唐大家韓文公文抄 卷6 序
歸安 鹿門 茅坤 批評
孫男 闇叔 著 重訂
楊憑爲御史中丞하야 奏辟儀之爲觀察支使하니라 文有興致라
愈在京師時
에 嘗聞當今
惟
爲多賢
이라 與之遊者二人
이니 隴西
과 淸河
이라
群與博之爲人
을 吾知之
로니 道不行於
하고 與之處者非其類
면 雖有享之以
라도 不一日留也
라
컨대 凡在宣州之幕下者
를 雖不盡與之遊
나 皆可信而得其爲人矣
라
愈未嘗至宣州로되 而樂頌其主人之賢者는 以其取人信之也ㄹ새니라
今
之在朝
에 愈日侍言於門下
러니 에 有問湖南之賓客者
어늘
愈曰 知其客可以信其主者는 宣州也요 知其主可以信其客者는 湖南也라호라
去年冬
에 然後
에 得謁湖南之賓客於幕下
하고 於是知前之信之也不失矣
로라
及儀之之來也에 聞其言而見其行컨대 則向之所謂群與博者니 吾何先後焉이리오
儀之智足以
하고 材足以
하며 忠足以
하고 惠足以
어늘
而又
과 先聖賢之
하야 其質
하니 宜乎
而流聲實於天朝也
로다
夫樂道人之善하야 以勤其歸者가 乃吾之心也니 謂我爲邑長於斯而媚夫人云者는 不知言者也라 工乎詩者는 歌以繫之어다
楊憑이 御史中丞이 되어, 조정에 上奏해 〈認可를 받아〉 楊儀之를 초빙하여 觀察支使로 삼았다. 문장이 興致(재미)가 있다.
내가 京師에 있을 때에 오늘날 藩鎭의 賓客(幕僚) 중에 오직 宣州에 賢者가 많다고 들은 적이 있는데, 〈宣州의 막료 중에〉 나와 交遊하는 자가 둘이 있으니, 隴西 사람 李博과 淸河 사람 崔群이다.
나는 崔群과 李博의 사람됨을 잘 아는데, 그들은 자기의 주장이 主人에게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함께 막료로 있는 자들이 자기와 같은 무리가 아니면 비록 季氏와 같은 富를 누리게 해주어도 하루도 머물지 않을 사람들이다.
최군과 이박의 사람됨을 미루어 論하면, 宣州의 幕僚로 있는 자들을 내가 모두 交遊하지는 못하였으나, 모두 믿을 수 있고 그 사람됨을 알 수 있다.
내가 宣州에 가본 적이 없으면서도 그 주인의 어짊을 稱頌하기 좋아하는 것은 그 주인이 현자들을 막료로 취하여 信任하기 때문이다.
지금 中丞(楊憑)께서 朝廷에 계실 적에 나는 날마다 門下에서 모시고서 말씀을 나누었다. 그러므로 중승께서 〈觀察使로〉 오시어 이곳을 鎭守하시자, 어떤 사람이 湖南의 賓客에 대해 묻기에,
나는 “빈객을 보고서 주인을 믿을 수 있는 곳은 宣州이고, 주인을 보고서 빈객을 믿을 수 있는 곳은 湖南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지난 겨울에 내가 皇命을 받들어 陽山縣令이 된 뒤에 湖南의 빈객들을 觀察使 幕府에서 만나보고서, 전에 믿었던 것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았다.
楊儀之가 이곳(陽山)에 옴에 미쳐 그의 말을 들어보고 그의 행실을 살펴보건대, 내가 앞에서 말한 崔群‧李博과 같았으니 내 어찌 누가 낫고 누가 못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양의지의 지혜는 계책을 내기에 충분하고, 재능은 功業을 세우기에 충분하며, 충성은 上司를 위해 盡力하기에 충분하고, 은혜는 백성을 存恤(慰撫)하기에 충분한데,
게다가 또 ≪詩≫‧≪書≫ 등 六藝(六經)의 학문과 先代 聖賢의 德音(가르침)으로 〈지식과 행동의〉 범위를 넓혀[侈] 그 文采를 이루고 타고난 質을 보완하였으니, 湖南府에서 從事(僚屬으로 있음)하면서 명성이 전파되어 조정에 가득 찬 것이 당연하다.
남의 훌륭한 점을 칭찬해 돌아가는 이를 勸勉[勤]하기 좋아하는 것이 바로 나의 마음(이 序를 지은 본의)이다. 내가 이곳의 邑長이 되어 支使에게 아첨한다고 하는 자는 나의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이다. 詩에 능한 이들은 詩歌를 지어 이 序文 뒤에 붙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