孟浩然(689~740)
湖北省 襄陽縣 출생이다. 고향에서 공부에 힘쓰다가 40세쯤에 長安으로 올라와 進士시험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여 고향에 돌아와 은둔생활을 하였다. 만년에 宰相 張九齡의 부탁으로 잠시 그 밑에서 일한 것 이외에는 관직에 오르지 못하고 52세를 일기로 불우한 일생을 마쳤다. 그의 청장년기는 소위 현종의 開元盛大에 걸쳐 있어 동시대 시인 왕유, 이백, 두보와 달리 天寶 이후의 시기를 겪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느끼기엔 그의 시대는 盛世가 아니었으며 시대가 그를 용납하지 않았고 그는 포부를 품은 채 강호에 몸을 숨길 수 밖에 없었다. 그러한 은일 속에서 陶淵明을 존경하여 고독한 전원생활을 즐기고 자연의 한적한 정취를 읊은 작품을 남겼다. 하지만 전원생활이 주는 진정한 한적의 의미를 체득하기까지 적지 않은 세월에 걸쳐 마음속의 울분, 怨情, 갈등을 겪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는 盛唐시기 山水田園時波를 대표한다. 특히 五言詩에 능해 그 가운데 뛰어난 작품은 建安의 氣風을 되살린 名篇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李白이 존경했던 시인이기도 하다. 詩集으로 《孟浩然集》이 전하며, 《唐詩三百首》에는 〈秋登蘭山寄張五〉, 〈夏日南亭懷辛大〉, 〈宿業師山房待丁大不至〉, 〈夜歸鹿門歌〉, 〈望洞庭湖贈張丞相〉, 〈與諸子登峴山〉, 〈淸明日宴梅道士房〉, 〈歲暮歸南山〉, 〈過故人莊〉, 〈秦中感秋寄遠上人〉, 〈宿桐廬江寄廣陵舊游〉, 〈留別王侍御維〉, 〈早寒江上有懷〉, 〈宿建德江〉, 〈春曉〉 등 모두 15수가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