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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韓愈(2)

당송팔대가문초 한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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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한유(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韓公未必知顔子之學이로되 特以其省試之文也일새 存之니라
論曰 登孔氏之門者衆矣 孰非由聖人之道하야 爲君子之儒者乎
其於過行過言 亦云鮮矣로되 而夫子擧不貳過惟顔氏之子하시니 其何故哉 請試論之하노라
夫聖人하고 根中庸之至德하야 苟發諸中形諸外者思慮라도 莫匪規矩
不善之心 無自入焉이요 可擇之行 無自加焉이라 故惟聖人無過니라
所謂過者 非謂發於行彰於言하야 人皆謂之過而後爲過也 生于其心則爲過矣 顔子之過此類也니라
不貳者 盖能止之於始萌하고 絶之於未形하야 不貳之於言行也
中庸曰 라하니 自誠明者 不勉而中하고
不思而得하야 從容中道하는 聖人也 無過者也 自明誠者 擇善而固執之者也
而孟子亦曰 라하니 皆謂不能無生於其心이나 而亦不暴之於外 考之於聖人之道 差爲過耳
顔子自惟其若是也 於是居陋巷以致其誠하고 飮一瓢以求其志하야 不以富貴妨其道하고 不以易其心이라
確乎不拔하고 浩然自守하야 任重道遠하야 竟莫之致하니라
是以夫子歎其不幸短命이라 今也則亡라하시니 謂其不能與己竝立於至聖之域하야 觀敎化之大行也
不然이면 夫行發於身加於人하고 言發乎邇見乎遠하니 苟不愼也 敗辱隨之
而後思欲不貳過 其於聖人之道 不亦遠乎 而夫子尙肯謂之其殆庶幾라하고
孟子尙復謂之具體而微者哉아라하니 則顔子之不貳過 盡在是矣 謹論하노라


06. 省試答案으로 제출한 ‘顔子가 허물을 거듭 범하지 않은 것’에 대한 論文
韓公이 반드시 顔子學問을 알았다고 할 수 없으나, 다만 그가 省試에 제출한 문장이기 때문에 存錄하였다.
한다. 孔子에 오른 자가 많았으니, 3천의 門徒四科에 든 10인 중에 그 누군들 聖人를 행하여 君子儒가 된 이들이 아니었겠는가?
그들 중에 잘못된 행실과 잘못된 말을 한 이가 드물었다고 할 수 있는데, 夫子께서 같은 잘못을 거듭 범하지 않은 자로 오직 顔氏의 아들만을 擧論하셨으니, 이는 무엇 때문인가? 이를 한번 하고자 한다.
聖人은 진실함으로 말미암아 밝아진 바른 성품[誠明之正性]을 소유하고, 偏倚過不及이 없는[中庸] 지극한 이 마음에 뿌리를 박아서, 안에서 일어나서 밖에 드러나는 것이 思慮를 거치지 않고도 법도에 맞지 않음이 없다면
不善한 마음이 들어갈 곳이 없고 가려내야 할 행실이 증가할 틈이 없다. 그러므로 오직 성인만이 허물이 없을 수 있다.
이른바 허물이란 행동과 말에 드러나서 사람들이 모두 허물한 뒤에 허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에 〈불선한 생각이〉 생기면 그것이 바로 허물이니, 顔子의 허물은 이런 종류이다.
같은 허물을 거듭 범하지 않는 것은, 처음 싹틀 때에 막고 드러나기 전에 잘라버려 말과 행동에 허물을 거듭 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中庸〉에 “진실함으로 말미암아 밝아지는 것을 이라 하고, 밝음으로 말미암아 진실해지는 것을 라 한다.”라고 하였으니, 진실함으로 말미암아 밝아진 자는 힘쓰지 않아도 에 맞고
생각하지 않아도 를 터득하여 從容(여유가 있는 모양)히 에 맞는 聖人이니 허물이 없는 자이다. 밝음으로 말미암아 진실해지는 자는 를 선택해 굳게 지키는 자이니,
힘쓰지 않으면 맞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면 터득하지 못하니, 허물을 거듭 범하지 않는 자이다.
그러므로 夫子의 말씀에 “顔回의 사람됨은 中庸을 선택하여 한 을 얻으면 받들어 지켜 가슴에 새겨 잊지 않는다.”라고 하셨고, 또 “顔氏의 아들은 거의 에 가까웠다.”라고 하셨으니, 이는 아직 지극하지 못했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孟子 또한 “顔子聖人를 갖추었으나 〈성인에 비해〉 微小하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모두 그 마음에 〈불선한 생각이〉 생겨남이 없지 않았으나, 또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니, 聖人에 비하면 조금 허물이 됨을 말한 것이다.
顔子는 스스로 자기가 이와 같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누추한 골목에 살면서 〈자신의 수양에〉 정성을 다하고, 한 표주박의 물을 마시면서도(가난하게 살면서도) 자기의 뜻을 이루기를 구하여, 부귀로 인해 그 를 해치지 않고 隱約(窮困)으로 인해 그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그 뜻이〉 확고하여 흔들리지 않았고 浩然한 기운을 스스로 지키면서, 〈孔子가〉 높고 견고하여 숭상해야 할 만함을 알고서 〈孔子를〉 뚫고 우러르는 勞苦를 잊었으나, 짐이 무겁고 길이 멀어서 끝내 도달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夫子께서 그는 “불행히도 목숨이 짧아 죽었다. 지금은 없다.”고 탄식하셨으니, 이는 그가 당신과 함께 至聖의 경지에 나란히 서서 교화가 크게 행해지는 것을 보지 못한 것을 한탄하신 것이다.
〈안자가〉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행동이란 내 몸에서 나와 남에게 미치는 것이고, 말이란 가까이에서 출발하여 멀리에 나타나는 것이니, 삼가지 않으면 실패와 모욕이 뒤따른다.
그런 뒤에 허물을 거듭 범하지 않기를 생각한다면 성인의 와의 거리가 멀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부자께서 오히려 그를 “거의 에 가까웠다.”라고 하시고,
孟子도 오히려 다시 “聖人를 갖추었으나 〈성인에 비해〉 微小하다.”고 하였으니, 顔子가 허물을 거듭 범하지 않은 것은 모두 여기에 있다. 삼가 하다.


역주
역주1 省試顔子不貳過論 : 이 論文은 한유가 博學宏辭科에 應試했던 貞元 9년(793)에 지은 것이다. 省試는 唐나라 때 尙書省에서 거행하던 考試인데, 會試라고도 한다.
顔子는 바로 공자의 제자 顔回를 가리킨다. 魯君 哀公이 “제자 중에 누가 배움을 좋아하느냐.”고 묻자, 孔子께서 “顔回라는 자가 배움을 좋아하여 분노를 남에게 옮기지 않고 같은 허물을 거듭 범하지 않았는데, 불행하게도 목숨이 짧아 죽었습니다. 지금은 없습니다.[有顔回者好學 不遷怒 不貳過 不幸短命死矣 今也則亡 未聞好學者也]”라고 대답하신 말씀이 ≪論語≫ 〈雍也〉에 보인다. ‘顔子不貳過’라는 주제로 논문을 지은 것이다.
역주2 三千之徒 : ≪史記≫ 〈孔子世家〉에 “공자는 詩‧書‧禮‧樂으로 가르치셨는데, 제자가 대개 3천 인이었다.[孔子以詩書禮樂敎 弟子蓋三千焉]”는 말이 보인다.
역주3 四科之目 : 德行‧言語‧政事‧文學 등 네 科目에 든 열 사람을 이른다. ≪論語≫ 〈先進〉에 “德行에는 顔淵‧閔子騫‧冉伯牛‧仲弓이고, 言語에는 宰我‧子貢이고, 政事에는 冉有‧季路이고, 文學에는 子遊‧子夏이다.”라는 말이 보인다.
역주4 誠明之正性 : ≪禮記≫ 〈中庸〉에 “自誠明謂之性(진실함으로 말미암아 밝아진 것을 性이라 한다.)”이란 말이 보인다.
역주5 (惟)[由] : 저본에는 ‘惟’로 되어 있으나, ≪韓愈全集校注≫에 의거하여 ‘由’로 바로잡았다.
역주6 (故) : 저본에는 ‘故’자가 있으나, ≪文苑英華≫에는 ‘故’자가 없으므로 이에 의거하여 衍字로 처리하였다.
역주7 自誠明謂之性 自明誠謂之敎 : ≪禮記≫ 〈中庸〉에 보이는데, 鄭玄의 注에 “自는 말미암음이니, 지극히 진실함으로 말미암아 밝은 덕이 있는 것은 바로 天性을 오롯이 보존한 聖人이고, 밝은 덕으로 말미암아 지극히 진실함이 있는 것은 바로 배워서 안 賢人이다.[自 由也 由至誠而有明德 是聖人之性者也 由明德而有至誠 是賢人學以知之也]”라고 하였고, 孔穎達의 疏에 “‘自誠明謂之性’은 이것은 天性이 본래 진실함을 말한 것이다. 自는 말미암음이니, 天性이 지극히 진실함으로 말미암아 몸에 밝은 덕이 있는 것이니, 바로 자연의 천성이 이와 같음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性이라 한다.’고 말한 것이다. ‘自明誠謂之敎’는 이것은 배워서 지극히 진실해짐을 말한 것이다. 몸이 총명함으로 말미암아 노력해 학습하여 지극히 진실함에 이른 것이니, 천성에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敎習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敎라 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自誠明謂之性’은 성인의 덕이고, ‘自明誠謂之敎’는 현인의 덕이다.[自誠明謂之性者 此說天性自誠者 自 由也 言由天性至誠而身有明德 此乃自然天性如此 故謂之性 自明誠謂之敎者 此說學而至誠 由身聰明勉力學習而致至誠 非由天性敎習使然 故云謂之敎 然則 自誠明謂之性 聖人之德也 自明誠謂之敎 賢人之德也]”라고 하였다.
역주8 自明誠者……不貳過者 : ≪禮記≫ 〈中庸〉에 “진실함은 하늘의 道이고, 진실하려는 것은 사람의 도이다. 진실한 자는 힘쓰지 않고도 〈도에〉 맞고 생각하지 않고도 터득하여, 從容히 도에 맞으니 성인이고, 진실하려는 자는 善을 선택해서 굳게 지키는 자이다.[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 誠者 不勉而中 不思而得 從容中道 聖人也 誠之者 擇善而固執之者也]”라고 하였는데, ≪唐宋八大家文鈔 校注集評≫에 “이것은, 성인은 천성에서 얻어서 절로 도에 부합하기 때문에 ‘無過’라 하고, 현인은 힘써 배워야 하고, 배우지 않으면 터득하지 못하기 때문에 ‘不貳過’라고 한 것이다.[此以爲聖人得自天性 自合乎道 故無過 賢人勉力而學 不學則不得 故不貳過]”라고 하였다.
역주9 回之爲人也……則拳拳服膺而不失之矣 : 이 또한 ≪禮記≫ 〈中庸〉의 글이다. 拳拳은 받들어 지킴이다. 服膺은 가슴에 새김이다.
역주10 顔氏之子 其殆庶幾乎 : ≪周易≫ 〈繫辭傳 下〉에 보인다.
역주11 顔子具聖人之體而微者 : ≪孟子≫ 〈公孫丑 上〉에 “冉牛閔子顔淵則具體而微”란 말이 보이는데, 趙岐의 注에 “具體는 사지를 모두 갖춘 것이다. 微는 작음이니, 聖人의 사체에 비해 작을 뿐이다. 體로써 德을 비유한 것이다.[具體者 四肢皆具 微 小也 比聖人之體微小耳 體以喩德也]”라고 하였다.
역주12 隱約 : 窮困이다.
역주13 知高堅之可尙 忘鑽仰之爲勞 : ≪論語≫ 〈子罕〉에 顔淵이 탄식하며 “夫子의 道는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아지며, 뚫을수록 더욱 단단해진다.[仰之彌高 鑽之彌堅]”라고 한 말이 보인다.

당송팔대가문초 한유(2) 책은 2020.12.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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