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묻자, 태자가 말하기를 “
제齊나라에 아무 일이 없다 하더라도 내 감히 아내를
취娶할 수 없는데, 지금 임금의 명령을 받고 제나라의 위급함을 구원하러 왔다가 아내를 얻어 돌아간다면 이는 전쟁을 이용하여 혼인하는 것이니, 백성들이 나를 뭐라 하겠는가.
注+반드시 백성들에게 괴상히 여김을 당한다는 말이다.”라 하고 마침내
정백鄭伯에게 고하여 사절하게 하였다.
注+아비의 명命을 가탁假托하여 사절한 것이다. 이것이 노환공魯桓公 11년에 정鄭홀忽이 위衛나라로 출분出奔한 일의 배경이다.[부주]朱: 내가 고찰하건대 《시경詩經》 〈정풍鄭風유녀동거有女同車서序〉에 “정인鄭人이 홀忽이 제齊나라와 혼인하지 않았다가 끝내 강대한 외원外援이 없어 축출되는 데 이른 것을 꼬집은 것이다.”고 하였고, 또 《좌전左傳》을 고찰하건대 “자신을 위한 계획은 훌륭하였다.”고 하였고, 환공桓公 11년에 “반드시 취하십시오. 현재 임금께는 사랑하는 여자가 많으니, 태자께 강대强大한 외원外援이 없으면, 아마도 임금이 되지 못할 것이고, 세 공자公子가 모두 임금이 될 가망이 있습니다.”고 한 채중祭仲의 말이 기재記載되었는데, 이는 시서詩序의 말과 실로 서로 보완補完이 된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성패成敗를 가지고 시비를 논하였고, 오직 여동래呂東萊만이 “홀이 혼인을 사절한 것은 잘한 일이고, 미약해진 것은 잘못한 일이다. 가령 그가 사절하지 않고 문강文姜을 아내로 맞았다면 납간拉幹의 화禍가 노환공魯桓公에게 있지 않고 정鄭홀忽에게 있었을 것이다.”고 하였으니, 진실되도다 이 말이여.