而后
에 有定
이니 定而后
에 能靜
하며 靜而后
에 能安
하며 安而后
에 能慮
하며 慮而后
에 이니라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는 先治其國
하고 欲治其國者
는 先齊其家
하고 欲齊其家者
는 先修其身
하고 欲修其身者
는 先
하고 欲正其心者
는 하고 欲誠其意者
는 先致其知
하니
注
其知於善深이면 則來善物이요 其知於惡深이면 則來惡物이니 言事緣人所好來也라
하고 知至而后
에 意誠
하고 意誠而后
에 心正
하고 心正而后
에 身修
하고 身修而后
에 家齊
하고 家齊而后
에 國治
하고 國治而后
에 天下平
이니라
所謂誠其意者는 毋自欺也니 如惡惡臭하며 如好好色이 此之謂自謙이니
小人이 閒居에 爲不善하여 無所不至하다가 見君子而后厭然하여 揜其不善하고 而著其善하나니
如切如磋者는 道學也요 如琢如磨者는 自修也요 瑟兮僴兮者는恂慄也요
赫兮喧兮者
는 威儀也
요 有斐君子終不可諠兮者
는 道盛德至善
을 民之不能忘也
니라剛竹(《毛詩品物圖攷》) 萹竹(《毛詩品物圖攷》)
注
[注]聖人이 旣有親賢之德이면 其政又有樂利於民이라
에 曰 克明德
이라하며 에 曰
天之明命
이라하며 에 曰 克明峻德
이라하니 皆自明也
라
湯之
에 曰 苟日新
이어든 日日新
하고 又日新
하라하며 康誥
에 曰
이라하며 이라하니
이니라盥盤(《三禮圖》)
注
就而觀之컨대 知其所止는 知鳥擇岑蔚安閒而止處之耳니 言人亦當擇禮義樂土而自止處也라
疏
○正義曰 : 此經大學之道, 在於明明德, 在於親民, 在止於至善, 積德而行, 則近於道也.
疏
○‘在明明德’者, 言大學之道, 在於章明己之光明之德, 謂身有明德, 而更章顯之, 此其一也.
疏
○‘在親民’者, 言大學之道, 在於親愛於民, 是其二也.
疏
○‘在止於至善’者, 言大學之道, 在止處於至善之行, 此其三也.
疏
○‘定而后 能靜’者, 心定無欲, 故能靜不躁求也.
疏
○‘安而后 能慮’者, 情旣安和, 能思慮於事也.
疏
○‘慮而后 能得’者, 旣能思慮, 然後於事得安也.
疏
○‘物有本末 事有終始’者, 若於事得宜, 而天下萬物有本有末, 經營百事有終有始也.
疏
○‘知所先後’者, 旣能如此, 天下百事萬物, 皆識知其先後也.
疏
○‘則近道矣’者, 若能行此諸事, 則附近於大道矣.
疏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前章言大學之道在明德‧親民‧止善, 覆說止善之事旣畢,
疏
○‘先治其國’者, 此以積學能爲明德盛極之事, 以漸到.
故言欲章明己之明德, 使遍於天下者, 先須能治其國.
疏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 先修其身’, 言若欲齊家, 先須修身也.
疏
○‘欲修其身者 先正其心’, 言若欲修身, 必先正其心也.
疏
○‘欲正其心者 先誠其意’者, 總包萬慮謂之爲心, 情所意念謂之意.
疏
○‘欲誠其意者 先致其知’者, 言欲精誠其己意, 先須招致其所知之事,
疏
○‘致知 在格物’, 此經明初以致知, 積漸而大至明德.
疏
若知善深則來善物, 知惡深則來惡物, 言善事隨人行善而來應之, 惡事隨人行惡亦來應之,
疏
○‘知至而后 意誠’, 旣能知至, 則意念精誠也.
疏
○‘意誠而后 心正’者, 意能精誠, 故能心正也.
疏
○‘國治而后 天下平’者, 則上明明德於天下, 是以自天子至庶人皆然也.
疏
○‘壹是皆以修身爲本’者, 言上從天子, 下至庶人, 貴賤雖異, 所行此者, 專一以修身爲本.
上言誠意‧正心‧齊家‧治國, 今此獨云修身爲本者, 細別雖異, 其大略皆是修身也.
疏
○‘其本亂而末治者 否矣’, 本亂, 謂身不修也. 末治, 謂國家治也.
疏
○‘其所厚者薄 而其所薄者厚 未之有也’者, 此覆說本亂而末治否矣之事也.
‘其所薄者厚’, 謂己旣與彼輕薄, 欲望所薄之處以厚重報己, 未有此事也.
言己以厚施人, 人亦厚以報己也, 若己輕薄施人, 人亦輕薄報己, 言事厚之與薄, 皆以身爲本也.
疏
旣以身爲本, 若能自知其身, 是知本也, 是知之至極也.
疏
○‘所謂誠其意’者, 自此以下, 至‘此謂知本’, 廣明誠意之事.
疏
○‘毋自欺也’, 言欲精誠其意, 無自欺誑於身, 言於身必須誠實也.
疏
謂見此惡事, 人嫌惡之, 如人嫌臭穢之氣, 心實嫌之, 口不可道矣.
疏
○‘如好好色’者, 謂見此善事而愛好之, 如以人好色, 心實好之, 口不可道矣.
言誠其意者, 見彼好事‧惡事, 當須實好惡之, 不言而自見, 不可外貌詐作好惡, 而內心實不好惡也.
疏
○‘此之謂自謙’者, 謙, 讀如慊, 慊然安靜之貌.
‘見君子而后厭然 揜其不善 而著其善’者, 謂小人獨居, 無所不爲, 見君子而後乃厭然閉藏其不善之事, 宣著所行善事也.
疏
○‘人之視己 如見其肺肝然 則何益矣’者, 言小人爲惡, 外人視之, 昭然明察矣, 如見肺肝然.
‘則何益矣’者, 言小人爲惡, 外人視之, 昭然明察矣, 如見肺肝, 雖
時揜藏, 言何益矣.
疏
○‘此謂誠於中 形於外’者, 言此小人旣懷誠實惡事於中心, 必形見於外, 不可揜藏.
疏
○‘曾子曰 十目所視’者, 此經明君子修身, 外人所視, 不可不誠其意.
疏
○‘其嚴乎’者, 旣視者及指者皆衆, 其所畏敬, 可嚴憚乎.
疏
德潤身者, 謂德能霑潤其身, 使身有光榮見於外也.
疏
○‘心廣體胖’者, 言內心寬廣, 則外體胖大, 言爲之於中, 必形見於外也.
‘故 君子 必誠其意’者, 以有內見於外, 必須精誠其意, 在內心不可虛也.
疏
○‘瞻彼淇澳 菉竹猗猗’者, 此詩衛風淇澳之篇, 衛人美武公之德也.
視彼淇水之隈曲之內, 生此菉之與竹, 猗猗然而茂盛, 以淇水浸潤故也.
言視彼衛朝之內, 上有武公之身, 道德茂盛, 亦蒙
故也.
疏
○‘有斐君子’者, 有斐然文章之君子, 學問之益矣.
疏
○‘如切如磋’者, 如骨之切, 如象之磋, 又能自修也.
疏
○‘瑟兮僴兮 赫兮喧兮 有斐君子 終不可諠兮’者, 又瑟兮顔色矜莊, 僴然性行寬大, 赫然顔色盛美, 喧然威儀宣美, 斐然文章之君子, 民皆愛念之, 終久不可忘也.
自此以上, 詩之本文也. 自此以下, 記者引爾雅而釋之.
疏
言初習謂之學, 重習謂之修, 亦謂詩本文, 互而相通也.
疏
○‘瑟兮僴兮者 恂慄也’者, 恂, 讀爲峻, 言顔色嚴峻戰慄也.
疏
‘有斐君子 終不可諠兮’, 論道武王盛德至極美善, 人之愛念不能忘也.
疏
云‘恂字 或作峻 讀如嚴峻之峻’者, 以經之恂字, 他本或作峻字, 故讀爲嚴峻之峻.
此記爲‘赫兮喧兮’, 詩經云‘赫兮喧兮’, 本不同也.
云‘以其意誠而德著也’, 以武公用意精誠, 德著於人, 人不忘也.
疏
‘詩云 於戲 前王不忘’者, 此一經廣明誠意之事.
以文王‧武王意誠於天下, 故詩人歎美之云 “此前世之王, 其德不可忘也.”
疏
○‘君子 賢其賢而親其親’者, 言後世貴重之, 言君子皆美此前王能賢其賢人而親其族親也.
疏
○‘小人 樂其樂而利其利’者, 言後世卑賤小人, 美此前王能愛樂其所樂, 謂民之所樂者, 前王亦愛樂之.
‘利其利’者, 能利益其人之所利, 民爲利者, 前王亦利益之.
言前王施爲政敎, 下順人情, 不奪人之所樂‧利之事,
疏
○‘此以沒世不忘也’, 由前王意能精誠, 垂於後世, 故君子小人皆所美念.
疏
○‘康誥曰 克明德’者, 此一經廣明意誠則能明己之德.
此記之意, 言周公戒康叔以自明其德, 與尙書異也.
‘大甲曰 顧諟天之明命’者, 顧, 念也. 諟, 正也.
伊尹戒大甲云 “爾爲君, 當顧念奉正天之顯明之命, 不邪僻也.”
疏
‘皆自明也’, 此經所云康誥‧大甲‧帝典等之文, 皆是人君自明其德也,
疏
○正義曰 : 明明德必先誠其意, 此經誠意之章, 由初誠意也, 故人先能明己之明德也.
疏
○‘日日新’者, 言非唯一日之新, 當使日日益新.
疏
○‘又日新’者, 言非唯日日益新, 又須常恒日新.
疏
○‘康誥曰 作新民’者, 成王旣伐管叔‧蔡叔, 以殷餘民封康叔.
疏
○‘詩曰 周雖舊邦 其命惟新’者, 此大雅文王之篇.
其詩之本意, 言周雖舊是諸侯之邦, 其受天之命, 唯爲天子而更新也.
疏
○‘詩云 邦畿千里 惟民所止’, 此一經廣明誠意之事.
此商頌玄鳥之篇, 言殷之邦畿方千里, 爲人所居止.
疏
○‘詩云 緡蠻黃鳥 止于丘隅’者, 此詩小雅緡蠻之篇, 剌幽王之詩.
言緡蠻然微小之黃鳥, 止在於岑蔚丘隅之處, 得其所止, 以言微小之臣依託大臣, 亦得其所也.
疏
○‘子曰 於止 知其所止’者, 孔子見其詩文而論之.
鳥之知在岑蔚安閒之處, 則知人亦擇禮義樂土之處而居止也.”
疏
○‘可以人而不如鳥乎’者, 豈可以人不擇止處, 不如鳥乎,
故論語云, “里仁爲美, 擇不處仁, 焉得知”是也.
疏
○‘詩云 穆穆文王 於緝熙敬止’者, 此大雅文王之篇, 美文王之詩.
대학大學의 도道는 〈자기의〉 지극한 덕德을 드러내 밝힘에 있으며, 백성을 친애親愛함에 있으며, 지선至善에 스스로 처함에 있다.
스스로 처할 곳을 안 뒤에야 정해짐이 있으니, 정해진 뒤에야 차분할 수 있으며, 차분해진 뒤에야 편안할 수 있으며, 편안해진 뒤에야 생각할 수 있으며, 생각한 뒤에야 얻을 수 있다.
사물에는 근본과 말단이 있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먼저 하고 나중에 할 것을 알면 도道에 가까울 것이다.
注
명명덕明明德은 자기의 지극한 덕德을 드러내 밝힘을 이른다.
옛날 〈자기의〉 지극한 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한 사람은 먼저 자기의 나라를 다스리고, 자기의 나라를 다스리고자 한 사람은 먼저 자기의 집안을 가지런하게 하고, 자기의 집안을 가지런하게 하고자 한 사람은 먼저 자기의 몸을 닦고, 자기의 몸을 닦고자 한 사람은 먼저 자기의 마음을 바르게 하고, 자기의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한 사람은 먼저 자기의 생각을 정성스럽게 하고, 자기의 생각을 정성스럽게 하고자 한 사람은 먼저 자기의 앎을 이르게 하였으니,
注
지知는 선악善惡과 길흉吉凶의 처음과 끝을 앎을 이른다.
앎을 이르게 함은 일[物]을 오게 함에 있다.
注
그 선善을 깊이 알면 좋은 일을 오게 하고, 그 악惡을 깊이 알면 나쁜 일을 오게 하니, 일은 사람이 좋아하는 것에 따라 옴을 말한 것이다.
여기서 ‘치致’는 ‘지至(이르다)’라고 하기도 한다.
일이 온 뒤에 지극한 것〈이 선善인지 악惡인지〉를 알고, 지극한 것〈이 선인지 악인지〉를 안 뒤에 생각이 정성스러워지고, 생각이 정성스러워진 뒤에 마음이 바르게 되고, 마음이 바르게 된 뒤에 몸이 닦이고, 몸이 닦인 뒤에 집안이 가지런해지고, 집안이 가지런해진 뒤에 나라가 다스려지고, 나라가 다스려진 뒤에 천하가 공평하게 다스려진다.
천자天子로부터 서인庶人까지 오로지 이것에 전일하여 모두 수신修身을 근본으로 삼는다.
그 근본이 어지러운데 말단이 다스려지는 경우는 없으며, 그 돈후敦厚하게 하였는데 경박輕薄하게 갚고, 경박하게 하였는데 돈후하게 갚는 사람은 없었다.
이것을 근본을 안다고 하며, 이것을 앎의 지극함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른바 자기의 생각을 정성스럽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 속임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니, 나쁜 냄새를 싫어하듯이 하며, 아름다운 여인을 좋아하듯이 하는 것, 이것을 스스로 흡족해한다고 이른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자기 홀로 지낼 때의 행위를 삼간다.
소인은 홀로 지낼 때에 불선不善한 짓을 행하여 못하는 짓이 없다가 군자를 본 뒤에는 시치미를 뚝 떼고서 자기의 불선함을 감추고 자기의 선함을 드러내는 척한다.
사람들이 자기를 살펴봄이 마치 폐간肺肝(속마음)을 들여다보듯이 할 것이니,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이것을 마음속에 정성스럽게 하면 겉으로 드러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자기 홀로 지낼 때의 행위를 삼간다.
注
겸謙은 겸慊이라고 읽으니, 겸慊이라는 말은 흡족함이다.
〈염연厭然의〉 염厭은 염黶이라고 읽으니, 염黶은 덮어 숨기는 모습이다.
“열 사람의 눈이 보며 열 사람의 손이 가리키는 듯하니, 두려울 만하구나.”
부유함은 집을 윤택하게 하고 덕德은 몸을 윤택하게 한다.
마음이 너그러워지면 몸〈에 덕기德氣가 쌓여〉 풍만하게 된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생각을 정성스럽게 한다.
注
세 가지는 안에 충실함이 있으면 겉으로 드러남을 말한 것이다.
“저 기수淇水 물굽이를 바라보니 조개풀과 마디풀이 아름답고 무성하도다.
쪼갠 듯하고 다듬은 듯하며, 쫀 듯하고 간 듯하구나.
‘쪼갠 듯하고 다듬은 듯함’은 학문을 말하며, ‘쫀 듯하고 간 듯함’은 스스로 닦음이며, ‘엄숙함이여 굳셈이여’는 위엄威嚴 있는 용모이며,
‘빛남이여 드러남이여’는 위엄 있는 거동이며, ‘아름다운 문장이 있는 군자여 끝내 잊을 수 없도다.’는 성대한 덕德과 지극한 선善을 백성들이 잊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注
이것은 마음이 너그러워지면 몸이 풍만하게 된다는 시詩이다.
녹죽의의菉竹猗猗는 아름답고 무성함을 비유한 것이다.
엄준嚴峻이라고 할 때의 준峻처럼 읽으니, 그 용모가 엄준嚴峻하고 엄숙嚴肅함을 말한다.
백성들이 잊을 수 없는 것은 그의 생각이 정성스러워 덕德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뼈를 다듬는 것을 ‘절切’, 상아를 다듬는 것을 ‘차磋’, 옥을 다듬는 것을 ‘탁琢’, 돌을 다듬는 것을 ‘마磨’라고 한다.”
전대前代의 왕을 잊지 못한다.”라고 하였으니, 〈전대의 왕이〉 군자에 대해서는 그의 어짊을 어질게 여기고 그의 친족을 친하게 여겼으며, 소인小人에 대해서는 그가 즐겁게 여기는 것을 즐거워하고 그가 이롭게 여기는 것을 이롭게 여겼다.
이 때문에 〈전대의 왕이〉 세상을 떠나도 〈백성들이 그의 덕을〉 잊지 못하는 것이다.
注
성인聖人이 〈군자君子를〉 친하게 여기고 어질게 여기는 덕이 있으면 그 정치政治는 백성을 즐겁게 하고 이롭게 함이 있다.
그러므로 군자와 소인에 대해 저마다 생각해주는 것이 있다.
〈강고康誥〉에 “〈문왕文王은 자기의〉 덕德을 잘 밝혔다.”라고 하였으며, 〈태갑太甲〉에 “〈탕왕湯王은〉 하늘의 밝은 명命을 돌아보고 〈스스로를〉 바로잡았다.”라고 하였으며, 〈제전帝典〉에 “〈요堯임금은 자기의〉 큰 덕을 잘 밝혔다.”라고 하였으니, 모두 스스로 밝힌 것이다.
注
〈제전帝典〉은 〈요전堯典〉이니, 〈〈강고康誥〉‧〈태갑太甲〉과 마찬가지로〉 이것도 《상서尙書》의 편명이다.
탕왕湯王의 〈반명盤銘〉에 “진실로 어느 날 새롭게 되면, 날마다 새롭게 하고, 더욱 날로 새롭게 하라.”라고 하였으며, 〈강고康誥〉에 “새로운 백성이 되라.”라고 하였으며, 《시경詩經》에 “주周나라는 비록 오래된 나라이지만, 그 교명敎命이 새로워졌다.”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군자는 그 〈마음과 힘을〉 다하지 않음이 없다.
注
〈반명盤銘〉은 목욕통에 〈글귀를〉 새겨 경계로 삼은 것이다.
군자가 어느 날 자기의 덕德을 새롭게 하기 시작하면 늘 마음과 힘을 다하여 남음이 있지 않게 한다.
《시경詩經》에서 “나라의 경기京畿 천 리 땅이여.
산이 깊고 숲이 울창한 곳에 머물러 살도다.”라고 하였는데, 공자孔子가 말하였다.
“〈새도〉 머물러 살 때에 제 머물 곳을 아는데, 사람으로서 새만 못해서야 되겠는가.”
注
이것에 관해 살펴보면 지기소지知其所止는 새가 산이 깊고 숲이 울창하여 평안하고 한가로운 곳을 골라 그곳에 머물러 살 줄 아는 것이니, 사람도 예의禮義를 지키고 즐겁게 살 수 있는 곳을 골라 스스로 머물러 살아야 함을 말한 것이다.
《논어論語》에 “인자仁者가 사는 마을에 사는 것을 아름답게 여기니, 〈좋은 거처를〉 찾아 인자仁者가 사는 마을에 살지 않으면 어찌 지혜롭다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민만緡蠻〈의 민緡〉은 음音이 ‘면緜(면)’이고, 다른 음은 망亡과 취取의 반절음反切音(뮈)이다.
《모시毛詩》에는 ‘면緜’으로 되어 있으니, 전傳에서 “면만緜蠻은 작은 새의 모습이다.”라고 하였다.
아! 〈덕德이〉 밝고 환하여 머물 곳을 삼갔도다.”라고 하였으니,
임금이 되어서는 인仁에 머물고, 신하가 되어서는 경敬에 머물고,
자식이 되어서는 효孝에 머물고, 아버지가 되어서는 자慈에 머물고,
나라 사람들과 교제할 때에는 신信에 머물렀다.
注
이것은 문왕文王의 덕德이 밝고 환하여 그 스스로 머물 곳을 삼갔음을 찬미한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 : 이 경문經文은 대학大學의 도道가 밝은 덕德을 밝힘에 있으며, 백성을 친애親愛함에 있으며, 지선至善에 머무름에 있다는 것이니, 덕德을 쌓아 실천하면 도道에 가까울 것이다.
疏
○[在明明德]대학大學의 도道가 ‘자기의 밝고 환한 덕德을 드러내 밝힘에 있다.’는 것은 자신에게 밝은 덕이 있는데 다시 그것을 드러내어 밝힘을 이르니, 이것이 그 첫 번째라는 말이다.
疏
○[在親民]대학大學의 도道가 ‘백성을 친애함에 있다.’는 것이니, 이것이 그 두 번째라는 말이다.
疏
○[在止於至善]대학大學의 도道가 ‘지선至善한 행동에 머무는 데 있다.’는 것이니, 이것이 그 세 번째라는 말이다.
대학大學의 도道가 이 세 가지 일에 있음을 말한 것이다.
疏
○[知止而后 有定] ‘지어지선止於至善’의 일을 다시 되풀이하여 말한 것이다.
‘지어지선止於至善’을 이미 안 뒤에야 마음에 정해짐이 있어 잘못되거나 바뀌지 않을 수 있다.
疏
○[定而后 能靜] 마음이 정해져 욕망이 없기 때문에, 차분해져 조급하게 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疏
○[靜而后 能安] 〈마음이〉 차분해졌기 때문에, 정情‧성性이 평안하고 온화하다는 것이다.
疏
○[安而后 能慮]정情이 평안하고 온화한 뒤에 일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疏
○[慮而后 能得] 〈일을〉 잘 생각한 뒤에야 일에서 편안함을 얻는다는 것이다.
疏
○[物有本末 事有終始] 만일 일에서 마땅함을 얻으면 천하의 만물에 근본이 있고 말단이 있어서 경영하는 온갖 일에 끝이 있고 시작이 있다는 것이다.
疏
○[知所先後] 이와 같이 할 수 있어야 천하의 온갖 일과 만물에서 모두 그 먼저 하고 나중에 할 것을 안다는 것이다.
疏
○[則近道矣] 만일 일에서 이것을 실천할 수 있다면 큰 도道에 가까울 것이라는 것이다.
疏
○[古之欲明明德於天下] 앞 장에서 대학大學의 도道는 명덕明德‧친민親民‧지선止善에 있음을 말하고, ‘지선止善’의 일을 되풀이하여 말한 것이 이미 끝났다.
그러므로 이것은 경문經文의 ‘명명덕明明德’의 이치이다.
疏
○[先治其國] 이것은 학문을 쌓음으로써 밝은 덕德이 성대하고 지극해지는 일을 잘 실천하여 점차 이른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밝은 덕德을 드러내 밝혀 천하에 두루 미치게 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자기의 나라를 잘 다스려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疏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 先修其身] 만일 집안을 가지런하게 하고자 한다면 먼저 자기의 몸을 닦아야 함을 말한 것이다.
疏
○[欲修其身者 先正其心] 만일 몸을 닦고자 한다면 반드시 먼저 자기의 마음을 바르게 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疏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온갖 생각을 빠짐없이 포괄하는 것을 ‘심心’이라고 하고, 정情에 의해 생각하게 되는 것을 ‘의意’라고 한다.
만일 자기의 마음을 바르게 하여 비뚤어짐[傾邪]이 없게 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먼저 지극한 정성이 깊은 생각[憶念]에 있어야 한다.
만일 자기의 생각을 정성스럽고 참되게 할 수 있다면 마음이 비뚤어지지 않는다.
疏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자기의 생각을 정성스럽게 하고자 한다면 먼저 자기가 아는 일을 오게 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 반드시 배워 익힌 뒤에야 바로 그 성패成敗를 분명하게 아는 것이 있을 수 있음을 말하였다.
그러므로 ‘먼저 자기의 앎을 이르게 하였다.’라고 한 것이다.
疏
○[致知 在格物] 이 경문經文은 처음에 앎을 이르게 함에서 시작하여 점차 쌓아서 밝은 덕德에 크게 이름을 밝힌 것이다.
앞의 경문에서는 성대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처음에 근본하였고, 이 경문에서는 처음으로부터 〈시작하여〉 성대함에 이르렀으니, 앞뒤가 서로 연결된다.
疏
[致知在格物] 만일 배워서 익히면 아는 일을 오게 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자기가 아는 것이 있으면 오는 일에서 살필 수 있다.
만일 선善을 깊이 알면 좋은 일을 오게 하고 악惡을 깊이 알면 나쁜 일을 오게 하니, 좋은 일은 사람이 선善을 행하는 데 따라, 와서 응하게 되고 나쁜 일도 사람이 악惡을 행하는 데 따라, 와서 응하게 됨을 말한 것이다.
선악善惡의 옴은 사람이 좋아하는 것에서 기인起因함을 말한 것이다.
疏
○[物格而后 知至] 일이 이미 오면 그 선악善惡이 지극한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좋은 일이 오면 그 선善에 지극함을 알고, 만약 나쁜 일이 오면 그 악惡에 지극함을 안다.
이미 〈선善과 악惡에 대한〉 앎이 지극할 수 있으면 선善을 행하고 악惡을 행하지 않는다.
疏
○[知至而后 意誠] 이미 〈선善과 악惡에 대한〉 앎이 지극할 수 있으면 생각[意念]이 정성스러워진다는 것이다.
疏
○[意誠而后 心正] 생각이 정성스럽기 때문에, 마음이 바르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疏
○[國治而后 天下平] 바로 앞의 ‘명명덕어천하明明德於天下’이니, 천자天子로부터 서인庶人까지 모두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疏
○[壹是皆以修身爲本] 위로는 천자天子로부터 아래로는 서인庶人까지 〈신분의〉 귀천貴賤은 비록 다르나 이것을 행하는 자는 오로지 하나같이 수신修身을 근본으로 삼음을 말한 것이다.
앞에서 성의誠意‧정심正心‧제가齊家‧치국治國을 말하였으나, 지금 여기서 ‘수신修身을 근본으로 삼는다.’라고만 한 것은 자세히 구별하면 비록 다르겠지만, 그 대체적인 요지는 모두 수신修身이기 때문이다.
疏
○[其本亂而末治者 否矣] 근본이 어지러운 것은 몸이 닦이지 않음을 이르고, 말단이 다스려지는 것은 나라와 집안이 다스려짐을 이른다.
자기의 몸이 닦이지 않았는데도 집안과 국가가 다스려지기를 바라는 경우는 없음을 말한 것이다.
부否는 불不(없다)이니, 이런 일이 있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疏
○[其所厚者薄 而其所薄者厚 未之有也] 이것은 근본이 어지러운데 말단이 다스려지는 경우는 없다는 일을 다시 말한 것이다.
비유하자면 남과 교제할 때에는 남에게 돈후敦厚함을 베풀어야 하는 것과 같다.
지금 돈후하게 할 데에 경박輕薄하게 함은 경박함으로 저 사람을 상대함을 이른다.
[其所薄者厚] 자기가 이미 저 사람에게 경박하게 하고는 경박하게 한 데에서 후중厚重함으로 자기에게 갚아주기를 바람을 이르니, 이런 일은 없었다.
자기가 돈후함을 남에게 베풀면 남도 돈후함으로 자기에게 갚고, 만약 자기가 경박함을 남에게 베풀면 남도 경박함으로 자기에게 갚음을 말한 것이니, 돈후함과 경박함을 실천함[事]에 모두 몸을 근본으로 삼음을 말한 것이다.
疏
○[此謂知本 此謂知之至也]본本은 몸을 이른다.
이미 몸을 근본으로 삼았으니 만일 스스로 자기의 몸을 알 수 있다면, 이것이 ‘근본을 앎’이며, 이것이 앎의 지극함이다.
疏
○[所謂誠其意] 이 이하부터 ‘차위지본此謂知本’까지는 성의誠意의 일을 널리 밝힌 것이다.
이 한 단락은 성의誠意의 근본은 먼저 자기 홀로 지냄을 삼가야 함을 밝힌 것이다.
疏
○[毋自欺也] 자기의 생각을 정성스럽게 하고자 한다면 스스로 자신을 속임이 없어야 함을 말한 것이니, 자신에게 반드시 정성스럽고 참되게 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疏
○[如惡惡臭] 〈악취惡臭는〉 더러운 냄새를 이른다.
이 나쁜 일을 보고 사람들이 혐오하기를 마치 사람들이 더러운 냄새를 혐오하는 것처럼, 마음으로는 실제로 그것을 혐오하나 입으로는 말하지 못함을 이르는 것이다.
疏
○[如好好色] 이 좋은 일을 보고 매우 좋아하기를 마치 아름다운 여인[好色]을 사랑[人]하는 것처럼, 마음으로는 실제로 그것을 좋아하나 입으로는 말하지 못함을 이르는 것이다.
자기의 생각을 정성스럽게 하는 자는 저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보면 마땅히 실제로 좋아하고 싫어해야 함이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보이니, 겉으로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척하더라도 속마음은 실제로 좋아하고 싫어하지 않을 수 없음을 말한다.
疏
○[此之謂自謙]겸謙은 겸慊처럼 읽으니, 흡족한 듯 편안하고 차분한 모습이다.
마음은 비록 좋아하고 싫어하더라도 입으로 말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편안하고 차분해질 것이다.
[見君子而后厭然 揜其不善 而著其善]소인小人이 홀로 지낼 때에 못하는 짓이 없다가 군자를 본 뒤에는 시치미를 뚝 떼고서 자기의 불선不善한 짓을 감추고 선善을 행한 일을 널리 드러냄을 이른다.
疏
○[人之視己 如見其肺肝然 則何益矣]소인小人이 악惡을 행함에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보면 환히 분명하게 살펴봄이 마치 폐간肺肝(속마음)을 들여다보는 듯할 것임을 말한 것이다.
‘즉하익의則何益矣’는 소인이 악惡을 행함에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보면 환히 분명하게 살펴봄이 마치 폐간을 들여다보는 듯할 것이니, 비록 잠시 숨기고 감추더라도 곧[言]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를 말한 것이다.
疏
○[此謂誠於中 形於外] 이 소인小人이 이미 마음속에 참으로 나쁜 일을 품고 있으면 반드시 밖으로 드러나 숨기고 감출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 : 〈겸謙은〉 경의經義의 이치로 말하면 ‘겸퇴謙退’의 ‘겸謙’자이다.
그러나 ‘겸손히 물러나는 일’과는 관련이 없으므로 〈‘겸謙’을〉 ‘겸慊(겸)’이라고 읽었다.
겸慊은 〈마음에〉 차지 않는 모습이므로 〈‘겸謙’을〉 또 ‘염厭’이라고 읽은 것이다.
[厭 讀爲黶] 〈염연厭然의 염厭을 염黶으로 읽으면〉 염黶은 검은색이니, 덮어 숨기는 모습이 된다.
疏
○경經의 [曾子曰 十目所視] 이 경문經文은 군자가 몸을 닦음에 다른 사람들이 보기 때문에 자기의 생각을 정성스럽게 하지 않을 수 없음을 밝힌 것이다.
《예기禮記》를 지은 사람이 증자曾子의 말을 인용하여 증명하였다.
[十目所視 十手所指] 가리키고 보는 사람이 많음을 말한 것이다.
십목十目은 열 사람의 눈을 이르고, 십수十手는 열 사람의 손을 이른다.
疏
○[其嚴乎] 이미 보는 사람과 가리키는 사람이 모두 많으니, 어찌 두려워하면서 공경하는 것을 매우 꺼릴 수 있겠는가라는 것이다.
疏
○[富潤屋 德潤身] 이것은 두 구절을 말하여 비유한 것이다.
〈‘부윤옥富潤屋’은〉 집안이 만일 부유하면 그 집을 윤택하게 할 수 있으니, 금과 옥으로 꾸미고 또 화려한 장식이 겉으로 드러남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덕윤신德潤身’은 덕德이 그 몸을 두루 윤택하게 할 수 있으니, 몸에 영광榮光이 겉으로 드러나게 함이 있음을 이른 것이다.
疏
○[心廣體胖] 안의 마음이 너그럽고 넓어지면 밖의 몸이 풍만하게 됨[胖大]을 말한 것이니, 마음속에 그것을 행하면 반드시 밖으로 드러남을 말한 것이다.
[故 君子 必誠其意] 〈마음〉 안에 있는 것이 밖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반드시 자기의 생각을 정성스럽게 하여 안의 마음을 비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疏
○[詩云 瞻彼淇澳] 이 한 경문經文은 성의誠意의 일을 널리 밝힌 것이다.
그러므로 《시경詩經》을 인용하여 학문學問‧자신自新‧안색顔色‧위의威儀의 일을 말하여 성의誠意의 도道를 증명하였다.
疏
○[瞻彼淇澳 菉竹猗猗] 이것은 《시경詩經》 〈위풍衛風 기오淇澳〉이니, 위衛나라 사람이 무공武公의 덕德을 찬미한 것이다.
저 기수淇水 물굽이 안쪽을 바라보니, 자라는 이 조개풀과 마디풀이 아름답고도 무성한 것은 기수淇水가 적셔주기 때문이다.
저 위衛나라 조정朝廷의 안에, 위로 무공武公 자신의 도덕道德이 무성한 것 역시 강숙康叔의 남은 공렬功烈을 입었기 때문임을 말한 것이다.
인용한 것은 성의誠意의 도道를 증명한 것이다.
疏
○[有斐君子] 아름다운 문장文章이 있는 군자가 학문이 향상될 것이라는 것이다.
疏
○[如切如磋] 뼈를 쪼갠 듯하고 상아를 다듬은 듯하다는 것이니, 또 스스로 잘 닦는 것이다.
疏
○[如琢如磨] 옥을 쫀 듯하고 돌을 간 듯하다는 것이다.
疏
○[瑟兮僴兮 赫兮喧兮 有斐君子 終不可諠兮] 또 고운 얼굴빛이 조심성 있고 엄숙하며, 우아한 성품과 행실이 관대하며, 빛나는 얼굴빛에 아름다움이 가득하며, 훌륭한 위엄 있는 거동에 아름다움이 드러났으니, 아름다운 문장文章이 있는 군자를 백성들이 모두 사랑하고 마음에 두어 끝내 오래도록 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이상은 《시경詩經》의 본문이고, 이 이하는 〈〈대학大學〉의 이 장章을〉 기록한 사람[記者]이 《이아爾雅》를 인용하여 풀이한 것이다.
[如切如磋者 道學也] 그 학문을 말한 것이다.
疏
○[如琢如磨者 自修也] 스스로 수양함[修飾]을 이른 것이다.
처음 익힘을 ‘학學’이라고 하고, 거듭 익힘을 ‘수修’라고 함을 말하였으니, 또한 《시경詩經》의 본문이 서로서로 통함을 말한 것이다.
疏
○[瑟兮僴兮者 恂慄也]순恂은 준峻이라고 읽으니, 얼굴빛이 준엄하고 엄숙함을 말한 것이다.
疏
○[道盛德至善 民之不能忘也] 좋은 칭찬임을 이른 것이다.
[有斐君子 終不可諠兮]무왕武王의 성대한 덕德과 지극히 아름다운 선善을 사람들이 사랑하고 마음에 두어 잊을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 : [諠 忘也] 《이아爾雅》 〈석훈釋訓〉의 글이다.
[道 猶言也]경문經文 가운데 ‘도성덕지선道盛德至善’〈의 도道자를〉 도덕道德의 도道자로 여길까 염려하였기 때문에, ‘도道는 언言과 같다.’라고 한 것이다.
[恂字 或作峻 讀如嚴峻之峻] 경문의 순恂자는 다른 판본에 간혹 준峻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엄준嚴峻의 준峻으로 읽는다고 한 것이다.
〈〈대학〉을 지은 사람이〉 《시경詩經》을 풀이하면서 도리어[還] ‘순恂’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이 《예기禮記》에서 ‘혁혜훤혜赫兮喧兮’라고 한 것은 《시경詩經》에서 ‘혁혜훤혜赫兮喧兮’라고 한 것과 본래 같지 않다.
[以其意誠而德著也]무공武公이 생각을 정성스럽게 하여 덕德이 사람들에게 드러났기 때문에, 사람들이 잊지 못하는 것이다.
경문이 성의誠意의 일을 넓게 밝혔기 때문에, 정현鄭玄이 “생각이 정성스러워 덕德이 드러났다.”라고 한 것이다.
疏
○경經의 [詩云 於戲 前王不忘] 이 한 경문經文은 성의誠意의 일을 널리 밝힌 것이다.
이것은 《시경詩經》 〈주송周頌 열문烈文〉이니, 무왕武王을 찬미한 시이다.
문왕文王‧무왕武王은 생각이 천하 사람들에게 정성스러웠기 때문에, 시인詩人이 “이 전대前代의 왕은 그 덕德을 잊지 못하겠다.”라고 탄식하여 찬미한 것이다.
疏
○[君子 賢其賢而親其親] 후세가 귀중하게 여겼음을 말한 것이니, 〈후세의〉 군자는 모두 이 전대前代의 왕이 그 현인賢人을 존경[賢]하고 그 친족을 사랑[親]함을 아름답게 여겼음을 말한 것이다.
疏
○[小人 樂其樂而利其利] 〈‘소인요기락小人樂其樂’은〉 후세의 비천한 소인들은 이 전대前代의 왕이 〈소인〉 자신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즐거워하였음을 아름답게 여겼다고 말한 것이니, 백성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전대의 왕도 즐거워하였음을 이른다.
‘이기리利其利’는 그 사람이 이롭게 여기는 것을 이롭게 여긴 것이니, 백성들이 이롭게 여기는 것을 전대의 왕도 이롭게 여겼다는 것이다.
전대의 왕이 정사政事와 교화敎化를 시행함에 아래로 인정人情에 순응하여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이롭게 여기는 일을 빼앗지 않았음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전대의 왕이〉 소인에 대해서는 그가 즐겁게 여기는 것을 즐거워하고 그가 이롭게 여기는 것을 이롭게 여겼다.”라고 한 것이다.
疏
○[此以沒世不忘也]전대前代의 왕이 생각이 정성스러워 〈그 덕德이〉 후세에 잘 드리워졌기 때문에 군자와 소인이 모두 아름답게 여겨 마음에 둔 것이다.
이 때문에 〈전대의 왕이〉 세상을 떠나도 그의 덕德을 잊지 못하는 것이다.
疏
○[康誥曰 克明德] 이 한 경문經文은 생각이 정성스러워지면 자기의 덕德을 밝힐 수 있음을 널리 밝힌 것이다.
주공周公이 강숙康叔을 봉封하면서 〈강고康誥〉를 지어 강숙에게 가지고 있는 덕德을 드러내어 사용하라고 경계한 것이다.
이 《예기禮記》에서의 뜻은 주공이 강숙에게 스스로 자기의 덕을 밝히라고 경계한 것이라고 말하였으니, 《상서尙書》와는 다르다.
[大甲曰 顧諟天之明命]고顧는 마음에 둠[念]이고, 시諟는 바로잡음[正]이다.
이윤伊尹이 태갑太甲에게 “그대가 임금이 되면 하늘의 밝고 밝은 명命을 돌아보고 마음에 두며 〈이를〉 받들어 〈스스로를〉 바로잡아 간사하고 치우치지 않아야 합니다.”라고 경계한 것이다.
疏
○[帝典曰 克明峻德] 〈제전帝典〉은 〈요전堯典〉을 이른다.
《상서尙書》에서의 뜻은 요堯임금이 어질고 큰 덕德〈이 있는 인사人士〉를 잘 드러내어 임용任用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이 《예기禮記》에서의 뜻은 요임금이 스스로 큰 덕을 잘 밝혔음을 말하였다.
[皆自明也] 이 경문經文에서 말한 〈강고康誥〉‧〈태갑太甲〉‧〈제전帝典〉 등의 글은 모두 인군人君이 스스로 자기의 덕德을 밝힌 것이다.
그러므로 “모두 스스로 밝힌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 : 밝은 덕德을 밝히려면 반드시 먼저 자기의 생각을 정성스럽게 해야 하니, 이 경經의 성의장誠意章이 처음에 생각을 정성스럽게 함으로부터 시작하므로 〈이 경을 읽는〉 사람들이 먼저 자기의 밝은 덕을 밝힐 수 있는 것이다.
疏
○경經의 [湯之盤銘] 이 한 경문經文은 성의誠意의 일을 널리 밝힌 것이다.
‘탕지반명湯之盤銘’은 탕왕湯王이 목욕통에 명銘을 새겨 경계로 삼은 것이다.
반드시 목욕통에 명銘을 새긴 것은 경계함이 심한 것이다.
疏
목욕하여 스스로 새로워질 뿐만이 아닌 것이다.
진실로 도덕道德이 어느 날 더욱 새로워진 것이다.
疏
○[日日新] 하루 동안 새롭게 할 뿐만 아니라 날마다 더욱 새롭게 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疏
○[又日新] 날마다 더욱 새롭게 할 뿐만 아니라 또 항상 날로 새롭게 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구일신苟日新‧일일신日日新‧우일신又日新이〉 모두 간절한 말이다.
이것은 자기의 생각을 정성스럽게 하여 끊임없이 덕德을 닦아야 함을 이른 것이다.
疏
○[康誥曰 作新民]성왕成王이 관숙管叔‧채숙蔡叔〈의 반란〉을 정벌한 뒤, 은殷나라의 유민을 강숙康叔에게 내려주었다.
〈강고康誥〉는 은나라 사람들이 주紂임금의 나쁜 풍속에 동화同化되었으니 그 〈강숙〉에게 〈나쁜 풍속에 동화된 은나라 사람들을〉 변화시켜 새 사람이 되게 하라는 말이다.
이 《예기禮記》에서의 뜻은 스스로 자기의 덕德을 생각하여 새로운 백성이 되라는 것이다.
疏
○[詩曰 周雖舊邦 其命惟新] 이것은 《시경詩經》 〈대아大雅 문왕文王〉이다.
그 《시경詩經》의 본래 뜻은 주周나라가 비록 오래된 제후의 나라이나, 그가 하늘의 명命을 받아 천자天子가 되어 다시 새로워졌음을 말한 것이다.
이 《예기禮記》에서의 뜻은 그가 시행한 교명敎命은 오직 덕德을 잘 생각하여 스스로 새로워졌다는 말이다.
[是故 君子 無所不用其極]극極은 끝까지 다함[盡]이다.
군자가 날로 자기의 덕德을 새롭게 하고자 한다면 어디서든 자기 마음이 힘을 다하지 않음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스스로 새로워지는 방도方道는 오직 자기의 마음과 힘을 다하여 다시 남은 행실이 없게 하는 데에 달려 있음을 말한다.
疏
○[詩云 邦畿千里 惟民所止] 이 한 경문經文은 성의誠意의 일을 널리 밝힌 것이다.
자기의 생각을 정성스럽게 함이 머무를 곳에 달려 있음을 말하였다.
그러므로 앞에서 “대학大學의 도道는 지선至善에 스스로 처함에 있다.”라고 한 것이다.
이것은 《시경詩經》 〈상송商頌 현조玄鳥〉이니, 은殷나라의 경기京畿 사방 천 리가 사람들이 사는 곳임을 말한 것이다.
이 《예기禮記》에서는 단장취의斷章取義하여 사람으로서 머물 곳을 선택함을 비유한 것이니, 인군人君이 어질면 〈사람들이〉 옴을 말한 것이다.
疏
○[詩云 緡蠻黃鳥 止于丘隅] 이것은 《시경詩經》 〈소아小雅 민만緡蠻〉이니, 유왕幽王을 풍자한 시詩이다.
작디작은 자그마한 꾀꼬리가 산이 깊고 숲이 울창한 곳에 머물러 제 머물 곳을 얻었음을 말한 것으로, 하찮은 신하도 대신大臣에게 의탁하여 제자리를 얻었음을 말한 것이다.
疏
○[子曰 於止 知其所止]공자孔子가 《시경詩經》의 글을 보고서 논평한 것이다.
“새가 머무는 곳을 보면 사람도 제 머물 곳을 알아야 한다.
새가 산이 깊고 숲이 울창하면서 평안하고 한가로운 곳에 있을 줄 아니, 사람도 예의禮義를 지키고 즐겁게 살 수 있는 곳을 골라 머물러 살 줄 알아야 한다.”
疏
○[可以人而不如鳥乎] 어찌 사람이 머물 곳을 고르지 않아 새만 못해서야 되겠는가.
그러므로 《논어論語》 〈이인里仁〉에서 “인자仁者가 사는 마을에 사는 것을 아름답게 여기니, 〈좋은 거처를〉 찾아 인자仁者가 사는 마을에 살지 않으면 어찌 지혜롭다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疏
○[詩云 穆穆文王 於緝熙敬止] 이것은 《시경詩經》 〈대아大雅 문왕文王〉이니, 문왕文王을 찬미한 시詩이다.
《시경詩經》의 본래 뜻은 문왕이 이 〈덕德이〉 밝고 환한 사람을 보면 공경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이 《예기禮記》에서의 뜻은 ‘어집희於緝熙’〈에 중점이 있으〉니, ‘아아.
문왕의 덕이 밝고 환하여, 또 그 머물 곳을 잘 삼가 스스로 거처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 : 잠岑은 〈지세地勢가〉 가파르고 험함을 이른다.
새가 머물 때에는 반드시 고요하고 〈초목이〉 빽빽한 곳을 선택함을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