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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韓愈(2)

당송팔대가문초 한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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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한유(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此篇總在兩不遇上相感慨
太學生何蕃 入太學者卄餘年矣 歲擧進士하야 學成行尊일새 自太學諸生推頌不敢與蕃齒하니라
相與言於助敎, 博士하니 助敎, 博士以狀申於司業, 祭酒하고
撰次蕃之群行焯焯者數十餘事하야 以之升於禮部하야 而以聞於天子하니라
京師 公卿大夫知蕃者이로되 莫爲禮部하고
爲禮部者 率蕃所不合者 以是無成功하니라
淮南人이니 父母具全하니라 初入太學 歲率一歸하니 父母止之하고
其後間一二歲乃一歸하니 又止之ㄹ새 不歸者五歲矣 蕃純孝人也
하야 一日 諸生歸養於和州하니 諸生不能止하야하니라
於是太學六館之士百餘人 又以蕃之義行言於司業陽先生城하야 請諭留蕃이나
於是太學闕祭酒하고 하야 不果留하니라
言曰 蕃 仁勇人也라하니 或者曰 蕃居太學 諸生不爲非義하고 葬死者之無歸하고 哀其孤而하며
惠之大小 必以力復하니 斯其所謂仁歟ㄴ저 蕃之力不任其體하고 其貌不任其心하니 吾不知其勇也로라하니라
歐陽詹生曰 太學諸生擧將從之하야 來請起蕃하니
蕃正色叱之하야 六館之士不從亂하니 玆非其勇歟
惜乎 蕃之居下하야 其可以施於人者不流也로다 譬之水컨대 其爲澤이요 不爲川乎ㄴ저
川者高하고 澤者卑하니 高者流하고 卑者止 是故蕃之仁義 充諸心하야 行諸太學하니 積者多 施者不遐也
天將雨하여 水氣上이면 無擇於川澤澗谿之高下 然則澤之道 其亦有施乎ㄴ저 抑有待於彼者歟
故凡貧賤之士必有待然後 能有所立하니 獨何蕃歟 吾是以言之하야 無亦使其無傳焉하노라


10. 太學生 何蕃
의 뜻은 모두 두 차례나 불우한 것에 대해 서로 感慨(느낌이 있어 탄식함)한 데에 있다.
太學生 何蕃太學에 입학한 지 20여 년이 되었다. 해마다 進士試에 응시하여, 학문이 成就되고 德行이 남의 推崇을 받으므로 太學諸生들은 그를 추존하고 칭송하여 감히 그와 나란히 서지도 못하였다.
제생들이 함께 助敎博士에게 〈何蕃의 학문과 덕행을〉 고하니, 助敎博士司業祭酒에게 書狀으로 보고하고,
司業祭酒何蕃의 뛰어난 행실 수십여 가지를 글로 엮어 禮部에 올려 天子께 보고되게 하였다.
京師諸生 중에 何蕃을 천거한다는 제목[]으로 문장과 논설을 지은 자를 이루 다 기록할 수 없다. 公卿大夫 중에 何蕃을 아는 이가 매우 많았으나 禮部의 관원이 없었고,
예부의 관원은 대체로[] 何蕃과 뜻이 맞지 않는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성공하지 못하였다.
何蕃淮南 사람으로 父母가 모두 살아 계신다. 처음 太學에 입학했을 때에 해마다 한 차례씩 歸覲(집으로 돌아가서 부모님을 뵘)하니 父母께서 말리셨고,
그 뒤로 1년이나 2년에 한 차례씩 귀근하니 또 말리셨으므로 귀근하지 못한 지가 5년이다.
何蕃은 독실한 孝子이다.
늙으신 어버이를 걱정하는 마음을 억제할 수 없어서, 하루는 諸生에게 이별을 고하며[] “和州로 돌아가 어버이를 봉양하겠다.”고 하니, 동학들은 말릴 수가 없어서 何蕃을 빈방 안에 가두고,
이에 太學에 소속된 六館의 학생[] 백여 이 또 何蕃의 의로운 행실을 司業 陽先生 에게 고하면서, 알아듣도록 타일러 何蕃挽留해주기를 청하였으나,
이때 太學祭酒闕席이었고, 때마침 陽先生道州刺史로 나갔기 때문에 만류하지 못하였다.
歐陽詹生이 “何蕃은 어질고도 용감한 사람이다.”라고 하니, 어떤 자가 말하였다.
何蕃太學에 있을 때에 諸生들이 의롭지 못한 짓을 하지 못했으며, 죽어서 돌아갈 곳이 없는 자를 장사 지내주고 그 孤兒를 가엾게 여겨 부양하였으며,
남에게 받은 크고 작은 은혜는 반드시 힘을 다해 보답하였으니, 이것은 그대가 말한 ‘어짊’이다. 〈그러나〉 何蕃의 힘은 〈쇠약하여〉 그 體軀도 감당할 수 없고, 그 용모는 〈수척하여〉 그 원대한 심사를 감당할 수 없으니, 나는 그가 용감한지를 모르겠다.”
그러나 歐陽詹生이 말하였다.
朱泚叛亂을 일으켰을 때에 太學諸生이 모두 朱泚를 따르고자 하여, 何蕃에게 가서 함께 일어나기를 청하자,
何蕃이 정색하고서, 六館의 학생들은 反亂者을 따라서는 안 된다고 꾸짖었으니, 이것이 그의 용기가 아닌가?”
애석하게도 何蕃은 지위가 낮아서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는 것을 베풀지 못하였다. 물에 비유하면 그는 못에 고여 있는 물이고 내에 흐르는 물이 아니다.
내는 높고 못은 낮으니, 높은 것은 흐르고 낮은 것은 정지한다. 그러므로 何蕃仁義는 마음에 충만하여 太學에 시행되었을 뿐이니, 쌓인 것은 많으나 시행된 것은 廣遠하지 못하였다.
하늘이 비를 내리려고 水蒸氣가 상승할 때면 높고 낮은 (도랑)‧谿(시내)의 물을 가리지 않고 〈모두 상승하여 구름을 만드니,〉 그렇다면 못의 물도 베풂이 있는 것이다. 혹시 그 때를 기다리는 것인가?
그러므로 빈천한 선비는 반드시 기다림이 있은 뒤에야 수립한 바가 있었으니, 어찌 何蕃만이 그러하겠는가? 나는 그러므로 이렇게 말하여 그의 事績이 전해지지 않음이 없게 하노라.


역주
역주1 太學生何蕃傳 : 何蕃이 學問과 德行을 겸비하였는데도 20여 년 동안 太學生으로 있으면서 해마다 進士試에 응시하였으나 합격하지 못하니 이에 感慨하여 지은 것이다.
역주2 司業祭酒 : 司業은 國子監의 副長官이고, 祭酒는 國子監의 長官이다.
역주3 諸生以薦蕃名文說者 : 名은 標題이니, 何蕃을 추천한다는 標題로 문장이나 논설을 지음이다.
역주4 不可選紀 : 選은 ‘算’과 통용이니, 곧 일일이 계산해 기록할 수 없이 많다는 말이다.
역주5 比肩立 : 어깨를 맞대고 선다는 말로 사람이 많음을 형용한다.
역주6 閔親之老不自克 : 閔은 걱정함이고, 克은 억제함이니, 곧 늙으신 어버이를 걱정하는 마음을 억제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역주7 : 揖하며 이별을 고함이다.
역주8 閉蕃空舍中 : 河蕃을 빈 房舍 안에 가두었다는 말이다.
역주9 會陽先生出道州 : 會는 ‘때마침’이다. 陽先生은 陽城을 이르는데, 字는 亢宗이다. 학문을 좋아하였으나, 가난해서 책을 사 볼 수 없자, 集賢院의 寫書吏가 되어 院의 책을 훔쳐 방에서 나오지 않고 밤낮으로 읽었는데, 6년이 지나자 모르는 것이 없게 되었다. 과거에 응시해 급제한 뒤에 出仕하지 않고 中條山에 은거하니, 唐 德宗이 불러 諫議大夫로 삼았다. 뒤에 상소해 陸贄를 변호하며 裵延齡의 간사함을 논하였다가 國子司業으로 좌천되었고, 또 直言하여 귀양 간 사람을 돌보아주었다가 道州刺史로 좌천되었다. ≪唐書 陽城傳≫
역주10 歐陽詹生 : 生은 선생을 뜻한다. 歐陽詹은 字가 行周이다. 韓愈와 同年進士이다. 이때 四門助敎였기 때문에 그를 존칭해 ‘生’이라 한 것이다.
역주11 字焉 : 孤兒를 扶養함이다.
역주12 朱泚之亂 : 唐 德宗 建中 4년(783)에 涇原軍이 長安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朱泚가 그 기회를 이용해 唐을 배반하고 스스로 皇帝를 칭한 변란을 이른다.

당송팔대가문초 한유(2) 책은 2020.12.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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