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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2)

당시삼백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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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詠懷古迹 其四〉
〈옛 자취를 읊으며 심회를 적다 네 번째 시〉
杜甫
두보
蜀主가 오나라를 엿보아 三峽까지 나갔었고
세상을 떠난 해에도 永安宮에 있었지
천자의 깃발 빈산 가운데 상상할 수 있건만
아름다운 궁전 野寺 되어 사라져버렸구나
오래된 廟堂의 삼나무 소나무엔 학이 둥지를 틀고
歲時를 맞은 여름 겨울에 村老들 모여든다
武侯의 사당 항상 이웃에 있어
君臣을 일체로 여겨 함께 제사 올린다네
[通釋] 관우를 습격한 오나라를 치기 위해 촉나라의 왕 유비가 직접 군사를 이끌고 이곳 기주까지 와서 오나라를 공격했었다. 하지만 유비는 오나라의 장수 육손에게 패해 간신히 몸만 빠져나와 이곳 기주로 돌아와 이듬해 영안궁에서 세상을 떠났다. 지금은 아무도 없는 빈산에서 그 옛날 위엄 있는 의장을 여전히 상상해볼 수 있는데, 예전의 아름다운 궁전은 와룡사라는 절이 되어 그때의 영화는 사라지고 없다. 유비의 祠廟에 있는 삼나무, 소나무에는 학들이 둥지를 틀어 살고 있을 뿐이다. 때가 되면 매년 여름과 겨울 두 번 이 땅의 노인들이 제사를 올린다고 지금도 사당에 온다. 제갈량의 사당 무후사가 선주의 묘당 옆에 붙어 있어 君臣을 한 몸으로 여겨 같이 제사를 올린다.
[解題] 先主廟에 대해 술회한 시이다. 앞의 네 구는 永安의 옛 흔적을 서술하였고, 뒤의 네 구는 祠廟의 풍경과 그곳의 일에 대해 서술하였다. ‘幸’, ‘崩’, ‘翠華’, ‘玉殿’이란 말을 써서 유비의 蜀을 正統으로 본 것이니 春秋筆法과 같다고 보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필법으로 보자면 첫 구절을 ‘漢主征吳幸三峽’으로 써야 더욱 正大하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集評]○ 其四 詠先主祠 而所以懷之 重其君臣之相契也
[集評]○ 이 네 번째 시는 先主祠를 노래했지만, 심회를 적은 것은 군신은 서로 뜻이 잘 맞는 게 중요하다는 점이다.
……幸三峽而崩永安 直述而悲憤自見
……삼협까지 행차했다가 영안궁에서 세상을 떴다고 하였는데 直敍이면서도 悲憤이 저절로 드러난다.
然翠華猶可想像 玉殿猶藏佛宮 廟貌存而歲祀虔 見人心思慕 至今不忘
하지만 화려한 儀仗을 아직도 상상할 수 있고, 아름다운 궁전은 사찰로 변한 가운데 여전히 간직돼 있으며, 廟堂의 모습 남아 있어 해마다 제사를 정성 들여 지내니 人心이 사모해 지금까지도 잊지 않음을 알 수 있다.
且武侯之祠 又相隣近 一體君臣祭禮同之 豈非千古盛事哉 - 明 王嗣奭, 《杜臆》 卷8
또 武侯祠가 가까이 있어 임금과 신하를 일체로 여겨 똑같이 제사를 지내니 어찌 영원히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는가.
○ 前解:首句如疾雷破山 何等聲勢
○ 앞의 네 구절 풀이:첫 구절은 빠르게 내달리는 우레가 산을 깨버리는 듯하니 얼마나 세찬 소리인가.
次句如落日掩照 何等蒼凉
다음 구절은 지는 해가 빛을 거둬들이는 듯하니 또 얼마나 처량한가.
三 虛想當年 四 實笑今日也
셋째 구절은 그 시절을 상상해 그려보는 것이고, 넷째 구절은 현재를 보고 실제로 웃는 것이다.
山外安覓翠華
산 밖에서 어떻게 화려한 儀仗을 찾겠는가.
意中却有寺中
의중이 절에 있는 것이다.
舊爲玉殿 目下却無
예전에는 ‘玉殿’이었건만 지금은 아무것도 없다.
是無是有 是有是無 二語閃爍不定
있다간 없고 없다간 있어, 두 마디 말이 번쩍거리는 불꽃같이 일정치 않다.
翠華玉殿 又極聲勢 空山野寺 又極蒼凉
‘翠華’, ‘玉殿’은 기세 찬 소리의 극치이고, ‘空山’, ‘野寺’는 또 처량함의 극치이다.
只一句中 上下忽變 眞是異樣筆墨
단지 한 구절인데도 아래위로 갑자기 변하니 참으로 기이한 필법이다.
後解:翠華玉殿 旣不可見 所見唯古廟存焉 而昭烈故天子也 以天子而有廟 必也玄堂太室
뒤의 네 구절 풀이:‘翠華’, ‘玉殿’은 이미 볼 수 없고 보이는 것은 남아 있는 古廟뿐인데, 세상을 떠난 昭烈帝(유비)는 천자였으니 廟堂이 있을 터, 반드시 墳墓와 太廟(천자의 祖廟)가 있고,
所謂振鷺來賓 如鸞至止者也 而今乃巢水鶴耳
이른바 ‘’ 마치 난새가 내려와 머무는 듯 해야 하는데, 지금은 물새들이 둥지를 틀었을 뿐이다.
以天子廟而有祭 必也八佾九獻 所謂郡公執爵 髦士奉璋者也 而今乃走村翁耳
천자의 廟堂이 있어 제사를 지내니 반드시 八佾舞와 九獻(아홉 차례 獻酒하는 것)이 있고, 이른바 郡公들이 술잔을 잡고 ‘’들이 笏을 받들어야 하는데, 지금은 촌 노인들이 달려올 뿐이다.
祠廟近 是一樣水鶴杉松 祭祀同 是一樣村翁伏臘
廟祠 근처에는 ‘水鶴’, ‘杉’, ‘松’뿐이고, 제사를 같이 지내지만 촌 노인들이 ‘伏臘’하는 것일 뿐이다.
非幸其君一體 正傷其君臣無別也 - 淸 金聖歎, 《杜詩解》 卷3
임금과 일체가 된 것을 다행스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체가 다른 임금과 신하가 구별되지 않음을 마음 아파한 것이다.
역주
역주1 蜀主窺吳幸三峽 : 삼국시대에 蜀漢의 劉備가 章武 2년(222)에 오나라를 치러 출정한 사실을 말한다. ‘蜀主’는 옛 칭호를 쓴 것으로, 〈詠懷古迹五首 其五〉에는 또 ‘漢祚’라고 썼으니, 蜀이 正統임을 나타냈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窺’가 ‘征’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幸’은 제왕의 행차를 말한다. ‘三峽’은 夔州를 가리킨다.
역주2 崩年亦在永安宮 : 유비는 오나라의 陸遜에게 패배하여 쫓겨 육로로 겨우 魚復으로 돌아왔는데 그 후 魚復을 永安으로 改名했다. 유비는 이듬해 成道에 있는 丞相 諸葛亮을 부르고 4월에 永安宮에서 세상을 떠났다. ‘永安宮’은 夔州 百帝城에 있는 행궁이다. 첫 구절에서는 ‘幸’이라 하고 둘째 구절에서는 또 ‘崩’이라 했으므로 춘추필법에 따라 昭烈皇帝 유비를 정통으로 존숭한 표현이라 보기도 한다.
역주3 翠華想像空山裏 : ‘翠華’는 비취새의 깃털로 장식한 깃발을 말하며 帝王의 儀仗을 가리킨다. ‘空’이 ‘寒’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역주4 玉殿虛無野寺中 : ‘玉殿’은 永安宮을 가리킨다. ‘野寺’는 臥龍寺를 가리킨다. 原注에 “궁전은 지금 와룡사가 되었다. 廟堂은 궁전 동쪽에 있다.[殿今臥龍寺 廟在宮東]”라고 하였다.
역주5 古廟杉松巢水鶴 : ‘古廟’는 유비의 祠廟를 말한다. 《抱朴子》에 “천년을 산 학은 때에 맞춰 우는데 나무 위에 오를 수 있다. 아직 천년을 살지 못한 학은 종내 나무 위에 모일 수 없다.[千歲之鶴 隨時而鳴 能登於木 其未千歲者 終不能集於樹上]”라고 했는데 ‘古’字와 ‘鶴’字를 어울리게 한다. ‘水鶴’은 鶴을 말한다. 《春秋繁露》에 “백학은 밤이 깊은 줄 안다.[白鶴知夜半]”고 했는데, 그 注에 “학은 물새이다. 깊은 밤에 수위가 올라 생기를 느끼면 더욱 기뻐하며 운다.[鶴 水鳥 夜半水位 感其生氣 則益喜而鳴]”라고 하였다.
역주6 歲時伏臘走村翁 : ‘歲時伏臘’은 여름 겨울 두 차례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伏’은 음력 6월의 夏祭를, ‘臘’은 음력 12월의 冬祭를 말한다. ‘走村翁’은 이 지역 사람들이 제사 지내러 오는 것을 말하는데 아직도 유비를 그리워하며 잊지 못함을 나타낸다.
역주7 武侯祠屋常隣近 : ‘武侯祠’는 夔州에 있는 諸葛亮의 祠廟를 가리킨다. 諸葛亮이 武鄕侯로 봉해졌기 때문에 武侯祠라 한 것이다. ‘常’이 ‘長’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隣近’이란 표현을 쓴 것은 武侯祠가 先主廟 서쪽에 있기 때문이다.
역주8 一體君臣祭祀同 : ‘一體君臣’은 임금과 신하는 한 몸이란 전통적인 표현을 쓴 것이지만, 유비와 제갈량이 서로 君臣으로서 뜻이 잘 맞았음을 나타낸다. ‘祭祀同’이라 하였지만, 안은 宮이고 밖은 殿이며 임금은 廟이고 신하는 祠여서 그 차서가 분명하다. 王褒의 〈四子講德論〉에 “임금은 머리이고 신하는 팔다리이니 그 한 몸이 서로 갖춰져야 완성됨을 밝힌 것이다.[君爲元首 臣爲股肱 明其一體 相待而成]”라는 말이 보인다.
역주9 깨끗한 현인들이 손님으로 와 : 원문 ‘振鷺’는 《詩經》의 말을 가져온 것이다. 《周頌》 〈振鷺〉에 “떼 지어 白鷺가 날아가네, 서쪽 못에서.[振鷺于飛 于彼西雝]”라는 구절이 보인다. 孔穎達의 주에 “떼를 지어 깨끗한 백로들이 날아가는 것을 말한 것이다. ……훌륭하고 威儀를 갖춘 신하들이 王廟의 제사를 돕는데 마땅함을 얻은 것이다.[言有振振然絜白之鷺鳥 往飛也……美威儀之人臣而助祭王廟 亦得其宜也]라고 하였다. 또 《魯頌》 〈有駜〉에 “떼 지어 나는 백로 깃이여, 백로가 내려앉는 듯하도다.[振振鷺 鷺于下]”라고 했는데, 鄭玄의 주에 “깨끗한 선비들이 임금의 조정에 모인 것이다.[絜白之士 群集於君之朝]”라고 하였다.
역주10 준걸스러운 선비 : 원문 ‘髦士’는 《詩經》에 보이는 말을 가져 온 것이다. 《小雅》 〈甫田〉에 “쉬고 머무르는 곳에 우리 뛰어난 사람들을 나오게 한다.[攸介攸止 蒸我髦士]”라는 말에서 온 것으로, 원문의 ‘髦’는 俊과 같은 말이다. ‘攸’는 어조사이며 ‘介’, ‘止’는 모두 ‘休息하다’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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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삼백수(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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