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僅百餘字나 而感慨古今이 若與燕趙豪儁之士로 相爲叱咤嗚咽하며 其間一涕一笑하니 其味不窮이라 昌黎序文當屬第一首라
懷抱
하고 鬱鬱適玆土
하니 吾知其必有合也
라 董生勉乎哉
ㄴ저
夫以子之不遇時로 苟慕義彊仁者皆愛惜焉이어든 矧燕趙之士出乎其性者哉아
然吾嘗聞風俗與化移易이라하니 吾惡知其今不異於古所云耶아 聊以吾子之行卜之也호리라 董生勉乎哉ㄴ저
吾因子有所感矣
로니 爲我弔
之墓
하고 而觀於其市復有昔時
乎
ㄴ저
문장은 겨우 백여 자에 지나지 않으나, 古今에 대한 감탄과 憤慨가 마치 燕‧趙의 호걸스런 선비들과 더불어 서로 叱咤하고 오열하며 간간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듯하니, 그 의미가 無窮하다. 昌黎의 序文 중에 응당 으뜸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燕‧趙 지방에는 예로부터 感慨해 悲歌하는 호걸[士]이 많다고 일컬어졌다. 董生이 進士試에 應試하였으나, 연달아 有司(考官)에게 뜻을 얻지 못하여,
탁월한 재능[利器]을 가슴에 품고서 답답한 심정[鬱鬱]으로 그 지방(燕‧趙)으로 가니, 나는 그곳에 반드시 뜻이 맞는 자가 있을 것으로 아네. 董生이시여! 노력하시게나.
그대가 때를 만나지 못하였으므로 진실로 義를 사모하고 仁을 행하는 자들이 모두 그대를 애석해하는데, 하물며 義憤이 천성에 나오는 燕‧趙의 호걸이겠는가?
그러나 내 일찍이 듣건대, 풍속은 敎化에 따라 바뀐다고 하니, 그곳의 오늘날 〈풍속이〉 옛사람이 말하던 바와 달라지지 않았는지를 내 어찌 알겠는가? 우선[聊] 그대의 이번 걸음으로 〈풍속이 변했는지의 여부를〉 점쳐보겠네. 董生이시여! 노력하시게나.
나는 그대의 〈이번 걸음으로〉 인해 느낀 바가 있으니, 그대는 나를 대신해 望諸君(樂毅)의 墓所에 弔問하고, 그 저잣거리에 다시 옛날처럼 개잡는 자가 있는지를 살펴보시게나.
〈만약 있거든〉 나를 대신해 “밝으신 천자가 위에 계시니 나와서 벼슬할 만하다.”고 말해주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