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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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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원굉(袁宏)(328~376)이 편찬한 역사서로서 왕망(王莽) 원풍(元風) 4년(17)부터 후한 헌제(獻帝) 연강(延康) 원년(220) 조위(曹魏) 정권 수립까지 편년체 형식을 빌려 편찬한 역사서이다. 전 30권 21만 여 자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인 원굉이 편년체 방식을 채택하여 8년에 걸쳐 후한의 사서(史事)를 기록한 것은 순열(荀悅)이 편찬한 ≪한기(漢紀)≫의 영향을 받은 것이 크기 때문이다.

2. 저자

(1) 성명:원굉(袁宏)(A.D.328-376)
(2) 자(字)·별호(別號):자는 언백(彦伯), 어릴 적 호(虎) 또는 원호(袁虎)라고 불리었다.
(3) 출생지역:진군(陳郡) 양하현(陽夏縣)(현 중국 하남성(河南省) 태강현(太康縣))
(4) 주요활동과 생애
진 성제(晉成帝) 함화(咸和) 3년(328) 후한 영제(靈帝)시기 사도(司徒)를 역임한 7대조(祖) 원방(袁滂)과 조위(曹魏) 정권에서 낭중령(郎中令)에 임명된 6대조(祖) 원환(袁涣) 이래로 “원씨 자손은 대대로 명성과 지위가 있다.[袁氏子孫世有名位]”로 불린 명문 집안에서 출생했으나 어린 나이에 부친 원욱(袁勖)이 세상을 떠나자 가세는 급격히 기울었다. 처음 사상(謝尙)에 의해서 관직에 나가게 되었다. 환온(桓溫)이 북벌을 하자 이에 참가하였으나 환온의 전횡과 찬역모의(簒逆謀議)에 대해 여러 차례 비판을 하여 높은 관직에 오를 수 없었다. 환온이 죽은 뒤, 비로소 이부랑(吏部郞)을 거쳐 동양군(東陽郡) 태수에 임명되었으나 진 효무제(晉孝武帝) 태원(太元) 원년(376) 49세에 임지(任地)에서 병사하였다.
(5) 주요 저작:≪죽림명사전(竹林名士傳)≫ 3권 및 ≪동정부(東征賦)≫, ≪북정(北征賦)≫, ≪삼국명신송(三國名臣頌)≫ 등이 있으나 현재 전해지는 것은 ≪후한기(後漢紀)≫이다.

3. 서지사항 특징

≪후한기≫는 구성에서 매우 두드러진 특징을 보이고 있다. 전30권 가운데 〈광무기(光武紀)〉 8권, 〈헌제기(獻帝紀)〉 5권, 〈영제기(靈帝紀)〉 3권으로 후한 성립기의 광무제와 멸망기의 영제 및 헌제 시기의 기술이 전체 구성의 1/2를 넘는 분량으로 서술되어 있다. 특히 멸망시기에 대한 서술이 상대적으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조조(曹操)의 권력 성립 과정에 대한 저자의 특별한 사상 내지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이러한 의도는 ≪후한기≫에 보이는 “원굉왈(袁宏曰)”이라는 평론 49개의 내용 가운데 17개는 광무제기에 해당하고 나머지 32개의 내용 가운데 14개가 멸망시기(환제 5개·영제 4개·헌제 5개)에 해당하고 있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이 점은 원굉이 후한 멸망기에 보다 많은 견해를 제시한 것으로 한위선양혁명(漢魏禪讓革命)에 이르는 과정에 대해서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동시에 원굉 자신의 역사인식 내지는 사관을 표현한 것이며 구체적으로는 왕조교체에 대한 정통론 문제를 언급한 것이다.

4. 내용

≪후한기≫는 편년체 서술의 장점의 하나인 시간을 하나의 축으로 설정하여 후한의 역사 발전 과정을 서술하고 있으며 이 서술 과정에서 인물과 사건을 또 다른 축으로 하여 동시기 각 사건의 인과관계 및 역사발전 과정에서 인간과 사물의 작용 등을 서술하여 후한시대에 대한 종합적 이해를 제공하고 있다. 8권의 분량인 광무제 시기를 기본적인 배경으로 삼아 적미(赤眉)·평림(平林) 기의(起義) 등과 왕망(王莽)의 몰락, 群雄의 성쇠 등을 종합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또한 후한의 개국공신들의 생애와 전적, 인물들의 특색 등에 대해 서술하여 후한 개국의 역사를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반면에 후한 말기의 해당 내용은 6권 분량으로 황건기의(黃巾起義)부터 동탁(董卓)의 권력장악, 군웅의 혼전, 조조(曹操)의 득세, 적벽지전(赤壁之戰) 및 한(漢)을 계승한 조위 曹魏 등에 대해 명료하고 자세한 서술을 하고 있다.

5. 가치와 영향

≪후한기≫는 편년체 역사서술 방식을 채택하여 후한의 역사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순열(荀悅)이 편찬한 ≪한기≫의 서술을 계승한 역사서이다. 원굉이 ≪후한기≫를 저술할 당시 다양한 판본이 있었지만 매우 난잡하여 읽기도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착오가 많고 순서가 없었기 때문에 8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서술의 이동(異同)을 정정(訂正)하여 후한 200년 역사의 전후를 순서가 있는 형태로 만들었다는 점이 커다란 의미가 있다. 따라서 현재 후한의 역사와 관련한 저작 가운데 범엽(范曄)이 편찬한 ≪후한서(後漢書)≫와 원굉의 ≪후한기≫는 주요 저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이보다 앞서 진(晉) 동양태수(東陽太守) 원굉(袁宏)은 ≪한씨후서(漢氏後書)≫를 편찬하였고 순열(荀悅)의 서술 방식에 근거하여 ≪후한기(後漢紀)≫ 30편(篇)을 저술하였다. 세상에 한(漢)의 중흥을 말하는 사가는 오직 범엽(范曄)과 원굉일 뿐입니다.[先是 晉東陽太守袁宏抄撮≪漢氏後書≫, 依荀悅體 著後漢紀三十篇 世言漢中興者, 唯范袁二家而已]” ≪사통(史通)≫ 〈고금정사(古今正史)〉
• “무릇 사전(史傳)이 흥성하는 것은 고금(古今)을 통해서 명교(名敎)를 돈독히 하는 것이다. 좌구명(左丘明)의 저작은 광대하고 자세하며 사마천은 육가(六家)(음양가, 유가, 묵가, 명가, 법가, 도덕가)를 분석하여 십서(十書)를 세웠으니 한갓 사실만을 기록한 것은 아니다. 진실로 교의(敎義)를 지지하고 밝히며 예로 다스리는 것을 망라하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그것을 다하지 못하였다.[夫史傳之興 所以通古今而篤名敎也 丘明之作 廣大悉備 史遷剖判六家 建立十書 非徒記事而已 信足扶明義敎 網羅治禮 然未盡之]” 〈서(序)〉
• “다음 해에 유비는 스스로 천자가 되었다.[明年 劉備自立爲天子]” 〈권30 효헌황제기(孝獻皇帝紀)〉
(2) 색인어:후한기(後漢紀), 원굉(袁宏), 한기(漢紀), 순열(荀悅), 원굉전(袁宏傳)
(3) 참고문헌
• 後漢紀(中林史朗 외)
• 後漢紀校注(周天游)
• 兩漢紀 下冊 後漢紀(中華書局, 2002)
• 〈論≪後漢紀≫的史學價値〉(陳長琦, ≪商丘師範學院學報≫, 1990(3))
【김경호】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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