讀韓公獲麟解與此論이면 世之言祥瑞者가 捫心退矣리라
自秦漢以來로 學者多言祥瑞하니 雖有善辯之士라도 不能祛其惑也라
予讀蜀書
컨대 至於龜龍麟鳳
之類 世所謂王者之嘉瑞
하야도 莫不畢出於其國
하니 異哉
라
或以爲一王氏가 不足以當之라하니 則是時天下治亂을 可以知之矣라
龍之爲物也 以不見爲神하고 以升雲行天爲得志어늘 今偃然暴露其形하니 是不神也라 不上于天而下見於水中하니 是失職也라
命夔作樂하니 樂聲和어늘 鳥獸聞之하야 皆鼓舞하니
當是之時하야 鳳凰適至어늘 舜之史가 因幷記以爲美러니 後世因以鳳來爲有道之應이라
其後鳳凰
至
하야 或出於庸君繆政之時
하고 或出於危亡大亂之際
하니 是果爲瑞哉
아
昔에 魯哀公이 出獵得之而不識하니 蓋索而獲之요 非其自出也라
狩必書地로되 而哀公馳騁하야 所涉地多일새 不可徧以名擧라
麟은 人罕識之獸也라 以見公之窮山竭澤而盡取하야 至於不識之獸하야도 皆搜索而獲之라
聖人已沒
에 而異端之說興
하야 乃以麟爲王者之瑞
하야 而附以
讖緯詭怪之言
이라
若麟者는 前有治國如堯舜禹湯文武周公之世에도 未嘗一出하고 其一出而當亂世하니 然則孰知其爲瑞哉아
龜는 玄物也라 汚泥川澤에 不可勝數하니 其死而貴于卜官者는 用適有宜爾어늘
夫破人之惑者는 難與爭於篤信之時하니 待其有所疑焉然後에 從而攻之가 可也라
麟鳳龜龍은 王者之瑞어늘 而出於五代之際하고 又皆萃於蜀하니 此雖好爲祥瑞之說者라도 亦可疑也라
03. 《오대사五代史》 〈전촉왕건세가前蜀王建世家〉에 대한 논論
한공韓公(韓愈)의 〈획린해獲麟解〉와 이 논論을 읽으면 세상에서 상서祥瑞를 말하는 자들이 가슴을 어루만지며 반성하고 물러날 것이다.
진秦‧한漢 이래로 학자들이 많이들 상서祥瑞를 말하니, 비록 변론辯論을 잘하는 선비가 있더라도 그 의혹을 없애줄 수 없다.
내가 《촉서蜀書》를 읽어보건대 심지어 거북‧용‧기린‧봉황‧추우騶虞와 같은, 세상에서 이른바 아름다운 상서祥瑞라고 하는 것들이 그 나라에서 모두 출현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기이한 일이다!
그러나 왕씨王氏가 흥망성패興亡成敗한 까닭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혹자는 “왕씨 하나만이 이 현상에 해당될 수 없다.”라 하니, 그렇다면 이 당시 천하의 치란治亂을 알 수 있다.
용龍이란 동물은 나타나지 않음을 신령함으로 삼고,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것을 뜻을 얻음으로 여기거늘, 지금 길게 누워서 그 모습을 드러내었으니 이는 신령하지 못한 것이며, 하늘에 오르지 않고 물속에 나타났으니 이는 자기 직분을 잃은 것이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어쩌면 그리도 많이 나타났단 말인가?
봉황鳳凰은 새 중에서 사람을 멀리하는 것이다.
옛날에 순舜이 천하를 다스려 정치가 이루어지고 백성들이 기뻐하였다.
이에 기夔에게 명하여 음악을 만들게 하니, 그 음악의 소리가 화락하거늘 조수鳥獸들이 이를 듣고 모두 춤을 추었다.
이때에 봉황이 마침 이르거늘 순舜의 사관史官이 아울러 기록하여 아름다운 일로 삼았는데, 후세에 이로 말미암아 봉황이 오는 것을 태평한 세상에 대한 보응報應으로 여겼다.
그 후로 봉황이 자주 와서 혹 용렬한 임금이 정치를 잘못하는 시대에도 나오고, 혹 위망危亡하여 크게 혼란한 시대에도 나왔으니, 이것이 과연 상서祥瑞이겠는가!
기린麒麟은 길짐승 중에서 사람을 멀리하는 것이다.
옛날에 노魯 애공哀公이 사냥을 나갔다가 잡았으나 무슨 동물인지 알지 못하였으니, 찾아서 잡았던 것이지 기린이 스스로 나온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공자孔子가 《춘추春秋》에 “서쪽으로 사냥 갔다가 기린을 잡았다.”라고 쓴 것은 비판한 것이었다.
서쪽으로 사냥 갔다는 것은 멀리 가지 않았다는 뜻이고, 기린을 잡았다는 것은 동물을 죄다 잡는 것을 미워한 것이다.
사냥을 나갔을 경우에는 반드시 사냥한 곳의 지명地名을 쓰는데 애공은 말을 달려 사냥하여 다닌 땅이 많았기에 이루 다 이름을 열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서쪽이라고만 써서 많은 땅들을 다 포괄한 것이니, 온 나라의 서쪽을 다 다녔음을 말한 것이다.
기린은 사람들이 거의 알지 못하는 짐승인지라 이로써 애공이 산과 습지를 샅샅이 다니면서 짐승들을 죄다 취하여 심지어 알지 못하는 짐승까지도 모두 찾아내어 잡았다는 사실을 드러내 보인 것이다.
성인이 세상을 떠난 뒤로 이단異端의 설이 일어나 이에 기린을 왕자王者의 상서로 여겨서 부명符命‧참위讖緯의 괴이한 말을 덧붙였다.
봉황은 일찍이 순舜임금의 시대에 출현하였으니, 이를 상서로 삼는 것은 그래도 근거가 있다.
그러나 그 후대에 미쳐서는 난세亂世에 봉황이 나왔으니, 상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기린 같은 경우에는 앞 시대에 잘 다스려진 나라들인 요堯임금‧순舜임금‧우禹임금‧탕왕湯王‧문왕文王‧무왕武王‧주공周公의 세상에는 한 번도 나온 적이 없고 고작 한 번 나온 것이 난세를 만났으니, 그렇다면 그것이 상서임을 누가 알 수 있겠는가.
거북은 담흑색淡黑色 동물로 진흙탕인 시내와 못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죽어서 점복占卜을 맡은 관리에게 귀하게 취급받는 것은 점치는 용도에 마침 알맞기 때문일 뿐이다.
그런데 《대씨례戴氏禮》에서는 거북이 왕궁의 못에 있다고 하여 오기 어려운 왕자王者의 상서祥瑞라고 하였다.
《대씨례》는 제가諸家의 설이 잡다히 나오니 잘못된 부분도 이미 많다.
《시경詩經》에 “아! 추우로다.” 하였는데, 가의賈誼는 “추騶란 문왕文王의 원유苑囿이고 우虞는 우관虞官이다.”라고 하였으니, 가의의 시대에는 그 설이 이와 같았다.
그렇다면 짐승이라 한 것은 근세의 설에서 나온 것일 터이다.
대저 사람의 의혹을 깨뜨리는 것은 그 사람이 돈독하게 믿고 있을 때에 그와 쟁변爭辨하기가 어려우니, 의심을 가지기를 기다린 뒤에 따라서 공격하는 것이 좋다.
기린‧봉황‧거북‧용은 왕자王者의 상서이거늘 오대五代 때에 나왔고 또 촉蜀에 모두 모였으니, 이는 비록 상서에 관한 설을 주장하기 좋아하는 자라 하더라도 의심할 만한 것이다.
그 의심할 만한 것을 말미암아서 공격하면 아마도 의혹에 빠졌던 사람이 생각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