疏
○正義曰:先儒以“易之舊題, 分自此以上三十卦爲上經, 已下三十四卦爲下經”,
然韓康伯注序卦, 破此義云“夫易六畫成卦, 三才必備, 錯綜天人以效變化, 豈有天道人事偏於上下哉.”
案, 上經之內,
是兼於人事, 不專天道. 旣不專天道, 則下經不專人事, 理則然矣.
疏
[疏]但孔子序卦, 不以咸繫離,
則是六十四卦舊分上下, 乾‧坤象天地, 咸‧恒明夫婦.
乾坤乃造化之本, 夫婦實人倫之原, 因而擬之, 何爲不可.
周氏云“尊天地之道, 略於人事, 猶如三才天地爲二, 人止爲一也”, 此必不然.
竊謂乾坤明天地初闢, 至屯, 乃剛柔始交, 故以純陽象天, 純陰象地, 則咸以明人事.
人物旣生, 共相感應, 若二氣不交, 則不成於相感, 自然天地各一, 夫婦共卦. 此不言可悉, 豈宜妄爲異端.
疏
[疏]‘咸 亨 利貞 取女吉’者, 咸, 感也. 此卦明人倫之始·夫婦之義, 必須男女共相感應, 方成夫婦, 旣相感應, 乃得亨通.
若以邪道相通, 則凶害斯及. 故利在貞正. 旣感通以正, 卽是婚媾之善, 故云“咸, 亨, 利貞, 取女吉”也.
彖曰 咸
은 感也
니 柔上而剛下
하여 二氣感應
하여 以
니라
疏
[疏]正義曰:‘柔上而剛下 二氣感應 以相與’者, 此因上下二體, 釋“咸亨”之義也.
艮剛而兌柔, 若剛自在上, 柔自在下, 則不相交感, 无由得通,
今兌柔在上, 而艮剛在下, 是二氣感應, 以相授與, 所以爲咸亨也.
疏
[疏]正義曰:此因二卦之義, 釋利貞也. 艮止而兌說也.
能自靜止, 則不隨動欲, 以上行說, 則不爲邪諂, 不失其正, 所以利貞也.
疏
[疏]正義曰:此因二卦之象, 釋取女吉之義.
是男下於女也.
是以亨하니 利貞하니 取女吉也라 天地感而萬物化生하고
疏
○正義曰:‘是以亨 利貞 取女吉’者, 次第釋訖, 總擧繇辭以結之.
‘天地感而萬物化生’者, 以下廣明感之義也.
, 若不感應相與, 則萬物无由得
化而生.
聖人이 感人心而天下和平하나니 觀其所感이면 而天地萬物之情을 可見矣라
注
[注]天地萬物之情이 見於所感也라 凡感之爲道 不能感非類者也라 故로 引取女以明同類之義也라
同類而不相感應은 以其各亢所處也라 故로 女雖應男之物이나 必下之而後에 取女乃吉也라
疏
○正義曰:‘聖人感人心而天下和平’者, 聖人設敎, 感動人心, 使變惡從善, 然後天下和平.
‘觀其所感 而天地萬物之情可見矣’者, 結歎咸道之廣, 大則包天地, 小則該萬物. 感物而動, 謂之情也.
天地萬物, 皆以氣類共相感應, 故觀其所感, 而天地萬物之情, 可見矣.
疏
○正義曰:‘山上有澤 咸’, 澤性下流, 能潤於下, 山體上承, 能受其潤. 以山感澤, 所以爲咸.
‘君子以虛受人’者, 君子法此咸卦下山上澤, 故能空虛其懷, 不自有實, 受納於物, 无所棄遺, 以此感人, 莫不皆應.
注
[注]處咸之初하여 爲感之始하여 所感在末이라 故로 有志而已니 如其本實이면 未至傷靜이라
疏
○正義曰:‘咸其拇’者, 拇是足大指也, 體之最末.
疏
○正義曰:六二咸道轉進, 所感在腓. 腓體動躁, 則成往而行.
今初六所感淺末, 則譬如拇指, 指雖小動, 未移其足, 以喩人心初感, 始有其志, 志雖小動, 未甚躁求.
凡吉凶悔吝, 生乎動者也, 以其本實, 未傷於靜. 故无吉凶悔吝之辭.
疏
[疏]正義曰:‘志在外’者, 外謂四也. 與四相應, 所感在外, 處於感初, 有志而已. 故云志在外也.
注
感物以躁는 凶之道也라 由躁라 故凶하니 居則吉矣라 處不乘剛이라 故로 可以居而獲吉이라
疏
○正義曰:腓, 足之腓腸也. 六二應在九五, 咸道轉進, 離拇升腓, 腓體動躁, 躁以相感, 凶之道也.
由躁, 故凶, 靜居則吉, 故曰“咸其腓, 凶, 居吉.” 以不乘剛, 故可以居而獲吉.
疏
○正義曰:王廙云“動於腓腸, 斯則行矣, 故言‘腓體動躁’也”
注
[注]陰而爲居는 順之道也니 不躁而居면 順不害也라
疏
[疏]正義曰:
若旣凶矣, 何由得居而獲吉. 良由陰性本靜.
今能不躁而居, 順其本性, 則不有災害, 免凶而獲吉也.
注
[注]股之爲物은 隨足者也라 進不能制動하고 退不能靜處하여 所感在股하니 志在隨人者也라
志在隨人이면 所執亦以賤矣니 用斯以往이면 吝其宜也라
疏
〈[疏]正義曰:‘咸其股 執其隨 往吝’者, 九三處二之上, 轉高至股. 股之爲體, 動靜隨足, 進不能制足之動, 退不能靜守其處.
股是可動之物, 足動則隨, 不能自處,
故云“咸其股, 執其隨.”
象曰 咸其股는 亦不處也라 志在隨人하니 所執下也라
疏
[疏]正義曰:‘咸其股 亦不處也’者, 非但進不能制動,
‘所執下’者, 旣志在隨人, 是其志意所執下賤也.
九四는 貞吉하여 悔亡하리니 憧憧往來하면 朋從爾思하리라
注
[注]處上卦之初하여 應下卦之始하고 居體之中하여 在股之上하여 二體始相交感하여 以通其志하니 心神始感者也라
凡物始感而不以之於正이면 則至於害라 故로 必貞然後乃吉이요 吉然後乃得亡其悔也라
始在於感하여 未盡感極하여 不能至於无思以得其黨이라 故로 有憧憧往來然後에 朋從其思也라
疏
[疏]正義曰:‘貞吉 悔亡’者, 九四居上卦之初, 應下卦之始, 居體之中, 在股之上, 二體始相交感, 以通其志, 心神始感者也.
凡物始感而不以之於正, 則害之將及矣, 故必貞然後乃吉, 吉然後乃得亡其悔也, 故曰“貞吉, 悔亡”也.
‘憧憧往來 朋從爾思’者, 始在於感, 未盡感極,
疏
[疏]正義曰:‘未感害’者, 心神始感, 未至於害. 故不可不正, 正而
, 故得悔亡也.
疏
[疏]正義曰:‘未光大’者, 非感之極, 不能无思无欲, 故未光大也.
注
[注]脢者는 心之上이요 口之下니 進不能大感하고 退亦不爲无志하여 其志淺末이라 故로 无悔而已라
疏
○正義曰:‘咸其脢 无悔’者, 脢者, 心之上, 口之下也, 四已居體之中, 爲心神所感, 五進在於四上, 故所感在脢.
脢已過心, 故進不能大感, 由在心上, 退亦不能无志, 志在淺末. 故无悔而已, 故曰“咸其脢, 无悔”也.
疏
○正義曰:‘脢者 心之上 口之下’者, 子夏易傳曰“在脊曰脢”, 馬融云“脢, 背也”, 鄭玄云“脢, 脊肉也”,
疏
[疏]正義曰:‘咸其輔頰舌’者, 馬融云“輔, 上頷也”, 輔‧頰‧舌者, 言語之具.
咸道轉末, 在於口舌言語而已, 故云“咸其輔‧頰‧舌”也.
注
[注]輔頰舌者는 所以爲語之具也니 咸其輔頰舌이면 則滕口說也라
憧憧往來도 猶未光大어늘 況在滕口하니 薄을 可知也라
疏
[疏]正義曰:‘滕口說也’者, 舊說字作滕, 徒登反, 滕, 競與也. 所競者口, 无復心實, 故云“滕口說也.”
鄭玄又作
,
, 送也. 咸道極薄, 徒送口舌言語, 相感而已,
咸은 형통하니 貞함이 이로우니, 여자를 취함이 吉하다.
疏
○正義曰:先儒가 “≪周易≫의 옛 제목에 이로부터 이상의 30卦를 나누어 ‘上經’이라 하고 이하의 34卦를 ‘下經’이라 한다.”라고 하였으며,
〈序卦傳〉에도 여기에 이르러 다시 별도로 서두를 일으켰는데, 이에 대해 선유들은 모두 “上經은 天道를 밝히고 下經은 人事를 밝혔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韓康伯(韓伯)은 〈序卦傳〉에 注하면서 이 뜻을 깨뜨려 말하기를 “≪周易≫은 六畫에 卦가 이루어져서 三才가 반드시 구비하여 하늘과 사람을 종합하여 변화를 본받았으니, 어찌 天道와 人事가 上經과 下經에 편벽되어 있을 리가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살펴보건대, 上經의 안에 “음식은 반드시 爭訟이 있고 爭訟은 반드시 여럿이 일어남이 있다.”고 밝혔으니, 이는 人事를 겸한 것이고 오로지 天道만을 말하지 않았다. 이미 오로지 天道만을 말하지 않았으면 下經은 오로지 人事를 말하지 않은 것이 이치상 당연하다.
疏
다만 孔子의 〈序卦傳〉에 咸卦를 離卦에 연계시키지 않았고, 〈繫辭傳〉에 “두 篇의 策數”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64卦를 예전에도 上經과 下經으로 나누어서 乾卦와 坤卦로 하늘과 땅을 형상하고 咸卦와 恒卦로 夫婦를 밝힌 것이다.
乾‧坤은 바로 造化의 근본이고 夫‧婦는 실로 人倫의 근원이니, 인하여 비견하는 것이 어찌 불가하겠는가. 하늘과 땅이 각각의 卦가 되고 夫‧婦가 한 卦가 된 것은,
周氏(周宏正)가 말하기를 “천지의 道를 높여서 人事를 소략히 하였으니, 마치 三才에 하늘과 땅은 둘이 되고 사람은 다만 하나가 되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으니, 이 말이 반드시 옳지는 않을 것이다.
내 생각건대, 乾卦와 坤卦는 天地가 처음 開闢함을 밝혔고 屯卦에 이르러 비로소 剛과 柔가 처음 사귀었다. 그러므로 純陽인 乾으로 하늘을 형상하고 純陰인 坤으로 땅을 형상하였으며, 咸卦로써 人事를 밝힌 것이다.
사람과 물건이 이미 태어나면 서로 감응하니, 만약 陰‧陽 두 기운이 사귀지 않으면 서로 감응함을 이루지 못해서 자연히 하늘과 땅이 각각 하나가 되고 부부가 한 卦가 되는 것이다. 이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으니, 어찌 망령되이 딴 말을 할 것이 있겠는가.
疏
[咸 亨 利貞 取女吉] ‘咸’은 감동함이다. 이 卦는 인륜의 시초와 부부의 의리를 밝혔으니, 반드시 남자와 여자가 서로 감응하여야 비로소 부부를 이루는바, 이미 서로 감응하면 마침내 형통함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간사한 道로 서로 통하면 凶害가 서로 미친다. 그러므로 이로움이 貞正에 있는 것이다. 이미 감응하기를 바름으로써 하면 바로 婚媾의 좋음이다. 그러므로 “咸은 형통하니 貞함이 이로우니, 여자를 취함이 吉하다.”라고 한 것이다.
〈彖傳〉에 말하였다. “咸은 감동함이니, 柔가 위에 있고 剛이 아래에 있어서 두 기운이 感應하여 서로 준다[相與].
疏
正義曰:[柔上而剛下 二氣感應 以相與] 이것은 상하의 두 體를 인하여 ‘咸亨’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艮은 剛하고 兌는 柔하니, 만약 剛이 본래 위에 있고 柔가 본래 아래에 있으면 서로 交感하지 못하여 통할 수가 없는데,
지금 兌의 柔가 위에 있고 艮의 剛이 아래에 있으니, 이는 두 기운이 感應하여 서로 주는 것인바, 이 때문에 ‘咸亨’이 된 것이다.
疏
正義曰:이는 두 卦의 뜻을 인하여 ‘貞함이 이로움’을 해석한 것이니, 艮은 그치고 兌는 기뻐한다.
능히 스스로 고요하고 그치면 動하는 욕심을 따르지 않고, 윗사람이 기쁨을 행하면 간사하고 아첨함을 하지 않으니, 바름을 잃지 않기 때문에 貞함이 이로운 것이다.
疏
正義曰:이는 두 卦의 象을 인하여 ‘여자를 취함이 吉함’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艮은 少男이 되는데 아래에 있고 兌는 少女가 되는데 위에 있으니, 이는 남자가 여자에게 낮추는 것이다.
婚姻하는 義는 남자가 먼저 여자에게 구하므로 親迎하는 禮에 남자가 수레바퀴를 몰아 세 번 도니, 이는 모두 남자가 먼저 여자에게 낮춘 뒤에 여자가 남자에게 응하는 것인바, 이 때문에 여자를 취함이 길함을 얻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형통하니 貞함이 이로우니, 여자를 취함이 吉한 것이다. 하늘과 땅이 감동하여 萬物이 化生하고,
疏
○正義曰:[是以亨 利貞 取女吉] 차례로 해석을 마친 다음, 繇辭(卦辭)를 모두 들어 마친 것이다.
[天地感而萬物化生] 이하는 감동하는 뜻을 넓혀 밝힌 것이다. 하늘과 땅 두 기운이 만약 감응하여 서로 친하지 않으면 만물이 변화하여 생길 수가 없는 것이다.
聖人이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켜 天下가 和平하니, 그 감동하는 바를 보면 天地 萬物의 實情을 볼 수 있는 것이다.”
注
天地 萬物의 情이 감동하는 바에서 나타난다. 무릇 감동하는 道는 同類가 아닌 것은 감동시키지 못한다. 그러므로 여자를 취함을 인용하여 同類의 뜻을 밝힌 것이다.
同類이면서 서로 感應하지 못하는 것은 각각 자신이 처한 바를 높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자가 비록 남자에 應하는 물건이나 반드시 남자가 자신을 낮춘 뒤에야 여자를 취함이 吉한 것이다.
疏
○正義曰:[聖人感人心而天下和平] 聖人이 가르침을 베풀 적에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그로 하여금 惡을 바꾸어 善을 따르게 하니, 그런 뒤에 天下가 和平한 것이다.
[觀其所感 而天地萬物之情可見矣] ‘咸道가 넓어서 크면 天地를 포괄하고 작으면 萬物을 다함’을 맺어 감탄한 것이다. 물건에 감응하여 動함을 ‘情’이라 한다.
天地의 萬物이 모두 氣類로써 서로 感應한다. 그러므로 그 감응하는 바를 보면 天地 萬物의 情을 볼 수 있는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산 위에 못이 있는 것이 咸卦이니, 君子가 보고서 마음을 비워 남의 의견을 받아들인다.”
注
마음을 비움으로써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면 남이 마침내 感應한다.
疏
○正義曰:[山上有澤 咸] 못의 성질은 아래로 흘러서 능히 아래를 윤택하게 하고, 산의 體는 위를 받들어서 능히 그 적셔줌을 받으니, 산으로서 澤에게 감동됨은 咸卦가 된 이유이다.
[君子以虛受人] 君子가 이 咸卦의 아래가 산이고 위가 못인 것을 본받는다. 그러므로 능히 마음을 空虛하게 비워 스스로 꽉 채움이 있지 않고 남을 받아들여서 버리는 바가 없으니, 이로써 사람을 감동시키면 응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注
咸의 처음에 처하여 感의 시초가 되어서 감동하는 바가 末에 있다. 그러므로 뜻이 있을 뿐이니, 만약 그 근본이 충실하면 靜을 상하게 함에 이르지 않는다.
疏
○正義曰:[咸其拇] ‘拇’는 바로 발의 큰 발가락이니, 신체의 가장 끝이다.
初六의 應이 九四에 있는데 모두 卦의 시초에 처하여 감동함이 얕고 낮으니, 한 몸에서 비유를 취하면 발가락에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 엄지발가락을 감동시킨다.”라고 한 것이다.
疏
○正義曰:六二는 咸卦의 道가 더욱 진전하여 감동시키는 바가 장딴지에 있으니, 장딴지의 體가 動하여 조급하면 감[往]을 이루어 행한다.
그런데 지금 初六은 감동시키는 바가 얕고 낮으니, 비유하면 엄지발가락과 같아서 발가락이 비록 조금 움직이나 그 발을 옮기지는 못하는바, 이로써 ‘사람 마음이 처음 감동하여 비로소 뜻이 있으니, 뜻이 비록 조금 움직이나 심히 조급하여 구하지는 못함’을 비유한 것이다.
무릇 吉과 凶, 悔(후회)와 吝(부끄러움)은 動에서 생기니, 그 근본이 충실하여 아직 靜을 상하게 함에는 이르지 않았다. 그러므로 吉‧凶‧悔‧吝의 占辭가 없는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그 엄지발가락을 감동시킴’은 뜻이 밖[外]에 있는 것이다.”
疏
正義曰:[志在外] ‘外’는 九四를 이르니, 九四와 서로 應하여 감동하는 바가 밖에 있으니, 감동하는 처음에 처하여 뜻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뜻이 밖에 있다.”라고 한 것이다.
六二는 그 장딴지를 감동시키면 凶하니, 가만히 있으면 吉하리라.
注
咸卦의 道가 더욱 진전하여 발가락을 떠나 장딴지[腓]로 올라오니, 장딴지의 體는 動하여 조급한 자이다.
물건을 감동시키기를 조급함으로써 함은 凶한 道이다. 조급하기 때문에 凶하니, 가만히 있으면 吉할 것이다. 처함이 剛을 타지 않았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 吉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疏
○正義曰:‘腓’는 발의 장딴지[腓腸]이다. 六二는 應함이 九五에 있으니, 咸卦의 道가 더욱 진전되어서 발가락을 떠나 장딴지로 올라오니, 장딴지의 體는 動하여 조급한바, 조급함으로써 서로 감동함은 흉한 道이다.
조급하기 때문에 흉하니, 조용히 거하면 길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 장딴지를 감동시키면 흉하니, 가만히 있는 것이 길하다.”라고 한 것이다. 剛을 타지 않았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 吉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疏
○正義曰:王廙가 말하였다. “장딴지에서 動하면 이는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딴지의 體는 動하여 조급하다.’라고 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비록 凶하나 가만히 있으면 吉함은 順히 하면 해롭지 않은 것이다.”
注
陰爻로서 가만히 있는 것은 順한 道이니, 조급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順하여 해롭지 않은 것이다.
疏
正義曰:[雖] 긍정과 부정을 〈열거하는〉 말이다. 이미 흉한데 어떻게 가만히 있으면 길함을 얻을 수 있는가? 진실로 陰의 성질이 본래 靜하기 때문이다.
지금 조급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서 그 본성을 순히 하면 災害가 있지 않으니, 凶함을 면하고 길함을 얻는 것이다.
九三은 그 다리를 감동시킨다. 그 따름을 지키니, 가면 부끄러우리라.
注
다리[股]란 물건은 발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나아감에 動함을 제재하지 못하고 물러남에 고요히 처하지 못하여 감동시키는 바가 다리에 있으니, 뜻이 남을 따름에 있는 자이다.
뜻이 남을 따름에 있으면 잡아 지키는 바가 또한 賤하니, 이 방법을 사용하여 가면 부끄러운 것이 당연하다.
疏
正義曰:[咸其股 執其隨 往吝] 九三이 六二의 위에 처하여 더욱 높아 다리[股]에 이르렀다. 다리의 體는 動과 靜이 발을 따르므로 나아감에 발의 動함을 제재하지 못하고, 물러남에 머묾을 고요히 지키지 못한다.
다리는 움직일 수 있는 물건이니, 발이 움직이면 따라 움직여서 스스로 머물지 못하여 항상 그 발을 따르려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 다리를 감동시킨다. 그 따름을 지킨다.”라고 한 것이다.
사람에게 이것을 시행하면 스스로 잡아 지킴이 없어서 뜻이 남을 따름에 있어 잡아 지키는 바가 卑下하니, 이런 방식으로 가면 鄙吝한 道이다. 그러므로 “가면 부끄럽다.”라고 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그 다리를 감동시킴’은 또한 머물러 있지 못하는 것이다. 뜻이 남을 따름에 있으니, 잡아 지키는 바가 낮다.”
疏
正義曰:[咸其股 亦不處也] 비단 나아가서 動함을 제재하지 못할 뿐만이 아니요, 물러가서도 고요히 머물러 있지 못하는 것이다.
[所執下] 이미 뜻이 남을 따름에 있으니, 이는 그 의지의 잡은 바가 낮아 천한 것이다.
九四는 貞하면 吉하여 후회가 없어지리니, 憧憧히 왕래하면 벗이 너의 생각을 따르리라.
注
上卦의 처음에 처하여 下卦의 시초와 應하고, 體의 가운데에 처하여 다리의 위에 있어서 두 體가 처음으로 서로 交感하여 그 뜻을 통하니, 마음과 정신이 처음 감동된 자이다.
모든 물건은 처음 감동할 적에 바름으로써 하지 않으면 해로움에 이른다. 그러므로 반드시 바른 뒤에 비로소 吉한 것이요, 吉한 뒤에 비로소 그 후회가 없어질 수 있는 것이다.
처음으로 감동함에 있어서 아직 감동함이 극진하지 못하여 ‘생각함이 없으면서도 그 黨을 얻음’에 이르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憧憧히 왕래한 뒤에야 벗이 그 생각을 따름이 있는 것이다.
疏
正義曰:[貞吉 悔亡] 九四가 上卦의 처음에 거하여 下卦의 시초와 應하고, 體의 가운데에 처하여 다리의 위에 있어서 두 體가 처음으로 서로 交感하여 그 뜻을 통하니, 마음과 정신이 처음으로 감동된 자이다.
모든 물건은 처음 감동할 적에 바름으로써 하지 않으면 害가 장차 미치게 된다. 그러므로 반드시 바른 뒤에 비로소 吉한 것이요, 吉한 뒤에 비로소 그 후회가 없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貞하면 吉하여 후회가 없어지리라.”라고 한 것이다.
[憧憧往來 朋從爾思] 처음으로 감동함에 있어서 아직 감동함이 극진하지 못하고,
오직 運動하여 서로 應을 구할 것을 생각하고자 하여 마음에 잊고 밝게 봄을 그쳐서 자연에 맡기지 못한다. 그러므로 憧憧히 往來함이 있은 뒤에 벗이 너의 생각하는 바를 따르는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貞하면 吉하여 후회가 없어짐’은 아직 해로움에 감동되지 않은 것이다.
注
아직 해로움에 감동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바로잡을 수가 있어서 후회가 없을 수 있는 것이다.
疏
正義曰:[未感害] 마음과 정신이 처음으로 감동되어서 아직 해로움에 이르지 않았다. 그러므로 바로잡지 않을 수가 없으니, 바루어 길하므로 후회가 없을 수 있는 것이다.
疏
正義曰:[未光大] 감동함이 지극한 것이 아니어서 생각함이 없고 하고자 함이 없지 못하다. 그러므로 光大하지 못한 것이다.
九五는 그 등을 감동시킴이니, 허물이 없으리라.
注
脢는 심장의 위이고 입의 아래이니, 나아가서 크게 감동시키지 못하고 물러나서도 뜻이 없지 못하여 그 뜻이 얕고 낮다. 그러므로 후회가 없을 뿐인 것이다.
疏
○正義曰:[咸其脢 无悔] ‘脢’는 심장의 위이고 입의 아래이니, 九四가 이미 體의 가운데에 거하여 마음과 정신이 감동하는 바가 되었고 九五가 나아가서 九四의 위에 있다. 그러므로 감동하는 바가 등에 있는 것이다.
등은 이미 심장을 지났으므로 나아감에 크게 감동시키지 못하는 것이요, 심장의 위에 있어서 물러나서도 뜻이 없지 못하여 뜻이 얕고 낮음에 있다. 그러므로 후회가 없을 뿐이니, 이 때문에 “그 등을 감동시킴이니, 허물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疏
○正義曰:[脢者 心之上 口之下] ≪子夏易傳≫에 “등마루[脊]에 있는 것을 ‘脢’라 한다.”라고 하였고, 馬融은 “脢는 등이다.”라고 하였고, 鄭玄은 “脢는 등의 살이다.”라고 하였고,
王肅은 “脢는 등에 있으면서 등마루 좌우를 끼고 있다.”라고 하였고, ≪說文解字≫에는 “脢는 등의 살이다.”라고 하였다. 비록 여러 說이 똑같지 않으나 대체는 모두 심장의 위에 있는 것이다.
王輔嗣(王弼)는 九四를 마음과 정신으로 삼고 上六을 턱과 볼로 삼았으니, 九五는 上六과 九四의 사이에 있으므로 곧바로 “심장의 위이고 입의 아래이다.”라고 한 것이다. 이는 마음과 정신보다는 얕고, 언어보다는 후함을 밝힌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그 등을 감동시킴’은 뜻이 낮은 것이다.”
疏
正義曰:[志末也] ‘末’은 淺(얕음)과 같다. 감동함은 마음으로 하는 것을 깊게 여기니, 마음을 지나면 ‘얕고 낮음[淺末]’이라 이른다.
注
咸卦의 道가 더욱 끝(末端)이 되었다. 그러므로 口舌과 言語에 있을 뿐인 것이다.
疏
正義曰:[咸其輔頰舌] 馬融은 “輔는 위의 턱이다.”라 하였으니, 턱과 볼과 혀는 言語의 도구이다.
咸卦의 道가 더욱 끝이 되어서 口舌과 言語에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턱과 볼과 혀를 감동시킨다.”라고 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턱과 볼과 혀를 감동시킴’은 입으로 말을 다투는 것이다.”
注
턱과 볼과 혀는 말하는 도구이니, 턱과 볼과 혀를 감동시키면 입으로 말을 다투는 것이다.
憧憧히 往來하는 것도 오히려 光大하지 못한데, 하물며 입으로 다툼에 있으니 하찮게 여길 만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疏
正義曰:[滕口說也] 舊說에 글자를 ‘滕’으로 썼으니, ‘滕’은 徒登의 反切이니, ‘滕’은 다투는 것이다. 다투는 것이 입뿐이고 다시는 마음에 실재가 없다. 그러므로 “입으로 말을 다툰다.”고 말한 것이다.
鄭玄은 또 ‘媵’으로 썼으니, ‘媵’은 보냄이다. 咸卦의 道가 지극히 薄하여 다만 口舌과 言語로 보내어 서로 감동시킬 뿐이요,
다시는 그 사이에 뜻이 있지 않은 것이다. 王輔嗣(王弼)의 注에는 뜻이 두 가지 모두 통하니, 어느 것이 그 本旨와 같은지는 알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