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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1)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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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深透人情國體之言이라
臣竊見朝廷前歲以蕃官胡繼諤因爲所疑하야 移入內地하야 見任亳州都監하고 以子守淸悉領父之諸部러니
風聞近爲不服亳州水土하야 死亡却家族하고 身又疾病일새 曾有奏陳하야 乞移一京西地涼之處라하니
臣謂方今西鄙用兵之際 朝廷宜廣推恩信하야 撫御蕃夷
旣欲守淸盡死於邊疆인댄 當厚遇繼諤하야 保全其家族이니 豈有旣任其子하고 又疑其父리오
繼諤求遷內地이나 其實異鄕이요 雖曰居官이나 乃是囚繫 致其失所하고 身病家亡이온
況彼初心 又無顯過어늘 在繼諤之身 已有幽囚寃枉之嘆하고 於守淸之分 又失駕馭豪傑之方하니 萬一繼諤疾病하야 死而不歸 守淸父子之心 豈得無恨이리오
反視中國하야 乃爲世讐하야 必與邊陲 別生患害하고 其餘部族 亦必離心國家
自用兵已來 凡有計謀 未聞勝筭하고 尤於招撫蕃夷之術 常失恩威하야 致使離叛者多하야 皆願附賊이러니 在於繼諤 處置特乖하니
臣欲乞因其有請하야 召至京師하야 與雪前疑하고 厚加禮遇하야 放還本族하야 示以推誠하소서
守淸得父子復完하면 必思盡節이요 繼諤感國家之遇하야 必有所施
若朝廷猶以爲疑인댄 卽乞先以此意詔問守淸하소서
計其必無棄父之理리라
若彼自不欲其歸 則他日可無後患이라
取進止하소서


06. 번관蕃官 호계악胡繼諤을 방면해 돌려보내기를 청하는 문제를 논한 차자箚子
사람들의 마음과 국가의 체모를 깊이 꿰뚫어본 말이다.
신은 삼가 보건대, 조정이 지난해 연주延州호계악胡繼諤변신邊臣의 의심을 받은 일로 말미암아 그를 내지로 옮겨보내 현재 박주도감亳州都監을 맡고 있고, 호계악의 아들 수청守淸으로 하여금 그 아버지가 다스리던 부족들을 모두 맡아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풍문으로 듣건대, 근자에 박주의 수토水土에 적응하지 못해 가족들이 모두 사망했고 자신도 병들었기에 이미 글을 올려서 경서京西의 기후가 서늘한 한 곳으로 이주시켜 줄 것을 주청했다고 합니다.
신은 생각건대 지금 서쪽 변방에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때에 조정이 의당 은혜와 신의를 널리 미루어 번이蕃夷위무慰撫해야 할 것입니다.
이미 수청으로 하여금 목숨을 다해 변방을 지키게 하고자 하였다면 응당 계악을 후하게 대우하여 그 가족을 보전해주어야 할 것이니, 어찌 이미 그 아들을 임용해놓고 또 그 아비를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계악繼諤이 내지로 옮겨주기를 청하였으나 기실 타향이고, 비록 관직에 있다 하나 그야말로 수금囚禁된 신세라, 그로 하여금 살 곳을 잃게 하고 자신은 병들고 집안은 망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물며 그의 초심初心에는 게다가 드러난 잘못이 없거늘, 계악 자신에게는 이미 죄수로 수금되어 억울하다는 탄식이 있고 수청守淸의 분수에 있어서는 호족들을 제어할 방도를 잃었으니, 만일 계악이 질병으로 죽어서 돌아가지 못하면 수청은 자식 된 마음에 어찌 한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중국과 반목하여 대대로 원수로 여겨 반드시 변방에 따로 우환을 일으킬 것이고 그 나머지 부족들도 필시 국가에 마음이 떠날 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난 이후로 무릇 계모計謀가 있을 때마다 승산勝算은 듣지 못했고, 더욱이 번이蕃夷를 회유해 위무慰撫하는 방도에 있어서는 늘 은혜와 신의를 잃는 바람에 이반離叛하는 자가 많아서 모두 도적에게 빌붙길 원하도록 하였는데 계악의 경우에는 조처가 특히 어긋났습니다.
신은 바라건대 그의 요청이 있음을 말미암아서 그를 불러 경사京師로 오게 하여 종전의 그에 대한 의심을 씻어주고 후하게 예우하여 자기 종족에게 돌아가게 하여 성심으로 대한다는 뜻을 보이소서.
수청守淸은 그들 부자가 다시 완전해진다면 반드시 충절을 다하리라 생각할 것이고, 계악繼諤은 국가의 예우에 감동하여 반드시 힘써 일하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만약 조정이 아직도 그를 의심한다면 바라건대 먼저 이 뜻으로 조서詔書를 보내 수청에게 물으소서.
생각건대 그가 필시 아버지를 버릴 리가 없을 것입니다.
만약 그가 자기 아버지를 연주延州로 돌려보내는 것을 스스로 바라지 않는다면 후일에 후환이 없게 될 것입니다.
성상께서 결정하소서.


역주
역주1 論乞放還蕃官胡繼諤箚子 : 이 글은 仁宗 慶曆 3년(1043)에 지어진 것이다. 宋나라 때 변방에 분쟁이 많았기 때문에 왕왕 귀순한 이민족 首長에게 변방을 맡아 다스리게 했다. 胡繼諤과 그 아들 胡守淸이 延州를 오래 다스려 자못 政績이 있었는데, 단지 邊臣이 이들을 의심하였기 때문에 內地로 옮겨 오게 되었다. 歐陽脩가 이 일은 타당치 못하다고 생각하여 이 글을 올린 것이다.
역주2 延州 : 延安府로 송나라 때는 酈延路에 속했다. 現 陝西省 延安府에 해당한다.
역주3 邊臣 : 《北宋經撫年表》 및 《宋史》 〈龐籍傳〉을 살펴보건대, 慶曆 원년(1041)부터 5년까지 酈延路의 經略按撫使는 龐籍이었다. 따라서 방적을 가리킨다.

당송팔대가문초 구양수(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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