唐受天命爲天子하시니 凡四方萬國이 不問海內外하고 無小大히 咸臣順於朝하야
하야 하야 告之朕意
하라 又選學有
하고 通知時事者一人
하야 하라
由是
侑自太常博士
로 遷尙書虞部員外郞兼侍御史
하야 로 承命以行
하니 朝之大夫莫不
하니라
酒半
에 韓愈執盞言曰 殷大夫
여 今人適數百里
에 出門
하야 有離別可憐之色
하고
今子使萬里外國호되 獨無幾微出於言面하니 豈不眞知輕重大丈夫哉아
丞相以子應詔하니 眞誠知人이요 士不通經이면 果不足用이니라 於是相屬爲詩하야 以道其行云이라
班掾의 문장을 배워서, 嚴格함이 마치 程不識과 李光弼이 군대를 다스리는 것과 같다.
唐나라가 天命을 받아 天子가 되시니, 海內와 海外, 대국과 소국을 막론하고 사방의 萬國이 모두 唐나라에 신하로 순종하여,
四時의
節日마다 각종
土産物을
進貢하였는데, 대국은 특별히
使者를 보내어 바치고, 소국은 대국의 사신에 붙어 와서
進貢하였다.
閻立本(唐), 〈職貢圖〉
元和睿聖文武皇帝(憲宗)께서 즉위하신 뒤에 方內(천하)를 모두 다스리신 것이 법도에 맞았다.
元和 12년(817)에 황제께서 詔書를 내리시어, “사방의 많은 나라 중에 오직 回鶻國만이 우리 唐나라와 가장 親密하고 職責을 奉行함에 더욱 삼가니,
丞相은 宗室 중에서 4品官 한 사람을 선발해 〈正使로 삼아〉 符節을 가지고 가서 그 君長에게 〈賞를〉 내려 朕의 뜻을 알리게 하라. 또 學問에 經術(經法)이 있고 時事에 통달한 한 사람을 선발해 正使에게 주어 副使로 삼게 하라.”고 하셨다.
이로 인해 殷侯 侑가 太常博士에서 尙書虞部員外郞 兼侍御史로 승진하여 朱衣를 입고 象笏을 들고서 皇命을 받들고 떠나니, 조정의 大夫 중에 나가서 餞別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酒宴이 반쯤 진행되었을 때에, 右庶子 韓愈가 술잔을 들고 말하였다.
“殷大夫시여! 지금 사람들은 수백 리 밖으로 길을 떠날 때에 문을 나서면 失意에 빠져 이별을 슬퍼하는 기색이 있고,
관리가 숙직하기 위해 이불을 가지고 三省에 들어갈 때에도 婢女를 돌아보며 간절히 당부하는 말을 그치지 않는데,
지금 그대는 만 리 밖의 外國에 사신으로 가면서도 홀로 말이나 얼굴에 〈이별을 서운해하는〉 기미를 드러냄이 없으니, 어찌 참으로 경중을 아는 대장부가 아니겠소.
승상께서도 그대를 천거하여 皇命을 따랐으니, 참으로 사람을 알아보신 것이지요. 선비가 經術에 통달하지 못하다면 과연 임용하기에 부족하지요.”
이에 전송 나온 사람들이 서로 이어 詩를 지어서 殷員外의 出行을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