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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1)

춘추좌씨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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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十有一年春 滕侯薛侯來朝注+諸侯相朝 例在文十五年 [附注] 林曰 此諸侯朝魯之始 亦旅見之始하다
[經]夏 會鄭伯于時來注+時來 郲也 熒陽縣東 有釐城 鄭地也 하다
[經]秋七月壬午 公及齊侯鄭伯入許注+與謀曰及 還使許叔居之 故不言滅也 許 潁川許昌縣하다
[經]冬十有一月壬辰 公薨注+實弑書薨 又不地者 史策所諱也 하다
[傳]十一年春 滕侯薛侯來朝爭長注+薛 魯國薛縣 [附注] 林曰 滕薛同爲侯爵 故爭爲長하다
薛侯曰 我先封注+薛祖奚仲 夏所封 在周之前이라하고 滕侯曰 我周之卜正也注+卜正 卜官之長 [附注] 朱曰 言我祖爲周卜官之長 薛庶姓也 我不可以後之注+庶姓 非周之同姓로라
公使羽父請於薛侯曰 君與滕君注+[附注] 林曰 辱臨朝于魯君하니
周諺有之曰 山有木 工則度之하고 賓有禮 主則擇之注+擇所宜而行之라하니 周之宗盟 異姓爲後注+盟載書 皆先同姓 例在定四年 [附注] 林曰 此言周家宗室有盟誓之事 皆先同姓而後異姓
寡人若朝于薛이면 不敢與諸任齒注+薛 任姓 齒 列也하리니 君若辱貺寡人인댄 則願以滕君爲請注+[附注] 朱曰 貺 賜也 謙言薛君來我國 是有賜於我寡人也하노라 薛侯許之하여
乃長滕侯하다
[傳]夏 公會鄭伯于郲하니 謀伐許也
鄭伯將伐許하야 五月甲辰 授兵於大宮注+大宮 鄭祖廟 [附注] 林曰 授兵賦車馬也 蓋授兵車于祖廟也 凡出師 必告于祖廟 而奉遷廟之主以行할새 公孫閼與潁考叔爭車注+公孫閼 鄭大夫하야 潁考叔挾輈以走注+輈 車轅也 [附注] 林曰 授車之時 未有馬 故以手挾轅而走어늘 子都拔棘以逐之注+子都 公孫閼 棘 戟也 及大逵弗及하니 子都怒注+逵 道方九軌也하다
[傳]秋七月 公會齊侯鄭伯伐許하다
庚辰 傅于許注+傅於許城下 [附注] 林曰 傅 附也하다
潁考叔取鄭伯之旗蝥弧以先登注+蝥弧 旗名이어늘 子都自下射之하니注+顚 隊而死하다
瑕叔盈又以蝥弧登注+瑕叔盈 鄭大夫하야 周麾而呼曰 君登矣注+周 徧也 麾 招也 [附注] 林曰 徧麾蝥弧之旂而呼라하니 鄭師畢登하다
壬午 遂入許하니 許莊公奔衛注+奔不書 兵亂遁逃 未知所在하다
齊侯 以許讓公하니 公曰 君謂許不共注+不共職貢이라 故從君討之니라
許旣伏其罪矣 雖君有命이나 寡人弗敢與聞이로라
乃與鄭人하다.
鄭伯使許大夫百里奉許叔以居許東偏注+許淑 許莊公之弟 東偏 東鄙也 [附注] 林曰 言居許東偏 以見不全得國也 曰天禍許國하고 鬼神實不逞于許君하야 而假手于我寡人注+借手于我寡德之人以討許이라
寡人唯是一二父兄 不能共億注+父兄 同姓群臣 共 給 億 安也이온 其敢以許自爲功乎
寡人有弟로되 不能和協하야 而使餬其口於四方注+弟 共叔段也 餬 鬻也 段出奔 在元年 [附注] 林曰 使叔段寄食於四方之國 其況能久有許乎
吾子奉許叔以撫柔此民也하라
吾將使獲也佐吾子注+獲 鄭大夫 公孫獲하리라
若寡人得沒于地注+以壽終 [附注] 朱曰 得善終而葬于地下하고悔禍于許注+言天加禮於許而悔禍之注+無寧 寧也 玆 此也 [附注] 林曰 言寧止許叔居許東偏 許莊公獲返國而奉其社稷之祭祀 朱曰 言異日復奉許之社稷者 寧非此許公乎
唯我鄭國之有請謁焉이면 如舊昏媾注+謁 告也 婦之父曰昏 重昏曰 媾 [附注] 朱曰 許公復國之後 若我鄭國有所請求於許 爾許於鄭 當如舊日姻戚 不可疎外也하여 其能降以相從也注+降 降心也하고으로 實偪處此하야 以與我鄭國爭此土也注+[附注] 朱曰 汝當固守其國 毋使其他族類 處於此地 以相逼害 與我鄭國 爭許國之地也하라
吾子孫其覆亡之不暇 而況能禋祀許乎注+絜齊以享 謂之禋祀 謂許山川之祀 [附注] 朱曰 設使他族處此 以與我爭 則我之子孫將顚覆危亡 救之不暇
寡人之使吾子處此 不唯許國之爲 亦聊以固吾圉也注+圉 邊垂也니라
乃使公孫獲處許西偏曰 凡而器用財賄 無寘於許하고 我死어든 乃亟去之注+[附注] 朱曰 而 汝也하라
吾先君注+此 今河南新鄭 舊鄭 在京兆 [附注] 朱曰 莊公之父武公 始遷邑於河南 王室而旣卑矣하야 周之子孫 日失其序注+鄭 亦周之子孫니라
夫許 大岳之胤也注+大岳 神農之後 堯 㣧 繼也
天而旣厭周德矣吾其能與許爭乎注+[附注] 朱曰 此言公孫獲不可久居之意
君子謂
鄭莊公於是乎有禮
經國家하고 定社稷하고 序民人하고 利後嗣者也注+[附注] 林曰 言禮之用 經理其國家 安定其社稷 敎民長幼尊卑之序 爲後嗣萬世無彊之利者也
許無刑而伐之하고 服而舍之注+刑 法也 [附注] 朱曰 言許亂無刑政 故鄭伐之 旣服罪而不取其國하며 度德而處之하고 量力而行之注+[附注] 林曰 度許德之厚薄而處之 度鄭力之强弱而行之하고 相時而動하야 無累後人注+我死乃亟去之 無累後人하니 可謂知禮矣로다
[傳]鄭伯使卒出豭하고 行出犬鷄하야 以詛射潁考叔者注+百人爲卒 二十五人爲行 行亦卒之行列 疾射穎考叔者 故令卒及行間 皆詛之 [附注] 林曰 豭 牡猪也하다
君子謂
鄭莊公失政刑矣로다
政以治民하고 刑以正邪하나니
旣無德政하고 又無威刑이라 是以及邪注+大臣不睦 又不能用刑於邪人 [附注] 林曰 臣下不懷德畏威 是以及邪僻之行어늘 邪而詛之하니 將何益矣리오
[傳]王取鄔劉注+二邑 在河南緱氏縣 西南 有鄔聚 西北 有劉亭 蔿邘注+蔿邘 鄭二邑之田于鄭하고 而與鄭人蘇忿生注+蘇忿生 周武王司寇蘇公也之田 溫注+今溫縣注+在心水縣西注+在野王縣西南注+一名陽樊 野王縣西南 有陽城 隰郕注+在懷縣西南 欑茅注+在脩武縣北注+軹縣西 有地名向上注+今盟津注+今州縣注+注+在脩武縣北注+今懷縣 凡十二邑 皆蘇忿生之田 欑茅隤屬汲郡 餘皆屬河內하다
君子是以知桓王之失鄭也
恕而行之 德之則也 禮之經也어늘 己弗能有而以與人하니 人之不至 不亦宜乎注+蘇氏叛王 十二邑王所不能有 爲桓五年 從王伐鄭張本
[傳]鄭息有違言注+以言語相違恨하야 息侯伐鄭하니 鄭伯與戰于竟하다
息師大敗而還注+息國 汝南新息縣하다
君子是以知息之將亡也注+[附注] 朱曰 楚滅息 見莊公十四年傳
不度德注+鄭莊賢하고 不量力注+息 國弱하고 不親親注+鄭息 同姓之國하고 不徵辭하고 不察有罪注+言語相恨 當明徵其辭 以審曲直 不宜輕闕하야
犯五不韙而以伐人하니 其喪師也 不亦宜乎注+韙 是也
[傳]冬十月 鄭伯以虢師伐宋하야
壬戌 大敗宋師하야 以報其入鄭也注+入鄭 在十年하다
宋不告命이라 故不書하다
凡諸侯有命 告則書하고 不然則否注+命者 國之大事政令也 承其告辭 史乃書之于策 若所傳聞行言 非將君命 則記在簡牘而已 不得記於典策 此蓋周禮之舊制
師出臧否 亦如之注+藏否 謂善惡得失也 滅而告敗 勝而告克 此皆互言 不須兩告乃書하야
雖及滅國이라도 滅不告敗하고 勝不告克이면 不書于策이니라
[傳]羽父請殺桓公하야 將以求大宰注+大宰 官名 [附注] 朱曰 羽父度公欲終據其位 故請殺桓公한대 公曰 爲其少故也 吾將授之矣注+授桓位리라
使營菟裘하니 吾將老焉注+菟裘 魯邑 在泰山梁父縣南 不欲復居魯朝 故別營外邑하리라
羽父懼하야 反譖公于桓公而請弑之注+[附注] 林曰 以隱公不從而懼禍及已 反讚隱公於桓公 謂隱將殺桓
하다
公之爲公子也 與鄭人戰于狐壤이라가 止焉注+內諱獲 故言止 狐壤 鄭地하니 鄭人囚諸尹氏注+尹氏 鄭大夫어늘
賂尹氏而禱於其主鍾巫注+主 尹氏所主祭 [附注] 林曰 祈禱於尹氏所主祭鐘巫之神하고 遂與尹氏歸하야 而立其主注+立鐘巫於魯하다
十一月 公祭鍾巫할새 齊于社圃注+社圃 園名하고 館于寪氏注+館 舍也 寪氏 魯大夫러니 壬辰 羽父使賊弑公于寪氏하고 立桓公而討寪氏하니 有死者注+欲以弑君之罪加寪氏 而復不能誅之 傳言러라
不書葬 不成喪也注+桓弑隱簒立 故喪禮不成


11년 봄에 등후滕侯설후薛侯가 노나라에 와서 조현朝見하였다.注+제후諸侯가 서로 조현朝見한 것이다. 그 문공文公 15년에 보인다. [부주]林: 이것이 제후가 나라에 조현朝見한 시초이고, 또 여견旅見(여러 제후가 함께 와서 조현朝見하는 것)의 시초이기도 하다.
여름에 은공隱公정백鄭伯시래時來에서 회합會合하였다.注+시래時來이다. 형양현熒陽縣 동쪽에 이성釐城이 있다. 나라 땅이다.
가을 7월 임오일에 은공이 제후齊侯정백鄭伯과 함께 로 쳐들어갔다.注+모의謀議에 참여한 것을 이라 한다. 도로 허숙許叔을 그곳에 살게 하였기 때문에 했다고 하지 않은 것이다. 영천潁川허창현許昌縣이다.
겨울 11월 임진일에 은공隱公하였다.注+사실은 시해弑害된 것인데 이라고 기록하고, 또 죽은 장소를 말하지 않은 것은 사책史策에 숨겨야 할 바이기 때문이다.
11년 봄에 등후滕侯설후薛侯가 노나라에 조현朝見하러 와서 행례行禮선후先後를 다투었다.注+노국魯國설현薛縣이다. [부주]林: 이 똑같이 후작侯爵이기 때문에 먼저 를 행하려고 다툰 것이다.
설후는 “우리나라가 나라보다 먼저 해졌다.注+의 조상 해중奚仲나라 때에 해졌으니 나라가 생기기 이전에 봉해졌다.”고 하고, 등후는 “우리는 주나라의 복정卜正이고,注+복정卜正복관卜官이다. [부주]朱: 우리 조상은 나라 복관卜官이었다고 말한 것이다. 설나라는 서성庶姓이니, 우리가 설나라보다 뒤에 를 행할 수 없다.注+서성庶姓나라의 동성同姓이 아니다.”고 하였다.
이에 은공隱公우보羽父를 시켜 설후에게 청하기를 “임금님과 등군이 고맙게도 과인寡人안부安否를 묻기 위해 오셨습니다.注+[부주]林: 고맙게 노군魯君에게 조현朝見하기 위해 왔다는 말이다.
나라 속담에 ‘산에 있는 나무는 공장工匠이 그 장단을 헤아려 사용하고, 빈객賓客을 대접하는 예는 주인이 선후를 선택한다.注+마땅한 바를 선택하여 행하는 것이다.’고 하였으니, 주나라의 종맹宗盟에는 이성異姓이 뒤에 를 행하였습니다.注+맹재서盟載書(盟辭를 기록한 문서文書)에 모두 동성同姓을 먼저 기록한다. 그 정공定公 4년에 보인다. [부주]林: 이는 나라 종실宗室이 맹세할 일이 있으면 모두 동성同姓을 앞에 기록하고 이성異姓을 뒤에 기록했다는 말이다.
과인이 만약 나라에 조현朝見하러 간다면 감히 임성任姓의 제후들과 선후의 서열序列을 다투지 않을 것이니,注+임성任姓이다. 이다. 임금께서 과인에게 은혜를 베풀고자 하신다면 등군滕君이 먼저 예를 행하도록 청하고자 합니다.注+[부주]朱: 이다. 설군薛君이 우리나라에 왔으니, 이는 바로 나 과인寡人에게 은혜를 준 것이라고 겸손히 말한 것이다.” 고 하니, 설후가 허락하였다.
이에 등후에게 먼저 예를 행하게 하였다.
여름에 은공隱公정백鄭伯에서 회합하였으니, 이는 허국許國에 대한 토벌을 모의하기 위해서였다.
정백이 허국를 치려고 5월 갑진일에 대궁大宮에서 군대들에게 병기兵器를 나누어 줄 때注+대궁大宮나라 조묘祖廟이다. [부주]林: 수병授兵거마車馬를 준 것이니, 아마도 조묘祖廟에서 병거兵車를 준 것인 듯하다. 모든 출사出師에는 반드시 조묘祖廟하고서 를 모시고 가는 것이다.공손알公孫閼영고숙潁考叔병거兵車를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어注+공손알公孫閼나라 대부大夫이다. 영고숙이 수레의 끌채를 옆에 끼고 달아나니,注+는 수레의 끌채이다. [부주]林: 수레를 줄 때에 말(馬)이 없었기 때문에 끌채를 끼고 달아난 것이다.자도子都가 창을 빼들고 영고숙을 뒤쫓아注+자도子都공손알公孫閼이고 은 창이다. 큰길까지 갔으나 따라잡지 못하자 자도가 크게 노하였다.注+는 아홉 대의 수레가 나란히 갈 수 있는 길이다.
가을 7월에 은공隱公제후齊侯정백鄭伯과 연합하여 토벌討伐하였다.
경진일에 대군大軍허성許城 밑에 붙었다.注+허성許城 밑에 붙은 것이다. [부주]林: 는 붙는 것이다.
영고숙이 정백의 무호蝥弧를 들고 먼저 성으로 올라가자注+무호蝥弧기명旗名이다.자도子都가 밑에서 그를 향해 활을 쏘니 영고숙이 성에서 떨어져 죽었다.注+은 떨어져 죽은 것이다.
그러자 하숙영瑕叔盈이 다시 무호를 가지고 성으로 올라가서注+하숙영瑕叔盈나라 대부大夫이다. 사방으로 깃발을 휘두르며 “임금께서 성에 오르셨다.”고 고함을 치니,注+는 두루이고, 는 부름이다. [부주]林: 사방으로 무호기蝥弧旗를 휘두르며 고함쳐 부른 것이다. 정나라 군대가 모두 성으로 올라갔다.
임오일에 드디어 허성許城으로 들어가니 허장공許莊公나라로 도망갔다.注+도망간 것을 《춘추》에 기록하지 않은 것은 병란兵亂 중에 도망갔으므로 있는 곳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제후齊侯허국許國은공隱公에게 양여讓與하니, 은공이 말하기를 “께서 허국許國직공職貢을 바치지 않는다고注+직공職貢을 바치지 않은 것이다. 하시기에 을 따라 허국許國을 토벌한 것입니다.
그런데 허국許國이 이미 상응相應을 받았으니, 아무리 께서 명하셔도 과인寡人은 감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고 하였다.
그러자 제후齊侯허국許國정인鄭人에게 주었다.
정백이 나라 대부 백리百里에게 허숙許叔을 모시고서 허국許國동편東偏에 거주하게 하며注+허숙許叔허장공許莊公의 아우이다. 동편東偏은 동쪽 교야郊野이다. [부주]林: 허국許國의 동편에 거주하게 하였다고 말하여 허국許國을 전부 점령占領하지 않았음을 드러냈다. 말하기를 “하늘이 허나라에 화를 내리고 귀신도 허군許君을 만족하게 여기지 않아 과인寡人의 손을 빌려 토벌討伐하게 하였다.注+이 부족한 나의 손을 빌려 허국許國을 토벌하게 하였다는 말이다.
그러나 과인은 한두 명의 부형父兄에게 물자物資를 공급하여 편안히 지내게 하지 못하였는데,注+부형父兄동성同姓군신群臣이다. 은 주는 것이고 은 편안함이다. 어찌 감히 허국許國 토벌한 것을 스스로의 공로功勞로 삼겠는가?
과인은 아우가 있으나 서로 화목하지 못하여, 사방을 떠돌며 입에 풀칠을 하게 하였는데,注+아우는 공숙단共叔段이다. 는 죽이다. 공숙단의 출분出奔은 은공 원년에 있었다. [부주]林: 공숙단으로 하여금 사방의 나라에서 기식寄食하게 하였다는 말이다. 더구나 어찌 오래도록 허나라를 점유占有할 수 있겠는가?
그대는 허숙을 모시고서 이곳의 백성을 안무安撫하라.
내 장차 공손획公孫獲으로 하여금 그대를 보좌輔佐토록 하겠다.注+나라 대부大夫공손획公孫獲이다.
만약 과인寡人천수天壽를 누리고 죽어 땅에 묻힌 뒤에注+수명壽命대로 살다가 죽는 것이다. [부주]朱: 수명대로 살다가 죽어 지하地下에 묻히는 것이다. 하늘이 혹시 로 대우하여 허국에 내린 화를 철회撤回한다면注+하늘이 허국을 예우禮遇하여 내린 것을 후회한다는 말이다. 어찌 이 허공許公으로 하여금 다시 허국許國사직社稷을 받들게 하지 않겠는가.注+무녕無寧이고, 이다. [부주]林: 어찌 이 허숙許叔허국許國의 동편에 거주하는 데 그칠 뿐이겠는가. 허장공許莊公이 나라로 돌아와서 그 사직社稷의 제사를 받든다는 말이다. : 후일에 다시 허국許國사직社稷을 받들 자가 어찌 이 허공許公이 아니겠느냐는 말이다.
그때에 가서 우리 정나라가 청고請告하는 일이 있으면 마치 오랜 혼구昏媾처럼注+함이다. 아내의 아버지를 이라 하고, 겹 사돈을 라 한다. [부주]朱: 허공許公이 나라로 돌아온 뒤에 만약 우리 정나라가 허국許國청구請求하는 일이 있으면 너희 허국은 우리 정나라를 옛날의 인척姻戚처럼 대해야 하고 소외疎外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마음을 낮추어 따르고,注+은 마음을 낮추는 것이다. 다른 종족宗族으로 하여금 이곳 가까이 살게 하여, 우리 정나라와 이 땅을 다투게 하지 말라.注+[부주]朱: 너희는 나라를 단단히 지켜 다른 종족으로 하여금 이곳에 살며 서로 침해侵害하게 하여 우리 정나라와 허국의 땅을 다투게 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자손의 복망覆亡을 구제하기에도 겨를이 없을 것인데, 더구나 허국許國산천山川에 제사를 지낼 수 있겠는가.注+깨끗이 재계齋戒하고서 제향祭享하는 것을 인사禋祀라 하는데, 허국許國산천山川의 제사를 이른다.[부주]朱: 가령 다른 종족이 이 곳에 살면서 우리 정나라와 다투게 된다면 장차 우리 자손이 전복顚覆되는 위망危亡을 구제하기에도 겨를이 없을 것인데 어느 겨를에 허국許國산천山川에 제사를 지내겠느냐는 말이다.
과인寡人이 그대를 이곳에 거주하게 하는 것은 허국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변경邊境공고鞏固히 하려는 것이기도 하다.注+변경邊境이다.”고 하였다.
공손획公孫獲허국許國서편西偏에 거처하게 하며 말하기를 “모든 너의 기용器用과 재물을 허국에 두지 말고, 내가 죽거든 서둘러 이곳을 떠나라.注+[부주]朱: 이다.
우리 선군先君께서 이곳에 새로 도읍都邑을 세운 뒤로注+이곳은 지금의 하남河南신정新鄭을 이른다. 정나라의 옛 도읍都邑경조京兆에 있었다. [부주]朱: 장공莊公의 아버지 무공武公이 비로소 하남河南으로 도읍을 옮겼다.나라 왕실王室이 이미 쇠미衰微해져서 나라 자손들이 날로 질서秩序을 잃고 있다.注+나라도 나라의 자손이다.
그러나 저 허나라는 태악太岳의 후손이다.注+태악太岳신농神農후예後裔임금 때에 사악四岳이었다. 후계後繼이다.
하늘은 이미 주나라의 을 버렸으니, 우리가 어찌 허국許國과 다툴 수 있겠는가.注+[부주]朱: 이는 공손획公孫獲에게 오래 거주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군자는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정장공이 이번에 일을 처리한 것이 에 부합하였다.
예는 국가國家경영經營하고 사직社稷을 안정시키고 인민人民의 질서를 정하고 후사後嗣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注+[부주]林: 작용作用은 국가를 경영하고 사직을 안정시키고 백성들에게 장유長幼존비尊卑의 질서를 가르치고 후사後嗣를 위하여 만세萬世토록 무궁한 이익을 끼치는 것이다.
허국許國이 법도를 지키지 않자 토벌하였고 승복承服하자 용서해 주었으며,注+이다. [부주]朱: 허국이 어지러워 형정刑政이 없기 때문에 정나라가 토벌하였고, 죄를 승복承服하자 그 나라를 점유占有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덕을 헤아려 처리하고 힘을 헤아려 행동行動하고注+[부주]林: 나라 후박厚薄을 헤아려 처리하고, 정나라 힘의 강약을 헤아려 시행施行했다는 말이다. 시기를 보아 움직여서 후손에게 누를 끼치지 않았으니,注+내가 죽거든 서둘러 떠나라고 한 것은 후인後人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려는 것이다.를 알았다고 할 수 있다.”
정백鄭伯에게 돼지를 내게 하고, 에게 개나 닭을 내게 하여, 영고숙을 쏘아 죽인 자를 저주詛呪하게 하였다.注+1백 인으로 이루진 부대部隊이고 25인으로 이루진 부대가 이다. 항렬行列이기도 하다. 영고숙을 쏘아 죽인 자를 미워했기 때문에 으로 하여금 저주詛呪하게 한 것이다. [부주]林: 는 수퇘지이다
이에 대해 군자는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정장공은 정사政事형벌刑罰의 도리를 잃었다.
정사政事로써 백성을 다스리고 형벌로써 사악邪惡을 바로잡는 것이다.
이미 어진 정사政事가 없고 위엄 있는 형벌이 없기 때문에 전투戰鬪 중에 아군我軍선봉先鋒을 쏘아 죽이는 사악한 일이 생긴 것인데,注+대신大臣들이 불목不睦하는데도 악인惡人에게 형벌刑罰을 시행하지 못하였다. [부주]林: 신하가 임금의 은덕을 생각하지 않고 임금의 위엄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악邪惡한 행동을 했다는 말이다. 사악한 행위를 하였는데도 처벌하지 않고 저주하였을 뿐이니, 장차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주환왕周桓王나라의 注+이 두 하남河南구지현緱氏縣에 있는데, 서남에는 오취鄔聚가 있고, 서북에는 유정劉亭이 있다.注+는 정나라의 두 이다. 등 네 곳의 땅을 하고 대신 소분생蘇忿生注+소분생蘇忿生주무왕周武王사구司寇였던 소공蘇公이다.의 땅인 注+지금의 온현溫縣이다.注+심수현心水縣 서쪽에 있다.注+야왕현野王縣 서남에 있다.注+일명 양번陽樊이다. 야왕현野王縣 서남에 양성陽城이 있다.습성隰郕注+회현懷縣 서남에 있다.찬모欑茅注+수무현脩武縣 북쪽에 있다.注+지현軹縣 서쪽에 지명地名향상向上인 곳이 있다.注+지금의 맹진盟津이다.注+지금의 주현州縣이다.注+주석注釋하지 않았다.注+수무현脩武縣 북쪽에 있다.注+지금의 회현懷縣이다. 이 12은 모두 소분생蘇忿生의 땅인데, 찬모欑茅급군汲郡에 속하였고, 나머지는 모두 하내河內에 속하였다. 등의 나라에 주었다.
군자君子는 이 일로 환왕桓王이 정나라를 잃게 될 것을 알았다.
내 마음을 미루어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행동하는 것이 준칙準則이고 상도常道인데, 환왕桓王소분생蘇忿生배반背叛으로 자기도 소유所有할 수 없는 땅을 다른 사람에게 주었으니, 그 사람이 내조來朝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注+소씨蘇氏주왕周王을 배반하였으므로 12주왕周王이 소유할 수 없는 땅이라는 말이다. 이것이 환공桓公 5년에 제후諸侯주왕周王을 따라 나라를 정벌한 장본張本이다.
나라와 나라가 언어言語 문제로 서로 불화不和하여注+말이 서로 어그러진 일로 분한忿恨하였다는 말이다.식후息侯가 정나라를 치니, 정백鄭伯나라 군대와 국경國境에서 전쟁하였다.
나라 군대가 대패大敗하고서 돌아갔다.注+식국息國여남汝南신식현新息縣이다.
군자君子는 이 일로 인해 나라가 장차 할 것을 알았다.注+[부주]朱: 나라가 식국息國을 멸망시킨 것이 장공莊公 14년 에 보인다.
을 헤아리지도 않고注+정장공鄭莊公의 어짊을 이른다. 힘을 요량料量하지도 않고,注+국력國力함을 이른다. 친척을 가까이하지도 않고,注+동성同姓의 나라이다. 말의 시비를 따지지도 않고, 죄가 있는 지의 여부與否를 살피지도 않았다.注+언어 문제로 서로 원한이 생기면 시비를 분명히 따져 잘잘못을 살펴야 하고 경솔히 전쟁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이 다섯 가지 잘못을 범하고서 남을 공격하였으니 군대를 상실喪失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注+는 옳음이다.
겨울 10월에 정백鄭伯나라 군대를 거느리고 나라를 토벌하였다.
임술일에 나라 군대를 대패大敗시켜 그들이 정나라로 쳐들어왔던 원한을 보복報復하였다.注+나라가 나라를 침입侵入한 일은 은공隱公 10년에 있었다.
그러나 송나라가 이 사실을 노나라에 통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에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제후국諸侯國대사大事가 발생했을 때 통고하면 기록하고 통고하지 않으면 기록하지 않는 것이 이다.注+은 국가의 중대한 일에 관한 정령政令이다. 중대한 일이 발생한 나라가 통고하는 고사告辭를 받아야 사관史官에 기록하고, 만약 떠도는 말을 전해 듣고서 사실을 알았다 하더라도 그 나라 임금이 사람을 보내어 통고하지 않으면 그 일은 간독簡牘에 기록할 뿐, 전책典策에는 기록하지 않는다. 이것이 주례周禮의 옛 제도였던 듯하다.
출사出師장비臧否도 그러하다.注+장비臧否선악득실善惡得失이다. 멸망한 나라가 패전을 통고하고 승리한 나라가 승전勝戰을 통고한다는 것은 모두 한 것이니, 반드시 양쪽에서 모두 통고하여야 기록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한 나라가 멸망에 이르렀어도 멸망한 나라가 패전敗戰을 통고하지 않고, 승리한 나라가 승전勝戰을 통고하지 않으면 에 기록하지 않는다.
우보羽父환공桓公을 죽이라고 청하여 장차 태재太宰注+태재太宰관명官名이다. [부주]朱: 우보羽父은공隱公이 끝까지 군위君位를 차지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환공桓公을 죽이기를 청한 것이다.가 되기를 구하니, 은공이 말하기를 “그가 어리기 때문에 내가 임시로 섭정攝政하고 있는 것이니, 지금은 그가 이미 장성하였으니 나는 장차 그에게 군위君位를 넘겨줄 것이다.注+환공桓公에게 군위君位를 넘겨 준다는 말이다.
이미 사람을 시켜 도구菟裘에 집을 짓게 하였으니, 나는 장차 그 곳에서 노년老年을 보낼 것이다.注+토구菟裘노읍魯邑인데, 태산泰山양보현梁父縣 남쪽에 있다. 은공은 더 이상 나라 조정에 거처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외방外方에 따로 거처할 집을 건축建築한 것이다.”고 하였다.
그러자 우보는 겁이 나서 도리어 환공에게 은공을 참소하여 죽이기를 청하였다.注+[부주]林: 우보羽父는 은공이 자기의 말을 따르지 않자 가 자기에게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도리어 은공隱公환공桓公에게 참소하기를 “은공이 환공을 죽이려 한다.”고 하였다.
은공이 공자公子로 있을 때 정인鄭人호양狐壤에서 전쟁하다가 정나라의 포로捕虜가 되니,注+우리나라의 공자公子포로捕虜가 된 것을 숨겨야 하기 때문에 ‘’라고 한 것이다. 호양狐壤은 정나라 땅이다.정인鄭人이 그를 윤씨尹氏의 집에 수금囚禁하였다.
은공이 윤씨尹氏注+윤씨尹氏나라 대부大夫이다.에게 뇌물을 주고서 윤씨가 주제主祭하는 종무신鍾巫神에게 기도祈禱하고는注+윤씨尹氏가 주관해 제사지내는 것이다. [부주]林: 윤씨가 주제主祭하는 종무신鐘巫神에게 기도한 것이다. 드디어 윤씨尹氏와 함께 나라로 돌아와서 나라에 종무신鍾巫神신주神主를 세웠다.注+나라에 종무鐘巫신주神主를 세운 것이다.
11월에 은공이 종무에게 제사지내려고 사포社圃注+사포社圃원명園名이다.에서 재계齋戒하고서 위씨寪氏의 집에 머물렀는데,注+은 머무르는 것이다. 위씨寪氏나라 대부大夫이다. 임진일에 우보羽父(刺客)을 보내어 은공을 시해弑害한 뒤에 환공을 세우고서 위씨를 공격攻擊하니, 위씨의 종족宗族 중에 죽은 자가 있었다.注+임금 시해弑害한 죄를 위씨에게 씌우고자 하였으나 다시 정법正法으로 주벌誅伐할 수 없었다. 의 말은 진퇴무거進退無據이다.
에 은공의 장사葬事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은공을 임금의 상례喪禮장사葬事지내지 않았기 때문이다.注+환공桓公이 은공을 시해하고서 찬립簒立했기 때문에 상례喪禮제후諸侯의 예로 치르지 않은 것이다.


역주
역주1 辱在寡人 : 辱은 恭敬을 표시하는 謙辭로, 감사하고도 영광스럽다는 뜻으로 쓰이고, 在는 存問의 뜻이다. 辱在는 곧 높으신 몸을 굽혀 이렇게 찾아와 安否를 물어주니 영광이라는 뜻이다.
역주2 遷廟主 : 新死者의 入廟로 인해 遞遷된 神主를 이르는데, 여기서는 新死者를 이른 듯하다.
역주3 : 命令副詞로 쓰였다.
역주4 天其以禮 : 其는 或의 뜻으로 쓰였다.
역주5 無寧……其社稷 : 이 句는 異說이 많다. ‘玆’에서 句를 떼어, ‘無寧’을 ‘寧’으로 처리하고 ‘玆’를 ‘此地’로 보아, “어찌 이 허의 동부에만 머물러 있을 뿐이겠는가. 허장공이 다시 돌아와서 그 사직의 제사를 받들 것이다.”로 해석한 설도 있고, ‘無寧’을 ‘寧非’로 보아, “어찌 이 허장공이 다시 그 사직을 받들지 않겠는가.”로 해석한 설도 있으며, ‘玆’를 ‘使’로 보아, “어찌 허장공으로 하여금 다시 그 사직을 받들게 하지 않겠는가.”로 해석한 설도 있다. 조선의 李恒福도 《魯史零言》에서 ‘無寧’을 ‘寧非’로‘ 玆’를 ‘此地’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역자는 ‘玆’를 ‘使’로 해석한 楊伯峻의 說을 취하여 번역하였다.
역주6 無滋他族 : 滋는 ‘玆’와 마찬가지로 ‘使’의 뜻이다. 李恒福의 《魯史零言》에도 使의 뜻으로 해석하였다.
역주7 許祀禋 : 禋祀는 諸侯가 封內의 山川에 지내는 祭祀인데, 여기서는 허나라 領土의 뜻으로 쓰였다.
역주8 新邑於此 : 此는 新鄭地方을 가리킨다. 정나라가 원래에는 서쪽에 있었는데, 周平王이 東遷한 뒤에, 鄭武公이 虢나라와 檜나라를 쳐서 그 땅을 합병하고서 이곳에 나라를 세웠다.
역주9 四岳 : 帝堯 때 四方의 諸侯를 管掌했던 官名이다.
역주10 互言 : 互文과 같은 말로 두 句 이상의 글에 同義의 말을 한 번만 사용하여 글자의 중복을 피하는 修辭法인데, 여기서는 패전한 나라나 승전한 나라 중 한 쪽이 고하면 기록할 뿐, 두 나라가 모두 고하여야 기록한다는 말은 아니라는 뜻이다.
역주11 羽父請殺桓公‧‧‧‧‧‧反譖公于桓公而請弑之 : 《史記》 魯世家에 의하면 公子揮(羽父)가 은공에게 아첨하기를 “백성들이 임금님을 좋아했으므로 임금님께서 마침내 임금이 되신 것입니다. 제가 임금님을 위하여 子允(桓公)을 죽일 것이니, 임금님께서는 저를 相(정승)으로 삼으소서.”라고 하자, 은공은 “先君의 命이 계셨다. 자윤이 어리기 때문에 내가 대신 섭정한 것이다.”고 하며, 그의 요청을 거절하였다. 그러자 우보는 자윤이 이 사실을 듣고 자기를 죽일 것을 두려워하여, 도리어 은공을 자윤에게 참소하기를 “은공이 임금 자리를 굳히기 위해 그대를 제거하려 하니, 그대가 그를 圖謀하겠다면 나는 그대를 위해 은공을 죽이겠다.”고 하니, 자윤이 허락했다. 그러므로 우보가 자객을 보내어 은공을 시해한 것이다.
역주12 正法 : 임금을 시해한 역적은 그 宗族을 滅하고 그 집을 연못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 말은 위씨에게 弑君의 죄를 씌우고자 하였으나, 사실은 위씨가 시해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법을 시행해 다 죽일 수 없었다는 뜻이다.
역주13 進退無據 : 매우 곤란한 처지를 만나 의지할 곳이 없다는 말인데, 여기서는 위씨를 죽이자니 실로 임금을 시해한 역적이 아니고, 위씨를 놓아두자니 임금을 시해한 사람이 없게 되므로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어서 傳을 이렇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는 뜻으로 쓰였다.

춘추좌씨전(1)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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