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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韓愈(3)

당송팔대가문초 한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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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한유(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唐大家韓文公文抄 卷15 墓誌‧碣‧銘
歸安 鹿門 茅坤 批評
孫男 闇叔 茅著 重訂
以生平故舊일새 志墓最悲涼可涕
君諱繼祖 司徒贈太師之孫이요 少府監贈太子少傅諱暢之子
生四歲拜太子舍人하야 積三十四年 五轉而至殿中少監하고 年三十七以卒하니라 有男八人 女二人하니라
始余 在京師 窮不自存이라 拜北平王於馬前하니 王問而憐之하야
因得見於安邑里第하니라 王軫其寒饑하야 賜食與衣하고 하시니라 遇我特厚하니 少府監贈太子少傅者也
姆抱幼子立側 하고 髮漆黑하며 肌肉玉雪하니 殿中君也
當是時하야 見王於北亭한대하니 傑魁人也
退見少傅하니 하니 能守其業者也
幼子하야 하고 하니 稱其家兒也
後四五年 하야 哭北平王於客舍하고
後十五六年 吾爲尙書都官郞하야 分司東都少傅卒하야 哭之하고 又十餘年 至今哭少監焉이라
嗚呼 吾未 自始至今 未四十年이로되 而哭其祖子孫三世하니 于人世何如也 人欲久不死 而觀居此世者何也
唐荊川曰 此歐文黃夢升張應之諸作之祖


01. 殿中少監 馬君墓誌銘
평생의 벗이었으므로 墓誌 중에 가장 슬프고 처량하여 눈물이 흐를만하다.
馬君繼祖이니, 司徒太師追贈北平 莊武王의 손자이고, 少府監으로 太子少傅에 추증된 의 아들이다.
馬繼祖는 네 살 때에 家門功績으로 太子舍人에 제수되어 34년을 지나는 동안 다섯 차례 轉遷(승진)하여 殿中少監에 이르렀고, 37세에 하였다. 아들 여덟과 딸 둘을 두었다.
전에 내가 막 成年이 되었을 때에 進士科에 응시할 貢生으로 京師에 머물렀는데, 그때 너무 곤궁하여 스스로 살아갈 수가 없었다. 옛 벗의 어린 아우라는 구실로 말 앞에서 北平王拜謁하였더니, 께서 사정을 물어보시고는 나를 가엽게 여기셨다.
나는 이로 인해 安邑里邸宅에서 을 뵐 수 있게 되었다. 께서는 나의 饑寒을 딱하게 여기시어 음식과 의복을 내려주시고, 두 아들을 불러 주인이 되어 〈나를 賓禮로 접대하게 하셨다.〉 두 아들 중에 작은 아들이 나를 특별히 후하게 대우하였으니, 이가 바로 少府監으로 太子少傅에 추증된 분이시다.
그때 乳母[]가 어린아이를 안고 곁에 서 있었는데, 그 아이의 용모[眉眼]는 그림 같고 頭髮漆黑 같고 살결은 玉雪 같아 매우 사랑스러웠으니, 이가 바로 殿中君이었다.
이때 北亭에서 뵈었는데, 마치 높은 산 깊은 숲 큰 골짜기에 있는 변화를 헤아릴 수 없는 龍虎 같았으니 걸출한 大人이었다.
물러나와 少傅를 뵈니 마치 푸른 대와 푸른 오동 위에 서 있는 鸞鳥黃鵠 같았으니 그 家業을 능히 지킬 분이었다.
어린아이는 용모가 아름답고 빼어나서 美玉과 같고 돋아나는 난초의 새싹 같았으니 그 집안에 걸맞는 아이였다.
그로부터 4, 5년 뒤에 나는 進士에 급제하여, 京師를 떠나 東遊할 때에 客舍에서 北平王弔哭하였고,
그로부터 15, 6년 뒤에 나는 尙書都官郞이 되어 分司東都할 적에 分府少傅께서 하시어 弔哭하였고, 또 10여 년이 지난 지금 少監弔哭하였다.
아! 내 아직 늙지 않았고, 처음 서로 만날 때로부터 지금까지 아직 40년이 되지 않았는데, 그 3弔哭하였으니, 인간 세상에 대해 어찌 생각해야 하겠는가? 사람들은 죽지 않고 오래 살기를 바라지만 이 세상에 사는 자들을 보면 어떠한가?
唐荊川이 말하였다. “이 편은 歐陽脩文章인 〈黃夢升墓誌銘〉‧〈尙書屯田員外郞張君墓表〉 등 여러 작품의 원조이다.”


역주
역주1 殿中少監馬君墓誌銘 : 이 墓誌銘은 長慶 元年(821)에 지은 것이다. 馬君은 馬繼祖를 가리키며, 唐나라 때의 名將인 馬燧의 손자이다.
역주2 北平莊武王 : 莊武는 馬燧(726~795)의 諡號이다. 마수는 叛臣 田悅을 擊破한 공훈으로 北平王에 봉해졌다.
역주3 門功 : 祖先의 功勳을 이른다.
역주4 初冠 : 옛날에는 남자가 20세가 되면 冠禮를 거행하였는데, 후세에는 成年한 남자를 이르는 말로 쓰인다.
역주5 應進士貢 : 進士科에 應試할 貢生이다. 貢生은 地方試에 합격해 州‧縣의 추천으로 京師로 와서 진사과에 응시할 자격을 얻은 儒生을 이른다.
역주6 故人稚弟 : 故人은 韓愈의 從兄 韓弇이다. 한엄은 馬燧의 벗이었다.
역주7 召二子使爲之主 : 馬燧가 馬彙‧馬暢 등 두 아들을 불러, 韓愈를 賓禮로 접대하게 한 것이다. 爲之主는 主人이 되어 賓禮로써 客을 접대함이다.
역주8 其季 : 馬燧의 次子 馬暢을 이른다.
역주9 眉眼如畫 : 眉眼은 눈썹과 눈인데, 일반적으로 용모의 뜻으로 쓰인다. 곧 용모가 그린 것처럼 아름답다는 말이다.
역주10 可念 : 사랑스러움이다.
역주11 高山深林鉅谷 龍虎變化不測 : 馬燧의 신체가 거대하고, 기백과 풍도가 범상치 않아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는 뜻이다.
역주12 翠竹碧梧 鸞鵠停峙 : 翠竹과 碧梧 위에 鸞鵠이 서 있다는 말로 馬暢의 출중함을 비유한 것이다.
역주13 娟好靜秀 : 예쁘고 빼어남이다.
역주14 瑤環瑜珥 : 瑤環과 瑜珥는 모두 아름다운 옥의 이름인데, 아름다운 자질을 비유한다.
역주15 蘭茁其芽 : 돋아나는 난초의 새싹인데, 여기서는 어린아이의 사랑스러움을 비유한다.
역주16 吾成進士 : 貞元 8년(792)에 韓愈가 進士科에 급제하였다. 이때 韓愈의 나이 25세였다.
역주17 去而東遊 : 京師를 떠나 동쪽의 河陽 本家로 돌아간 것을 이른다.
역주18 分府 : 唐代에 分司官의 칭호이다. 分司는 중앙정부의 관원으로 陪都인 洛陽으로 파견되어 근무하는 것을 이른다.
역주19 耄老 : 年老한 사람을 이른다. 일반적으로 60세 이상을 老人이라 하는데, 이때 한유는 54, 55세였다.

당송팔대가문초 한유(3) 책은 2020.12.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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