通篇以孟子作主하니 是退之立自己門戶라 故其文有雄視一世氣라
其後離散分處諸侯之國하야 又各以所能授弟子하니 原遠而末益分이라
盖
하고 子方之後
는 流而爲莊周
하니라 故周之書
에 喜稱子方之爲人
하니라
荀卿之書
에 語聖人
엔 必曰孔子, 子弓
이라하니라 子弓之事業不傳
이요 惟太史公書弟子傳
에 有姓名字曰
이라
子弓受易於商瞿하니라 孟軻師子思하고 子思之學은 盖出曾子하니라
太原王塤이 示予所爲文에 好擧孟子之所道者라 與之言하니 信悅孟子하야 而屢贊其文辭하니라
夫沿河而下에 苟不止면 雖有遲疾이나 必至於海니라 如不得其道也면 雖疾不止라도 終莫幸而至焉이라
故學者必愼其所道니라 道於楊墨老莊佛之學하야 而欲之聖人之道면
猶航
하야 以望至於海也
라 故求觀聖人之道
ㄴ댄 必自孟子始
니라
今塤之所由는 旣幾於知道하니 如又得其船與楫하야 知沿而不止면 嗚呼라 其可量也哉아
唐荊川曰 此是立主意之文이니 而緊要가 全在好擧孟子之所道者一句라
全篇에 孟子를 主旨로 삼았으니, 이는 退之가 자기의 門戶를 세운 것이다. 그러므로 그 문장이 온 세상을 압도[雄視]하는 기상이 있다.
나는 항상 ‘孔子의 道(學術)는 크고도 넓어서 문하의 제자들이 두루 보고 다 알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모두 자기 적성에 가까운 것을 배워서 터득하였을 뿐이었는데,
뒤에 흩어져 諸侯의 나라에 나뉘어 살면서 또 각각 자기들의 능한 것으로 제자들을 가르쳤으니, 근원으로부터 멀어지고 末流가 더욱 갈라졌다.’고 생각하였다.
대체로 子夏의 학문은 田子方이 뒤를 이었고, 田子方의 뒤는 〈異端으로〉 흘러 莊周의 學術이 되었다. 그러므로 莊周의 책에 田子方의 사람됨을 말하기 좋아하였다.
荀卿의 책에는 성인을 말할 때마다 반드시 “孔子와 子弓”을 말하였는데, 子弓의 事業은 전해지는 바가 없고, 단지 太史公의 ≪史記≫ 〈仲尼弟子列傳〉에 姓名이 “馯臂子弓”이라는 말만이 있을 뿐이다.
子弓은 商瞿에게 ≪易≫을 배웠다.
孟軻는 子思를 師承하였고, 子思의 學은 曾子에게서 나왔다.
孔子께서 死亡하신 뒤에 제자들 중에 著書하지 않은 자가 없었으나, 오직 孟軻氏가 傳한 學說만이 공자의 중요한 사상에 부합한다. 그러므로 나는 젊어서부터 ≪孟子≫를 보기(읽기) 좋아하였다.
太原 사람 王塤이 자기의 문장을 나에게 보여주었는데 孟子가 말한 것을 거론하기 좋아하였다. 그와 이야기를 해보니, 그는 참으로 孟子를 좋아하여 누차 맹자의 문장을 찬미하였다.
대체로 물길을 따라 내려갈 때에 쉬지 않고 내려가면 비록 빠르고 느림은 있겠지만 반드시 바다에 이른다. 그러나 정확한 물길을 찾지 못하면 아무리 배를 빨리 몰고 멈추지 않아도 끝내 요행으로 바다에 이를 수 없다.
그러므로 배우는 자는 반드시 배움의 길을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
楊朱‧墨翟‧老子‧莊子‧佛家의 學術로 길을 잡고서 성인(孔子)의 道(學術)에 이르기를 바란다면,
이는 마치 항로가 단절된 支流나 외따로 떨어져 있는 저수지를 運航하면서 바다에 이르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聖人의 道를 보고자 한다면 반드시 孟子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금 王塤이 가는 길은 이미 거의 정확한 길을 안 것이니, 가령 또 배와 노를 얻어 물길을 알아 멈추지 않고 간다면, 아! 그 앞날을 어찌 한량할 수 있겠는가?
唐荊川이 말하였다. “이것은 主意를 세운 글이니, 緊要(重要)한 뜻이 오롯이 ‘好擧孟子之所道者’라고 한 한 句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