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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2)

당시삼백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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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諸子 登
〈여러 벗들과 峴山에 올라〉
孟浩然
맹호연
人事有
사람의 일은 바뀌고 변하기 마련
成古今
세월이 오가면서 고금을 이룬다
江山留
강산에 명승고적이 남아 있어
我輩復登臨
우리들 다시 산에 올라 굽어본다
水落
물이 빠지니 魚梁洲가 드러나고
天寒
날씨가 추워서 雲夢澤이 깊어졌구나
羊公의 비문이 여전히 남아 있어
讀罷淚沾
읽고 나니 눈물이 옷깃을 적시네
[通釋] 사람의 일은 흥하기도 쇠하기도 하여 변화가 있고, 세월이 흘러 지나간 과거와 다가오는 현재가 생겨난다. 강산에 뛰어난 명승고적이 남아 있어 우리가 좋은 기회를 만나 옛사람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다시금 오게 되었다. 산 위에서 바라보니 비가 오지 않아 수위가 낮아져 魚梁洲가 수면 위로 드러났고, 나뭇잎이 다 떨어진 추운 겨울에 호수가 더 넓어 보인다. 양공을 기념해서 세운 비석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기에 읽어보니, 나도 몰래 눈물이 흘러 옷깃을 적시누나.
[解題] 이 시는 孟浩然이 峴山에서 羊公의 비석을 보고 느꼈던 감정을 노래한 것으로 옛날을 회고하며 오늘날을 슬퍼하는 정서가 시 전체에 흐르고 있다. 1‧2구에는 시공 속에서 덧없이 소멸하는 인간의 무상함이 표현되어 있다. 3‧4구에서 시인은 峴山에 오른다. 여기서는 1‧2구의 ‘고금’을 이어받았는데, ‘강산에 남긴 뛰어난 자취’는 ‘옛날’을 상징하고, ‘고적을 다시 찾은 시인과 그의 벗들’은 ‘오늘’을 의미한다. 5‧6구는 산에 올라가 내려다본 경관을 묘사하면서 작자의 처연한 심사를 표현했다. 7‧8구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羊祜를 슬퍼해서가 아니요, ‘오늘 우리가 오른 것을 후세에 누가 羊祜처럼 생각해주겠는가’라고 하는 데에 있다. 羊祜와 자신의 처지를 대조시킴으로써 이룬 것 없이 끝없는 역사의 흐름 속에 묵묵히 매몰될 시인 자신을 哀歎한 것이다.
[集評]○ 前四句俯仰今古 寄慨蒼凉 凡登覽懷古之作 无能出其範圍
[集評]○ 전반부의 4구는 고금을 俯仰하면서 슬프고 처량한 마음을 표현했으니, 무릇 登覽懷古의 작품은 그 범주를 벗어날 수가 없다.
句法一氣揮灑 若鷹隼摩空而下 盤折中有勁疾之勢 洵推傑作 - 現代 兪陛雲, 《詩境淺說》 甲編
句法은 한 기운으로 써 내려가서 마치 솔개가 하늘을 날다 내려올 때 선회하는 가운데 굳세고 날랜 형세가 있는 듯하니 진실로 걸작으로 추앙받는다.
○ 淸遠之作 不煩攻苦著力 - 淸 沈德潛, 《唐詩別裁集》 卷9
○ 淸遠한 작품으로, 번거롭게 공을 들이거나 억지로 힘쓰지 않았다.
○ 起四句憑空落筆 若不著題 而與羊公登山意 自然神會 移置他處登山 便成泛語 - 淸 胡本淵, 《唐詩近體》
○ 처음 네 구는 허공에 기대어 써 내려가 제목과 관계가 없는 듯하나, 羊公이 산에 오른 뜻과 저절로 합치된다. 다른 곳으로 옮겨 산을 올라가더라도 두루 통용될 만한 말이다.
○ 起得高古 略无粉色 而情景俱稱
○ 起句가 고매하면서도 예스러워 조금도 꾸민 기색이 없으니, 情과 景이 모두 걸맞다.
悲慨勝于形容 眞峴山詩也
슬픔과 감개가 형용보다 빼어나니 그야말로 峴山詩이다.
復有能言 亦在下風
다시 더 좋은 말이 나온다 해도 이보다는 못할 것이다.
又不必苦思 自然好 苦思復不能 - 劉辰翁, 《孟浩然集評》 卷2
또 애써 생각할 필요 없이 절로 좋으니, 애써 생각해도 다시 할 수 없는 것이다.
○ 浩氣回旋 前六句含情抱感 末句一點 通體皆靈 - 淸 范大士, 《歷代詩發》 卷10
○ 호연한 기운이 감도는데, 앞의 여섯 구는 정감을 내포하고 있다. 마지막 한 구는 대체적으로 신령스럽다.
○ 非有深思 而意趣淸逈 結與起正相應 - 淸 吳昌祺, 《刪訂唐詩解》 卷17
○ 깊은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뜻과 풍취는 맑고 아득하며 결구와 기구가 꼭 맞게 상응한다.
역주
역주1 峴山 : 孟浩然의 고향인 지금의 湖北省 襄陽縣 남쪽 9리 지점에 있는데, 일명 峴首山이라고 한다.
역주2 代謝 : 興替라고도 하며 새것이 와서 묵은 것을 대신하는 것, 곧 교체되어 바뀌는 것을 말한다.
역주3 往來 : 日往月來, 세월이 오고감을 가리킨다.
역주4 勝跡 : 名勝古蹟으로 여기서는 峴山을 말한다. 산 위에 羊祜의 墮淚碑가 있다.
역주5 魚梁 : 襄陽 鹿門山 부근의 沔水 중간에 있는 모래섬을 지칭한다. 《水經注》 〈沔水〉에 의하면 魚梁洲는 沔水 중간쯤에 있는데 東漢의 隱士인 龐德公이 살던 곳이라 기록되어 있다. 일설에는 둑을 이용하여 고기를 잡는 곳이라고 보기도 한다.
역주6 夢澤 : 雲夢澤으로 고대 楚나라 땅에 있었던 큰 늪의 이름이다. 지금의 湖南省 益陽縣과 湘陰縣 이북, 湖北省의 江陵縣과 安陸縣 이남 및 武漢市 이서의 넓은 지역을 가리킨다. 지금의 洞庭湖 北岸 일대의 지역으로 추정되는데, 여기서는 산 위에서 보이는 일반 沼澤을 가리킨다.
역주7 羊公碑尙在 : ‘尙’이 ‘字’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羊公碑는 곧 峴首山 위에 있는 墮淚碑를 말한다. 晉나라 武帝 때 羊祜가 襄陽을 진압하고 늘 여기서 술을 마셨다. 그는 산수를 즐겨서 자주 峴山에 올라 놀았는데, 從事 鄒湛에게 이르기를 “우주가 있을 때부터 이 산이 있었으니, 예로부터 賢士들이 여기 올라 조망하였을 것이다. 나와 그대 같은 사람이 많았을 것인데 모두 다 사라져 아는 이 없으니 슬프다. 내가 백년 뒤에도 魂魄이 있다면 다시 이 산에 오르리라.” 하였는바, 《晉書》 〈羊祜傳〉에 이러한 내용이 보인다. 羊祜가 죽은 뒤에 양양 사람들이 그의 덕을 사모하여 현산에 碑를 세우니, 보는 사람들이 슬퍼하여 눈물을 떨어뜨렸으므로 杜預가 그 碑를 墮淚碑라 하였다.
역주8 : ‘巾’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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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25 여제자 등현산 97

당시삼백수(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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