貞元十四年正月戊子
에 命作東西水門
하니 越三月辛巳朔
에 水門成
하니라
三日癸未
에 大合樂
하고 設
하야 會監軍, 軍司馬, 賓佐僚屬, 將校熊羆之士
하고 四方之賓客以落之
하니
士女
하야 闐郭溢郭
하니라 旣卒事
에 其從事昌黎韓愈請紀成績
하니라 其詞
에 曰
維汴州河水自中注
하니라 厥初距河爲城
에 其不合者
는 하야 宵浮晝湛
하야 舟不潛通
하니라
然其
하야 風氣宣洩
하니 邑居弗寧
하야 訛言屢騰
하니라 歷載已來
로 孰究孰思
아
皇帝御天下十有八載
에 此邦之人
이 하야 嚚童噭嘑
하야 劫衆阻兵
하니 하야 若墜若覆
하니라
時維
하야 爰自洛京
으로 單車來臨
하야 遂拯其危
하고 遂去其
코서 弗肅弗厲
하고 하니라
監軍是咨하고 司馬是謀하야 乃作水門하야 爲邦之郛하야 以固風氣하고 以閈寇偸하니라
黃流渾渾하고 飛閣渠渠하니라 因而飾之는 匪爲觀遊라 天子之武를 維隴西公是布요 天子之文을 維隴西公是宣하니라
河之沄沄이 源于崑崙하니 天子萬祀요 公多受祉리라 乃伐山石하야 刻之日月하야 尙俾來者知作之所始하노라
貞元 14년(798) 정월 戊子日에 隴西公께서 東西의 水門을 만들라고 명하시니 3월 초하루 辛未日에 水門이 완성되었다.
3일 癸未日에 성대하게 여러 악기를 合奏하며 水上에서 놀이를 펼치고서, 監軍‧行軍司馬와 賓佐僚屬과 將校 등 용감한 軍士들을 모아놓고 사방의 賓客들을 공손히 인도해 落成式을 거행하니,
士女들이 모여들어 城郭을 가득 메웠다. 행사를 마친 뒤에 從事(僚屬) 昌黎 韓愈가 그 成績을 기록하기를 청하였다. 그 詞는 다음과 같다.
汴州는 河水가 城 복판을 뚫고 흘러간다. 당초에 河水를 가로질러 성을 쌓을 적에 〈강물의 흐름으로 땅이 깊게 파여〉 성을 연결해 쌓을 수 없는 곳에는 물속에 굵은 쇠사슬을 가로로 설치하여 밤에는 수면 위로 나오게 하고 낮에는 수면 밑으로 가라앉게 하여 船舶이 몰래 통행할 수 없게 하였다.
그러나 두 물이 만나는 이곳에 水門이 없어 風氣가 새어나가니 城邑에 거주하는 백성들이 불안해하여 헛소문이 자주 일어났다. 그러나 여러 해를 지내오는 동안 누가 이 일을 연구하고 누가 생각이나 하였던가?
皇帝께서 天下를 다스리신 지 18년이 되는 금년에 이 고장 사람들이 疾威(暴虐)를 만나 嚚童(愚昧한 자)이 큰 소리로 고함을 치며 군대를 믿고 민중을 겁박하니, 백성들이 마치 깊은 물에 떨어지고 땅에 엎어질 것처럼 두려워 벌벌 떨었다.
이때 隴西公께서 皇命을 받고 이곳 節度使가 되어, 洛陽에서 單車로 汴州로 赴任하시어 마침내 백성들을 危難에서 구제하고 弊政을 제거하셨는데, 너무 엄하게 하지 않고 온화하게 다스려 太平을 이루셨다.
神靈이 감응하여 상서로운 복을 내려 五穀이 잘 익었고, 人口가 불어나고 생활이 풍족해져서 人力이 넉넉해졌다.
이에 監軍에게 자문하고 行軍司馬와 상의하여, 水門을 만들어 이 州의 外城으로 삼아 風氣를 굳게 지키고 寇賊을 막았다.
黃河는 성대히 흐르고 날아갈 듯한 樓閣은 높이 서 있다. 이곳을 새롭게 장식하신 것은 觀覽하기 위함이 아니라 天子의 威武를 隴西公께서 펼치시고 天子의 文治를 隴西公께서 宣揚하신 것이다.
멀리서 흘러온 黃河는 崑崙山에서 發源하였으니 天子께선 萬歲의 壽命 누리실 것이고, 隴西公께서도 많은 복 받으시리라. 이에 산에서 돌을 떠다가 〈水門을 세운〉 年月日을 새겨 後人들로 하여금 〈이 水門을〉 세우게 된 始末을 알게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