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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韓愈(2)

당송팔대가문초 한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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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한유(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通篇 次第戰功 摹倣史漢이나 而其辭旨 特自出機軸 其最好處 在得臣下頌美天子之體
天以唐克肖其德하야 聖子神孫 繼繼承承하야 於千萬年 敬戒不怠라하야
全付所覆하니 罔有內外 悉主悉臣하니라 高祖太宗 旣除旣治하고
高宗中睿 하니 至于玄宗하야 受報收功하야 極熾而豐하야 物衆地大하니 其間이라
肅宗代宗 德祖順考
相臣將臣 하고 習熟見聞하야 以爲當然이라
睿聖文武皇帝旣受群臣朝하고曰 嗚呼 天旣全付予有家하야
今傳次在予하니 予不能事事 其何以見于郊廟리오 群臣震懾하야 奔走率職하니라
明年平夏하고 又明年平蜀하고 又明年平江東하고 又明年平澤潞하니라
遂定易, 定하고 致魏, 博, 貝, 衛, 澶, 相하니 無不從志하니라 皇帝曰 不可 予其하리라
九年 蔡人立其子元濟以請이어늘 不許하니 遂燒舞陽하고 犯葉襄城하야 以動東都하고 放兵四劫하니라
皇帝歷問于朝하니 皆曰 蔡帥之不廷授 于今五十年이라
하니 其樹本堅하고 兵利卒頑하야 不與他等하니 因撫而有라야 順且無事하리이다
大官臆決唱聲 萬口和附하야 幷爲一談하니 牢不可破하니라
皇帝曰 惟天惟祖宗所以付任予者 庶其在此하니 予何敢不力이리오 況一二臣同하니 不爲無助니라
曰 光顔 汝爲陳, 許帥 維是河東, 魏博, 郃陽三軍之 汝皆將之하라
曰 重胤 汝故有河陽, 懐하니라 今益以汝하노니 維是朔方, 義成, 陝, 益, 鳳翔, 延, 慶七軍之在行者 汝皆將之하라
曰 弘 汝以卒萬二千으로 하라
曰 文通 汝守壽하니 維是宣武, 淮南, 宣歙, 浙西四軍之行于壽者 汝皆將之하라
曰 道古 汝其觀察鄂岳하라 曰 愬 汝帥唐, 鄧, 隨하니 各以其兵進戰하라
曰 度 하라 曰 度 惟汝予同 汝遂相予하야 以賞罸用命不用命하라
曰 弘 汝以其節都統諸軍하라 曰 守謙 汝出入左右하니 汝惟近臣이라 其往撫師하라
曰 度 汝其往하야 衣服飮食予士하야 無寒無饑하야 以旣厥事하야 遂生蔡人하라
賜汝 衛卒三百하노라 凡玆廷臣 汝擇自從호되
惟其賢能이어든 無憚大吏하라 庚申 予其臨門送汝하리라
曰 御史 予閔士大夫戰甚苦하노니 自今以往으로 非郊廟祠祀어든 其無用樂하라
顔, 胤, 武合攻其北하야 大戰十六 得柵, 城, 縣二十하고 降人卒四萬하니라
道古 攻其東南하야 八戰 降萬三千하고 再入申하야 破其外城하니라 文通 戰其東하야 十餘遇 降萬二千하니라
入其西하야 得賊將이로되 輙釋不殺하고 用其策하야有功하니라
十二年八月 丞相度至師하니 都統弘責戰益急하고 顔, 胤, 武合戰益하니라 元濟其衆洄曲以備하니라
十月壬申 愬用所得賊將하야 自文城으로 因天大雪하야 疾馳百二十里하야 用夜半到蔡하야 破其門하고 하고
盡得其屬人卒하니라 辛巳 丞相度入蔡하야 以皇帝命赦其人하니라
淮西平 하니라 師還之日 하니라
凡蔡卒三萬五千 其不樂爲兵하고 願歸爲農者十九어늘 悉縱之하니라 斬元濟京師하니라
하야 弘加侍中하고 愬爲左僕射하야 帥山南東道하고
顔, 胤皆加司空하고 公武以散騎常侍 帥鄜坊丹延하고 道古進大夫하고 文通加散騎常侍하니라
丞相度朝京師 道封晉國公하고 進階金紫光祿大夫하야 以舊官相하니라 而以其副總爲工部尙書하야 領蔡任하니라
旣還奏 群臣請紀聖功하야 하니라 皇帝以命臣愈하시니 臣愈再拜稽首而獻文曰
唐承天命하야
遂臣萬邦하니
孰居近土하야

往在玄宗하야
崇極而圯하야
하고
어늘
不宥하고
屢興師征할새
有不能克이면
益戍以兵하니
夫耕不食하고
婦織不裳하야
輸之以車하야
爲卒賜糧이라
外多失朝하야
하고
百隷怠官하야
事亡其舊어늘
帝時繼位하야
顧瞻咨嗟
惟汝文武
孰恤予家
旣斬하고
이라
魏將首義하야
이라
不順하고
自以爲強하야
提兵呌讙하야
이라
始命討之한대
하야
陰遣刺客하야
이라
方戰未利하야
內驚京師하니
群公上言호되

帝爲不聞하고
하야
乃相同德하야

乃勅顔胤
愬武古通하야
咸統於弘하야
汝功하라

五萬其師러니
하니
厥數倍之러라

이러니
하니
蔡卒大窘하고
勝之邵陵하니
이라
自夏入秋
하니
하야
告功不時러니
帝哀征夫하야
命相往釐하시니
士飽而歌하고
馬騰於槽러라
試之新城하니
賊遇敗逃하야
盡抽其有하야
聚以防我어늘
로다
蔡城
其疆千里러니
旣入而有하니
莫不順俟
帝有恩하야
相度來宣하니
誅止其魁하고 釋其下人이라
蔡之卒夫
投甲呼舞하고
蔡之婦女
迎門笑語로다
蔡人告饑어늘
船粟往哺하고
蔡人告寒이어늘
賜以繒布로다
始時蔡人
禁不往來러니
今相從戲하고
里門夜開러라
始時蔡人
이러니
今旰而起하야
左餐右粥이로다
하야
하고
選吏賜牛하야
敎而不稅하니
蔡人有言호되
始迷不知러니
今乃大覺이라
羞前之爲로다
蔡人有言호되
天子明聖하야
不順族誅하고
順保性命하나니
汝不吾信인대
視此蔡方하라
孰爲不順
往斧其吭호리라
凡叛有數하야
聲勢相倚러니
吾強不支어니
汝弱奚恃리오
其告而長
而父而兄하야
奔走偕來하야
同我太平하라
淮蔡爲亂이어늘
天子伐之하시고
旣伐而饑어늘
天子活之로다
始議伐蔡
卿士莫隨하고
旣伐四年
小大並疑러니
不赦不疑
由天子明이시니
凡此蔡功
惟斷乃成이라
旣定淮蔡하고
四夷畢來하니
遂開明堂하고
坐以治之로다


08. 淮西 평정을 기념하는
전편에 戰功을 차례로 서술한 것은 ≪史記≫와 ≪漢書≫를 모방하였으나, 그 辭旨는 특별한 구상에서 나온 것이다. 가장 뛰어난 점은 신하가 천자를 찬미하는 文體를 얻은 데 있다.
하늘은, 나라의 이 하늘의 덕과 같아, 聖子神孫이 대대로 계승하여 천만 년토록 공경하고 경계해 태만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여,
하늘이 덮고 있는 광활한 大地를 모두 나라에 부여하니 四海九州의 인민들이 내외를 막론하고 모두 〈나라를〉 君主로 섬기고 자신을 신하로 칭하였다.
高祖太宗께서 叛賊을 제거하고 천하를 평정[]하셨으며,
高宗中宗睿宗께서 백성의 부담을 덜어주고 생활을 안정시켜 원기를 회복시키시니, 玄宗 때에 이르러 그 보답을 받고 功效를 거두어 〈국가가〉 지극히 번성하고 지극히 풍부하여, 물산이 풍성하고 영토가 광대하니, 그 사이에 災禍의 싹[孽牙]이 자랐다.
肅宗代宗, 德宗[德祖]과 順宗[順考]께서 부지런히 노력하고 너그럽게 용서하셨으므로, 大惡[大慝]은 이제 막 제거하였으나 公共을 위해하는 무리[稂莠]는 제거하지 못하셨다.
이에 相臣이나 將臣이나 文官이나 武將이나 안일만을 즐기고 국사는 생각하지 않고, 〈藩鎭跋扈가〉 눈에 익고 귀에 익어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睿聖文武皇帝(憲宗)께서 신하들의 朝見을 받으신 뒤에 地圖를 고찰하고 貢賦를 계산해보시고서 말씀하시기를 “아! 하늘이 이미 천하를 모두 우리 王家付予하시어,
지금 하는 차례가 나에게 이르렀으니, 내가 그 일을 하지 않는다면 郊祭廟祭 때에 무슨 낯으로 〈天神祖先을〉 뵐 수 있겠는가?”라고 하시니, 신하들이 두려워 떨면서 바삐 서둘러 직무를 奉行하였다.
이듬해에 夏州를 평정하고, 또 그 이듬해에 을 평정하고, 또 그 이듬해에 江東을 평정하고, 또 그 이듬해에 澤潞를 평정하였다.
드디어 易州定州를 평정하고, 魏州博州貝州衛州澶州相州를 〈조정에〉 바치게[] 하니, 뜻을 따르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이에 皇帝께서 “武力은 남용해서는 안 되니 내 잠시 휴식시키겠다.”라고 하셨다.
元和 9년에 蔡州刺史 兼彭義軍節度使 吳少陽이 죽자, 蔡州 사람들이 그의 아들 吳元濟後任으로 세워줄 것을 조정에 청하였다. 허락하지 않으니, 吳元濟는 드디어 舞陽縣을 불태우고 葉縣襄城을 침공하여 東都를 진동시키고, 군대를 사방으로 풀어놓아 노략질을 자행하였다.
皇帝께서 조정에서 〈신하들에게〉 두루 물으시니, 한두 신하를 제외하고는 모두 “蔡州節度使가 조정의 임명을 받지 않은 지가 지금 50년이 되었습니다.
姓氏의 네 將帥를 거쳤으니 그 박힌 뿌리가 단단하며, 병기는 예리하고 군졸은 頑強하여 다른 곳과 같지 않으니, 전처럼 저들을 어루만져 〈蔡州를〉 가지게 하여야 저들이 순종하여 일을 벌이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大臣이 억측해 결단하여 먼저 의견을 提唱하자, 모든 신하들이 덩달아 같은 말을 해대니 그 주장이 너무 견고하여 깨뜨릴 수가 없었다.
그러자 황제께서 “하늘과 祖宗께서 나에게 重任을 맡기신 까닭이 아마도 이 일에 있는 듯하니, 내 어찌 힘을 다하지 않겠는가? 하물며 한두 신하가 同意하니 돕는 신하가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셨다.
天子께서 말씀하셨다.
李光顔아! 너는 陳州許州節度使이니, 行營에 있는 河東魏博郃陽의 3을 네가 모두 통솔하라.”
天子께서 말씀하셨다.
烏重胤아! 너는 본디 河陽懐州를 소유하였다. 이제 너에게 汝州를 보태주노니, 行營에 있는 朔方義成陝州益州鳳翔延州慶州의 7을 네가 모두 통솔하라.”
天子께서 말씀하셨다.
韓弘아! 너는 군졸 1만2천 명을 너의 아들 公武에게 맡겨 거느리고 가서 〈吳元濟를〉 토벌하게 하라.”
天子께서 말씀하셨다.
李文通아! 너는 壽州를 지키고 있으니, 壽州行營하고 있는 宣武淮南宣歙浙西의 4을 네가 모두 통솔하라.”
天子께서 말씀하셨다.
李道古야! 너는 가서 鄂岳觀察使를 맡으라.”
天子께서 말씀하셨다.
李愬야! 너는 唐州鄧州隨州節度使이니, 〈이상의 각 장수들에게〉 각각 그 군대를 거느리고 진격하게 하라.”
天子께서 말씀하셨다.
裵度야! 너는 長御史(御史中丞)이니 가서 군대를 시찰하라.”
天子께서 말씀하셨다.
裵度야! 오직 너만이 나와 뜻이 같으니, 너는 나를 도와 명령을 따르는 자에게는 상을 주고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에게는 벌을 주라.”
天子께서 말씀하셨다.
韓弘아! 너는 그곳(宣武軍)의 節度使諸軍을 모두 통솔하라.”
天子께서 말씀하셨다.
梁守謙아! 너는 나의 좌우를 출입하니 너만이 오직 近臣이다. 가서 군사를 慰撫하라.”
天子께서 말씀하셨다.
裵度야! 너는 〈淮西로〉 가서 군사들에게 의복과 음식을 주어 추위에 떨거나 배 고픔에 시달리는 군사가 없게 하여, 그 일을 완수해 蔡州 사람들을 살리도록 하라.
너에게 節斧通天御帶와 호위병 300명을 내리노라. 조정의 신하 중에 네가 데리고 갈 사람을 직접 선택하되,
오직 그 사람이 賢能하다면 大吏(高官)라도 꺼리지 말고 〈데려가라.〉 庚申日에 내 通化門으로 가서 너를 전송하겠다.”
天子께서 말씀하셨다.
御史야! 나는 士大夫들이 전쟁으로 매우 고생하는 것을 가여워하니, 오늘 이후로는 郊祭廟祭가 아니거든 음악을 연주하지 말라.”
李光顔烏重胤韓公武兵力을 합쳐 蔡州北部를 공격하였는데, 16차례 크게 교전하여 23개를 얻고, 백성과 군졸 4만 명을 항복받았다.
李道古蔡州 동남부를 공격하였는데 8차례 교전하여 군졸 1만3천 명을 항복받고, 다시 申州로 들어가서 그 外城을 쳐부수었다. 李文通蔡州 동부에서 전투하였는데, 10여 차례 교전하여 군졸 1만2천 명을 항복받았다.
李愬蔡州 서부로 쳐들어가서 賊將을 사로잡았으나, 즉시 풀어주고서 죽이지 않고 그 적장의 계책을 이용하여 출전할 때마다 자주 전공을 세웠다.
元和 12년 8월에 승상 배도가 軍中에 이르니, 都統 韓弘은 더욱 급히 出戰을 독려하고, 李光顔烏重胤韓公武兵力을 합쳐 더욱 목숨 바쳐 싸웠다. 이에 吳元濟는 그 군대를 모두 洄曲에 집결시켜 방비하였다.
10월 壬申日李愬가 사로잡은 賊將을 임용하여 文城에서 출발해 크게 눈이 내리는 날씨를 이용해 120리를 급히 달려 한밤중에 蔡州에 당도하여 성문을 쳐부수고 들어가 吳元濟를 사로잡아 바치고,
그에 隷屬된 백성과 군졸을 모두 사로잡았다.
辛巳日丞相 裵度蔡州로 들어가서 황제의 명령으로 사로잡은 사람들을 사면하였다.
淮西가 평정되자 크게 잔치를 열어 〈酒食을 접대하고,〉 공이 있는 자에게 상을 내렸다. 王師回軍하던 날에 軍糧蔡州 사람들에게 주었다.
蔡州의 군사 3만5천 명 중에 병사가 되기를 좋아하지 않고 돌아가서 농사짓기를 원하는 자가 열에 아홉이었는데, 이들을 모두 석방해 돌려보냈다. 吳元濟京師에서 斬首하였다.
冊功하여, 韓弘侍中으로 올려주고, 李愬左僕射로 삼아 山南東道節度使를 겸임하게 하고,
李光顔烏重胤을 모두 司空으로 올려주고, 李公武散騎常侍鄜州坊州丹州延州節度使를 겸임하게 하고, 李道古大夫로 올려주고, 李文通散騎常侍로 올려주었다.
冊功을 마치고서〉 京師로 올라오는 도중에 있는 丞相 裵度晉國公하고 品階金紫光祿大夫로 올리고서, 원래의 관직으로 丞相을 맡게 하고, 裵度副官 馬總工部尙書로 삼아 蔡州의 여러 職任을 맡게 하였다.
裵度가 돌아와 아뢰자, 신하들이 聖上功績을 기록하여 金石에 새길 것을 청하였다. 皇帝께서 韓愈에게 명하시기에 韓愈는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려 碑文을 올리면서 아래와 같이 말씀드린다.
나라가 천명을 받아
萬邦을 신하로 삼았으니
누가 가까운 곳에 살면서
도둑질 답습하며 날뛰었는가
지난 玄宗 시대에
융성함이 극에 달해 무너지기 시작하여
河北이 교만하게 전횡하고
河南도 덩달아 일어났네
네 황제 용서치 않으시고
자주 군사 일으켜 정벌할 적에
승리하지 못하면
군대 늘려 방수하게 하셨네
사내는 농사지어도 먹지 못하고
아낙은 길쌈해도 치마 만들지 못하고서
수레에 실어 보내
군졸들의 양식으로 주었네
朝覲하지 못하는 外臣 많아
천자가 巡狩하지 못한 지 오래되었고
백관들 직무에 태만하여
일에 옛날의 법도 없네
憲宗께서 이때 제위에 오르시어
옛날을 회고하며 탄식하셨네
너희 문무백관들아
누가 우리 王家 구제하였나
의 반적 목을 베고
이내 다시 山東을 취하였네
魏將이 솔선해 의거하여
여섯 주 가지고 귀순하였네
淮西蔡州가 순종하지 않고
스스로 강대하다 하여
군대 이끌고 떠들어대면서
옛 규례 일삼고자 하였네
황제께서 토벌을 명하셨는데
간악한 이웃과 연대하여
은밀하게 자객을 보내어
와서 相臣을 살해하였다
이때 전세가 불리하여
경사가 크게 놀라니
대신들 말씀드리기를
慰撫해 귀순시킴이 좋다고 하였으나
황제께서는 듣지 않으시고
신명과 함께 모의하시어
뜻이 같은 사람 승상으로 삼아
하늘의 주벌 마치셨네
이에 李光顔烏重胤
李愬韓公武李道古李文通에 명하시어
모두 韓弘에게 통솔되어
각각 공을 세우게 하셨네
삼면으로 나누어 쳐들어가니
그 군사 5만이었네
대군이 북쪽서 승세를 타고 진격하니
군사의 수가 갑절이었네
전에 時曲에서 공격할 적에
적군들 준동하며 저항하였는데
陵雲柵을 격멸하니
蔡州의 군대가 크게 곤란해졌고
邵陵에서 승리하니
郾城의 수장 와서 항복하였네
여름부터 가을이 될 때까지
촘촘히 세워진 兵營을 서로 바라보기만 하였네
병기는 무디고 군사는 분발하지 못해
제때에 戰功을 아뢰지 못하였는데
황제께서 출정한 병사들 가엾게 여겨
승상에게 명하여 가서 다스리게 하시니
병사들은 배가 불러 노래 부르고
말들은 힘이 넘쳐 마구에서 뛰었다
新城에서 이 말과 군대 시험해보니
적군들 교전하자마자 패배해 도주했네
적은 소유한 병력 다 뽑아다가
한곳에 집결시켜 우리를 막았네
서쪽의 군대 채주로 뛰어 들어가니
길에 낙오한 자 하나 없었네
높고 굳은 채주성은
그 영역이 천 리인데
들어가서 소유하니
귀순하지 않는 자 없었네
황제께서 내리신 은혜로운 말씀을
승상 裵度가 가져와서 선포하였는데
그 괴수만을 주살하고
아랫사람들은 석방하라 하셨네
채주의 병사들은
갑옷 던지고 환호하며 춤췄고
채주의 부녀들은
문에서 맞이하며 웃고 말하였네
채주 백성들 饑饉을 고하니
배에 곡식 싣고 가서 먹여주었고
채주 백성들 추위를 고하니
비단과 베를 내려주셨네
종전에 채주 백성들은
통행을 금지해 왕래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서로 어울려 즐겁게 놀고
밤에도 里門을 활짝 열어놓았네
종전에는 채주 백성들
나가면 전쟁하고 물러나면 죽임당했는데
지금은 느지막이 일어나서
좌우에 놓인 밥과 죽을 먹는다네
채주 백성들 위해 인재를 뽑아서
전란에 지친 사람들 거두게 하고
관리를 뽑아 소를 주고서
백성 가르치게 하고 租稅를 면제하였네
채주 백성들 말하네
종전엔 미혹하여 알지 못했는데
이제야 비로소 크게 깨닫고서
전일의 행위 부끄러워한다고
채주 백성들 말하네
천자께서 밝고 성스러우시어
순종하지 않으면 三族을 멸하고
순종하면 생명을 보전해주시니
너희들 나의 말 믿지 못하겠거든
이 채주 지방을 보라
누가 순종하지 않는가
도끼 가지고 가서 목을 치리라
반역한 몇몇 역적들
멀리서 호응하며 서로 지원하지만
강한 우리도 버티지 못했는데
약한 너희야 무엇을 믿겠느냐
너희 장관과
너희 父兄께 고하여
급히 달려 함께 와서
우리와 함께 태평을 누리자꾸나
淮西의 채주가 반란 일으키자
천자께서 정벌하셨고
정벌한 뒤에 백성들 굶주리자
천자께서 양곡 주어 살리셨네
처음 채주 정벌을 의논할 적에
황제의 의견 따르는 卿士 없었고
4년 동안 정벌이 계속되자
大小 관원 모두 의심했지만
용서하지도 의심하지도 않으신 것은
천자의 밝으심에서 연유한 것이네
이번에 채주에서 세운 공은
과감한 결단력이 이룬 것이네
회서의 채주 평정하자
사방의 이민족 모두 귀순하니
드디어 明堂을 열고
앉아서 천하를 다스리시네


역주
역주1 平淮西碑 : 이 碑文은 元和 13년(818) 정월 14일에 한유가 憲宗의 명을 받고서 3월 25일에 지어 올린 것이다.
역주2 四海九州 : 中國을 가리킨다. 古代에 中國의 四周에는 모두 바다가 있다고 여겼고, 중국 境內에 冀‧豫‧雍‧揚‧兗‧徐‧梁‧靑‧荊 등 九州를 설치하였다.
역주3 休養生息 : 戰亂 뒤에 백성의 부담을 줄이고 생활을 안정시켜 元氣를 회복시킴이다.
역주4 孽牙 : 孽은 妖孽로 재앙을 이르고, 牙는 싹틈이니, 곧 지극히 번성하고 풍부한 가운데에서 화란의 싹이 자랐다는 말로 安史의 亂이 발생한 것을 이른다.
역주5 以勤以容……稂莠不薅 : 大慝適去는 安祿山‧史思明 등 大惡을 제거한 것을 이른다. 稂莠不薅는 穀苗를 해치는 稂莠(잡초)를 김매지 않았다는 말로, 조정에 투항하여 藩鎭이 된 뒤에도 매사 조정에 반기를 든 安史의 餘黨을 이른다. 以勤以容은 勤勉하였기 때문에 대악을 제거했고, 관용하였기 때문에 餘黨을 제거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역주6 文恬武嬉 : 文武의 官員이 安逸만을 즐기고 國事는 생각지 않음이다.
역주7 考圖數貢 : 輿圖의 廣狹을 고찰하고 貢賦의 收入을 계산함이다.
역주8 究武 : 窮武와 같은 말로 무력을 남용함이다.
역주9 少息 : 休養生息을 뜻한다.
역주10 蔡將死 : 채주자사 겸팽의군절도사 오소양이 죽은 것이다. ≪新唐書≫ 〈憲宗紀〉에 “원화 9년 윤8월 병진일에……오소양이 죽으니, 그 아들 원제가 스스로 ‘蔡州知事’라 칭하였다.[元和九年閏八月丙辰……吳少陽卒 其子元濟自稱知蔡州]”는 기록이 보인다.
역주11 一二臣 : 武元衡과 裵度를 이른다.
역주12 三姓四將 : 李‧陳‧吳 세 성씨의 네 장수로 李希烈‧陳仙奇‧吳少誠‧吳少陽을 이른다.
역주13 在行者 : 行營에 있는 군대를 이른다. 行營은 出征한 군대의 軍營이다.
역주14 屬而子公武 往討之 : 너[而]의 아들 公武에게 맡겨[屬] 데리고 가서 吳元濟를 토벌하게 하라는 말이다. ≪舊唐書≫ 〈韓弘傳〉에 “한홍은 실로 理所(本營)를 떠나지 않고 그 아들 공무에게 명하여 군사 3천을 거느리고 가서 이광안의 군대에 예속되게 하였다.[弘實不離理所 唯令其子公武率師三千隷李光顔軍]”는 기록이 보인다.
역주15 汝長御史 其往視師 : 長御史는 御史中丞을 이르고, 視師는 군대를 시찰함이다.
역주16 節斧 : 符節과 斧鉞이다. 고대에는 出征하는 장군에게 주어 權威를 상징하게 하던 물건이다.
역주17 通天御帶 : 위아래가 뚫린 犀角으로 장식한 御帶이다. 이 또한 권력을 상징한다.
역주18 (二)[三] : 저본에는 ‘二’로 되어 있으나, ≪韓文考異≫에 의거하여 ‘三’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9 : ‘자주’이다.
역주20 用命 : 戰爭에 목숨 바쳐 싸움이다.
역주21 盡幷 : 모두 집결시킴이다.
역주22 取元濟以獻 : 吳元濟를 檻車에 실어 京師로 보낸 것이다.
역주23 大饗賚功 : 크게 잔치를 열어 將士에게 음식을 접대하고, 공이 있는 자에게 賞을 준 것이다.
역주24 因以其食賜蔡人 : ‘因’자가 어떤 訓으로 쓰였는지 모르겠으므로 闕譯하였다.
역주25 冊功 : 功의 대소를 評議해 官爵을 내림이다.
역주26 被之金石 : 金은 鐘鼎을 이르고, 石은 碑石을 이르니, 곧 공적을 鐘鼎이나 碑石에 입힘(새김)이다.
역주27 襲盜以狂 : 襲盜는 도둑질을 답습함이고, 狂은 猖狂이니 미쳐 날뜀이다.
역주28 河北悍驕 : 悍驕는 驕橫(교만하게 專橫함)과 같다. 安史의 亂이 평정된 뒤에 河北의 幽州節度使 朱滔, 成德軍兵馬使 王武俊, 魏博節度使 田悅이 연합해 叛逆한 것을 이른다.
역주29 河南附起 : 河南의 淄靑節度使 李惟岳‧李納, 彰義節度使 李希烈‧吳少誠 등이 代宗‧德宗 때에 배반한 것을 이른다.
역주30 四聖 : 肅宗‧代宗‧德宗‧順宗을 이른다.
역주31 外多失朝 曠不嶽狩 : 外는 각 地方官을 이르고, 失朝는 朝覲하지 못함이고, 曠은 長久이고, 嶽은 四嶽을 이르고, 狩는 巡狩를 이르니, 곧 藩鎭의 반란과 조정의 정벌로 사방이 어지러워서 地方官들은 朝覲하지 못하고, 天子는 四嶽을 巡守하며 天地와 名山‧大川에 제사를 지내지 못한 지 오래라는 말이다. 古代에는 天子가 5년마다 한 차례씩 四嶽을 巡狩하였다. 四嶽은 東嶽泰山‧西嶽華山‧南嶽衡山‧北嶽恒山이다. 巡狩는 ≪書經≫ 〈舜典〉에 자세히 보인다.
역주32 吳蜀 : 吳는 浙西節度使 李錡를 이르고, 蜀은 西川節度使 劉闢을 이른다.
역주33 旋取山東 : 澤潞를 평정한 것을 이른다. 山東은 澤潞를 가리킨다. 澤潞가 華山 동쪽에 있기 때문에 山東이라 한 것이다. 澤潞를 또 昭義라고도 하는데, 唐나라의 藩鎭이다. ≪舊唐書≫ 〈憲宗紀〉에 “원화 5년 4월 갑신일에 鎭州行營招討使 吐突承璀가 昭義節度使 盧從史를 잡아 轞車에 실어 京師로 보냈다.”는 기록이 보인다.
역주34 魏將首義 六州降從 : 魏博節度使 田弘正이 率先해 義擧하여 여섯 州를 가지고 조정에 歸順한 것을 이른다. 六州는 魏州‧博州‧貝州‧衛州‧澶州‧相州 등을 이른다. 降從은 항복해 귀순함이다.
역주35 淮蔡 : 淮蔡는 淮西節度使 吳元濟를 이른다. 淮西節度使의 治所가 蔡州이다.
역주36 欲事故常 : 故常은 前例이다. 吳少陽이 그 兄 吳少誠이 죽은 뒤에 스스로 淮西節度使留後가 되었던 것처럼 吳元濟는 아비 吳小陽이 죽자, 發喪도 하지 않고 스스로 淮西節度使가 된 것을 이른다.
역주37 遂連姦隣 : 오원제가 간악한 이웃 州와 連帶하였다는 말이다. 姦隣은 淄靑節度使 李師道와 鎭州節度使 王承宗 등을 가리킨다.
역주38 陰遣刺客 來賊相臣 : 元和 10년 6월에 淄靑節度使 李師道가 刺客을 보내어 宰相 武元衡을 刺殺한 것을 이른다.
역주39 莫若惠來 : 莫若은 得失이나 優劣을 비교할 때에 “~하는 것이 ~하는 것만 못하다.”는 꼴로 쓰이고, 惠來는 慰撫해 귀순시킴이니, 토벌하는 것이 위무해 귀순시키는 것만 못하다는 뜻이다.
역주40 與神爲謀 : 神과 모의하였다는 말인데, 神이 무엇을 가리킨 것인지 모르겠다.
역주41 乃相同德 以訖天誅 : 同德은 뜻이 같은 사람이니, 곧 蔡州 정벌을 찬동한 裵度를 이르고, 天誅는 하늘의 주벌이니, 곧 吳元濟를 사로잡아 斬首하여 蔡州를 평정한 것을 말한다. 訖은 마침이다.
역주42 : 세움이다.
역주43 三方分攻 : 삼면으로 나누어 쳐들어가는 것이니, 위에서 말한 “道古攻其東南 文通戰其東 愬入其西”를 이른다.
역주44 大軍北乘 : 대군이 북쪽에서 乘勢를 타고 진격함이니, 곧 위에서 말한 “顔胤武合攻其北”을 이른다.
역주45 常兵時曲 : ‘常’이 ≪文苑英華≫에는 ‘嘗’으로 되어 있다. 時曲은 洄曲이다. 元和 12년 8월에 李光顔‧烏重胤‧韓公武가 兵力을 합쳐 진격하니, 吳元濟가 그 군대를 모두 洄曲에 집결시켜 방비했던 것을 말한다.
역주46 軍士蠢蠢 : 軍士는 蔡州의 군대를 이르고, 蠢蠢은 騷動함이니, 곧 王師(정부군)가 時曲을 공격하자, 채주의 군대가 동요하며 저항하였다는 말이다.
역주47 旣剪陵雲 : 剪은 擊滅이고, 陵雲은 營柵의 이름이다. ≪舊唐書≫ 〈李光顔傳〉에 “元和 11년에 李光顔이 연달아 吳元濟의 군대를 격파하고서 陵雲柵을 탈취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역주48 郾城來降 : 郾城의 守將 鄧懷金이 와서 投降한 것을 이른다.
역주49 自夏入秋 復屯相望 : 여름부터 가을로 접어들 때까지 진격하지 못하여 주둔하고 있는 兵營이 촘촘히 세워져 있었던 것을 이른다. 復屯은 촘촘히 세워진 兵營을 이른다.
역주50 兵頓不勵 : 頓은 鈍과 通하고, 勵는 厲와 통하니, 振奮(분발)함이다.
역주51 西師躍入 道無留者 : 蔡州의 西部를 공격하는 李愬의 대군이 쳐들어오니 길에 낙오한 병사가 하나도 없었다는 말이다.
역주52 頟頟 : 높고 견고한 모양이다.
역주53 (信)[言] : 저본에는 ‘信’으로 되어 있으나, ≪韓文考異≫에 의거하여 ‘言’으로 바로잡았다.
역주54 進戰退戮 : 과거에는 전쟁할 때에 진격하면 살고 후퇴하면 죽임을 당했다는 말인 듯하다.
역주55 爲之擇人 : 蔡州 사람들을 위해 어진 長官을 뽑았다는 말이니, 곧 馬總을 蔡州刺史 兼御史大夫로 삼아 淮西節度使에 補任한 것을 이른다.
역주56 以收餘憊 : 餘憊는 전란에 지쳐 衰殘한 사람이니, 곧 전란에 지쳐 쇠잔한 백성들을 거두게 하였다는 말이다.

당송팔대가문초 한유(2) 책은 2020.12.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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