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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2)

당시삼백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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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題後禪院〉
〈破山寺 뒤에 있는 禪院을 읊다〉
常建
상건
淸晨入古寺
맑은 새벽 옛 절에 들어가니
初日照高林
막 솟은 해는 높은 숲을 비춘다
幽處
대나무 숲길은 그윽한 곳으로 통해 있고
禪房花木深
꽃과 나무 짙은 곳에 선방이 있다
山光悅鳥性
산 빛은 새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潭影空人心
못 그림자는 사람의 마음을 비우게 한다
萬籟此
세상의 모든 소리 여기에서 모두 사라지니
鐘磬音
오직 종과 경쇠 소리만이 남아 있다
[通釋] 맑은 새벽 오래된 절인 파산사로 들어가는데, 막 떠오른 아침 해는 높은 나무들이 이룬 숲을 비춘다. 대나무 숲길을 통하여 절 뒤의 깊고 조용한 곳에 이르니, 꽃과 나무 우거진 깊은 곳에 선방이 보인다. 아름다운 산 빛에 새들이 즐거운 듯 지저귀고, 맑은 못의 물에 비친 그림자를 보니 나도 마음을 깨끗이 비우고 싶어진다. 세상의 온갖 소리가 여기에 이르러서는 모두 사라지고, 오직 파산사에서 들려오는 종과 경쇠 소리만 울린다.
[解題] 1구부터 4구까지는 前景을, 5‧6구는 정감을, 마지막 두 구에서는 소리를 통하여 선원의 적막감을 표현하였다. 자연의 경물을 통하여 세속적 번뇌를 씻고 청정한 禪的 깨달음에 도달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3‧4구는 대구를 구사하지 않은 상태에서 마치 하나의 구문처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어 古詩처럼 보인다. ‘竹逕通幽處 禪房花木深’은 歐陽脩가 애송한 시구로 유명하며, 이로 인하여 한시비평의 쟁점이 되기도 하였다.
[集評]○ 唐詩曰 山光悅鳥性 潭影空人心 按韻府群玉 空去聲 與論語回也屢空音同 - 朝鮮 李睟光, 《芝峯類說》 卷11
[集評]○ 唐詩에 ‘山光悅鳥性 潭影空人心’라고 하였는데, 《韻府群玉》을 살펴보니 ‘空’은 去聲이다. 《論語》의 “回也屢空(안회는 자주 끼니를 굶었다.)”과 음이 같다.
○ 杜五律無拗體 七言拗體居半
○ 杜甫의 오언율시에는 拗體가 없고 칠언율시에는 요체가 절반을 차지한다.
此最不可曉
이것을 가장 이해하기 어렵다.
以法言之 五律初入律者 如做古詩樣 間雜拗體也無妨
법으로 말한다면 오언율시가 처음 율시가 되었을 때 마치 고시의 형태로 지었기 때문에 그 사이에 요체가 섞여도 무방하였다.
而七律則宜整齊諧協
그러나 칠언율시의 경우는 정연하여 조화를 이루어야 했다.
而杜氏反之 所未曉者此也
그러나 杜甫의 경우는 반대이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孟浩然五言頷聯多不對 常建曲逕通幽處 禪房花木深 亦頷聯也
孟浩然이 지은 오언율시의 함련은 대구가 아닌 것이 많고, 常建의 ‘曲逕通幽處 禪房花木深’ 역시 함련이다.
杜詩絶少 - 金昌翕, 《三淵集》 卷19 〈答士敬別紙〉
杜甫의 시에는 이와 같은 경우가 매우 적다.
○ 吾嘗喜誦常建詩 云竹逕通幽處 禪房花木深 欲效其語 作一聯 久不可得
○ 나는 일찍이 상건의 시에 ‘竹逕通幽處 禪房花木深’이라고 한 것을 애송하여 그의 말을 본떠서 한 연을 짓고자 하였으나 오래도록 얻지 못하였다.
乃知造意者爲難工也
이에 자신의 뜻을 잘 표현해내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晩來靑州 始得山齋宴息 因謂不意平生想見而不能道
만년에 靑州에 가서 비로소 산속에 재실을 얻어 쉴 수 있게 되었는데, 평소에 생각하고 본 것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以言者 乃爲已有
말이라는 것은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於是 益欲希其髣髴 竟爾莫獲一言
이에 더욱 방불하게 표현해보고 싶었으나 끝내 한마디도 얻지 못하였다.
夫前人爲開其端 而物景又在其目 然不得自稱其懷 豈人才有限而不可彊
무릇 앞사람이 단서를 열어놓았고, 경물 또한 눈앞에 있는데도 내 마음에 딱 맞는 표현을 얻을 수 없었으니, 어찌 사람의 재능에 한계가 있어 억지로 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將吾老矣 文思之衰耶
내가 늙어가니 文思 또한 쇠약해서인가.
玆爲終身之恨爾
이에 종신토록 한이 되었다.
熙寧庚戌 仲夏月 望日 題 - 宋 歐陽脩, 《文忠集》 卷73 〈題靑州山齋〉
熙寧 庚戌年 仲夏(5월) 보름날 쓰다.
○ 常建有題破山寺後院詩云 竹逕通幽處 禪房花木深 余觀又玄集唐詩類選唐文粹 皆作通
○ 상건의 〈題破山寺後院詩〉에 ‘竹逕通幽處 禪房花木深’이라고 하였는데 내가 《又玄集》, 《唐詩類選》, 《唐文粹》를 보니, 모두 ‘通’으로 되어 있었다.
熙寧元年 歐陽永叔 守靑 題廨宇後山齋云 竹逕遇幽處 有似鄠杜石
熙寧 元年 歐陽永叔(歐陽脩)이 청주의 수령이 되어 廨宇後山齋에 제한 시에 “대나무 길이 그윽한 곳과 만나니 鄠杜石과 같은 것이 있네.[竹逕遇幽處 有似鄠杜石]”라고 하였다.
夲往河內 以示邢和叔 始未見時亦頗疑其誤
河內로 갔을 때 그것을 邢和叔에게 보여주었는데, 처음에는 그것을 보기 전이라서 잘못된 것이라 의심하였다.
及見碑 反覆味之 亦以爲佳
비석을 보게 되자, 반복하여 음미하고는 역시 좋다고 생각하였다.
竟不知別有本耶 抑永叔自改之耶
결국 다른 본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歐陽永叔이 고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古人用一字 亦不苟也 - 宋 姚寛, 《西溪叢語》 卷上
古人들은 한 글자를 쓸 때에도 억지로 하지 않았다.
○ 子厚古詩沖淡峭峻 在唐齊名蘇州
○ 子厚(柳宗元)의 고시는 ‘沖淡峭峻’한데 唐代에 蘇州(韋應物)와 이름을 나란히 하였다.
蘇長公至品諸韋上
蘇長公(蘇軾)이 〈유종원을〉 위응물 이상으로 품평하였다.
然韋詩蕭散自然 去柴桑格致不遠
그러나 위응물 시의 ‘蕭散自然’은 〈〉의 格調와 거리가 멀지 않다.
子厚雖骨力稍勁 其不及韋 政坐此
자후는 비록 骨力이 자못 강하였으나 위응물에게 미치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다.
故由子瞻勘捉 未破耳
그러므로 子瞻(蘇軾)의 감식으로는 간파할 수 없는 것이다.
道人庭宇靜 苔色連深竹 宋人謂遠勝竹逕通幽處禪房花木深 亦憒憒之見
’에 대하여 송인들은 ‘竹逕通幽處 禪房花木深’보다 매우 뛰어나다고 하였는데, 역시 잘 모르는 견해이다.
常詩警絶處 在山光悅鳥性十字 初不係頷聯也 - 明 胡應麟, 《少室山房集》 卷108
상건 시의 경이로운 곳은 ‘山光悅鳥性 潭影空人心’ 10자에 있지, 애초 함련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 歐陽永叔最愛常建曲徑通幽處 禪房花木深之句 固是絶唱
○ 歐陽永叔(歐陽脩)이 상건의 ‘曲徑通幽處 禪房花木深’ 구를 가장 애송하였는데, 진실로 절창이다.
具眼或謂永叔在靑州 手書此詩於廨後山齋 通字乃作遇
안목이 있는 자가 혹 말하기를 “영숙이 청주에 있을 때 이 시를 廨後山齋에 손수 베껴놓았는데, ‘通’자를 ‘遇’자로 써놓았다.
有石本若然
석본이 있었는데 과연 그러하였다.”라고 하였다.
則是點金成鐵 初不解此詩之妙也 - 淸 王士禎, 《居易錄》
만약 그렇다면 금을 찍어서 철을 만든 격이니 처음부터 이 시의 오묘함을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역주
역주1 破山寺 : 현재 江蘇省 常熟縣 虞山 興復寺를 지칭한다. 破山은 虞山이다.
역주2 竹徑 : ‘曲徑’이라고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역주3 : ‘遇’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역주4 : ‘都’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역주5 惟餘 : ‘惟’는 ‘但’, ‘餘’는 ‘聞’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역주6 柴桑 : 陶潛의 〈酬劉柴桑〉을 지칭한다.
역주7 道人庭宇靜 苔色連深竹 : 유종원의 〈晨詣超師院讀禪經〉 중 제9‧10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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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98 제파산사후선원 143

당시삼백수(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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