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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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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장재(張載)는 북송(北宋)시대의 걸출한 철학자이다. 그는 주돈이(周敦頤), 소옹(邵雍), 정호(程顥), 정이(程頤)와 더불어 ‘북송의 다섯 선생님[北宋五子]’으로 불리는데, 그의 학문은 주자학 형성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였다.
《장자전서(張子全書)》는 장재의 시와 글을 담고 있다. 현재 보급되는 장재 저작의 판본은 대부분 명나라 만력(萬曆) 48년(1620)에 봉상(鳳翔) 태수 심자창(沈自彰)이 주도하여 간행한 《장자전서(張子全書)》이다.

2. 저자


(1) 성명:장재(張載)(1020~1077)
(2) 자(字)·별호(別號):자는 자후(子厚), 별호는 횡거선생(橫渠先生).
(3) 출생지역:원적(原籍)은 대량(大梁)(개봉(開封)), 출생지는 장안(長安), 오랫동안 거주한 곳은 봉상미현(鳳翔郿縣) 횡거진(橫渠鎭)이다.
(4) 주요활동과 생애
장재는 어렸을 때부터 자립심이 강했다. 당시 대부분의 유학자들이 정통 유가 경전에만 천착하여 이전 시대 학자들의 학설을 맹종한 데 비해 비교적 자유롭고 폭넓은 독서를 했다. 또한 몇십 년간의 고심어린 탐구를 통해 스스로 체득한 바가 많았다. 장재의 사상에서 다른 학자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합리성과 독창성이 엿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며, 당시로서는 놀랄 만한 수준인 자연과학적 성과들까지 엿볼 수 있다. 서하(西夏)와 접한 국경 지역 횡거진에서 오랫동안 지낸 까닭에 병법에 관심이 많았는데, 병법은 곧 자연과학과 직결되는 것으로서 특히 천문학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장재는 《중용(中庸)》을 위시한 유가의 경전을 비롯하여 불가, 도가의 전통 경전을 수년간 읽고 탐구했다.
서른여덟에 과거시험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고, 마흔여덟에 위주(渭州)에서 군사판관(軍事判官)을 지냈으며, 쉰이 되던 해에 여공저(呂公著)의 추천으로 신종(神宗)의 총애를 받을 기회가 있었으나 사양했다. 당시 권력을 차지하고 있던 왕안석(王安石)의 공리적(功利的) 입장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후 관직을 사직하고 횡거진으로 돌아온 후 7년간 온종일 한 방에 정좌한 채 도에 뜻을 두고 깊이 생각하는 것을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쉰여덟에 지태상예원(知太常禮院)을 제수받고 다시 조정에 나아갔으나 뜻이 맞지 않아 곧바로 사직하고 횡거진으로 돌아가던 도중 임동(臨潼)의 객사에서 생애를 마쳤다.
(5) 주요저작
《근사록(近思錄)》의 ‘인용서목(引用書目)’에 의하면, 장재의 저작으로 《정몽(正蒙)》, 《문집(文集)》, 《역설(易說)》, 《예악설(禮樂說)》, 《논어설(論語說)》, 《맹자설(孟子說)》, 《어록(語錄)》이 있다. 이 중에서 《예악설》, 《논어설》, 《맹자설》은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조공무(晁公武)의 《군재독서지(郡齋讀書志)》에는 이 외에도 《춘추설(春秋說)》, 《신문기(信聞記)》, 《숭문집(崇文集)》 등의 서명이 기록되어 있으나 원문은 전하지 않는다.

3. 서지사항


장재의 저작이 선집(選集)의 형태로 최초로 발간된 것은 남송 단평(端平) 2년(1235)이나, 비교적 완정(完整)된 형태의 《장자전서(張子全書)》는 서필달(徐必達)에 의해 명나라 만력(萬曆) 34년(1606)에 출간되었다. 그 뒤 만력 48년(1620)에 다시 봉상(鳳翔) 태수 심자창(沈自彰)이 주도하여 《장자전서》를 간행하였다. 현행본 《장자전서(張子全書)》 중에서 가장 완비된 형태는 중화서국(中華書局) 판본 《장재집(張載集)》(1978)이다. 이 책은 종래의 《장자전서》를 참고하고 송(宋)나라 판본의 《어록(語錄)》을 채록하였고, 또한 《주역계사정의(周易繫辭精義)》를 면밀하게 검토하여 가장 완성된 형태의 판본을 이루었다.

4. 내용


《장자전서(張子全書)》는 북송시대의 유학자 장재의 저술을 편찬한 것이다. 장재는 일생동안 상당한 양의 저술을 남겼으나 현재까지 전해지는 것은 그 중 일부분이다. 《근사록(近思錄)》, 《군재독서지(郡齊讀書志)》, 《군재독서지부지(郡齊讀書志附志)》 등의 기록에 의거하면, 장재의 저술로는 《서명(西銘)》, 《동명(東銘)》, 《역설(易說)》, 《이굴(理窟)》, 《예악설(禮樂說)》, 《논어설(論語說)》, 《맹자설(孟子說)》, 《신문기(信聞記)》, 《횡거맹자해(橫渠孟子解)》, 《숭문집(崇文集)》, 《어록(語錄)》, 《제례(祭禮)》, 《문집(文集)》 등이 있었다. 그러나 송대 이후 많은 부분이 유실(流失)되고, 명대 만력(萬曆) 연간에 심자창(沈自彰)이 남은 저술을 수습하여 《장자전서》를 간행하였으나, 《서명》, 《동명》, 《정몽》, 《이굴》, 《역설》과, 명대의 여남(呂柟)이 1526년에 편집한 《장자초석(張子抄釋)》 중의 《어록초(語錄抄)》, 《문집초(文集抄)》 정도가 수록되어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대표저작은 《정몽(正蒙)》과 《역설(易說)》이라 할 수 있다. 《정몽》은 장재 사상의 핵심으로 평가받는다. 장재는 스스로 이 책을 평하여 “이 글은 내가 여러 해 동안 고심하여 얻은 것이다.[此書予歷年致思之所得](《행장(行狀)》)”라고 하였다. 종래 대부분의 중국 고전이 그러하듯이 《정몽》 또한 존재론(본체론·우주론·생성론), 인성론(심성론), 지식론(인식론), 윤리학 등의 주제가 뒤섞여 있는 종합적인 성격의 저작인데, 그의 기론적(氣論的) 세계관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정몽》 제17편의 첫머리와 끝부분에 수록된 《서명》과 《동명》은 별도로 분리되어 중하게 여겨졌는데, 특히 《서명》은 도학(道學)의 원류를 이루는 중요한 저작으로 평가받는다.
《역설》은 일명 《횡거역설(橫渠易說)》이라고도 한다. 이 책은 《주역》의 편제에 따라 풀이한 <상경(上經)>, <하경(下經)>, <계사상전(繫辭上傳)>, <계사하전(繫辭下傳)>, <설괘전(說卦傳)>, <서괘전(序卦傳)>, <잡괘전(雜卦傳)>이 있다. 장재의 역학(易學)은 원기(元氣)와 음양이기(陰陽二氣)를 가지고 역리(易理)를 풀이해온 한(漢)·당(唐) 이래의 역학 이론을 비판적으로 계승한 기론적 역학이다. 장재로부터 송역(宋易) 의리파(義理派) 역학 가운데서도 기학파(氣學派)의 역학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장재는 “유는 무에서 생겨난다.[有生於無]”는 도가의 입장에 반대하며, 또한 도가 학설로써 《주역》의 원리를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그 외에도 《경학이굴(經學理窟)》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장재의 예학사상(禮學思想)을 살펴보기 위한 필독서이다. 장재는 학자로서 예학을 중시했지만 정치가로서도 실제로 고대의 예법을 실현해보고자 애썼다. 그런 만큼 장재의 사상에 있어서 예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장재의 기론(氣論)은 예학사상과 논리적으로 수미일관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사상을 총체적으로 해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학사상에 대한 검토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5. 가치와 영향


《장자전서》는 장재의 저작을 편찬한 것으로서 기론적(氣論的) 이론구조에 바탕한 중국 근세철학의 사상적 연원을 보여준다. 장재에게 기(氣)란 인간과 세계와 자연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다. 장재는 강함과 약함, 느림과 급함, 재주 있음과 없음이 모두 기의 치우침으로 생겨난 현상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기를 수양하여 본성을 극진히 하면 하늘과 같아진다고 생각했다. 인간과 자연과 세계가 조화를 이룬 만물의 극치를 꿈꾼 장재의 사상적 편린들을 《장자전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북송(北宋)시대는 문인(文人)들이 조정을 장악했기 때문에 전통 학문과 문화·예술이 크게 발전했다. 그러나 상당수 지식인들은 불교와 도교 사상이 지닌 형이상학적 이론에 깊이 몰두했으며, 일반 민중은 그것을 민간 신앙으로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유학자들은 불교와 도교를 내세만을 추구하는 속임수라고 단정하고 타파하려 했다. 장재는 유학이 한대(漢代) 이후 ‘외왕(外王)’에만 지나치게 치중해왔다고 생각해서 ‘내성(內聖)’을 보완하기 위해 고심했다. 즉 그는 전통 유가 철학의 철학화와 형이상학화에 골몰했으며, 그 결과 유가 경전 가운데서도 형이상학적 기초가 튼튼한 《중용》과 《주역》을 연구하는 데에 힘을 쏟았다. 그러한 면에서 《장자전서》는 장재 사상을 확인할 수 있는 기본 텍스트일 뿐만 아니라, 또한 중국 신유학의 이론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6. 참고사항


(1) 명언
‧ “태허(太虛)는 형체가 없으니 기(氣)의 본래 모습이며, 기가 모이고 흩어지는 것은 변화의 일시적 모습일 뿐이다.[太虛無形 氣之本體 其聚其散 變化之客形爾]” 《정몽(正蒙)》 〈태화편(太和篇)〉
‧ “사람들은 모두 한 배[腹]에서 태어난 형제이고, 만물은 모두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동료이다.[民吾同胞 物吾與也]” 《서명(西銘)》
‧ “신묘함을 궁구하고 조화를 알게 되면 하늘과 더불어 하나가 된다.[窮神知化 與天爲一]” 《횡거역설(橫渠易說)》 〈계사전(繫辭傳)〉
‧ “세상을 위해 마음을 정하고, 백성들을 위해 명을 세우며, 옛 성인들의 끊어진 학문을 잇고, 후세를 위해 태평시대를 연다.[爲天地立心 爲生民立命 爲往聖繼絶學 爲萬世開太平]” 《근사록습유(近思錄拾遺)》
(2) 색인어:경학이굴(經學理窟), 기론(氣論), 서명(西銘), 장재(張載), 정몽(正蒙), 횡거역설(橫渠易說)
(3) 참고문헌
‧ 張載集(張載, 北京:中華書局, 1978)
‧ 張載年譜(張波, 西安:西北大學出版社, 2015)
‧ 張載思想硏究(朱建民, 臺北:文津出版社, 1989)
‧ 正蒙(張載 撰, 장윤수 역, 서울:책세상, 2002)
‧ 橫渠易說(張載 撰, 장윤수 역, 서울:지만지, 2008)


【장윤수】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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