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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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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재도회(三才圖會)》는 중국의 전통적 서적 분류에서 유서(類書)에 속하는, 일종의 도설백과사전(圖說百科事典)에 해당되는 책으로 명말 만력(萬曆) 연간에(1609년 무렵) 왕기(王圻)와 그의 아들인 왕사의(王思義)에 의하여 편찬된 책이다. 전체 106권으로 이루어졌으며, 약 6000매 정도의 풍부한 삽화가 들어 있어서 그림이 문자보다 주가 되는 도설백과사전으로, 간행되었을 당시 유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후 중국은 물론이고 조선과 일본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폭넓은 영향을 미쳤으며, 그 영향력은 현대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2. 편자

(1) 성명:왕기(王圻)(1530~1615), 왕사의(王思義)(?~?)
(2) 자(字)·별호(別號):왕기의 자(字)는 원한(元翰), 호(號)는 홍주(洪洲), 왕사의의 자는 윤명(允明)이다.
(3) 출생지역:왕기의 출생지는 명대 운간(雲間)(현 상해(上海)), 왕사의의 출생지는 화정현(華亭縣)(현 상해)이다.
(4) 주요활동과 생애
왕기에 대해서는 《명사(明史)》에 기록이 보인다(《明史》 〈列傳 第174, 文苑2〉). 왕기는 명대 세종(世宗) 가정(嘉靖) 9년(1530)에 태어나 신종(神宗) 만력(萬曆) 43년(1615) 향년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왕기는 가정 44년(1565)의 진사(進士)로서 청강현(淸江縣), 만안현(萬安縣)의 지사(知事)를 거쳐 운남도감찰어사(雲南道監察御史)가 되었으나, 강직한 성격으로 직언을 서슴지 않아 당시 권력을 잡고 있었던 장거정(張居正) 등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 복건안찰첨사(福建按察僉事)로, 또 공주판관(邛州判官)으로 좌천되었다. 그 후 진현현(進賢縣)과 조현(曹縣)의 지사(知事)를 거쳐 개주(開州)의 지주(知州)가 되었고 섬서포정참의(陝西布政參議) 등을 역임하였는데, 만력 14년(1586) 56세 되던 해에 마침내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송강(淞江)(현 상해)의 가장자리에 매화나무 만 그루를 심어 매화원(梅花源)이라 칭하고 저술활동에 몰두하였다. 왕기는 관직생활의 부침 속에서도 저술활동에 열심이었을 뿐만 아니라 서적 수집에도 힘을 기울여 당시 장서가로 이름이 높았는데, 그의 학문 성향은 공소한 학풍에 반대하고 실학을 존중하며 많은 서적을 읽고 널리 취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그의 학문 성향과 장서들은 종합백과사전의 성격을 지닌 《삼재도회》의 편찬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삼재도회》의 공동 편자이자 그의 아들인 왕사의(王思義)에 대해서는 당국사(唐國士)가 쓴 《삼재도회》의 〈지리도서(地理圖序)〉에서 언급되고 있다. 즉 왕사의는 광문(廣文)(유학교관(儒學敎官))에 종사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태학상사(太學上舍)와 육관(六館)을 거친 뒤 관직을 떠나 아버지를 도와서 저술활동에 몰두하였다.

(5) 주요 저작:왕기의 저서로는 《삼재도회》 외에도 《속문헌통고(續文獻通考)》, 《패사휘편(稗史彙編)》, 《홍주유고(洪洲類稿)》, 《양절염지(兩浙鹽志)》, 《시법통고(謚法通考)》 등이 있다. 왕사의의 저서로는 《송사찬요(宋史纂要)》, 《향설림집(香雪林集)》 등이 있다.

3. 서지사항

《삼재도회(三才圖會)》라는 서명에서 ‘삼재(三才)’는 ‘천(天)’, ‘지(地)’, ‘인(人)’을 총칭하여 일컫는 말로서 삼라만상을 의미하며, ‘도회(圖會)’는 그림을 모아놓은 것을 뜻하니, ‘삼재도회’는 결국 삼라만상을 그린 그림을 모아놓았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은 제목은 삼라만상의 모든 것을 그림으로 나타내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삼재도회》는 모두 106권으로 이루어졌으며, 천문(天文), 지리(地理) 등 14부문으로 나뉘어져 있고, 매 항목별로 그림이 먼저 오고 다음에 그에 대한 설명이 첨부되어 있는 형식이다. 이 책의 권두에 실려 있는 주공교(周孔敎)의 서문에는 1609년이라고 적혀 있고, 편찬자인 왕기의 서문에는 1607년으로 적혀 있으니 아마도 1607년에 책의 편집이 완성되고 1609년 무렵 간행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이 책의 앞부분에 해당하는 천문(天文), 지리(地理), 인물(人物) 편의 맨 앞에는 ‘운간(雲間)의 자(字)가 원한(元翰)인 부친 왕기(王圻)가 편집하였고, 그 아들인 사의(思義)가 교정하였다.[雲間元翰父王圻纂集 男思義校正]’라고 적혀 있고, 나머지 부문의 앞에는 ‘운간(雲間)의 자(字)가 윤명(允明)인 부친 왕사의(王思義)가 이어서 편집하였다.[雲間允明父王思義續集]’라고 적혀 있어서, 왕기의 주도로 먼저 천문, 지리, 인물 부문이 이루어지고, 왕사의가 나머지 부분을 보완하여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고병겸(顧秉謙)은 〈삼재도회서(三才圖會序)〉에서 “앞의 세 부문은 모두 어사공(御史公)(왕기)이 찬한 것이고, 그 뒤는 윤명씨(允明氏)(왕사의)가 이어서 찬한 것이다.[前三圖皆出御史公手裁而後則允明氏之所續]”라고 하여 이러한 내용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삼재도회》의 판본은 대체로 동일한 계통의 3종 판본으로 정리된다.
첫 번째 종류는 만력 37년(1609) 무렵 처음으로 간행된 ‘왕사의(王思義) 교정본’이다. 이 판본은 상해도서관(上海圖書館), 중국국가박물관(中國國家博物館), 중국과학원자연과학사연구소(中國科學院自然科學史硏究所), 중국사회과학원역사연구소(中國社會科學院歷史硏究所), 대만중앙도서관(臺灣中央圖書館), 일본 경도대학인문과학연구소(京都大學人文科學硏究所) 등 많은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어서 이 판본이 가장 중요한 통행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판본은 1988년에 상해고적출판사(上海古籍出版社)에서 상해도서관(上海圖書館) 소장본에 의거하여 영인본을 간행하여 널리 통행되고 있다.
두 번째는 명말 숭정(崇禎) 연간에 간행된 ‘증손(曾孫) 이빈(爾賓) 중교본(重校本)’인데, 이 판본은 초간본인 ‘왕사의 교정본’과 차이점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부단대학도서관(復旦大學圖書館), 하남대학도서관(河南大學圖書館) 등에 소장되어 있다.
세 번째는 청 강희(康熙) 연간에 간행된 ‘담빈(潭濱) 황성(黃晟) 동서씨(東曙氏) 중교본(重校本)’인데, 이 판본도 자체(字體) 등 ‘왕사의 교정본’과 일치하는 점이 많아서 ‘왕사의 교정본’의 수보(修補) 중각본(重刻本)이라고 판단된다. 이 판본은 1970년 대북성문출판유한공사(臺北成文出版有限公司)에서 대만중앙도서관 소장본에 의거하여 영인 간행되었다.

4. 내용

《삼재도회》는 종합백과사전으로서 그 구성은 천문(天文) 4권, 지리(地理) 16권, 인물(人物) 14권, 시령(時令) 4권, 궁실(宮室) 4권, 기용(器用) 12권, 신체(身体) 7권, 의복(衣服) 3권, 인사(人事) 10권, 의제(儀制) 8권, 진보(珍寶) 2권, 문사(文史) 4권, 조수(鳥獸) 6권, 초목(草木) 12권의 14부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은 중국의 기존 유서(類書)의 체제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만, 《삼재도회》에는 대략 6000매 정도의 그림이 들어 있어서 명말 장횡(章潢)의 《도서편(圖書編)》 등 고대 중국의 다른 도설백과사전들과 비교할 때에도 그림의 비중이 매우 높은 편이다. 즉 그림이 문자 설명의 보조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이 주가 되고 문자는 그림을 설명해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편찬자의 이와 같은 의도는 서명 등 다양한 측면에서 엿볼 수 있으며, 그 내용도 다른 종합적인 유서들과 비교할 때 정보 전달 측면에서 그림의 역할이 필수적인 지리(地理), 기용(器用), 조수(鳥獸), 초목(草木) 부문의 분량이 많은 편이고, 유가 경전이나 문학, 역사 등에 관련된 사변적이고 추상적인 지식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5. 가치와 영향

《삼재도회》는 그림의 효용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인간생활과 관련된 모든 것을 그림으로 나타내려고 하였다. 《사림광기(事林廣記)》나 《도서편(圖書編)》과 같은 중국 고대 도설백과사전에서 그림은 어디까지나 문자의 보조수단에 불과하나, 《삼재도회》에서는 그림이 주가 되고 문자는 그림에 대한 설명의 역할을 한다. 이처럼 그림의 역할을 중시한 도설백과사전은 중국에서 청말까지 《삼재도회》가 유일하여 그 독창성이 인정된다. 또한 《삼재도회》는 문인의 사찬(私撰)으로서 기본적으로 지식인 계급을 독자층으로 하는 책이지만, 그 내용에서는 당시 서민들이 즐기는 놀이까지도 포함하는 등 일상생활에 관련된 사항을 매우 광범위하게 그림으로 남기고 있어서 오늘날에도 그 자료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삼재도회》는 발간된 후 중국에서는 물론이고 당시 조선과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면 청대의 도설백과사전인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에서도 《삼재도회》의 그림을 자료로 사용하였으며, 조선시대에도 실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꽤 넓은 독자층이 형성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과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서도 많은 횟수는 아니지만 인용되고 있다. 또한 일본 에도시대에는 데라시마 료안(寺島良安)이 《삼재도회》의 체제를 본받아서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會)》를 편찬하였으니 《삼재도회》가 간행된 후 동아시아의 출판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6. 참고사항

(1) 명언
• “나는 일찍이 한금대(韓琴臺)라고 하는 사람의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책에서 “그림은 우주의 조화(造化)를 이루고, 인륜을 도우며, 만물의 변화를 다하고, 심오한 진리를 헤아리는 것이다.”라고 하였다.[嘗讀韓琴臺書有云 圖畵所以成造化 助人倫 窮萬變 測幽微]“ 〈삼재도회인(三才圖會引)〉
• “이 책은 그림을 앞에 두고, 설명을 뒤에 놓아, 그림과 문자 설명이 서로 검증해주도록 하였다. [是編也 圖繪以勒之于先 論說以綴之于後 圖與書相爲印證]” 〈삼재도회인(三才圖會引)〉
• “지리 편에서는 중국 전체를 면밀하게 모두 그림으로 그려낼 수는 없어서 오직 명산과 대천을 그려넣어서 와유(臥遊)하는 사람이 감상을 위한 자료로 삼도록 하였다.[地理 凡神州赤縣 星羅棊布 不能盡圖 止圖所在名山大川以資臥遊者之賞]” 〈삼재도회범례(三才圖會凡例)〉
(2) 색인어:삼재도회(三才圖會), 왕기(王圻), 왕사의(王思義), 그림, 도설백과사전, 유서(類書), 삽화, 문자, 명말(明末)
(3) 참고문헌
• 《三才圖會》(王圻·王思義, 上海古籍出版社, 1988)
• 《三才圖會》(王圻·王思義, 臺北成文出版社, 1970)
• 《三才圖會》(王圻·王思義, 민속원, 2014)
• 《《三才圖會》設計思想研究》(範雄華, 上海大學, 博士學位 論文, 2018)
• 〈《三才圖會》硏究〉(兪陽, 復旦大學, 碩士學位論文, 2003)
• 〈《三才圖會》와 朝鮮後期 繪畫〉(최정임, 홍익대학, 석사학위 논문, 2003)
• 〈17세기 중국의 과학과 《삼재도회(三才圖會)》(1) -과학서로서의 의미를 중심으로〉(김지선, 《中國語文學誌》54, 2016)
• 〈17세기 중국의 과학과 《三才圖會》(II) ― 圖鑑으로서의 의미를 중심으로〉(김지선, 《중국어문논총》79, 2017)
• 〈명말 도설백과사전 《삼재도회(三才圖會)》의 의의 ― 그림과 문자의 결합 ―〉(고인덕, 《아시아문화연구》28, 2012)
• 〈조선시대에 있어서 도설백과사전 《三才圖會》의 수용〉(고인덕, 《중국어문학논집》77, 2012 )

【고인덕】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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