攷異於毛詩하면 經有齊魯韓三家之異라 齊魯詩久亡이요 韓詩則宋以前尙存이라
其異字之見於諸書可攷者는 大約毛多古字요 韓多今字하니 有時必互相證而後에 可以得毛義也라
毛公之傳詩也에 同一字而各篇訓釋不同하니 大抵依文以立解요 不依字以求訓이니
毛不易字로되 鄭箋始有易字之例라 顧注禮則立說以改其字로되 而詩則多不欲顯言之라
亦或有顯言之者하니 毛以假借立說에 則不言易字라도 而易字在其中이어늘
鄭又於傳外硏尋하여 往往傳所不易者而易之하니 非好異也요 亦所謂依文立解를 不如此면 則文有未適也일새라
孟子曰不以文害辭요 不以辭害志라하니 孟子所謂文字는 今所謂字이니
言不可泥於字하고 而必使作者之志를 昭著顯白於後世니 毛鄭之於詩에 其用意同也라
傳箋分하여 而同一毛詩어늘 字有各異矣라 自漢以後로 傳寫滋異하여 莫能枚數러니
至唐初
하여 而
先後出焉
하여 其所遵用之本
을 不能畫一
이라
自唐後至今히 鋟版盛行하여 於經과 於傳箋과 於疏에 或有意妄更하고 或無意譌脫하여 於是繆盭를 莫可究詰이라
因以元舊挍本을 授元和生員顧廣圻하여 取各本挍之하고 元復定是非하니
於以知經有經之例하고 傳有傳之例하고 箋有箋之例하고 疏有疏之例하니
通乎諸例하여 而折衷於孟子不以辭害志而後에 諸家之本이 可以知其分이요 亦可以知其一定하여 不可易者矣라 阮元記라
≪모시毛詩≫와 다른 것을 살펴보면, 경經에는 ≪제시齊詩≫․≪노시魯詩≫․≪한시韓詩≫ 삼가三家의 다름이 있는데, ≪제시齊詩≫․≪노시魯詩≫는 오래전에 없어졌고, ≪한시韓詩≫는 송宋나라 이전까지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여러 책에 나타나 살펴볼 수 있는 ‘이자異字’로는 대략 ≪모시毛詩≫는 고자古字가 많고 ≪한시韓詩≫는 금자今字가 많으니, 때로 반드시 서로 입증한 뒤에야 ≪모시毛詩≫의 뜻을 알 수 있다.
모공毛公이 ≪시경詩經≫을 전傳함에 있어 동일한 글자인데도 각 편마다 훈석訓釋을 달리하였으니, 대체로 글의 내용에 따라 해석을 한 것이지 글자에 따라 뜻을 찾은 것이 아니다.
그러니 ≪주관周官(주례周禮)≫의 가차자假借字에 익숙한 자가 아니면 모형毛亨의 전傳을 읽을 수 없다.
모형毛亨은 글자를 바꾸지 않았는데, 정현鄭玄의 전箋에 비로소 글자를 바꾼 예例가 있다. 다만 ≪의례儀禮≫, ≪주례周禮≫, ≪예기禮記≫ 등을 주注함에는 논리를 세워 그 글자를 바꾸었지만, ≪시경詩經≫에 있어서는 대부분 바꾼 내용을 드러내어 말하고자 하지 않았다.
혹 드러내어 말한 경우도 있는데, 모형毛亨은 글자를 가차假借하여 논리를 세울 때에 바꾼 글자를 말하지 않아도 바꾼 글자의 내용이 그 가운데 있지만,
정현鄭玄은 또 모형毛亨의 전傳 이외의 것을 연구하여 가끔 전傳에서 바꾸지 않은 것을 바꾸었으니, 이는 남과 다르게 하기를 좋아해서가 아니고, 이른바 글의 내용에 따라 해석함[의문립해依文立解]을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글에 적합하지 않음이 있기 때문이다.
맹자孟子가 “문文을 가지고 사辭를 해치지 말고 사辭로 지志를 해치지 말라.”라고 하였는데, 맹자孟子의 이른바 ‘문文’은 지금의 이른바 ‘자字’이니,
글자에 얽매이지 말고 반드시 작자作者의 뜻을 후세에 밝게 드러나게 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모형毛亨이나 정현鄭玄도 ≪시경詩經≫에 있어서 그 뜻은 같다.
전傳과 전箋이 나뉘어 있어 같은 ≪모시毛詩≫인데도, 글자에 각각 다름이 있다. 한漢나라 이후로는 옮겨 적으면서 더욱 달라져서 일일이 다 헤아릴 수 없었는데,
당唐나라 초에 이르러서는 육씨陸氏의 ≪경전석문經典釋文≫과 안씨顔氏의 ≪오경정본五經定本≫과 공씨孔氏의 ≪오경정의五經正義≫가 앞뒤로 나와서 준용해야 할 ‘본本’을 하나로 확정할 수 없었다.
당唐나라 이후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책의 간행이 성행하여 경經, 전傳․전箋, 소疏에 대하여 어떤 경우에는 멋대로 고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생각 없이 바꾸고 탈락시켜 이에 어긋남을 궁구하여 바로잡을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내가 옛날에 교정한 ‘본本’을 원화인 생원元和人 生員 고광기顧廣圻에게 주어서, 각본各本을 취하여 교정케 하고 내가 다시 옳고 그름을 확정하였다.
이에 경經에는 경經대로의 사례가 있고, 전傳에는 전傳대로의 사례가 있으며, 전箋에는 전箋대로의 사례가 있고, 소疏에는 소疏대로의 사례가 있음을 알았으니,
여러 사례를 통틀어서 맹자孟子의 ‘불이사해지不以辭害志’ 뜻으로 맞추어본 뒤에야 제가諸家의 본本이 나누어진 이유를 알 수 있었고, 시의 뜻은 일정하여 바꿀 수 없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완원阮元은 기記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