无妄은 元亨하고 利貞하니 其匪正이면 有眚하여 不利有攸往하니라
疏
[疏]正義曰:‘无妄’者, 以剛爲內主, 動而能健, 以此臨下, 物皆无敢詐僞虛妄, 俱行實理,
‘其匪正 有眚 不利有攸往’者, 物旣无妄, 當以正道行之, 若其匪依正道, 則有眚災, 不利有所往也.
疏
[疏]正義曰:以此卦象, 釋能致无妄之義.
震動而乾健, 故能使物无妄也.
疏
[疏]正義曰:明爻義能致无妄. 九五以剛處中, 六二應之, 是剛中而應. 剛中則能制斷虛實, 有應則物所順從, 不敢虛妄也.
注
[注]剛自外來하여 而爲主於內하여 動而愈健하고 剛中而應하여 威剛方正하여 私欲不行하니 何可以妄이리오
使有妄之道滅하고 无妄之道成하니 非大亨利貞而何오 剛自外來而爲主於內하면 則柔邪之道消矣요
動而愈健하면 則剛直之道通矣요 剛中而應하면 則齊明之德著矣라 故로 大亨以正也라
天之敎命을 何可犯乎며 何可妄乎아 是以로 匪正則有眚하여 而不利有攸往也라
疏
○正義曰:釋元亨利貞之義. 威剛方正, 私欲不行, 何可以妄. 此天之敎命也.
天道純陽, 剛而能健, 是乾德相似, 故云“天之命也.” 旣是天命, 豈可犯乎.
疏
○正義曰:云‘使有妄之道滅 无妄之道成’者, 妄, 謂虛妄矯詐, 不循正理.
若无剛中之主, 柔弱邪僻, 則物皆詐妄, 是有妄之道興也,
今遇剛中之主, 威嚴剛正, 在下畏威, 不敢詐妄, 是有妄之道滅, 无妄之道成.
其匪正하면 有眚하여 不利有攸往하니 无妄之往이 何之矣리오 天命不祐를 行矣哉아
注
[注]匪正하면 有眚이어늘 不求改以從正하고 而欲有所往하니
居不可以妄之時하여 而欲以不正有所往이면 將欲何之리오 天命之所不祐를 竟矣哉아
疏
○正義曰:‘其匪正 有眚 不利有攸往 无妄之往 何之矣’者, 此釋匪正有眚不利有攸往之義也.
无妄之往, 何之矣, 上之是語辭, 下之是適也. 身旣非正, 在无妄之世, 欲有所往, 何所之適矣, 故云“无妄之往, 何之矣.”
‘天命不祐 行矣哉’者, 身旣非正, 欲有所往, 犯違天命, 則天命不祐助也, 必竟行矣哉, 言終竟行此不祐之事也.
疏
○正義曰:‘竟矣哉’者, 竟謂終竟, 言天所不祐, 終竟行矣哉.
注
[注]與는 辭也니 猶皆也라 天下雷行하면 物皆不可以妄也라
疏
[疏]正義曰:‘天下雷行’者, 雷是威恐之聲, 今天下雷行, 震動萬物, 物皆驚肅, 无敢虛妄,
注
[注]茂는 盛也라 物皆不敢妄然後에 萬物乃得各全其性하니 對時育物은 莫盛於斯也라
疏
此唯王者, 其德乃
, 非諸侯已下所能, 故不云君子而言先王也.
案諸卦之象, 直言兩象, 卽以卦名結之, 若“雷在地中, 復.”
今无妄應云“天下雷行, 无妄”, 今云“物與无妄”者, 欲見萬物皆无妄, 故加物與二字也.
其餘諸卦, 未必萬物皆與卦名同義, 故直顯象以卦結之. 至如復卦, 唯陽氣復, 非是萬物皆復, 擧復一卦, 餘可知矣.
注
[注]體剛處下하여 以貴下賤하고 行不犯妄이라 故로 往得其志라
疏
[疏]正義曰:體剛居下, 以貴下賤, 所行敎化, 不爲妄動, 故往吉而得志也.
六二는 不耕하고 穫하며 不菑하고 畬하니 則利有攸往하니라
注
[注]不耕而穫하고 不菑而畬하니 代終已成하여 而不造也라 不擅其美하고 乃盡臣道라 故로 利有攸往이라
疏
○正義曰:‘不耕穫 不菑畬’者, 六二處中得位, 盡於臣道, 不敢創首, 唯守其終,
猶若田農不敢發首而耕, 唯在後穫刈而已, 不敢
發新田, 唯治其菑熟之地.
‘則利有攸往’者, 爲臣如此, 則利有攸往, 若不如此, 則往而无利也.
疏
[疏]正義曰:釋不耕而穫之義. 不敢前耕, 但守後穫者,
六三은 无妄之災니 或繫之牛하니 行人之得이요 邑人之災라
注
[注]以陰居陽하여 行違謙順하니 是无妄之所以爲災也라 牛者는 稼穡之資也라
二以不耕而穫으로 利有攸往이어늘 而三爲不順之行이라
故로 或繫之牛니 是有司之所以爲獲이요 彼人之所以爲災也라 故로 曰 行人之得이요 邑人之災也라하니라
疏
○正義曰:无妄之世, 邪道不行, 六
陰居陽位, 失其正道, 行違謙順, 而乖臣範, 故无妄之所以爲災矣.
‘牛’者, 稼穡之資. 六三僭爲耕事, 行唱始之道, 而爲不順王事之行, 故有司或繫其牛, 制之使不妄造, 故曰“或繫之牛”也.
‘行人’者, 有司之義也. 有司繫得其牛, 是行人制之得功, 故曰“行人之得.”
疏
[疏]正義曰:釋行人之得義也, 以行人所得, 謂得牛也. 此則得牛, 彼則爲災, 故云邑人災也.
注
[注]處无妄之時하여 以陽居陰하고 以剛乘柔하여 履於謙順하여 比近至尊이라 故로 可以任正이니 固有所守而无咎也라
疏
[疏]正義曰:以陽居陰, 以剛乘柔, 履於謙順, 上近至尊, 可以任正, 固有所守而无咎, 故曰“可貞, 无咎”也.
疏
[疏]正義曰:釋可貞无咎之義, 所以可執貞正, 言堅固有所執守, 故曰“无咎”也.
注
[注]居得尊位하니 爲无妄之主者也라 下皆无妄하여 害非所致어늘 而取藥焉은 疾之甚也라
非妄之災는 勿治自復이니 非妄而藥之하면 則凶이라 故로 曰 勿藥이면 有喜라하니라
疏
[疏]正義曰:‘无妄之疾’者, 凡禍疾所起, 由有妄而來,
今九五居得尊位, 爲无妄之主, 下皆无妄, 而偶然有此疾害, 故云“无妄之疾”也.
‘勿藥 有喜’者, 若疾自己招, 或寒暑飮食所致, 當須治療, 若其自然之疾, 非己所致, 疾當自損, 勿須藥療而有喜也.
此假病象, 以喻人事, 猶若人主而剛正自修, 身无虛妄, 下亦无虛妄, 而遇逢凶禍.
, 災非己招, 但順時修德, 勿須治理, 必欲除去, 不勞煩天下, 是有喜也.
然堯遭洪水, 使鯀禹治之者, 雖知災未可息, 必須順民之心.
鯀之不成, 以災未息也, 禹能治救, 災欲盡也, 是亦自然之災, 勿藥有喜之義也.
注
[注]藥은 攻有妄者也어늘 而反攻无妄이라 故로 不可試也라
疏
[疏]正義曰:解勿藥有喜之義. 若有妄致疾, 其藥可用, 若身旣无妄, 自然致疾, 其藥不可試也, 若其試之, 恐更益疾也.
言非妄有災, 不可治也, 若必欲治之, 則勞煩於下, 害更甚也. 此非直施於人主, 至於凡人之事, 亦皆然也.
若己之无罪, 忽逢禍患, 此乃自然之理, 不須憂勞救護, 亦恐反傷其性.
注
[注]處不可妄之極하여 唯宜靜保其身而已라 故로 不可以行也라
疏
[疏]正義曰:處不可妄之極, 唯宜靜保其身, 若動行, 必有災眚, 无所利也.
位處窮極, 動則致災, 故象云“无妄之行, 窮之災也.”
无妄은 크게 형통하고 貞함이 이로우니, 바르지 않으면 재앙이 있어서 가는 바를 둠이 이롭지 않다.
疏
正義曰:[无妄] 剛으로 안의 주체가 되어 동하고 능히 굳세니, 이로써 아래에 임하면 물건이 모두 감히 詐僞하고 허망한 짓을 하지 못하여 모두 진실한 이치를 행한다.
이 때문에 크게 형통함을 얻고 貞正함이 이로운 것이다. 그러므로 “크게 형통하고 貞함이 이롭다.”라고 말한 것이다.
[其匪正 有眚 不利有攸往] 물건이 이미 망령됨이 없으면 마땅히 正道로써 행해야 하니, 만약 正道를 따르지 않으면 재앙이 있어서 가는 바를 둠이 이롭지 않은 것이다.
〈彖傳〉에 말하였다. “无妄은 剛이 밖에서 와서 안의 주체가 되어
疏
正義曰:이 卦象을 가지고 능히 无妄을 이룬 뜻을 해석하였다. 震의 剛이 밖으로부터 와서 안의 주체가 되어 震이 동하고 乾이 굳세다. 그러므로 능히 물건으로 하여금 망령됨이 없게 하는 것이다.
疏
正義曰:爻의 뜻이 능히 无妄을 이룸을 밝혔다. 九五가 剛으로서 中에 처하고 六二가 여기에 응하니, 이것이 ‘剛이 中에 있고 응함’이다. 剛이 中에 있으면 능히 虛實을 제재하여 斷定하고, 應이 있으면 물건이 순히 따라서 감히 허망함을 하지 못한다.
注
剛이 밖에서 와서 안의 주체가 되어 동하되 더욱 굳세며 剛이 中에 있고 응하여 위엄이 있고 剛하고 方正해서 私欲이 행해지지 않으니, 어찌 망령될 수 있겠는가.
有妄의 道가 소멸하게 하고 无妄의 道가 이뤄지게 하니, 크게 형통하고 貞함이 이로운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剛이 밖에서 와서 안의 주체가 되면 유약하고 간사한 道가 소멸하고,
동하되 더욱 굳세면 剛直한 道가 통하고, 剛이 中에 있고 응하면 깨끗하고 밝은 德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크게 형통하고 바른 것이다.
하늘의 가르침과 명령을 어찌 범할 수 있으며 어찌 망령되게 할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바르지 않으면 재앙이 있어서 가는 바를 둠이 이롭지 않은 것이다.
疏
○正義曰:‘元亨利貞’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위엄이 있고 剛하고 方正하여 私欲이 행해지지 않으니, 어찌 망령될 수 있겠는가. 이는 하늘의 가르침과 명령이다.
天道가 純陽인데 剛하고 능히 굳세니, 이는 乾의 德과 서로 유사하다. 그러므로 “하늘의 命이다.”라고 말하였으니, 이미 하늘의 命이면 어찌 범할 수 있겠는가.
疏
○正義曰:[使有妄之道滅 无妄之道成] ‘妄’은 허망하고 속여서 正理를 따르지 않음을 이른다.
만약 剛中의 주체가 없어서 유약하고 邪辟하면 물건이 다 속이고 망령되니, 이는 有妄의 道가 일어나는 것인데,
지금 剛中의 주체를 만나 위엄이 있고 剛하고 方正하여 아래에 있는 자들이 위엄을 두려워해서 감히 속이고 망령되지 않으니, 이는 有妄의 道가 소멸하고 无妄의 道가 이루어진 것이다.
바르지 않으면 재앙이 있어서 가는 바를 둠이 이롭지 않으니, 无妄의 감이 어디로 가겠는가. 天命이 돕지 않는 일을 행한단 말인가.”
注
바르지 않으면 재앙이 있는데, 고쳐서 바름을 따를 것을 구하지 않고 가는 바를 두고자 하니,
망령되어서는 안 되는 때에 거하여 不正함으로써 가는 바를 두고자 하면 장차 어디로 가고자 하겠는가. 天命이 돕지 않는 바를 끝내 행한단 말인가.
疏
○正義曰:[其匪正 有眚 不利有攸往 无妄之往 何之矣] 이는 ‘바르지 않으면 재앙이 있어서 가는 바를 둠이 이롭지 않음’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无妄之往 何之矣’에서 앞의 之는 어조사이고 뒤의 之는 감이다. 몸이 이미 바르지 않은데 无妄의 세상에 있으면서 가는 바를 두고자 하면 어느 곳으로 가겠는가. 그러므로 “无妄의 감이 어디로 가겠는가.”라고 말한 것이다.
[天命不祐 行矣哉] 몸이 이미 바르지 않은데 가는 바를 두고자 하여 天命을 범하고 어기면 天命이 도와주지 않으니, 끝내 갈 수 있겠는가. 끝내 이 하늘이 돕지 않는 일을 행한다는 말이다.
疏
○正義曰:[竟矣哉] ‘竟’은 終竟을 이르니, ‘하늘이 돕지 않는 바를 끝내 행한단 말인가.’라고 말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하늘 아래 우레가 다님에 물건마다 모두 망령됨이 없다.
注
‘與’는 어조사이니 ‘皆’와 같다. 하늘 아래 우레가 다니면 물건이 다 망령될 수가 없는 것이다.
疏
正義曰:[天下雷行] 우레는 위엄이 있고 두려운 소리이다. 지금 하늘 아래 우레가 다녀서 만물을 진동하니, 물건들이 다 놀라고 두려워하여 감히 허망한 짓을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하늘 아래 우레가 다님에 물건이 모두 망령됨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先王이 无妄의 성대한 일을 가지고 无妄의 때를 당하여 만물을 기른다.”
注
‘茂’는 성함이다. 물건이 모두 감히 망령되지 못한 뒤에야 만물이 비로소 각각 그 性을 온전히 하니, 无妄의 때를 당하여 물건을 기름이 이보다 더 성함이 없는 것이다.
疏
正義曰:‘茂’는 성함이다. ‘對’는 當함이다. 先王이 이 无妄의 성대한 일을 가지고 无妄의 때를 당하여 만물을 길러줌을 말한 것이다.
이는 오직 王者여야 그 德이 마침내 이와 같을 수 있고 제후 이하가 능한 바가 아니다. 그러므로 ‘君子’라고 말하지 않고 ‘先王’이라고 말한 것이다.
살펴보건대, 여러 卦의 〈象傳〉에 곧바로 두 象을 말했으면 즉시 卦의 이름을 가지고 맺었으니, 예컨대 “우레가 땅 가운데 있는 것이 復卦이다.”와 같은 것이다.
지금 无妄卦에는 응당 “하늘 아래에 우레가 다니는 것이 无妄卦이다.”라고 하여야 할 터인데, 이제 “물건이 다 망령됨이 없다.”라고 말한 것은, 만물이 다 망령됨이 없음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므로 ‘物與’ 두 글자를 더한 것이다.
그 나머지 여러 卦는 반드시 만물이 모두 卦名과 뜻이 같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다만 象을 드러내고서 卦名으로써 맺은 것이다. 復卦 같은 경우는 오직 陽氣가 회복하는 것이요 만물이 다 회복하는 것이 아니니, 復卦 하나를 들면 나머지는 알 수 있다.
注
體가 剛하고 아래에 처하여 귀함으로써 천한 이에게 낮추고, 행함에 망령됨을 범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가면 그 뜻을 얻는 것이다.
疏
正義曰:體가 剛하고 아래에 거하여 귀함으로써 천한 이에게 낮추고, 행하는 바가 교화되어서 妄動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가면 길하여 뜻을 얻는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无妄의 감은 뜻을 얻는 것이다.”
六二는 밭 갈지 않고 수확하며 개간하지 않고 묵은(비옥한) 밭이 되니, 가는 바를 둠이 이롭다.
注
밭 갈지 않고서 수확하고 개간하지 않고서 묵은 밭이 되니, 대신하여 끝마침이 이미 이루어져 자기가 만들지 않는 것이다. 그 아름다움을 독차지하지 않고 마침내 신하의 도리를 다하였다. 그러므로 가는 바를 둠이 이로운 것이다.
疏
○正義曰:[不耕穫 不菑畬] 六二가 中에 처하고 正位를 얻어서 신하의 도리를 다하여 감히 앞장서서 창조하지 않고 오직 그 終을 지키니,
마치 농사를 지을 적에 감히 앞장서서 밭 갈지 않고 오직 뒤에 있으면서 수확하고 벨 뿐이며, 감히 앞장서서 새 밭을 개간하지 않고 오직 그 묵은 땅을 다스리는 것과 같다.
이는 모두 시작을 하지 않고 끝만 이루는 것이니, 신하 된 도리에 일의 시작이 되지 않고 군주를 대신하여 끝마침이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則利有攸往] 신하 됨이 이와 같으면 가는 바를 둠이 이롭고, 만약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가도 이로움이 없는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밭 갈지 않고 수확함’은 부유하지 않은 것이다.”
疏
正義曰:‘밭 갈지 않고 수확함’의 뜻을 해석하였다. 감히 앞에서 밭 갈지 않고 뒤에서 수확함을 지키는 것은,
감히 밭 가는 것과 수확하는 것을 모두 자기의 일로 삼지 못하고 오직 뒤에서 수확하여 감히 먼저 밭 갈지 못하는 것이니, 일을 이미 초기에 하지 못하여 그 아름다움을 독차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부유하지 않다.”라고 말한 것이다.
六三은 无妄의 재앙이니, 혹 소를 매어놓으니 行人의 얻음이요 고을 사람의 재앙이다.
注
陰으로서 陽의 자리에 거하여 행실이 겸손함과 유순함에 위배되니, 이는 无妄이 재앙이 되는 이유이다. 소는 농사짓는 밑천이다.
六二가 ‘밭 갈지 않고 수확함’으로써 가는 바를 둠이 이로웠는데, 六三은 순하지 않은 행실을 한다.
그러므로 혹 소를 매어놓는 것이니, 이는 有司에게 얻음이 되는 것이요 저 사람(농부)에게 재앙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行人의 얻음이요 고을 사람의 재앙이다.”라고 한 것이다.
疏
正義曰:无妄의 세상에는 간사한 道가 행해지지 않는데, 六三이 陰으로서 陽의 자리에 거하여 正道를 잃고 행실이 겸손함과 유순함을 어겨 신하의 법에 위배된다. 그러므로 无妄이 재앙이 되는 것이다.
[牛] 농사짓는 밑천이다. 六三이 참람하게 밭 가는 일을 하여 唱導하여 시작하는 道를 행해서 王事에 순종하지 않는 행실을 하였다. 그러므로 有司가 혹 소를 매어놓아서, 六三으로 하여금 망령되이 만들지 못하게 제재하였다. 그러므로 “혹 소를 매어놓았다.”라고 말한 것이다.
[行人] 有司의 뜻이다. 有司가 그 소를 매어놓으니 이는 행인이 제재하여 功을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행인의 얻음”이라 하였고,
저 三位에 거한 자는 바로 고을에 거주하는 사람이니 참람하게 밭 가는 일을 하였다가 재앙과 벌을 받았다. 그러므로 “행인의 얻음이요 고을 사람의 재앙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行人이 소를 얻음은 고을 사람의 재앙이다.”
疏
正義曰:‘행인의 얻음’의 뜻을 해석하였으니, 행인으로서 얻은 것은 소를 얻음을 이른다. 여기서는 소를 얻고 저기서는 재앙이 되었다. 그러므로 “고을 사람의 재앙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注
无妄의 때에 처하여 陽으로서 陰의 자리에 거하고 剛으로서 柔를 타고 있어서 겸손함과 유순함을 밟고서 至尊과 매우 가깝다. 그러므로 正道를 맡을 수 있으니 굳게 지키는 바가 있어 허물이 없는 것이다.
疏
正義曰:陽으로서 陰의 자리에 거하고 剛으로서 柔를 타서 겸손함과 유순함을 밟고서 위로 至尊과 가깝다. 그래서 正道를 맡을 수 있으니 굳게 지키는 바가 있어 허물이 없다. 그러므로 “貞固할 수 있으니, 허물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貞固할 수 있으니 허물이 없음’은 굳게 소유한 것이다.”
疏
正義曰:‘貞固할 수 있으니 허물이 없음’의 뜻을 해석하였으니, 貞正함을 지킬 수 있는 까닭은 견고하게 잡아 지키는 바가 있으므로 “허물이 없다.”라고 한 것임을 말한 것이다.
九五는 无妄의 병이니, 약을 쓰지 않으면 기쁨이 있으리라.
注
거함이 尊位를 얻었으니, 无妄의 주체가 된 자이다. 아래가 모두 망령됨이 없어서 害를 불러온 바가 없는데, 약을 취함은 병이 심한 것이다.
망령되지 않은 재앙은 다스리지 않아도 스스로 회복되니, 망령되지 않는데 약을 쓰면 흉하다. 그러므로 “약을 쓰지 않으면 기쁨이 있다.”라고 말한 것이다.
疏
正義曰:[无妄之疾] 무릇 禍와 病이 시작되는 것은 망령됨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오니,
지금 九五가 거함이 尊位를 얻어서 无妄의 주체가 되었고 아래가 모두 망령됨이 없는데 우연히 이 병과 害가 있다. 그러므로 “无妄의 병”이라 한 것이다.
[勿藥 有喜] 만약 병을 자기가 불러왔거나 혹은 추위와 더위, 마시고 먹는 것에서 오는 것으로 이룬 것이면 모름지기 치료해야 하지만, 만약 자연의 병으로 자기가 이룬 바가 아니면 병이 마땅히 저절로 덜어지니, 굳이 약으로 치료하지 않아도 기쁨이 있는 것이다.
이는 병의 象을 빌려서 사람의 일을 비유한 것이니, 人主가 剛함과 바름으로 스스로 닦아서 몸이 허망함이 없고 아래도 허망함이 없는데, 우연히 흉한 일과 禍를 만난 것과 같다.
예컨대 堯임금과 湯임금의 곤액은 재앙을 자기가 부른 것이 아니니, 다만 때를 순히 따르고 德을 닦을 것이요, 굳이 다스려서 반드시 제거하려고 하지 말아서 천하를 수고롭고 번거롭지 않게 해야 하니, 이것이 ‘기쁨이 있음’이다.
그러나 堯임금이 홍수를 만나서 鯀과 禹로 하여금 다스리게 했던 것은, 비록 재앙이 그칠 수 없음을 알았으나 반드시 백성들의 마음에 순응해야 했기 때문이다.
鯀이 성공하지 못한 것은 재앙이 아직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요, 禹임금이 능히 다스리고 구원한 것은 재앙이 다하려고 한 것이니, 이 또한 자연의 재앙인바, ‘약을 쓰지 않으면 기쁨이 있음’의 뜻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无妄의 약은 써서는 안 된다.”
注
약은 有妄을 다스리는 것인데 도리어 无妄을 다스린다. 그러므로 써서는 안 되는 것이다.
疏
正義曰:‘약을 쓰지 않으면 기쁨이 있음’의 뜻을 해석하였다. 만약 망령됨이 있어 병을 이루면 그 약을 쓸 수 있지만, 만약 자신이 망령됨이 없는데 자연히 병을 이루었으면 약을 쓰지 않아야 하니, 만약 약을 쓰다가 다시 병을 더할까 두려워서이다.
이는 망령되지 않았는데 재앙이 있으면 다스려서는 안 됨을 말한 것이니, 만약 반드시 다스리고자 한다면 아랫사람들을 수고롭고 번거롭게 하여 害가 더욱 더 심하게 된다. 이것은 비단 군주에게 베풀 뿐만이 아니요, 모든 사람의 일에 이르러도 다 그러하다.
만약 자기가 죄가 없는데 갑자기 禍患을 만났으면 이는 바로 자연스러운 이치이니, 굳이 근심하고 수고롭게 하여 구호할 것이 없으니, 또한 도리어 性(생명)을 해칠까 두려워서이다.
上九는 无妄에 가면 재앙이 있어서 이로운 바가 없다.
注
망령되어서는 안 되는 極에 처하여 오직 마땅히 그 몸을 고요히 보존할 뿐이다. 그러므로 가서는 안 되는 것이다.
疏
正義曰:망령되어서는 안 되는 極에 처하여 오직 그 몸을 고요히 보존해야 하니, 만약 동하고 가면 반드시 재앙이 있어서 이로운 바가 없는 것이다.
지위가 궁극함에 처하여 동하면 재앙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므로 〈象傳〉에 “无妄의 감은 궁극함의 재앙이다.”라고 한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无妄의 감은 궁극함의 재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