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鬯己嫉時之論하고 而入齊生纔數語나 只看他操縱如意處니라
古之所謂公無私者는 其取舍進退無擇於親疎遠邇하고 惟其宜可焉하며
其下之視上也도 亦惟視其擧黜之當否요 不以親疎遠邇疑乎其上之人하니라
故上之人
하야 其無憂於下也
하며 下之人克己愼行
하야 確乎其無惑於上也
니라
是故爲君不勞하고 而爲臣甚易하야 見一善焉이면 可得詳而擧也하고 見一不善焉이면 可得明而去也니라
及道之衰
하얀 上下交疑
하야 於是乎
를 載之傳中而稱美之
하야 而謂之忠
이라
見一善焉이라도 若親與邇면 不敢擧也하고 見一不善焉이라도 若疎與遠이면 不敢去也하니라
衆之所同好焉이라도 矯而出之라야 乃公也라하고 衆之所同惡焉이라도 激而擧之라야 乃忠也라하나라
於是乎有違心之行하고 有拂志之言하며 有內媿之名이어늘 若然者를 俗所謂良有司也라
嗚呼라 今之君天下者不亦勞乎며 爲有司者不亦難乎며 爲人嚮道者不亦勤乎아
是故端居而念焉하니 非君人者之過也라 則曰有司焉가 則非有司之過也요 則曰今擧天下人焉가 則非今擧天下人之過也라
盖其漸有因하고 其本有根하니 生於私其親하야 成於私其身이라 以己之不直으로 而謂人皆然이라
其植之也固久
하야 其除之也實難
하니 非
면 不可得而化也
요
非知命不惑이면 不可得而改也라 已矣乎라 其終能復古乎아
若高陽齊生者는 其起予者乎아 齊生之兄은 爲時名相하야 出藩于南이요 朝之碩臣은 皆其舊交라
齊生擧進士
하니 有司用是
齊生
하니라 齊生不以云
하고 乃曰 我之未至也
니 有司其枉我哉
아
我將
而俟其時耳
라하고 抱負其業
하고 東歸於家
하니라
吾觀於人컨대 有不得志면 則非其上者衆矣요 亦莫計其身之短長也라
若齊生者
는 旣至矣
로되 而曰 我未
也
라하고 不以
於有司
하니 其不亦鮮乎哉
아
吾用是知齊生後日誠良有司也하야 能復古者也요 公無私者也요 知命不惑者也라
05. 科擧에 낙제하고 돌아가는 齊皥를 전송한 序
시대를 嫉視하는 자기의 의론만을 크게 宣鬯(늘어놓음)하고, 齊生에 대한 말은 겨우 몇 마디를 넣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가 마음대로 문장을 操縱한 부분만을 볼 뿐이다.
옛날에 이른바 공정하여 사사로움이 없던 자(관원)는 取舍(취하고 버림)와 進退(승진시키고 퇴출시킴)에 親疎와 遠近을 가리지 않고 오직 합당한 사람만을 선발하였다.
아랫사람이 上官을 봄에도 오직 등용하고 물리침이 합당한지의 여부만을 보았고, 친소와 원근에 〈따라 취사 진퇴한다고〉 그 윗사람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윗사람은 자신이 뜻한 대로 실행하여 합당한 사람을 선택하고, 아랫사람에 대한 근심이 없어 마음이 편안하였으며, 아랫사람은 몸을 단속[克己]하고 행실을 삼가서 확실히 윗사람에 대한 의심이 없었다.
그러므로 임금 노릇 하기가 수고롭지 않았고, 신하 노릇 하기가 매우 쉬워서, 善한 사람을 보면 자세히 살펴 천거할 수 있었고, 不善한 사람을 보면 밝게 살펴서 제거할 수 있었다.
道가 쇠함에 미쳐서는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의심하여, 이에 원수를 천거하고 아들을 천거한 일을 傳記에 記載하여 美德으로 칭찬하고서 이를 ‘충성’이라 하였다.
善人(人材)을 보아도 〈자기와〉 친근한 사람이면 감히 천거하지 못하고, 不善한 사람을 보아도 〈자기와〉 소원한 사람이면 감히 제거하지 못하였다.
대중이 함께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常情을 어기고서[矯] 逐出하여야 공정하다 하고, 대중이 함께 미워하는 사람이라도 격려해 천거하여야 충성스럽다고 한다.
그러므로 〈高官 중에는〉 본심에 위배되는 행동,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 말, 마음에 부끄러운 명성이 있는데, 이런 자들을 세속에서 ‘善良한 官吏’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런 고관에 대해서는〉 절박한 참소[膚受之訴]가 임금에게 올라가지 않고, 교묘한 무함이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지 않으니,
아! 오늘날 천하에 임금 노릇 하는 자가 수고롭지 않겠으며, 官吏 노릇 하는 자들이 어렵지 않겠으며, 〈科擧에 應試하는〉 자들을 위해 길을 인도하는 嚮導가 된 자들이 고달프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내 평소에 생각해보니, 이는 임금의 잘못이 아니다. 그렇다면 관리들의 잘못인가? 관리들의 잘못도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擧用된 천하 사람들의 잘못인가? 지금 거용된 천하 사람들의 잘못도 아니다.
〈이런 氣風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데에는 원인이 있고 뿌리가 있으니, 이는 자기와 친근한 사람을 偏愛[私]하는 데서 생겨나서 자신을 이롭게 하려는 데서 이루어진 것이다. 자기가 바르지 못하기 때문에 남들도 모두 그런 것으로 여긴다.
그 植根(박힌 뿌리)이 단단하고 오래되어 제거하기가 실로 어려우니, 백 년이나 30년[必世]이 아니고는 敎化할 수 없고,
天命을 아는 이와 事理에 밝아 의혹하지 않는 이가 아니고는 고칠 수 없다. 〈그러니〉 그만두어야겠다. 어찌 끝내 옛 제도를 회복할 수 있겠는가?
高陽 사람 齊生으로 말하면 어찌 나를 일깨운 자가 아니겠는가? 齊生의 兄은 당시에 유명한 宰相으로 外職으로 나아가 南方을 다스리고 있고, 조정의 대신들은 모두 그의 오랜 벗들이다.
齊生이 進士試에 응시하니, 考官은 이런 이유(親近하다는 이유)로 齊生을 연거푸 낙방시켰다. 그런데도 齊生은 이를 탓하지 않고 도리어 “나의 수준이 아직 경지에 이르지 못해서이지 考官이 어찌 나를 일부러 떨어뜨렸겠는가?
나는 장차 나의 器具를 예리하게 갈아 그 때를 기다릴 뿐이다.”라고 하고서, 그 德業을 가슴에 품고 동쪽의 집으로 돌아갔다.
내가 사람들을 살펴보건대, 뜻을 얻지 못하면 그 윗사람을 비방하는 자가 많고, 또 자신의 長短은 따지지도 않는다.
그런데 齊生으로 말하면 이미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는데도 도리어 “나는 아직 그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고 하고서 考官을 원망[閔]하지 않았으니, 어찌 아름답지[鮮] 않은가?
나는 이로 인해 齊生은 후일에 참으로 훌륭한 관리가 되어, 옛 제도를 회복할 사람, 공정하여 사사로움이 없는 사람, 天命을 알아 미혹하지 않는 사람이 될 것으로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