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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3)

당시삼백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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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落烏啼霜滿天
對愁眠
到客船
[集評]○ 詩人貪求好句而理有不通 亦語病也
唐人有云姑蘇城外寒山寺 夜半鐘聲到客船 說者亦云 句則佳矣 其如三更不是打鐘時 - 宋 歐陽脩, 《六一詩話》
○ 姑蘇城外寒山寺 夜半鐘聲到客船 此唐張繼題城西風橋寺詩也
歐陽文忠公嘗病其夜半非打鐘時 蓋公未嘗至吳中
今吳中山寺 實以夜半打鐘 繼詩三十餘篇 余家有之 往往多佳句 - 宋 葉夢得, 《石林詩話》 卷中
○ 張繼夜半鐘聲到客船 談者紛紛 皆爲昔人愚弄
詩流借景立言 惟在聲律之調 興象之合
區區事實 彼豈暇計
無論半夜是非 卽鐘聲聞否 未可知也 - 明 胡應麟, 《詩藪》
○ 全篇詩意自愁眠上起 妙在不說出 - 明 陳繼儒, 《唐詩三集合編》
○ 愁人自不成寐 却咎曉鐘 詩人語妙 往往乃爾 - 淸 何焯, 《三體唐詩》
○ 塵市喧闐之處 只聞鐘聲 荒涼寥寂可知 - 淸 沈德潛, 《唐詩別裁集》 卷20
○ 客船卽張繼自謂
本云夜半鐘聲 客船初到 而江楓漁火 相對愁眠 則已月落烏啼
客情水宿 含悲俱在言外
文法是倒拈 幷非另有客船到也
不然 夜半與上月落烏啼 豈不刺謬乎 - 淸 黃叔燦, 《唐詩箋注》
○ 楓橋在吳郡閶門外 距寒山寺甚近
首句言泊舟之時 次句言旅客之懷
後二句言夜半而始泊舟 見客子宵行之久 寺中尙有鐘聲 見山僧夜課之勤
作者不過夜行紀事之詩 隨手寫來 得自然趣味
詩非不佳 然唐人七絶 佳作林立 獨此詩流傳日本 幾婦稚皆習誦之 詩人傳與不傳 亦有幸有不幸耶 - 現代 兪陛雲, 《詩境淺說》
○ 此詩所寫楓橋泊舟一夜之景
詩中除所見所聞外 只一愁字透露心情
夜半鐘聲 非有旅愁者未必便能聽到
後人紛紛夜半有無鐘聲 殊覺可笑 - 現代 劉永濟, 《唐人絶句精華》


〈밤에 풍교에 배를 대다〉
장계
달 지고 까마귀 울어 하늘에 서리 가득한데
강가 단풍, 배의 불빛 대하며 시름에 잠 못 드네
고소성 밖 한산사의
한밤 종소리는 나그네 배에 들려오고
[集評]○ 시인들이 좋은 구절을 탐하듯 구하면서 이치가 통하지 않는 것도 語病이 된다.
당나라 시인의 시에, ‘姑蘇城外寒山寺 夜半鐘聲到客船’이라고 하였는데,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구절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삼경(밤 11시에서 새벽 1시 사이)같이 깊은 밤은 종 치는 때가 아니다.” 하였다.
○ ‘姑蘇城外寒山寺 夜半鐘聲到客船’은 당나라 張繼가 성 서쪽 風橋 가까운 절에 쓴 시이다.
歐陽文忠公(歐陽脩)이 야밤은 종 치는 때가 아니라고 비판한 적이 있는데, 이는 公이 吳 지방에 가보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지금도 吳 지방의 山寺에서는 실제 야밤에 종을 친다. 張繼의 시 30여 편을 내 집에 가지고 있는데 왕왕 佳句가 많다.
○ 張繼의 ‘夜半鐘聲到客船’ 구절을 두고 말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은데, 모두 옛사람들에게 우롱당하는 것이다.
시인은 경물을 빌려 말을 하니 聲律의 조화와 興象이 합치되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자잘한 사실을 어느 겨를에 따지겠는가.
‘半夜’인지 아닌지는 물론이고 ‘鐘聲’이 들리는지도 알지 못하겠다.
○ 전편의 詩意는 ‘愁眠’에서 생기니 묘한 곳은 말로 하지 않는 데 있다.
○ 시름에 잠긴 사람이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문득 새벽 종소리를 탓한다. 시인의 오묘한 말이 왕왕 이와 같다.
○ 먼지 가득한 시끄러운 세상에 다만 종소리만 들리니 황량하고 적막함을 알 만하다.
○ ‘客船’은 張繼 자신을 말한다.
본래는 ‘야밤에 종소리가 들리는데 客船이 막 도착했고, 江楓漁火를 마주하며 수심에 잠 못 드니 이미 달 지고 까마귀 운다.’라고 써야 한다.
客情에 물 위에서 묵으니 悲感을 함축한 것이 모두 言外에 있다.
글의 순서를 도치시켜 쓴 것이지 따로 客船이 도착한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夜半’과 윗구절의 ‘月落烏啼’는 어찌 잘못되었다고 비판하지 않았는가.
○ ‘楓橋’는 吳郡 閶門 밖에 있어 寒山寺와 거리가 아주 가깝다.
첫 구는 배를 정박하고 난 때를 말하고, 다음 구는 나그네의 회포를 말한다.
뒤의 두 구는 밤이 깊어 비로소 배를 댄다고 하였으니 나그네의 밤 여행이 길었음을 알 수 있고, 절 가운데 아직 종소리가 있다 하였으니 山僧이 밤공부를 부지런히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자가 밤에 여행하며 일어난 일을 쓴 시에 불과하지만 손 가는 대로 묘사해 자연스런 趣味를 얻었다.
○ 시가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나, 당나라 사람들의 七言絶句는 뛰어난 작품이 숲을 이루었는데, 유독 이 시만이 일본에 전해져 부녀자와 아이들까지도 익히고 외울 정도이니, 시인이 전해지고 전해지지 않고는 또한 행과 불행이 있는 것인가.
○ 이 시는 楓橋에 배를 댄 하룻밤의 경치를 묘사한 것이다.
시 가운데 보고 듣는 것을 제외하고 겨우 ‘愁’자 하나에 心情을 투명하게 드러냈다.
‘夜半鐘聲’은 시름에 잠긴 나그네가 아니라면 꼭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다.
後人들이 분분하게 야밤에 종소리가 있느니 없느니 따진 일은 참으로 可笑로운 줄 알겠다.


역주
역주1 楓橋夜泊 : 제목이 ‘夜泊楓江’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楓橋’는 江蘇省 吳縣 閶門 밖의 서쪽 10里에 있다. 《豹隱紀談》에 “楓橋는 옛 이름이 封橋였다. 후에 張繼 시의 ‘江楓漁火對愁眠’ 구절을 따라 ‘楓橋’로 고쳤다.[楓橋 舊名封橋 後因張繼詩江楓漁火句 改楓橋]”라는 기록이 보인다.
역주2 張繼 : 생몰년 미상이다. 字는 懿孫으로 襄州(지금의 湖北省 襄陽縣) 사람이다. 일설에는 南陽(지금의 河南省 南陽縣) 사람이라고 한다. 天寶 12년(753)에 진사에 급제, 江南에서 鹽鐵判官을 역임했다. 《全唐詩》에 시 1卷이 전한다.
역주3 江楓漁火 : ‘江楓’은 강가의 단풍나무를 말하는데 ‘江村’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淸나라 兪樾의 〈楓橋夜泊詩碑〉에 “당나라 張繼의 〈楓橋夜泊〉 시는 인구에 회자되는데, ‘江楓漁火’ 네 글자만은 자못 의심할 만하다. 宋나라 龔明之의 《中吳紀聞》에는 ‘江村漁火’라 하였으니, 송나라의 옛 서적을 보물로 귀하게 여길 만하다. 이 시는 宋나라 王郇公(王珪)이 옮겨 적어 돌에 새긴 적이 있는데 지금은 볼 수 없다. 明나라 文待詔(文徵明)가 〈비에〉 써놓은 것도 흐릿해서 ‘江’자 아래 글자를 분별할 수 없다. 筱石中丞(陳夔龍)이 내게 글을 보충해달라고 부탁해 우선 옛 판본을 따랐지만 ‘江村’이라고 쓴 古本을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이에 따로 시 한 편을 지어 옆에 새겨넣어 보는 사람들에게 고한다. ‘郇公(王珪)의 옛 기록 오랫동안 알 수 없고, 待詔(文徵明)가 남긴 비문 더듬어볼 수 없구나. 다행히 《中吳紀聞》 남아 있으니, 千金 값의 한 글자가 江村이로구나.[郇公舊墨久無聞 待詔殘碑不可捫 幸有中吳紀聞在 千金一字是江村]’ ”라는 기록이 있다. ‘江楓’이란 말은 원래 굴원의 《楚辭》에 보이는 “맑고 맑은 강물, 강가엔 단풍나무 있네.[湛湛江水兮上有楓]”에서 왔다고 보기도 한다. ‘漁火’는 고기를 잡으려고 漁船에 켠 불빛을 말한다.
역주4 姑蘇城外寒山寺 : ‘姑蘇’는 蘇州의 별칭이다. 도시 서남쪽에 姑蘇山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寒山寺’는 江蘇省 蘇州市 서쪽에 있는데 南朝 梁나라 때 지어졌다. 원래 이름은 妙利普明塔院이었는데 唐나라 초에 詩僧 寒山이 이곳에 머물러 이에 寒山寺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楓橋 부근에 있으며 蘇州의 名勝 가운데 한 곳이기도 하다.
역주5 夜半鐘聲 : 歐陽脩가 지적(아래 집평 참조)한 이래 논란이 분분하다. 唐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현이라는 의견도 있다. ‘半夜鐘聲’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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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삼백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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