謂竹爲有知乎인댄 不宜生於廡下요 謂爲無知乎인댄 乃能避檻而曲全其生이라
其果有知乎인댄 則有知莫如人이니 人者는 萬物之最靈也로되 其不知於物者多矣라
以人之靈而不自知其一身하니 使竹雖有知라도 必不能自知其曲直之所以然也라
竹果無知乎
인댄 則無知莫如枯草死骨
하니 所謂
者是也
라
自古以來로 大聖大智之人이 有所不知者면 必問於著龜而取決하니 是則枯草死骨之有知가 反過於聖智之人所知遠矣라
以枯草死骨之如此면 則安知竹之不有知也리오 遂以蓍龜之神智로 而謂百物皆有知라하면
則其他草木瓦石은 叩之又頑然하야 皆無所知하니 然則竹未必不無知也라
由是言之컨대 謂竹爲有知不可며 謂爲無知亦不可요 謂其有知無知皆不可知然後可라 萬物生於天地之間하니 其理不可以一槩라
謂有心然後有知乎인댄 則蚓無心이요 謂凡動物皆有知乎인댄 則水亦動物也라
人獸生而有知라가 死則無知矣요 蓍龜生而無知라가 死然後有知也니 是皆不可窮詰이라
그가 허공에 형상을 만들어놓고 형상을 벗어나 허공으로 돌아감을 보라.
대나무가
知覺이 있다고 한다면 처마 밑에서 생겨나서는 안 되고, 지각이 없다고 한다면 이에 난간을 피해 줄기를 구부려 그 생명을 온전히 지킬 수 있다.
李霆, 대나무(국립중앙박물관)
대나무가 정말 지각이 있다면 지각이 있기로는 사람만 한 것이 없으니, 사람은 萬物 가운데 가장 神靈스럽지만 만물에 대해 알지 못하는 점들이 많다.
그리고 사람이 자기 몸에 대해 스스로 알지 못하는 점이 있는 것으로 말하자면, 이를테면 騈拇와 枝指, 懸疣와 附贅 모두 그 생겨난 까닭을 알 수가 없다.
사람의 신령한 지각으로도 자기 몸에 대해 알지 못하니, 가령 대나무가 비록 지각이 있다 하더라도 대나무 스스로 그 굽거나 곧게 자라는 까닭을 필시 알지 못할 것이다.
대나무가 정말로 지각이 없다고 한다면 지각이 없기로는 이를테면 마른 풀과 죽은 뼈만 한 것이 없으니 이른바
蓍龜가 이것이다.
蓍(≪三禮圖≫) 龜(≪三禮圖≫)
예로부터 위대한 聖人과 智者가 알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蓍龜에게 물어보고 결정하였으니, 이는 마른 풀과 죽은 뼈가 가진 지각이 도리어 聖人과 智者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나은 것이다.
마른 풀과 죽은 뼈가 이와 같다고 하면 대나무가 지각이 있지 않을 줄 어찌 알겠는가. 그런데 종국에 蓍龜가 신령스러운 지혜를 가졌다 하여 만물이 모두 지각이 있다고 여겨버린다면,
기타 풀과 나무, 기와와 돌은 두드려봐도 더 아무 반응이 없어 모두 아는 것이 없다는 문제가 있으니, 그렇다면 대나무가 반드시 지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를 통해 말한다면 대나무가 지각이 있다고 하는 것도 안 되고 대나무가 지각이 없다고 해서도 안 되며, 대나무가 지각이 있는지 지각이 없는지는 다 알 수 없다고 한 뒤에야 옳은 것이다. 만물이 天地 사이에서 생겨나는데 만물의 이치는 하나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가 없다.
마음이 있은 뒤에 지각이 있다고 말한다면 지렁이는 마음이 없다는 문제가 있고, 동물들이 모두 지각이 있다고 말한다면 물[水] 또한 동물이라는 문제가 있다.
사람과 짐승이 살아 있을 때에는 지각이 있다가 죽으면 지각이 없어지고, 蓍龜가 살아 있을 때에는 지각이 없다가 죽은 뒤에야 지각이 있게 되니, 이는 모두 끝까지 따져 알 수 없는 문제이다.
그래서 聖人께서 그 알 수 있는 것을 다루고 그 알 수 없는 것을 내버려두었으니, 이것을 일러 大中한 道라고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