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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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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전석사(經傳釋詞)》는 청(清)나라 왕인지(王引之)가 가경(嘉慶) 시기부터 도광(道光) 시기까지 주요 경전을 포함한 경(經)과 관련한 내용에 대해 상세히 연구한 내용을 각각의 서적에 나오는 순서대로 배열한 책이다. 3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2. 저자

(1) 성명:왕인지(王引之)(1766~1834)
(2) 자(字)·별호(別號):자는 백신(伯申)이고, 호는 만경(曼卿)이고,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3) 출생지역:강소(江蘇) 고우(高郵)(현 중국 장수성(江蘇) 고우시(高郵市))
(4) 주요활동과 생애
할아버지는 왕안국(王安國)으로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지낸 학자이다. 아버지는 왕념손(王念孫)으로 청나라에서 손꼽히는 학자로 대진(戴震)의 제자이고 단옥재(段玉裁)의 후배로, 《광아소증(廣雅疏證)》과 《독서잡지(讀書雜志)》를 저술하였다. 왕인지는 가경(嘉慶) 4년(1799)에 진사(進士)가 되어 한림원편수(翰林院編修)를 거쳐 예부좌시랑(禮部左侍郎)에 발탁되었다. 가경 연간에 《경의술문(經義述聞)》과 《경전석사(經傳釋詞)》를 발간하였다. 도광(道光) 7년(1827)에 공부상서(工部尙書)로 진급하였다. 이후 《강희자전(康熙字典)》의 오류를 지적한 《강희자전고증(康熙字典考證)》 12책을 편찬하였다. 도광 14년(1834)에 사망하였다.
(5) 주요저작
주요 저작으로는 《경의술문(經義述聞)》과 《경전석사(經傳釋詞)》가 있다. 아버지 왕념손과의 합작으로 《광아소증(廣雅疏證)》과 《독서잡지(讀書雜志)》에도 많은 관여를 하였다.

3. 서지사항

《경의술문》은 총 3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명은 ‘경(經)에 나타나는 의미에 대해 들은 바를 기록하였다’는 의미이다. 여기서의 ‘술(述)’은 《논어》의 유명한 구절 ‘술이부작(述而不作)’에서 온 것이고, ‘문(聞)’은 들은 것으로 여기에서는 아버지 왕념손이 설명한 것에 대해 지어냄 없이 기술하였음을 표현한 것이다. 이는 겸손한 표현으로 자세한 부분은 아래에서 기술할 것이다.
이 책은 아버지 왕념손과의 연구 및 교육에서 출발하였다. 청(清)나라 때에는 소증(疏證)과 같이 자세하고 꼼꼼한 경전 읽기를 통해 저작을 남기는 풍조가 있었다. 그러한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미리 해당 경전에 대한 상세한 연구와 참조 등의 작업을 진행하였는데, 이를 기록을 남긴 것을 찰기(札記) 또는 차기(箚記)라 한다. 이러한 찰기와 관련하여 왕념손·왕인지 부자는 두 권의 거작을 남겼는데, 《독서잡지》와 《경의술문》이다. 이 중 《경의술문》은 역서시(易書詩) 삼경(三經)과 삼례(三禮), 춘추삼전(春秋三傳) 외에도 《춘추》의 외전(外傳)으로 알려진 《국어(國語)》, 《이아(爾雅)》 등 경전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책에 대해 그 이해되지 못하는 점을 풀이하고 다른 책에서의 방증 등을 기록하여 훈고를 명확히 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 있다. 훈고의 정밀함에 대해서는 청나라 학자들 사이에서 단연 으뜸으로 알려져 있다.
판본으로는 가경 2년(1797) 처음 간행할 때에는 권을 나눌 만큼 분량이 되지 않았다. 이후 가경 22년(1817) 다시 간행하면서 15권으로 늘어났다. 도광(道光) 7년(1827)에 수도에서 중간할 때에는 〈태세고(太歲考)〉와 〈춘추명자해고(春秋名字解詁)〉 두 편이 추가되어 32권이 되었다. 학해당본(學海堂本), 즉 황청경해본(皇清經解本)에서는 이 두 편이 빠져 28권이다. 1920년 이후 사부비요본(四部備要本)에 포함되었다. 1975년에는 타이베이(臺北) 세계서국(世界書局)의 영인본(影印本), 1985년에는 강소고적출판사(江蘇古籍出版社)에서 고우왕씨4종(高郵王氏四種)의 세 번째 책으로 발간되었다. 2016년에는 상해고적출판사(上海古籍出版社)에서 현대 활자로 교정하여 새롭게 출간하였다.

4. 내용

《경의술문》은 총 32권으로 구성되었다. 그 면모를 살펴보자면 1~2권 《주역(周易)》 106조(條), 3~4권 《상서(尙書)》 105조, 5~7권 《모시(毛詩)》 150조, 8~9권 《주관(周官)》 96조, 10권 《의례(儀禮)》 74조, 11~13권 《대대례기(大戴禮記)》 221조, 14~16권 《예기(禮記)》 212조, 17~19권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216조, 20~21권 《국어(國語)》 171조, 22~23권 《춘추명자해고(春秋名字解詁)》 290조, 24권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54조, 25권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 61조, 26~28권 《이아(爾雅)》 218조, 29~30 〈태세고(太歲考)〉 28조, 31~32권 〈통설(通說)〉 53조로 구성되었다.
각각의 조에서는 구두(句讀)부터 책의 편제, 의미 파악의 오류 등 다양한 훈고적 문제에 대해 다양한 방증을 동원하여 증명하고 있다. 이중 주목할 부분으로는 《춘추명자해고》와 〈태세고〉, 〈통설〉로, 《춘추명자해고》는 춘추에 등장하는 인물의 명(名)과 그들의 자(字)가 의미적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해 소상히 밝히고 있으며, 〈태세고〉는 태세(太歲)라고 하는 천문학적 개념에 대해 문헌적 고찰에서부터 《사기》와 유흠의 계산적 오류 등을 다루고 있다. 〈통설〉, 특히 후반 12조에서는 훈고 상에서 나타나기 쉬운 오류의 문제를 정리하여 설명하고 있다.
앞에서 ‘술문(述聞)’이라고 하는 것이 겸손함의 표시라 하였는데, 이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왕인지가 기록하면서 부친 왕념손의 발언에는 ‘가대인(家大人)’이라고 표기하고, 왕인지 자신의 주장에 대해서는 ‘인지근안(引之謹案)’이라고 표기하였다. 단순히 들은 바를 기록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표기는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구분은 두 사람의 의견이 고루 반영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5. 가치와 영향

《경의술문》은 청나라 고증학, 특히 훈고학의 성과를 꼽으라고 할 때 빠지지 않는 책으로, 교정과 해석에 있어 정밀함이 극에 달한 건가(乾嘉) 시기의 대표적인 훈고서이다. 이 책은 모씨, 정현 이하 다양한 주석가의 주장에 오류가 있다는 점을 밝혀내고, 이를 다양한 방증을 통해 증명하는 훈고학적 성과를 드러낸 책이라 할 수 있다.
《경의술문》을 포함한 고우왕씨(高郵王氏)의 저작은 이후 유월(俞樾)(1821~1907)의 저작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의 《군경평의(群經平議)》, 《제자평의(諸子平議)》 시리즈는 바로 《경의술문》과 《독서잡지》에 영향을 받아 작성된 것이다. 아울러 《경의술문》의 〈통설〉과 관련하여서는 《고서의의거례(古書疑義舉例)》에 반영이 되어 훈고학적 발전을 이루는 데에 기여하였다.
조선(朝鮮)의 김정희(1786~1856)는 완원(阮元) 등과 교류하면서 이미 왕인지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편지 〈여이월정(與李月汀)〉에서 “백신의 《경의술문(經義述聞)》은 이미 읽어 보았으니 두 번 번거롭게 할 것은 없습니다.[伯申經義述聞 已爲讀過 無庸再煩也]”라고 하여 이미 《경의술문》에 대해 알고 있음을 볼 수 있다.

6. 참고사항

(1) 명언
• “모든 옛날 유학자가 잘못 풀었던 것에 대해 하나하나 증명하지 않은 것이 없었고, 간접적으로 깨우쳐 주면서 그 본래의 뜻이 왜곡된 부분을 얻어내었다. 설령 옛날의 성현께서 이를 보더라도, 반드시 턱을 벌리고서 말할 것이다. ‘내 말은 진실로 이와 같다. 수천 년 동안 오해가 있었으니, 이제야 명확함을 얻게 되었다.’[凡古儒所誤解者 無不㫄徵 曲喩而得其本義之所抂 使古聖賢見之必解頤曰 吾言固如是 數千年誤解之 今得明矣]” 〈완원(阮元) 서(序)〉
•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훈고의 요지는 음성에 있다. 글자 중에서 음성이 같거나 유사한 것은 경전에서는 종종 가차한다. 학자는 음성으로 그 의미를 찾아, 그 가차의 글자를 깨고서 본래의 글자로 읽어낸다면 얼음이 녹듯이 풀릴 것이다. 만약 가차자를 억지로 풀이한다면 따지는 것이 병이 된다.’[大人曰 詁訓之指 存乎聲音 字之聲同聲近者 經傳往往假借 學者以聲求義 破其假借之字 而讀以本字 則渙然氷釋 如其假借之字 而强爲之解 則詰鞫病矣]” 〈왕인지(王引之) 자서(自序)〉
• “왕인지가 말하였다. ‘「君」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임금을 나타내는 「君」으로 「天·帝·皇·王·后·辟·公·侯」가 그러한 것이다. 또 하나는 무리를 나타내는 ‘羣」으로 「林·烝」이 그러한 것이다. 옛날에 「君」과 「羣」이 발음이 같았다.’[引之謹案 君字有二義 一爲君上之君 天帝皇王后辟公侯是也 一爲羣聚之羣 林烝是也 古者君與羣同聲]” 〈26권 이아(爾雅) 임증천제황왕후벽공후군야(林烝天帝皇王后辟公侯君也) 조(條)〉
(2) 색인어:경의술문(經義述聞), 왕인지(王引之), 훈고(訓詁), 인성구의(因聲求義), 왕념손(王念孫)
(3) 참고문헌
• 經義述聞(王引之 撰, 虞思徵 馬濤, 徐煒君 校點, 上海古籍出版社)
• 讀書雜志(王念孫 著, 虞萬里 編, 徐煒君·樊波成·虞思徵·張靖偉 等 校點, 上海古籍出版社)
• 群經平議(俞樾 撰, 上海古籍出版社)
• 〈論因聲求義——《經義述聞》的語言學思想研究〉(韓陳其·立紅 著, 《北京理工大學學報》)

【신원철】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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