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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書正義(1)

상서정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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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서정의(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亦言其順考古道而行之니라
曰重華 協于帝하시며
謂文德이니 言其光文 重合於堯하여 俱聖明이니라
○曰若稽古帝舜曰重華協于帝 此十二字 是姚方興所上이니 孔氏傳本無
阮孝緖七錄 亦云然이라
方興本 或此下 更有濬哲文明 溫恭允塞 玄德升聞 乃命以位
聊出之 於王注無施也
이요 智也 舜有深智文明溫恭之德하여塞上下니라
玄德 升聞하니 乃命以位하시니라
謂幽潛이니 潛行道德하사 升聞天朝하여 遂見徵用이니라
‘曰若’至‘以位’
○正義曰:昔東晉之初, 豫章內史梅賾, 上孔氏傳, 猶闕舜典,
自此乃命以位已上, 世所不傳.
多用王‧范之注補之, 而皆以愼徽已下, 爲舜典之初.
至齊蕭鸞建武四年, 吳興姚方興, 於大航頭, 得孔氏傳古文舜典, 亦類.
乃表上之, 事未施行, 方興以罪致戮.
至隋開皇初, 購求遺典, 始得之.
史將錄舜之美.
故爲題目之辭曰 “能順而考案古道而行之者, 是爲帝舜也.”
又申具順考古道之事曰 “此舜能繼堯, 重其文德之光華, 用此德合於帝堯, 與堯俱聖明也.”
此舜性, 有深沈智慧, 文章明鑑, 溫和之色, 恭遜之容, 由名聞遠達, 信能充實上下, 潛行道德, 聞天朝, 堯乃徵用, 命之以位而試之也.
傳‘濬深’至‘上下’
○正義曰:‘濬 深’‧‘哲 智’, 皆釋言文.
舍人曰 “濬, 下之深也, 哲, 大智也.”
‘舜有深智’, 言其智之深, 所知不淺近也.
經緯天地曰文, 照臨四方曰明.
詩云 “溫溫恭人.” 言其色溫而貌恭也.
舜旣有深遠之智, 又有文明溫恭之德, 信能充實上下也.
詩毛傳訓塞爲實, 言能充滿天地之間, 堯典所謂‘格于上下’是也.
不言四表者, 以四表外無限極, 非可實滿,
故不言之.
堯‧舜, 道同, 德亦如一, 史官錯互爲文.
故與上篇相類, 是其所合於堯也.
傳‘玄謂’至‘徵用’
○正義曰:老子云 “玄之又玄, 衆妙之門.” 則玄者, 微妙之名.
故云 “玄謂幽潛也.”
舜在畎畝之間, 潛行道德, 顯彰於外, 升聞天朝.
天朝者, 天子之朝也.
從下而上, 謂之爲升.
天子聞之.
故遂見徵用.


말하건대, 옛 를 따라 상고하신 분은 제순帝舜이셨다.
또한 옛 를 따라 상고해서 행하심을 말한 것이다.
빛난 문덕文德이 거듭 제요帝堯에게 합하시며,
문덕文德을 이름이니, 그 빛난 문덕文德이 거듭 제요帝堯에 합하여 다 성명聖明하심을 말한 것이다.
○〈육덕명陸德明이 말하기를〉 “‘왈약계고제순왈중화협우제曰若稽古帝舜曰重華協于帝’란 이 12요방흥姚方興이 올린 것이니, 공씨전孔氏傳이 본래 없었다.
원효서阮孝緖의 《칠록七錄》에도 그렇게 적고 있다.
요방흥姚方興에 더러 이 아래에 다시 ‘준철문명온공윤새현덕승문내명이위濬哲文明溫恭允塞玄德升聞乃命以位’란 구절이 있다.
이 28의 다른 점을 애오라지 끌어냈으나 왕숙王肅에는 다루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깊은 지혜와 문명文明온공溫恭이 채워져서
은 깊다라는 뜻이요, 은 지혜라는 뜻이니, 에게 깊은 지혜와 문명文明하고 온공溫恭이 있어 〈그 영향이〉 상하 사방에 꽉 찼다는 것이다.
숨겨진 이 위에 알려지니, 곧 직위職位를 가지고 임명하셨다.
유잠幽潛을 이르니, 남모르게 도덕道德을 행하여 위로 천조天朝에 알려져서 결국 부름을 받아 쓰이게 되었다.
의 [曰若]에서 [以位]까지
정의왈正義曰:옛날 동진東晉의 초기 예장내사豫章內史 매색梅賾공전孔傳을 올릴 때에도 오히려 〈순전舜典〉을 빠뜨렸다.
이때부터 ‘내명이위乃命以位’ 앞의 28가 세상에 전해지지 않았다.
대부분 왕숙王肅범녕范寗를 써서 보충하고 모두 ‘신휘愼徽’ 이하를 〈순전舜典〉의 첫머리로 삼았다.
소란蕭鸞(南齊의 명제明帝) 건무建武 4년(497)에 와서 오흥吳興에 사는 요방흥姚方興대항大航의 머리에서 공안국孔安國을 단 〈고문순전古文舜典〉을 구득購得하였는데, 또한 태강太康(晉 무제武帝의 연호, 280~289) 연간에 발견한 죽간서竹簡書와 같았다.
이에 표문表文과 함께 올렸으나 일은 시행되지 못하고 요방흥姚方興은 죄로 죽임을 당하였다.
나라 개황開皇(文帝의 연호, 581~600) 초기에 유전遺典을 구매하여 비로소 〈순전舜典〉을 얻었다.
사관史官이 장차 임금의 아름다운 점을 기록하려고 했다.
그러므로 제목題目의 말을 만들어서 “능히 따라서 옛 를 상고하여 행하신 분은 바로 제순帝舜이었다.”라고 하고,
또한 옛 를 따라 상고한 일을 거듭 구체적으로 밝히기를 “이것은 이 능히 임금을 계승하여 그 문덕文德광화光華를 거듭 재연하고, 이와 같은 으로써 제요帝堯에 합하여 임금과 함께 다 성명聖明했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의 성품에 깊고 침착한 지혜智慧문장文章명감明鑑, 그리고 온화溫和한 안색과 공손恭遜한 용모를 가지니, 이로 말미암아 명문名聞이 멀리 미쳐가 〈영향이〉 상하사방에 꽉 차고, 몰래 도덕道德을 행하여 위로 천조天朝에 알려지니, 임금이 이에 그를 불러 등용한 다음 직위職位를 가지고 임명하여 그를 시험해보았던 것이다.
의 [濬深]에서 [上下]까지
정의왈正義曰:[濬 深]‧[哲 智] 모두 《이아爾雅》 〈석언釋言〉의 글이다.
곽사인郭舍人에 “은 아래의 깊은 곳을 뜻하고, 은 큰 지혜를 뜻한다.”라고 하였다.
[舜有深智] 그 지혜가 깊어서 아는 바가 천근淺近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천지天地경위經緯하는 것을 ‘’이라 이르고, 사방四方조림照臨하는 것을 ‘’이라 이른다.
시경詩經》에서 “온온溫溫한 공손한 사람”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안색이 온화하고 용모가 공손함을 말한 것이다.
은 이미 심원深遠한 지혜를 가졌으며, 또 문명文明하고 온공溫恭을 가졌으니, 참으로 능히 상하上下충실充實하였다.
시경詩經》의 〈모전毛傳〉에서 의 뜻으로 풀이함은 능히 천지天地의 사이에 충만充滿함을 말한 것이니, 〈요전堯典〉에 이른바 “천지에 널리 펴졌다.”란 것이 바로 그것이다.
사표四表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사표四表는 밖이 한도 끝도 없으므로 실만實滿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말하지 않은 것이다.
가 같고 또한 하나같으니, 사관史官착호법錯互法을 써서 문장을 이룬 것이다.
그러므로 상편上篇과 더불어 서로 같으니, 이것이 바로 〈문덕文德이〉 임금에게 합하게 된 것이다.
의 [玄謂]에서 [徵用]까지
정의왈正義曰:노자老子가 이르기를 “유현幽玄하고 유현幽玄하며 모든 도리道理나 일체 변화變化의 근본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란 것은 미묘微妙함을 이르는 명칭이다.
그러므로 “유잠幽潛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은 농촌에 묻혀있을 때 남모르게 도덕道德을 행하여 밖으로 드러나니 위로 천조天朝에 알려졌다.
천조天朝라는 것은 천자天子의 조정이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을 이라고 한다.
천자天子가 그에 대한 것을 들었다.
그러므로 결국 불려 쓰이게 된 것이다.


역주
역주1 曰若稽古 帝舜 : 蔡傳에는 “옛 帝舜에 대해 상고하건대”로 풀이하였다.
역주2 曰若稽古帝舜曰重華協于帝……此二十八字異 : 阮刻本에 “상고하건대 姚方興이 孔傳을 奏文과 함께 올릴 때에 갑자기 異本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니, 아마 經文의 ‘濬哲’ 이하 16字와 傳의 36字는 또 後人이 보탠 것인 듯하다. 明代 鄭曉는 〈舜典〉에 대한 孔傳은 바로 劉光伯(隋, 劉炫)이 僞撰하여 姚方興의 이름을 가탁한 것으로 여겼는데, 姚方興의 일이 《經典釋文》의 〈序錄〉에 나타난 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속일 수 없는 것이다. 오직 ‘濬哲’ 이하 16字만은 혹시 劉光伯이 보탠 것인 듯하다. 어떤 이가 ‘陸德明이 《經典釋文》을 저술할 때에 세상에 劉光伯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았는가?’라고 묻기에 ‘隋 文帝가 〈舜典〉을 얻은 시기는 開皇 2년인 즉 壬寅年(582)이고, 陸德明이 著書한 시기는 癸卯年으로 1년 뒤였다. 이 당시는 南北이 비록 통일되지는 못했지만, 陸德明이 혹시 멀리서 그 말을 듣고 책에 적은 것이 아니었겠는가.’라고 답했다.”라고 하였다. 16字는 “濬哲文明溫恭允塞玄德升聞乃命以位”를 가리키고, 36字는 “濬深哲智也舜有深智文明溫恭之德信允塞上下玄謂幽潛潛行道德升聞天朝遂見徵用”을 가리킨다.
역주3 濬哲文明溫恭 允塞 : 蔡傳에서는 “침착하면서 지혜롭고, 문리가 있으면서 광명하고, 온화하면서 공경하고, 성신하면서 독실하시어 이 네 가지 숨겨진 덕이 있다.[深沈而有智 文理而光明 和粹而恭敬 誠信而篤實 有此四者幽潛之德]”라고 풀이하였다.
역주4 (允)[充] : 저본에는 ‘允’으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古本에는 ‘充塞四表至于上下也’로 되어있고, 岳本에는 ‘信充塞上下’로 되어있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充’으로 바로잡았다.
역주5 二十八字 : ‘曰若稽古帝舜曰重華協于帝濬哲文明溫恭允塞玄德升聞乃命以位’를 가리킨다.
역주6 太康中書 : 《隋書》 〈經籍志〉에 의하면 “晉나라 太康 연간에 汲郡 사람 不準이 魏 襄王의 무덤을 발굴하여 옛적의 竹簡書를 얻었다.”라고 하였는데, 太康中書는 바로 太康 연간에 얻은 竹簡書를 가리킨다.
역주7 [升] : 저본에는 없으나, 阮刻本에 “閩本, 明監本, 毛本에는 ‘聞’ 위에 ‘升’자가 있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상서정의(1)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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