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氏箋
云 箋
也
요 識也
라하고 案鄭六藝論文
인대 注詩宗毛爲主
로대 其義若隱略
이면 則更表明
하고
如有不同이면 卽下己意하여 使可識別也라하다 然이나 此題는 非毛公馬鄭王肅等題라
又案周續之與雷次宗은 同受慧遠法師詩義로대 而續之釋題 已如此하니 又恐非雷之題也라 疑未敢明之하노라
疏
【疏】正義曰:鄭氏名玄, 字康成, 北海高密人, 當後漢桓․靈之時, 注此書也.
不言名而言氏者, 漢承滅學之後, 典籍出於人
, 各專
命氏, 以顯其家之學,
故諸爲訓者皆云氏, 不言名. 由此而言, 毛氏爲傳, 亦應自載毛字, 但不必冠詩上耳.
不然, 獻王得之, 何知毛爲之也. 明其自言毛矣.
鄭於諸經,
, 呂忱字林云 “箋者, 表也, 識也.” 鄭以毛學審備, 遵暢厥旨,
所以表明毛意, 記識其事. 故特稱爲箋. 餘經無所遵奉, 故謂之注. 注者, 著也, 言爲之解說, 使其義著明也.
疏
【疏】漢初, 爲傳訓者, 皆與經別行.
之文, 不與經連, 故
書公羊傳, 皆無經文.
藝文志云 “毛詩經二十九卷, 毛詩故訓傳三十卷.” 是毛爲詁訓, 亦與經別也.
及
爲周禮之注, 乃云 “欲省學者兩讀, 故具載本文.”
然則後漢以來, 始就經爲注, 未審此詩, 引經附傳, 是誰爲之.
其鄭之箋, 當元在經傳之下矣, 其毛詩經二十九卷, 不知倂何卷也.
自周南至鄭氏箋, 凡一十六字, 所題非一時也. 周南關雎, 至第一詩國風, 元是大師所題也.
詁訓
, 毛自題之. 毛一字, 獻王加之. 鄭氏箋, 鄭自題之.
鄭氏箋
≪
자림字林≫에 “
전箋은 ‘설명함’이고 ‘표시함’이다.” 하였고,
정현鄭玄의 ≪
육예론六藝論≫의 글을 살펴보면 “≪
시詩≫에
주注를 낼 때
모전毛傳을
종주宗主로 삼았는데 만약 그 뜻이 은미하거나 소략하면 다시 설명하여 밝혔고,
만약 내 뜻과 다르면 나의 의견을 아래에 달아 표시하여 구별할 수 있게 하였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제목은 모공毛公․마융馬融․정현鄭玄․왕숙王肅 등이 단 것이 아니다.
전하는 말에 “이것은 뇌차종雷次宗이 제목을 단 것인데 그대로 따른 지가 오래되어 감히 달리할 수가 없다.” 하였다.
그러나 또 생각해보니 주속지周續之와 뇌차종雷次宗은 혜원법사慧遠法師에게서 시의詩義를 동문수학同門受學하였는데 주속지周續之가 제목을 풀이하기를 이미 이처럼 하였으니, 아마도 뇌차종雷次宗이 제목을 단 것은 아닐 듯하다. 의심나는 점은 감히 밝히지 않고 그대로 둔다.
疏
정의왈正義曰:정씨鄭氏는 이름이 현玄이고 자字는 강성康成이니, 북해北海의 고밀인高密人으로 후한後漢의 환제桓帝․영제靈帝 때에 이 책을 주석注釋하였다.
이름을 말하지 않고 씨氏를 말한 것은, 한漢이 진秦의 분서갱유焚書坑儒의 뒤를 이어 전적典籍이 민간民間에서 나왔으므로 명칭을 모두 각자 가문家門을 중시하여 씨氏로 명명命名하여 그 가문의 학문을 드러내었다.
그리하여 훈석訓釋을 한 모든 이들은 씨氏를 말하고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이를 가지고 말하자면 모씨毛氏가 주석注釋을 할 적에 스스로 ‘모毛’자를 기재하였겠지만 꼭 ‘시詩’자의 앞에 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헌왕獻王이 그것을 얻고 어떻게 모씨毛氏가 주석注釋한 것임을 알았겠는가. 그러므로 스스로 ‘모毛’를 말했다는 것이 분명하다.
정현鄭玄이 여러 경經을 주석注釋하고 모두 ‘주注’라고 하고, ≪시경詩經≫에서는 ‘전箋’이라 한 것은, 여침呂忱의 ≪자림字林≫에 “전箋은 설명함이고 표시함이다.” 하였는데, 정현鄭玄이 모씨毛氏는 학문이 잘 갖추어져 있다고 여겨 그 뜻을 따라 서술하였다.
이 때문에 모씨毛氏의 뜻을 설명하여 밝히고 그 일을 표시한 것이다. 그리하여 특별히 ‘전箋’이라 칭한 것이고, 다른 경전은 받들어 따를 만한 것이 없었으므로 ‘주注’라고 한 것이다. ‘주注’는 드러내는 것이니 그것을 해설하여 그 의미를 드러내어 밝히는 것을 말한다.
疏
한漢나라 초기에 낸 주석注釋들은 모두 경經과는 별도로 전해졌다. 그리하여 삼전三傳의 글이 경문經文과 연결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석경石經에 기록된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 모두 경문經文이 없다.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모시毛詩≫는 경經이 29권卷이고 ≪모시고훈전毛詩故訓傳≫이 30권卷이다.” 하였으니, 이는 모씨毛氏가 고훈詁訓을 지은 당시에도 경經과 별도로 유통된 것이다.
마융馬融이 ≪주례周禮≫를 주석注釋하고서 “배우는 사람들이 경經과 주석注釋을 따로 읽는 수고를 덜어주고자 하여 본문을 함께 싣는다.” 하였다.
그렇다면 후한後漢 이후에야 비로소 경經에다 주석注釋을 한 것이니, 이 ≪시경詩經≫은 경經에다 전傳을 가져다 붙인 것을 누가 했는지 알 수 없다.
정현鄭玄의 전箋은 본디 경經과 전傳의 아래에 있었을 것이지만, 그 ≪모시毛詩≫의 경經 29권卷 중 어느 권卷에 합쳐졌는지는 모른다.
‘주남周南’에서 ‘정씨전鄭氏箋’까지의 16자字는 동시同時에 붙여진 제목이 아니니, ‘주남관저周南關雎’에서 ‘제일시국풍第一詩國風’까지는 원래 태사太師가 제목을 붙인 것이고
‘고훈전詁訓傳’은 모씨毛氏가 스스로 제목을 붙인 것이며, ‘모毛’ 한 글자는 헌왕獻王이 더한 것이고 ‘정씨전鄭氏箋’은 정현鄭玄이 스스로 제목을 붙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