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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韓愈(2)

당송팔대가문초 한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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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한유(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唐大家韓文公文抄 卷11 碑
歸安 鹿門 茅坤 批評
孫男 闇叔 著 重訂
序孔子祀典之尊崇處入骨이라 孔子廟碑 漢以來當屬昌黎第一이라
自天子至郡邑守長 通得祀而徧天下者 惟社稷與孔子爲然이라
而社祭土하고 稷祭穀호되 이니 非其이니
하야 하야 以門人爲配하고
自天子而下 北面跪祭호되 進退誠敬하야 禮如親弟子者리오 句龍棄以功이요 孔子以德이니 固自有次第哉ㄴ저
自古多有以功德得其位者 不得常祀 句龍棄孔子 皆不得位而得常祀
然其祀事 皆不如孔子之盛이라 所謂 其賢過於堯舜遠矣 此其ㄴ저
郡邑皆有孔子廟 或不能修事하고 雖設 或役於有司하야 名存實亡하야 失其所業이로되
獨處州刺史至官 能以爲先하야 旣新作孔子廟하고 又令工改爲顔子至子夏十人像하고
其餘六十子 及後大儒公羊高, 左丘明, 孟軻, 荀況, 伏生, 毛公, 韓生, 董生, 高堂生, 揚雄, 鄭玄等數十人 皆圖之壁하니라
選博士弟子호되 必皆其人하고 又爲置講堂하야 敎之行禮하야 肄習其中하니라 置本錢, 廩米하야 令可繼處以守하니라
廟成 躬率吏及博士弟子入學하야하니 耆老歎嗟하고 其子弟皆興於學하니라
鄴侯尙文하야 其於無不貫達이라 故其爲政 知所先後하니 可歌也已로다 乃作詩曰
惟此廟學
鄴侯所作이라
厥初庳下하야
하고
生師所處
亦窘寒暑
乃新斯宮하니
神降其獻이라
講讀有常하니
不誡用勸이라
이여
有師之尊이요
하니
이라
像圖孔肖
咸在斯堂하니
以瞻以儀하야
俾不或忘하라
後之君子
하라
琢詞碑石하야
以贊攸始


01. 處州 孔子廟
孔子 祀典尊崇함을 서술한 곳은 표현이 極點에 도달[入骨]하였다. 〈孔子廟碑〉는 나라 이래로 昌黎碑文을 제일로 침이 마땅하다.
천자로부터 郡守邑長에 이르기까지 온 천하가 모두 제사를 지내는 대상은 오직 孔子뿐이다.
’는 土神에게 제사 지내는 것이고, ‘’은 穀神에게 제사 지내는 것인데, 句龍가 함께 제사를 받으니, 혼자서 받는 자기만의 제사가 아니고, 또 그 座位가 있는 곳이 지붕은 없고 祭壇만 있다.
그러니 어찌 王者(천자)의 []를 사용하여, 南面해 높은 자리에 그 神主를 모시고 門人들을 從享으로 삼고서,
天子로부터 이하가 모두 北面해 무릎을 꿇고서 제사를 올리되 나아가고 물러날 때 정성과 공경을 다하여 직접 배운 제자가 를 행하듯이 하는 孔子의 제사만 하겠는가?
句龍이 있기 때문이고, 孔子이 있기 때문이니, 본래 등급이 〈같지 않다.〉
예로부터 功業德行으로 를 얻은 자가 常祀(고정된 제사)를 얻지 못한 경우가 많았으나, 句龍孔子는 모두 는 얻지 못하였으나 常祀를 얻었다.
그러나 그 제사(句龍의 제사)가 모두 공자 제사의 隆盛함만 못하다. 이른바 ‘生民이 있은 이래로 공자 같으신 분은 있지 않았다.’는 것은 그 어짊이 보다 훨씬 지나침을 말한 것이니, 이것(王者常祀함)이 바로 〈공자에 대한〉 報效(보답)이다.
에 모두 孔子廟가 있으나 제사의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 곳도 있고, 비록 博士弟子를 두었으나 有司(주관하는 官員)에게 잡무로 使役이나 당하여, 이름만 남고 실상은 없어져서 그들이 해야 할 本業을 상실한 곳도 있다.
그러나 오직 處州만은 鄴侯 李繁刺史로 부임한 뒤에 이 일을 우선으로 삼아, 새로 孔子廟를 짓고 나서 또 工人으로 하여금 顔子로부터 子夏에 이르기까지 10塑像을 다시 만들고,
그 밖에 60後代大儒公羊高左丘明孟軻荀況伏生毛公韓生董生高堂生揚雄鄭玄 등 수십 인의 肖像을 벽에 그리게 하고,
博士弟子를 선발하되 반드시 모두 적합한 사람을 뽑고, 또 講堂을 설치하여 그들에게 를 행하는 법을 가르쳐 그 안에서 익히게 하고, 本錢廩米를 주어 〈師生으로〉 하여금 계속해 修業하면서 를 지키게 하였다.
가 완성되자, 몸소 官吏博士弟子들을 거느리고 學校로 들어가서 釋菜禮를 거행하니, 耆老(나이가 많고 명망이 있는 사람)들이 감탄하고, 그 子弟들도 모두 학교에서 興起(분발)하였다.
鄴侯을 숭상하여 古記에 대해 관통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가 정사를 함에 있어 먼저하고 뒤에 할 바를 알았으니 頌歌를 부를 만하다. 이에 를 짓는다.
學校
鄴侯가 지은 것이네
당초의 는 집이 낮아서
廟宇로 여기지 않았고
학생과 스승이 거처하는 곳도
추위와 더위에 괴로움을 당했지
이에 이 學宮을 새로 지으니
이 강림해 제사 흠향하시리
講讀常規 있으니
경계하지 않고 권면하는 것이지
높으신 元哲이시여
스승의 존엄한 모습 지니셨네
여러 성인의 모습 장엄하시니
大法이 이들로 인해 보존되었지
매우 닮은 塑像畫像
모두 이 안에 있으니
우러러 본받아서
혹시라도 잊지 않게 하라
후세의 君子들이여
아름다운 공덕 버리지 말라
歌詞 비석에 새겨
시작한 바를 찬미하노라


역주
역주1 處州孔子廟碑 : 唐나라 貞觀 연간에 각 州縣에 조서를 내려 모두 孔子의 廟를 세우게 하였고, 開元 27년(739) 8월에 孔子에게 추가로 ‘文宣王’이란 諡號를 올리니, 공자의 지위가 크게 높아졌다. 이 碑文에는 年月日이 기재되지 않았는데, 다른 本에는 “朝散大夫國子祭酒賜紫金魚袋韓愈撰”이란 글자가 있다. 한유가 국자좨주가 된 것은 元和 15년(820) 가을이었다.
역주2 句龍與棄乃其佐享 : 句龍은 共工의 아들이다. 水土를 잘 다스렸으므로 후세에 그를 后土의 神으로 여겨 제사 지낸다. 棄는 바로 后稷인데 周나라의 始祖로 舜임금 때에 農官인 后稷이 되어 백성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쳤다. 佐享은 함께 제사를 받음이다.
역주3 專主 : 자기 혼자서 제사의 주인이 되는 것이니, 곧 자기만을 위해 지내는 제사를 받는 것을 이른다.
역주4 其位所不屋而壇 : 神主를 모시는 곳에 지붕을 덮지 않고 祭壇을 설치함이다.
역주5 豈如孔子用王者事 : 開元 27년에 孔子에게 추가로 ‘文宣王’이란 諡號를 올리고, 神主를 南面해 앉히고서 顔子 등 제자를 配享한 것을 이른다.
역주6 巍然當座 : 南面해 높은 자리에 신주를 安置함을 이른다.
역주7 生人以來 未有如孔子者 : ≪孟子≫ 〈公孫丑 上〉에 “自生民以來 未有如孔子也”란 말이 보인다. 唐 太宗 李世民의 諱를 피하기 위해 生民의 民을 人으로 고친 것이다.
역주8 : 報答이다.
역주9 博士弟子 : 博士가 가르치는 제자를 이른다.
역주10 鄴侯李繁 : 李繁은 李泌의 아들로 아버지의 封號인 鄴侯를 물려받은 것이다.
역주11 釋菜禮 : 古代에 入學할 때에 先聖 孔子께 올리던 제사이다.
역주12 古記 : 古代의 典籍을 이른다.
역주13 神不以宇 : 孔子의 神이 자신의 집으로 여기지 않으셨다는 말이다.
역주14 揭揭元哲 : 揭揭는 높은 모양이고, 元哲은 미증유의 哲人이니, 곧 孔子를 가리킨다.
역주15 群聖嚴嚴 : 群聖은 배향한 공자의 제자들을 이르고, 嚴嚴은 위엄이 莊重함이다.
역주16 大法以存 : 孔子의 大法이 群聖으로 인해 보존되었다는 말이다.
역주17 無廢成美 : 成美는 아름다운 功德이니, 곧 孔子廟를 重修한 공덕을 버리지 말라는 말이다.

당송팔대가문초 한유(2) 책은 2020.12.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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