의 깊이는 7자로 하였으니, 위로는 〈썩는 냄새가〉 새어나가지 않고 아래로는 지하수에 닿지 않았다.
봉분의 높이는 3자이고 흙계단은 3으로 하였으며, 묘역의 둘레가 사방 1였다.’라 하였다.”라 하였다. ≪史記正義≫에 “≪括地志≫에 의 무덤은 越州 會稽縣 남쪽 13에 있다.”라 하였다.
:≪越傳≫은 바로 ≪越絶書≫이니, 今本越絶書≫ 〈外傳記地傳〉의 글은 裴駰이 인용한 것과 대략 같다.


역주
역주1 越絶書 : ‘越絶’이라고도 한다. ‘絶’은 越나라 말로 ‘기록’이라는 뜻이다. 이 책의 편찬 시기, 작자, 권수와 편명 등에 대해서는 여러 異說이 존재한다. 내용은 春秋 말기부터 戰國 초기까지 吳나라와 越나라가 투쟁한 역사 사실을 근간으로, 정치‧경제‧군사‧천문‧역법‧언어 등을 포괄하고 있다.

묵자간고(2) 책은 2020.12.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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