周太祖聖穆皇后柴氏는 無子하야 養后兄守禮之子하야 以爲子하니 是爲世宗이라
守禮는 字克讓이요 以后族拜銀靑光祿大夫檢校吏部尙書 兼御史大夫러니 世宗卽位에 加金紫光祿大夫檢校司空 光祿卿하다
致仕하고 居於洛陽하야 終世宗之世에 未嘗至京師어늘 而左右亦莫敢言하고 第以元舅禮之하다
而守禮亦頗恣橫하야 嘗殺人於市어늘 有司以聞한대 世宗不問하다 是時에 王溥王晏王彦超韓令坤等同時將相이 皆有父在洛陽한대
與守禮朝夕往來하야 惟意所爲하니 洛陽人多畏避之하고 號十阿父라 守禮卒年七十二요 官至太傅하다
以謂天下可無舜이나 不可無至公이요 舜可棄天下나 不可刑其父니 此爲世立言之說也라
然事固有不得如其意者多矣라 蓋天子有宗廟社稷之重과 百官之衛와 朝廷之嚴하야 其不幸有不得竊而逃하니 則如之何而可오
予讀周史라가 見守禮殺人에 世宗寢而不問이라 蓋進任天下重矣나 而子於其父亦至矣라
故寧受屈法之過하야 以申父子之道하니 其所以合於義者는 蓋知權也라
君子之於事에 擇其輕重而處之耳라 失刑은 輕하고 不孝는 重也나
刑者所以禁人爲非요 孝者所以敎人爲善이라 其意一也니 孰爲重이리오
刑一人이라도 未必能使天下無殺人이어늘 而殺其父하야 滅天性而絶人道면 孰爲重이리오
權其所謂輕重者면 則天下雖不可棄나 而父亦不可刑也라 然則爲舜與世宗者는 宜如何오
無使瞽叟守禮至於殺人이라야 則可謂孝矣라 然而有不得如其意면 則擇其輕重而處之焉이니 世宗之知權이 明矣夫져
周 太祖의 聖穆皇后 柴氏는 아들이 없어 皇后의 오빠인 柴守禮의 아들을 양육하여 아들로 삼았으니, 이 사람이 世宗이다.
시수례는 字가 克讓이고 황후의 親族으로 銀靑光祿大夫 檢校吏部尙書 兼御史大夫에 배수되었는데, 세종이 즉위함에 金紫光祿大夫 檢校司空 光祿卿을 더해주었다.
柴守禮는 致仕하고 洛陽에 거주하였고 世宗의 세대가 끝날 때까지 일찍이 京師를 방문한 적이 없었는데, 左右의 사람들도 감히 말하지 않았고 다만 세종의 外叔으로 예우하였다.
시수례 또한 몹시 방자하여 일찍이 저자에서 살인을 저질렀는데 有司가 이 사실을 세종에게 아뢰었지만 세종이 따지지 않았다. 이때에 王溥‧王晏‧王彦超‧韓令坤 등 同時의 將相들은 모두 親父가 낙양에 있었는데,
시수례가 이들과 아침저녁으로 왕래하며 오직 마음대로 행동하니, 낙양의 사람들이 대부분 두려워하여 피하고 十阿父라고 불렀다. 시수례가 卒하였을 때 나이는 72세였고 관직은 太傅에 이르렀다.
오호라!
父子의 은혜는 지극하다.
孟子가 말하기를 “
舜임금이
天子가 되었는데
瞽叟가 살인하였다면
天下를 버리고 몰래 업고 달아났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舜
이 말은 ‘천하에 舜임금이 없을 수는 있지만 지극히 공정함은 없어서는 안 되며, 舜임금은 천하를 버릴 수 있으나 그 아비를 벌할 수 없다.’는 뜻이니, 이는 세상을 위해 立言한 말이다.
그러나 일은 진실로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개 천자는 宗廟와 社稷의 중함과 百官의 호위와 朝廷의 지엄함이 있으니, 불행히도 몰래 업고 달아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옳은 것인가.
내가 周나라의 역사를 읽다가 柴守禮가 살인을 저지르자 世宗이 이를 숨기고 따지지 않았던 것을 보았다. 대개 나아가 천자가 된 것도 중한 것이지만 아들이 아버지에 대한 은혜 역시 지극하다.
그러므로 차라리 법을 잘못 집행했다는 과실을 받아들여 父子간의 도리를 펼쳤으니, 義理에 부합하는 이유는 대개 權道를 알았기 때문이다.
君子는 일에 대해 輕重을 택하여 처리할 뿐이다. 刑罰을 잘못 집행한 것은 가볍고 不孝를 저지른 것은 중하지만,
형벌은 사람이 그릇된 행동을 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고 효는 사람이 善을 행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므로 그 뜻은 한 가지이니 어느 것이 중한가.
한 사람을 처벌한다 하여 반드시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살인을 할 수 없게 하지는 못하는데, 자신의 아비를 죽여 天性을 멸하고 人道를 끊는다면 어느 것이 중한가.
이른바 경중을 저울질한다면 천하는 비록 버릴 수 없으나 아비 역시 벌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舜임금과 世宗의 처지라면 의당 어떻게 해야 하는가.
瞽叟와 柴守禮로 하여금 살인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게 해야만 孝라고 이를 수 있다. 그러나 그 뜻대로 되지 않으면 경중을 택하여 처리해야만 하니, 세종이 權道를 아는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