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 曰 此
爾
라 智者
는 識其性
하야 當復中庸
이요 愚者
는 雖讀此
나 不曉也
니 不作可焉
이라하고
又讀
하야 以謂翶特窮時憤世無薦已者
라 故丁寧如此
하니 使其得志
면 亦未必然
이라하고
以翶爲秦漢間好俠行義之一豪雋
이요 亦善論人者也
러라 最後讀
然後
에 置書而歎
하고 歎已復讀
하야 不自休
라
恨翶不生於今하야 不得與之交하고 又恨予不得生翶時하야 與翶上下其論也러라
若翶獨不然
하야 其賦曰 衆囂囂而雜處兮
여 咸歎老而嗟卑
로다 로다하고
嗚呼라 使當時君子皆易其歎老嗟悲之心하야 爲翶所憂之心이면 則唐之天下가 豈有亂與亡哉아
然翶幸不生今時
하니 見
면 則其憂又甚矣
라 奈何今之人不憂也
오
余行天下
에 見人多矣
니 有一人能如翶憂者
면 又皆疏遠
이 與翶無異
요
其餘光榮而飽者는 一聞憂世之言이면 不以爲狂人則以爲病癡子요 不怒則笑之矣라
嗚呼라 在位而不肯自憂하고 又禁他人使皆不得憂하니 可歎也夫인저
글의 발단이 모두 당시의 일에 대한 느낌을 서술하는 데 있고 世態를 憤激하는 데 중점을 돌렸다.
내가 처음 李翶의 〈復性書〉 3篇을 읽고서 “이는 ≪中庸≫의 義疏일 뿐이다. 지혜로운 자는 자신의 性을 알아 中庸을 회복할 것이고, 어리석은 자는 비록 이 글을 읽더라도 뜻을 알지 못할 것이니 짓지 않는 게 옳다.”라고 하였고,
또 〈與韓侍郞薦賢書〉를 읽고서 “李翶가 단지 곤궁할 때 세상에서 자기를 천거해주는 이가 없는 데 분을 품었으므로 이와 같이 간곡하게 말하였을 뿐이니, 만약 그가 뜻을 얻었다면 또한 꼭 이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여기고서,
李翶를 秦漢시대의 俠氣를 좋아하고 義理를 실천하는 한 호걸이자 또한 남을 평론하기 좋아하는 자라고 여겼다. 그런데 최후에 〈幽懷賦〉를 읽은 뒤에는 글을 놓고 탄식하다가 탄식을 그치고 다시 읽기를 반복하면서 스스로 그만두지 못했다.
나는 李翶가 지금 세상에 태어나지 못해 그와 더불어 사귀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여겼고, 또 내가 李翶 당시에 태어나서 李翶와 더불어 토론하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여겼다.
게다가 李翶의 당대인으로 道가 있으면서 문장을 잘 지은 이로는 韓愈만 한 이가 없었다. 韓愈가 일찍이 賦를 지었는데 그 내용이 두 마리 새의 光榮을 부러워하며 한 번도 배부른 적이 없었음을 탄식한 데 불과하였다. 이러한 마음을 미루어나가게 되면 만약 光榮을 누리고 배부르게만 된다면 다시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고는 홀로 그렇지 않아서 그가 지은 賦에 “무리가 떠들썩하게 어지러이 모여 있음이여, 모두들 늙음을 탄식하면서 지위가 낮음을 한탄하도다. 내 마음이 그렇지 않음을 보니 세상에 아직도 도가 행해지지 못함을 염려하노라.”라고 하였고,
또 神堯가 한 무리의 군대로 천하를 취하였는데 후세의 자손들은 천하를 가지고 河北을 소유하지 못하는 것을 괴이하게 여기며 근심으로 삼았다.
아, 만약 당시의 군자들이 모두 그 늙음을 탄식하고 一身을 서글퍼하는 마음을 바꾸어 이고가 근심했던 마음을 먹었다면 唐의 天下가 어찌 혼란에 빠지고 멸망하였겠는가.
그러나 李翶가 다행히 오늘날에 태어나지 않았으니 지금의 일을 그가 본다면 그 근심이 더욱 깊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지금 사람들은 근심하지 않는 것인가.
내가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만난 사람들이 많으니 설령 그중에 이고처럼 근심할 수 있는 자가 있었다면, 또 모두 이고와 다름없이 疏遠한 처지가 되었을 것이고,
이외에 光榮을 누리면서 배부른 자들은 세상을 근심하는 말을 듣기만 하면 미친 사람이라 여기지 않으면 愚昧한 사람이라고 여기고는 성내지 않으면 비웃을 것이다.
아, 국가를 다스리는 지위에 있으면서 스스로 근심하려고 하지 않는 데다, 또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근심하지 못하게 금지하니 개탄할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