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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子道德經注

노자도덕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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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注]莫 猶莫過也
夫農人之治田 務去其殊類하여 歸於齊一也
全其自然호대 不急其荒病하여 除其所以荒病하니라
上承天命 下綏百姓하니 莫過於此니라
59.2 夫唯嗇이니 是謂이며
59.3 早服 謂之重積德이니
[注]唯重積德호대 不欲銳速然後 乃能使早服其常이라
故曰 早服謂之重積德者也
59.4 重積德則無不克하고 無不克則莫知其極이니
[注]道 無窮也
59.5 莫知其極이면 可以有國이라
[注]하니 非能有國也니라
59.6 有國之母 可以長久
重積德 是唯圖其根然後 營末이라야 乃得其終也
59.7 是謂深根固祗 長生久視之道니라


통상 제59장은 《노자老子》의 목적인 장생구시長生久視가 서술된 문장文章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목적의 달성을 위해 《노자老子》는 자신의 몸과 국가를 유지 보전하는 가장 기본적인 전략으로 ‘아끼는 것[]’을 제시하는데, 이는 국가國家재정財政을 아끼는 것이나 신체의 정기精氣를 아끼는 것 모두를 포함한다. 하상공河上公의 이해는 여기에 바탕해 있다. 바로 이런 아낌이야말로 장생구시의 비결로서 신체적 장생에 도달하는 것은 물론 정치적 사회적 안정을 확립하는 핵심이라 말한다. 또한 정기를 보전하고 마찰을 피하고 고요히 숨어 있음으로써 덕이 쌓이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제59장의 내용은 한대漢代 초기에 유행하였던 황로학黃老學의 핵심적인 사상을 잘 보여주는데, 하상공河上公의 표현대로 하면 그것은 국가의 통치[치국治國]와 신체의 수련[치신治身]을 같은 원리로 보는 것과 통한다. 황로학이 바로 여러 종류의 《황제서黃帝書》와 《노자老子》를 함께 아우르는 명칭이라고 왕충王充이 설명한 것을 따른다면, 제59장의 사상은 황로학의 주제主題는 물론 그 논리論理를 잘 드러내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왕필王弼은 이러한 황로학과 일정한 거리를 둔 해석을 취한다. 왕필은 ‘’을 농사일에 비유한 것으로 해석하면서 근본根本에 충실함으로써 말단末端을 다스린다는 사상을 드러낸다. 즉 왕필은 “근본을 받들어 말단을 키운다.[숭본식말崇本息末]”, 혹은 “근본을 받들어 말단을 세운다.[숭본거말崇本擧末]”는 논리로 이 장을 해석한다.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기는 것은 농사일보다 나은 게 없다.
막약莫若은 ‘……보다 나은 게 없다’는 말과 같다.
은 농사일이다.
농부가 밭을 경작할 때에는 잡초[수류殊類]를 제거하여 가지런히 하는 데로 돌아가도록 힘쓰니,
〈이는 작물이 지닌〉 자연스러운 본성을 온전히 하되 가뭄과 병충해에 급급해하지 않고서 가뭄과 병충해가 드는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위로는 천명天命을 받들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편안케 하는 데 이보다 더 나은 건 없다.
대저 오로지 농사짓듯이 하니 이 때문에 일찍 따른다 하며
일찍 항상됨을 따른다는 뜻이다.
〈항상됨을〉 일찍 따름을 일컬어 거듭 을 쌓는다고 하니,
오직 거듭 덕을 쌓되 날카롭게 하거나 서두르려고 하지 않은 후에야 능히 항상됨을 따를 수 있다.
그래서 “〈항상됨을〉 일찍 따름을 일컬어 거듭 덕을 쌓는다.”고 한 것이다.
거듭 덕을 쌓으면 〈무궁한 도를 얻어〉 이기지 못할 게 없고, 이기지 못할 게 없으면 그 끝을 알지 못하니
〈거듭 덕을 쌓으면〉 도는 다함이 없다.
그 끝을 알지 못하면 나라를 가질 수 있다.
끝이 있는 것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리니 나라를 가질 수 없다.
나라의 어미를 가지면 오래오래 갈 수 있으니,
나라가 편안한 까닭을 일컬어 어미라 한다.
거듭 덕을 쌓음은 오로지 그 뿌리를 도모한 후에 말단을 다스려야 그 마침을 얻을 수 있다.
이를 일컬어 뿌리를 깊고 단단하게 하며 오래 살고 오래 보는 라 한다.


역주
역주1 治人事天 莫若嗇 : 河上公의 경우 ‘治人’은 백성을 다스리는 일이고, ‘事天’은 天道를 써서 사계절의 변화에 따르는 것이라 구분하여 이해하지만, 王弼은 구분하지 않고 함께 보았다. 또 河上公은 嗇을 ‘아끼다[愛]’는 뜻으로 보아 재물을 아껴 사치하지 않는 것과 精氣를 아껴 방종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풀이하였는데 뜻이 간단명료하다. 대개의 주석자들은 ‘嗇’을 ‘아끼다’의 뜻으로 보았다. 하지만 王弼은 ‘嗇’을 ‘穡’의 뜻으로 보아 농사일에 견주어 문제의 근본 원인을 다스린다는 뜻으로 해석하였으나 자연스럽지는 않다.
역주2 (如)[若] : 저본에는 ‘如’로 되어 있으나, 經文에 따라 ‘若’으로 바꾸었다.
역주3 嗇……夫農人之治田 : 저본에는 ‘嗇農夫 農人之治田’으로 되어 있는데, 樓宇烈은 “嗇 農夫 農人之治田”으로 읽을 것으로 제안하는 반면, 바그너는 王弼의 주석에서 “甲은 乙이다”와 같은 방식의 구문에서는 모두 ‘也’가 쓰인다는 것과 ‘夫’가 일반적인 이야기를 할 때 문두에 등장한다는 분석을 근거로 ‘嗇 農也 夫農 人之治田’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는 ‘嗇’과 ‘農’이 동사로 쓰이기에 ‘農夫’로 보는 것이 어색하다고 판단하여 바그너의 주장을 따랐다.
역주4 早服 : “도를 따른다.[從於道]”(《韓非子》 〈解老〉), “일찍부터 복종하여 천도를 섬긴다.[早而服事天道]”(范應元) 등 일찍 따른다는 의미이다.
역주5 早服 常也 : 아래 注59.3에서 王弼은 ‘早復其常’이라 하였으니 실제의 의미는 항상됨을 회복한다는 뜻이다. 王弼은 앞서 ‘治人’과 ‘事天’을 농부의 농사일에 비유하면서 잡초를 제거하고 농작물의 자연스러운 본성을 온전케 하는 근본에 힘쓴다는 뜻으로 풀이하였으니, 이는 근본에 힘쓰는 것이 곧 덕을 두텁게 쌓는 것이라는 의미로 풀이한 듯하다.
역주6 以有窮而蒞國 : 有窮은 궁핍한 수단, 막히는 방법이다. 나라를 다스리면[蒞] 온전하게 나라를 소유할 수 없다는 뜻이다.
역주7 國之所以安……乃得其終也 : 王弼의 《老子》 注釋에서 핵심적인 논리가 나타나는 부분이다. 왕필은 母子, 本末의 관계에서 母와 本을 중시하고 이를 통해 子와 末을 얻거나 실현할 수 있다고 본다. 여기의 설명은, 군주가 덕을 쌓는 것이야말로 나라가 평안한 까닭이자 근본[母‧本‧根]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논리로 볼 수 있다.

노자도덕경주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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